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쓰는 소년 - 미시마 유키오 단편선
미시마 유키오 지음, 박성민 옮김 / 시와서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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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 작가가 표절할만큼 반짝이는 죽음에 이르는 탐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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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의 어린이들
이영은 지음 / 을유문화사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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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때의 일이다.

당시 글짓기 주제는 ‘미래의 나’였다.

여물지 않은 머리로 미래의 내 모습을 적었다.

구체적 문장은 기억나지 않는다. 당시 상상한 이미지만 선명하다.

트렌치코트를 입고 가을의 도시를 걷는 남자.

어디선가 보았을 매체의 영향이 분명하다.

열심히 적어 제출한 글은 무참한 평가와 함께 돌아왔다.

아이답지 않은 글이라 누군가의 대필이 의심된다는 평가였다.

교사에게 트렌치코트를 입고 고독을 씹는 가을 남자는 어린이답지 않은 이미지였다.

아이의 세계에 트렌치코트는 존재하지 말아야 한다.

고독도 어울리는 정서가 아니다.

가을 남자가 아닌 봄의 아이가 어린이다운 미래다.

밝고 씩씩하며 착하고 어린이다우며 순진무구한 표현을 쓰는 글쓰기야말로 그들의 바람이었다.

독일의 8대 총리 메르켈은 16년간 총리직을 수행 후 2021년 퇴임했다.

총리로 적지 않은 시간을 보낸 메르켈의 퇴임 기사에 흥미로운 부분이 있었다.

바로 독일 어린이들 사이에서 ‘남자도 총리가 될 수 있느냐’라는 질문이 나왔다는 문장이다.

질문을 한 아이들이 자란 시대의 총리는 여자였다.

어린이가 보는 텔레비전에서도 인터넷 뉴스와 신문 기사에서도 그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16년간 변하지 않았던 아이들의 세계였다.

16년도 이러한데, 35년은 어린이의 세계를 어떻게 바꿔놓을까.

1910년, 한일강제병합으로 일본은 조선을 집어삼켰다.

대한제국이란 국호도, 조선이란 이름도 과거가 되었다.

육첩방도 아닌 한반도가 남의 나라가 되었다.

강제병합 이후 태어난 어린이에게는 조선도, 대한제국도 존재하지 않는 나라였다.

조선어와 가족, 이웃, 문화, 어른들이 알려주는 역사가 어린이에게 제국주의 국가와 다름을 알려주고, 그 흔적을 짐작게 한다.

제국주의 일본은 3.1 운동의 뜨거운 맛을 보고 문화통치로 그 방향을 전환했고, 문화통치는 곧 내선일체로 나아갔다.

《제국의 어린이들》은 이 내선일체가 한창이던 1938년부터 1944년까지 조선총독부가 개최한 글짓기 경연대회의 수상작들을 자세히 분석한 책이다.

책에 소개되는 양국 어린이의 글은 단행본으로 나온 조선총독부 글짓기 경연대회의 제1회 수상작과 제2회 수상작들이다.

나라 잃은 조선의 어린이뿐 아니라 재조일본인在朝日本人, 즉 조선 땅의 일본 어린이들이 쓴 글도 나란히 실려있다.

내지(일본 본토)와 조선이 한 몸, 즉 내선일체가 식민 수탈을 위한 이데올로기가 아니라면 교육과 의무도 같아야 한다. 조선과 내지의 차별도 존재하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당연히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내선일체를 진심으로 믿고 황국신민이 되고자 했던 이봉창은 일본의 끊임 없는 차별대우를 받았다.

차별대우는 나라 잃은 설움을 키우고 설움은 현실을 알려줬다.

쇼와 천황에게 겨냥한 폭탄은 빗나가고 의거는 실패로 돌아갔다.

내선일체가 진실이라면 일어나지 않았을 의거다.

교육 역시 달랐다.

지금의 윤리 교과에 해당하는 수신 교과서에는 일본 어린이가 배우지 않는 내용이 있었다.


요컨데 ‘위를 쳐다보지 말라’, ‘분수를 알라’는 말이 있습니다. ‘위를 쳐다보지 말라’는 말은 쓸데없이 위를 올려다봐서는 안 된다는 뜻으로, 신분이 높은 사람이나 부유한 사람을 부러워하지 말라는 의미입니다, ‘분수를 알라’고 하는 것도 같은 의미로, 모름지기 사람은 자신의 분수를 알고 무슨 일이든지 분수에 맞게 행동해야 한다는 것을 이르는 말입니다.

