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배고픔‘을 알지 못했습니다. 아니, 그건 내가 먹고사는 데에 걱정 없는 집에서 자랐다는 말이 아니라, 그런 유치한뜻에서 한 말이 아니라, ‘배고프다‘라는 감각이 어떤 건지 확실히 실감하지 못했다는 겁니다. 이상하게 들릴지는 모르겠지만 위장이비어 있어도 스스로 그걸 느끼지 못했다는 말입니다. - P14
나는 어릴 때부터 우리 가족들조차, 그들이 얼마나 고민을 하고, 또 무슨 생각을 하면서 살고 있는지 전혀 짐작하지 못했고, 단지 두려워했으며, 서먹하고 딱딱한 분위기를 참을 수 없어서, 그 ‘우스운 행동‘을 몸에 익혔던 것입니다. 그 결과 나는 언제부턴가단 한마디도 본심을 말하지 않는 아이가 된 겁니다. - P17
나는 부모님이나 형제들에게 핀잔을 들으면 뭐라고 한마디라도 말대꾸를 한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그 대수롭지 않은 잔소리가 내겐 청천벽력과도 같이 큰 충격이었고, 미쳐버릴 것만 같아서 말대꾸는 천만의 말씀, 그 잔소리야말로 천하에 둘도 없는 인간의 ‘진리‘다. 내겐 그 진리를 행할 능력이 없으니, 인간과 함께살 수 없는 건 아닌가라고까지 생각했습니다. - P18
하긴 누구든 다른 사람에게 비난을 받거나, 욕을 먹거나 해서기분이 좋을 사람은 없겠지만, 나는 화를 내는 인간의 얼굴에서 사자보다, 도깨비보다, 용보다 훨씬 더 무서운 동물적 본성을 읽습니다. - P18
인간에 대해 언제나 공포를 느꼈으며, 한 인간으로서의 나 자신의 언동에 전혀 자신을 갖지 못해서, 그래서 나의 고뇌는 가슴속작은 상자 안에 깊숙이 숨겨두고 그 우울함, 초조함은 철저히 숨겨, 겉으로는 언제나 즐거운 낙천주의자로 가장하고, 해학적이고유머러스한 괴짜로 차츰 나 자신을 완성시켜 갔습니다. - P19
나는 나자신이 태어난 순간부터 음지에 숨어 사는 사람이었다는 생각이들고, 세상 사람들에게 떳떳하지 못한 자라고 손가락질 받는 사람과 만나면, 나는 진심으로 정이 갑니다. - P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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