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지점에서 입술을 얇게 다물어야 하는지, 어디에서 시선을 돌리거나 화제를 바꿔야 할지 자연스레 터득했다. 문제는 알 수 없는 수치심이었다. 내 처지에 대한 원망과 분노, 배신감 같은 감정이 일렁일 때면 항상 수치심도 함께 움찔거렸다. 반복되는 너절하고 복잡한 기분이 싫었다. 내 과거를 끊어 내고 싶었다. 없던 시절로 치워 버리고 싶었고 뒤도 돌아보고 싶지 않았다. 한동안 그러고 잘 살았다. 서정희 씨의 죽음이 아니었다면 입양으로 시작되는 내 과거 따위 없는 셈 치고 잘 살아갔을 터였다. - P20
서럽고 처량했다. 익숙한 수치심이 속에서 드글거렸다. - P45
엄마 서정희 씨가 힘든 삶을 살게 된 이유는 궁금했다. 어디에서부터 어긋났던걸까. 연우의 아빠는 어디에서 뭘 하고 있을지도 궁금했다. 자기 아들이 법원에서 엄마를 밀 수밖에 없었다며토하듯이 우는데, 아빠라는 작자는 대체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있는지. 화가 치밀어 올랐다. - P202
유리야 사람마다 느끼는 고통은 각각 다른 것 같더라. 감당해낼여건도 다르고. 설령 나와 비슷한 상황에서 죽음을 선택한 사람이 있다고 해도 함부로 말할 수는 없을 거야." 길이 열리기 시작했다. 선생님은 조금씩 속도를 내며 비슷한말을 반복했다. - P207
『훌훌』이 모든 사람의 마음에 닿는 소설이기를 바라지만 무엇보다 입양 가정으로부터 지지를 얻는 소설이 되기를 소망한다. 이 소설이 그분들께 힘이 되기를 바란다느니, 세상이 그분들의 삶을 알아주었으면 한다느니하는 말이 섣불리 나오지는 않는 걸 보면 나는 여전히 훌훌』이 그분들께 불편한 마음을 끼치면 어쩌나 걱정하고 있는 것 같다. - P254
소설 속 등장인물의 슬픔이 나의 사연과 맞물릴 때, 우리는 위로를 받기도 하고 힘을 얻기도 한다. 나만 괴로운 게 아니었다. 유리도 그랬다. 세윤도, 할아버지도, 고향숙 선생님도 마찬가지였다. 우리가 우리에게 닥친 슬픔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기 위해애쓰듯이 훌훌』의 그들도 괴로운 일들이 밀려올 때 비켜서지 않았다. 우리는 모두 같은 사람들이었다. - P25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