(중략)

사람은 쓸데없이 위를 올려다보지 말아야 하며, 자신이 가지고 있는 지식이나 재능 등을 잘 고려하여 제각기 그 분수에 맞는 생활을 하도록 하여야 합니다.

『조선총독부 수신서 4학년』 16장 ‘분수를 알라’ 중에서


양국의 어린이는 언어도, 환경도 다르다.

글을 쓰려면 글을 배워야 한다. 

1938년 3월에 개정된 3차 교육령 시대부터는 조선 내 어린이 취학률은 ‘일본인 93.8%, 조선인 30.8%’였고, 일본어 교육의 비중도 ‘국어(일본어) 34.97%, 조선어 8.75%’였다. 

초등 교육기관인 소학교에 취학해 모어가 아닌 일본어를 능숙하게 다루는 조선의 어린이는 적었다.

‘국어(일본어)로 자유롭게 대화하거나 자신의 생각을 담은 작문을 쓸 수 있을 정도’는 아니었기에 총독부 글짓기 대회에 일본어에 능숙한 지도 교관이 함께했다.

모어가 아닌 일본어의 서투른 표현은 조선어 잡지나 신문에 실린 글에서는 달라진다.


 일본 어린이는 수상작에서 순진무구하게 프랑스 인형, 란도셀, 축음기 등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 물건을 가난한 조선인 어린이는 접할 수 없다. 

요오코 양이 조선인 여아에게 "느 집엔 이거 없지?"란 말과 함께 프랑스 인형을 자랑하며 “너 프랑스 인형이 예쁘단다”란 말을 했다면 무슨 일이 일어났을지 생각해 보자.


 가난한 조선인 어린이만이 가계 일을 도우며 별다른 오락 거리도 없다. 일제에 협력하는 고관들의 자제는 물론 상황이 또 다르다.


 양국 어린이들이 받은 수상작들은 ‘일본 제국’, 그리고 ‘어른’들이 바라는 어린이상에 걸맞은 글이다. 

MZ세대 소년이 꿈꾸었던 어린이답지 않은 이미지는 없다.

어떻게 써야 수상할 수 있는지 계산했거나 무구한 마음에 그런 삿된 정서가 자리 잡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분노와 울분, 양국 어린이 사이의 혐오를 드러내는 감정 또한 없다. 


《제국의 어린이들》에서는 테마별로 분류한 수상작들의 시대적 배경을 자세히 설명한다.  


무구한 시선에도 시대의 어둠은 담겨있다.

가난, 질병, 죽음, 병사, 전사, 부상.

어둠은 민족을 가리지 않는다.

오랜 기간 지속된 식민지배는 어린이의 눈과 마음을 가렸다.

국가와 천황을 위해 동원되는 가족과 어른들을 향한 순진한 목소리는

모범 답안처럼 전쟁을 응원한다.

때로는 무슨 의미인지 이해하지 못하고 어른들의 말을 따라 한다. 

파치, 파치(빵야, 빵야) 쏘는 신나는 총소리가 무서운 소리임을 모른다.

수상작에 깊게 박힌 국가주의도 비극을 완전히 지우지 못한다.


오빠의 얼굴은 무서울 정도로 말라 있었습니다. 상처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지만, 어딘지 모르게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았습니다.

(중략)

손은 화상을 입은 것처럼 쪼글쪼글해져 있었습니다. 한쪽 눈은 유리 눈입니다. 그 눈은 천황 폐하께서 주셨다고 합니다. 가슴 위에는 검은 총알 자국이 남아 있습니다.


어린이는 트렌치 코트를 입은 가을 남자가 아닌 지나인들을 학살하는 병사들을 흉내낸다.

병사님들처럼 천황의 신민이 되겠다는 맹세를 한다.

순수하고 맹목적인 어린이다운 마음을 제국주의 일본의 욕망이 채우고 있다.

제국주의의 폭력은 무겁게 어린이를 짓누른다. 어린이의 세계를 장악한다. 

