(서문) 나혜석은 1933년 2월 28일 자 《조선일보》에 발표한 모델여인일기(다음과 같이 말했다. 記)」에서 "남자는 칼자루를 쥔 셈이요, 여자는 칼날을 쥔 셈이니 남자 하는 데 따라 여자에게만 상처를 줄 뿐이지. 고약한 제도야, 지금은 계급 전쟁 시대지만 미구(未久)에 남녀 전쟁이 날 것이야. 그리고 다시여존남비시대가 오면 그 사회제도는 여성 중심이 될 것이야. 무엇이든지 고정해 있지 않고 순환하니까." - P9
그녀는 여성이 글을 쓰는 행위자체가 사회적 실천이라고 믿었다. 나혜석에게 글쓰기는 은밀하고 사적인 취미가 아니었다. 나혜석은 글쓰기를 통해 자기 존재를 증명하고, 여성들과 소통하며, 여성에게 억압적인 사회와 맞서 싸우려 했다. - P11
나혜석의 말은 옳다. 이제 그녀의 글을 다시 읽어 보려한다. 나혜석은 여성이 말을 하고 여성이 글을 쓸 때 세상은 달라진다고 믿었다. 그녀의 목소리가 널리 전해지길 바란다. - P13
‘먹고 입고만 하는 것이 사람이 아니라 배우고 알아야 사람이 에요. 당신 댁처럼 영감 아들 간에 첩이 넷이나 있는 것도 배우지못한 까닭이고, 그것으로 속을 썩이는 당신도 알지 못한 죄이에요. 그러니까 여편네가 시집가서 시앗(첩)을 보지 않도록 하는 것도 가르쳐야 하고, 여편네 두고 첩을 얻지 못하게 하는 것도 가르쳐야만 합니다.‘ 하고 싶었다. - P30
저와 같이 옷을 입고 말을 하고 걸어 다니고 손으로 일하는 것은 만물의 영장인 사람이라고 배웠다. 그러면 저도 이런 귀한 사람이다. - P63
나혜석은 근대 여성 지식인이었다. 나답게 살아가는 방법이 무엇인지, 예술가로서 무엇을 추구하고 연마해야 하는지, 조선의 여성들이 개척해야 할 삶은 무엇인지, 결혼생활을 어떻게 이끌어 갈 것인지, 나혜석의 고민은 깊었다. 하지만「이혼 고백장」 전반에 드러나듯이 나혜석은 이혼을 막고 결혼 생활을 유지하고 싶었다. 이 글의 부제 ‘청구(靑邱) 씨에게‘가 말해 주듯, 나혜석은 전남편 김우영에게 사건의 전말과 본인의 진심을 여전히 전하고 싶어 했다. - P148
조선 남성 심사는 이상하다. 자기는 정조 관념이 없으면서 처에게나 일반 여성에게 정조를 요구하고 또 남의 정조를 빼앗으려고 합니다. 서양에나 동경 사람쯤 하더라도 내가 정조 관념이없으면 남의 정조 관념이 없는 것을 이해하고 존경합니다. - P200
"사는 것은 몸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사는 것이야." "몸이 늙으면 마음도 늙지." "아니지, 몸이 늙어 갈수록 마음은 젊어 가는 것이야. 오스카와일드의 시에도 ‘몸이 늙어 가는 것이 슬픈 것이 아니라 마음이짊어 가는 것이 슬프다‘고 했어. 그러기에 서양 사람은 나이 관념이 없이 언제까지든지 젊은 기분으로 살 수 있고, 동양 사람은 늘나이를 생각하기 때문에 쉬 늙어." - P205
나혜석은 있는 그대로 표현했다. 화가로서 계속 성장하길 꿈꾸었던 나혜석의 소망은 출산 후 잠자기로 바뀌었다. "꼭 한시간만이라도 마음을 턱 놓고 잠 좀 실컷 자 보았으면 당장 죽어도 원이 없을 것 같았다." - P231
나혜석 신문 조서」를지금도 확인할 수 있다. 나혜석은 3·1운동 이후로도 독립운동에직간접적으로 관여했다. - P286
우리 조선 여자는 확실히 예부터 오늘까지 나를 잊고 살아 왔다. 아무 한 가지도 그 스스로 노력해 본 일이 없었고, 스스로 구해본 일이 없었으며, 그 혼자 번민해 본 일이 없었고, 제 것으로 얻은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가엽다. 나를 잊고 사는 것, 이것이야말로 처량한 일이 아닌가. - P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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