일제의 욕망은 순진무구한 양국 어린이의 눈으로 투명하게 비추어진다.


 잃어버린 조국을 향한 목소리는 이 모범적 수상작에 끼어들 틈이 없다. 

병사님들을 위한 편지를 보다 잘 쓰기 위해 나무 판 돈을 모으던 정태옥 어린이의 글을 보면 더욱 그러하다.

어린이는 집 안에서 신을 모시는 '신단'이라는 이질적 의무에 부응하기 위해 저금통을 깬다. 

‘비록 집은 가난하지만, 아버지가 안 계시더라도, 신 아래에서 즐겁게 살아가면 행복이 찾아올 것이다. 반드시 올 것이다’란 마음으로 다짐한다.

일제의 추악한 욕망이 어린이의 마음을 채워 휘두르지만 정태옥 어린이의 행복을 향한 마음은 따뜻하기만 하다.


그리고 학교에 가지도, 글을 배우지도 못한 조선의 어린이들이 있다.

추위와 더위, 주린 배를 참고 강제노역에 동원되어 죽어 나가던 아이들이 하고 싶었던 말은,

어른들이 좋아할 내용이 절대 아니리라. 제국주의 일본이 지우고 싶은 목소리다. 

목소리를 내지 못한 이 아이들도 행복한 그 날이 반드시 오길 진심으로 바랐을 터다.


잃어버린 무언가는 어린이를 찾아온다. 

추악하고 어두운 세계가 파괴되고 새로운 세계가 어린이의 눈과 마음을 씻는다. 

세계의 이름은 광복이다.


https://youtu.be/98D5d62A6iQ?feature=shar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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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eatDane 2025-09-05 15: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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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
가와바타 야스나리 지음, 정수윤 옮김 / 북다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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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너의 손가락을, 손을, 팔뚝을, 가슴을, 뺨을, 눈꺼풀을, 혀를, 치아를, 다리를 애착했다.

나는 너를 사랑했다. 너도 나를 사랑했다고 해도 좋다.


열도에서 이 문구가 BL(남남상열지사)을 사랑하는 이들 사이에서 화제가 되었습니다. 인용문의 소설 제목은 ⟪소년⟫. 작가는 ⟪설국⟫으로 유명한 가와바타 야스나리입니다.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쓴 BL 소설’이라는 키워드와 문구의 조합은 열도의 남남상열지사를 사랑하는 이들을 열광시켰습니다. 

⟪소년⟫은 본디 가와바타 야스나리 전집에만 실려있고 출판된 단행본이 없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가와바타 야스나리 서거 50주년 기념으로 신초샤에서 출판될 때는 가와바타가 쓴 BL 작품이란 특징 때문에 기획 단계에서부터 사내에서 큰 호응을 얻었다고 합니다. 마케팅의 방향도 그쪽으로 잡은 듯하고요.

출간 이전 보도 자료 배포 이후 미디어의 문의가 쏟아지고 SNS에서도 앞서 말한 인용구와 BL 소설이란 조합 때문에 주목을 받았고 순문학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3만부라는 높은 판매량을 기록했습니다. 신초샤의 문고본 출간 이전에는 국내 출간이 성사되지 않았다지만 문고본 출간 후 국내 출간이 가능하게 되었으니, 일본에서의 성공이 영향을 주었다고 해야겠지요. 문학에 대한 사랑, 그리고 남남상열지사에 대한 집념 어린 사랑이 낳은 긍정적인 현상입니다. 사랑의 힘이 위대한 증거라 할 수 있습니다.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소년⟫에서 어린 시절 요절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다고 고백합니다. 칠삭둥이라는 약한 몸으로 태어나 아버지는 세 살, 어머니는 네 살 때, 소학교(초등학교) 때는 할머니와 누이, 중학생 때는 소설 속에서도 언급되듯이 사촌누이와 하나뿐인 할아버지도 죽습니다. 심지어 외삼촌까지 사망합니다.

요절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던 때를 지나 이 소설을 쓰는 쉰 살까지도 죽음의 그림자는 가와바타를 떠나지 않습니다.

 

내 주변에 시체가 겹겹이 쌓여 간다는 느낌도 쉰이 되면서 깊어졌다. 문학판의 동료들이 잇달아 죽어 나갔다. 다들 나보다 체격이 좋았다. 죽는 사람이 하도 많으니, 목숨만 붙어 있어도 언젠가는 행운이 찾아올 거라는 생각도 강해졌다. 누군가를 만나는 건 어려운 일이고, 헤어지지 않는 건 더 어려운 일이지만, 오래 산다면 살아서 다시 만날 수 있으리라.


가와바타 야스나리 지음, 정수윤 옮김, 《소년》, 북다, 2025, 8p   


 애니메이션이나 라이트노벨, 만화의 등장인물이 이런 과거를 가지고 있다면 보통 이런 생각을 하겠지요. 

내가 태어나서 주변 사람이 불행하다. 또는 내 주위에 있으면 저주를 받아.

가와바타는 건강한 몸은 아니었기에 앞서 말했듯 요절에 대한 두려움이 더 컸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자신의 선택으로 세상을 등질 때까지 죽음은 가와바타 야스나리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였을 것입니다. 

가와바타는 죽음을 두려워하지만 그를 극복하기 위한 수단으로 종교를 택하지는 않았습니다. 그가 집착한 것은 독서와 문학과 아름다움이었어요.


육체의 미, 육체의 미, 용모의 미, 용모의 미. 나는 얼마나 미를 동경하고 있는가. 나의 몸은 역시 창백하고 힘이 없다. 나의 얼굴은 약간의 젊음도 깃들지 않고, 누렇게 그늘진 눈은 날카로이 충혈되어 있다고 해도 좋을 정도로 빛난다. 


동 서적, 112p 


유일하게 남은 육친인 할아버지가 있을 당시도 소년은 누군가의 온정이 그리웠습니다. 


벗의 작문이 끝난 뒤 언제나처럼 아버지 어머니까지 다섯 명이 화로에 둘러앉아 단란한 시간을 보낸다. 화제가 이리저리 뒤바뀌어 주마등 같다. 늘 그렇듯 이 집안사람들의 온정은 더없이 기쁘다. 부모도 없고 형제도 없는 나는 만인의 사랑보다 두터운 할아버지의 사랑과 이 집안사람들의 사랑으로 살았다.


동 서적, 26p   


할아버지를 잃자, 소년은 외삼촌 집에 기거하게 됩니다. 

가족이 없는 소년을 사람들이 어떤 눈으로 보고 무슨 말들을 했을까요? 소년은 가족이 아닌 사람들 앞에서 어떤 태도를 보였을까요?


 북토크에서 정수윤 번역가님이 말씀하시길 당시에는 책방에서 책을 외상으로 빌릴 수가 있었는데 분기 때 날아오는 영수증에 적힌 그 액수가 현재로 따지자면 직장인 월급 수준이었다고 해요. 독서가 가와바타에겐 중요한 안식처였던 거지요. 그리고 이 책값 때문에 가와바타는 반강제로 작품의 무대가 되는 중학교 기숙사에 가게 됩니다. 이렇게 외롭고 쓸쓸한 소년을 위로해 준 따뜻한 기억이 있습니다. 그 기억을 담은 원고가 ⟨유가시마에서의 추억⟩입니다. 이 원고가 실존했던 원고인지에 대해서는 뒤에 언급하겠습니다. 원고를 수정해 전반부는 28세에 개작, 가와바타의 대표작 중 하나인 《이즈의 무희》가 되었고 후반부가 《소년》의 주요한 이야기인 중학교 기숙사에서 만나게 된 미소년 후배 세이노라는 소년에 대한 추억입니다.


개작으로 《소년》이란 소설이 된 것이 아니라 세이노에 대한 추억이라니 좀 특이하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사실 《소년》은 가와바타가 ‘미야모토’란 이름의 화자가 되어 쉰 살 기념 전집을 출간하면서 전집에 실린 원고에 대한 이야기와 일기, 편지, 그리고 자신의 삶을 술회하는 사소설입니다.

본인의 회고, 편지, 일기. 

회고는 그렇다 쳐도 편지와 일기를 보여주는 방식은 내밀한 가와바타의 사생활을 들여다보는 효과를 줍니다. 

특히 화제가 된 인용문을 생각해 보면 어떤 분들은 더 기대되겠지요.


 ⟪잠자는 미녀⟫를 쓴 변태 영감 아니, 외로운 소년이 보여주는 중학교의 사랑은 얼마나 아름다울까요? 세계적으로도 널리 알려진 설국을 떠올려보면 열도의 남남상열지사를 사랑하는 독자들의 기대가 후지산만큼 높아졌을 것은 틀림없습니다.

BL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비슷한 생각을 할 것입니다. 남자 기숙사에서 이루어지지 않은 금단의 사랑을 대문호의 솜씨로 아름답게 표현해 줄 거라고 말입니다.


결핵에 걸린 후유증으로 아픈 다리를 끌고 온천에서 요양하는 가와바타. 아버지와 어머니가 요절한 나이를 넘은 쉰 살의 가와바타는 온천만큼 따뜻하게 그를 위로해 준 소년에 대한 추억을 돌아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자신을 위로해 주던 소년에 대한 글을 쓰면서도 가와바타의 눈동자는 계속해서 다른 미소년들에게 돌아갑니다. 아름다운 소년 세이노와의 추억뿐만이 아니라 중학교 시절 그가 접하는 모든 미소년을 기록하고 있어요.

주인공인 ‘나’(미야모토)가 언급하는 미소년들의 숫자는 꽤 놀랍습니다.

다카기, 후쿠에이, 니시카와, 아사다, 가쿠가와, 가키우치, 고이즈미, 1학년생 N, 1학년생 M, 시라카와, 플랫폼에서 본 부드럽고 아름다운 소년. 이렇게 총 11인입니다. 

가키우치의 경우 교장실로 불려 가 가키우치에게 편지 좀 그만 보내라는 훈시를 들을 정도였고, 플랫폼에서 본 부드럽고 아름다운 소년은 기차의 같은 칸에 타서 그 소년이 내릴 때까지 병적인 망상을 했다고 합니다.

아름다움에 집착하는 소년은 금사빠였습니다. 


 ‘나’는 세이노가 믿는 종교인 오모토교의 2,3대 교주도 만나게 됩니다. 오모토교에 대한 실망과 신랄한 비판을 하는 이유 역시 이 아름다움에 대한 집착과 맞닿아 있습니다. 오모토교에 실망하는 계기가 바로 2, 3대 교주의 평범한 외모 때문이니까요. 신자인 세이노 소년의 외모가 더 훌륭하기 때문에 세이노가 신 이상이며 차라리 나에게 귀의하라는 말까지 할 정도죠.


세이노가 신자임을 감안하더라도 분량이 많지 않은 작품에서 2, 3대 교주에 대한 실망, 그리고 세이노가 머무르고 있는 사가를 찾아간 이야기 등 오모토교에 대한 비중이 적지 않습니다. 어쩌면 ‘나’야말로 종교를 믿고 싶었던 것이 아닐지 생각합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허무함을 극복하기 위해서죠. ‘나’는 ‘믿음이 있는 소년의 마음이 부럽’기 그지없습니다. 그러나 ‘나’는 세이노처럼  의심하지 않고 누군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아니며 아름다움에 집착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오모토교와 같은 종교를 믿을 수 없는 사람입니다. 


가와바타는 어쩌면 남자 기숙사의 카사노바, 옴므 파탈, 마성의 남자가 되고 싶었을지도 모릅니다.


세이노, 고이즈미……? 나는 더욱더 사랑에 불타는 소년들과 방을 만들고 싶다.


107P


그렇다면 그는 자신의 외모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요? 

앞서 인용한 112p에서는 자신의 외모에 대한 인식이 드러납니다. 또한 문예잡지의 친목회에 참석해달라는 편지를 받고 기뻐하며 새 옷과 돈을 찾아가려다 다음과 같은 이유로 포기합니다.


친목회에 모이는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나의 연령은? 거기다 지식은? 더 중요한 나의 풍채와 용모는?


동 서적, 113~114p


자신의 재능도 의심하고 있었지요.


미술 시간에 S군에게도 말한 것처럼, 나는 고등학교를 거쳐 제국 대학에 진학한다면 차라리 문학을 다루는 학자가 되는 게 어떨까 싶다. 창작 쪽 재능이 점점 의심스러워지면서 사실 요즘 나의 마음은 그런 쪽으로 기울어지고 있다. 그러나 아직 붓을 놓은 건 아니다. 아니 놓을 수 없으리라. 먼일이다.


동 서적, 122p


동아시아에서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작가도 자신의 재능을 의심하고 외모에 실망하고 있었습니다. 어쩌면 그가 미남이 아니라 다행일지도 모릅니다. 세이노 뿐만 아니라 11인의 미소년에게도 눈이 돌아가는 남자가 미남이었다면 아쿠타가와 문학상을 바라는 다자이 오사무를 꾸짖을 정도의 청빈한 삶의 사람이 아니라  당대의 유명한 카사노바가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다른 시간 선에서는 다자이 오사무가 아쿠타가와상을 타게 됐을까요?


그러나 가와바타는 미소년이 아니고 사랑한다는 말 역시 꺼낼 용기가 없는 소년이었습니다.


작중에 흥미로운 문구가 하나 있습니다.


이것도 나이 탓인지, 나는 요즘 사람을 그 생애의 흐름에서 보고, 현재를 역사의 흐름에서 보는 버릇이 들었다.


동 서적 9p.


소년은 앞서 말했듯 BL(동성애)을 다루는 소설입니다. 플라토닉한 사랑을 다루지만, 육체의 욕정이나 성애의 묘사가 희미한 이유는 스스로를 위로하려는 성격의 소설이라 그렇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실제 모델은 있지만 자신을 위로하고자 하는 소설에 강렬한 묘사와 정사의 섬세한 묘사를 하면 그것도 좀 곤란하겠지요. 그리고 가와바타는 객관적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사람이었고요.


소설이 화제가 되었던 인용구를 부정하는 서술도 작중에서 등장합니다.


물론 나는 너에게, 팔뚝, 입술, 사랑 따위 단어는 단 한마디도 꺼낸 적이 없고, 늘 어느 틈엔가 몸이 다가와 있는 상황이었다. 거기서 더 나아가 관계를 맺는 건 상상만 했지 실현할 생각은 꿈에도 하지 못했지. 그건 네가 더 잘 알 거다.


《소년》, P.37


내가 누군가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용기는 언제쯤 생길까. 슬픈 일이다.


동 서적, 109p


그렇다면 무엇이 사실일까요? 이들이 나눈 사랑은 진짜일까요? 관계를 한 것일까요? 아닐까요? 대체 어느 정도로 접촉했다는 것일까요?


작중에서 세이노의 대화를 인용해 보겠습니다. 


“제 몸은 선배에게 맡겼으니 원하는 대로 하세요. 죽이든 살리든 마음대로 하세요. 잡아먹든 데려가 기르든 정말로 선배 마음이에요.”


동 서적, 101p


“나의 펭귄이 되어줘.”라고 말하자, “되어 드릴게요.”하고 말했다.


동 서적, 106p


제가 이제껏 만난 친구 가운데 저를 다정하게 사랑해 준 이는 없었습니다. 딱 한 사람, 방장님만을 믿고 있었습니다. 아아, 저의 진정한 벗은 이제 미야모토 선배 단 한 사람입니다. 단 한 사람의 벗을 저는 믿습니다. 이 세상에는 불성실한 사람뿐이라고 저는 포기했습니다. 아무튼 저는 한 사람의 벗과 함께, 그 벗을 지팡이로도 기둥으로도 여기며 살아가겠습니다. 부디 저의 불행을 가여워해 주십시오.


동 서적, 162p 


과연 이런 말을 실제로 세이노의 모델이 되는 소년이 했을까요? 


짐승과도 같은 세상, 인간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진실한 사람이 없습니다. 물질문명이 발달하면 할수록, 인간의 마음은 짐승에 가까워집니다. 저는 진실한 일본 혼을 가진 훌륭한 인간 혼을 원합니다. 그리고 이 세상 사람 모두가 짐승의 지배 아래에 놓이지 않기를 원합니다. 그것 말고는 없습니다. 미야모토 선배, 세상을 싫어하던 제가 이런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기뻐해 주십시오.


동 서적. 164p 


《소년》은 논픽션의 형식을 빌린 사소설입니다. 과거의 추억을 회고하는 이야기지요. 연구에 의하면 가상의 원고로 짐작되는 ⟨유가시마에서의 추억⟩, 그리고 작중에 언급되는 일기, 예전의 원고 등을 엮고 다시 소설로 재구성한 것은 ‘사람을 그 생애의 흐름에서 보고 현재를 역사의 흐름에서 보는’ ‘나’, 가와바타입니다.


어린 시절 가족들을 잃어 누구에게도 마음을 온전히 주기 힘들었던 소년이 평생의 반려가 되리라고 생각한 이토 하츠요를 만나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자 했지만, 이유도 모르고 일방적인 파혼의 편지를 받습니다. 파혼의 이유는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밝혀지게 됩니다.


파혼의 충격을 받아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은 해가 1921년, 파혼의 아픔을 겪은 다음 해에  ⟨유가시마에서의 추억⟩ 원고를 작성했다고 작중에서 밝히고 있습니다.  


⟨유가시마에서의 추억⟩의 전반부를 개작했다는 ⟪이즈의 무희⟫를 썼을 때가 파혼의 아픔이 남아있을 무렵이라면  ⟨유가시마에서의 추억⟩의 후반부인 《소년》을 실제로 쓰거나 퇴고했을 때(1948~1952년)는 주변의 문인들도 하나둘 떠나고 일찍 여윈 부모의 나이를 넘어선 쉰 살의 ‘나’입니다. 어린 시절 미소년들의 아름다움에 감탄하면서도 그 아름다움이 언젠가는 사라지리라 생각하는 허무함이 보다 더 견고하게 된 나이죠.


《소년》에서 세이노의 편지는 작품 후반부에 등장합니다. 앞서 인용구 중 세이노의 편지의 내용인 162p, 164p의 내용을 보면 진짜로 이렇게 편지를 보냈을까 하는 의심이 듭니다. 왜 이런 구성을 택했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약혼녀가 파혼을 통보했을 때의 형식이 바로 편지였습니다. 쉰 살이 되었지만, 가와바타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가 되었던 경험이었겠죠. 

고아인 자신을 아무 의심 없이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신처럼 추앙하고 자신도 모든 것을 보여줄 수 있는, 어린 시절 좋은 기억을 해주었던 모델을 모티브로 세이노라는 소년의 손을 빌려 통해 스스로를 위로하고 싶었던 거로 생각합니다.


⟨유가시마에서의 추억⟩의 전반부를 개작했다는 ⟨이즈의 무희⟩에서도 말미를 장식하는 부분에서 온기를 전해주는 소년이 등장합니다.


소년이 대나무 껍질로 싼 음식을 펴서 권하였다. 나는 그게 남의 것이라는 사실을 잊기라도 한 듯 김초밥 같은 것을 먹었다. 그리고 소년의 학생 망토 속으로 기어들었다. 나는 누가 아무리 친절을 베풀어 주어도 그것을 무척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아름다운 공허함을 마음에 담고 있었다.

(중략)

선실 전등이 꺼져 버렸다. 배에 실은 생선과 바닷물 냄새가 강해졌다. 어둠 속에서 소년의 체온으로 온기를 느끼며 나는 눈물을 나오는 대로 내버려두고 있었다. 그것은 머리가 말은 물이 돼서 주르르 흘러넘치고, 그 뒤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는 것처럼 달콤한 상쾌함이었다.



가와바타 야스나리 지음, 신입섭 옮김, 《이즈의 무희. 천 마리 학. 호수》, 을유문화사, 2010년, 전자책   


이 인용문은 자신을 따뜻하게 대해준 무희와의 이별에서 눈물을 흘리는 장면입니다. 배에 같이 올라탄 이 소년의 정체는 과연 누구일까요? 이 소년 역시 실제 모델이 있다고 합니다만 《소년》에 등장하는 세이노 소년의 편지와 비슷한 역할이 아닐지 짐작합니다.  이즈의 무희를 집필하는 가와바타가 외롭고 상처가 많았던 스무 살의 자신에게 온기를 전해주는, 자신이 바라는 이상적인 소년의 모습으로 말이죠. 


《소년》의 완성으로 ‘나’, 미야모토가 가상의 원고로 추측되는 ⟨유가시마에서의 추억⟩과 세이노의 편지를 불태우며 막을 내리는 소설은 73년의 세월이 지나 국내에 번역되었습니다.

아름다움은 덧없이 사라지더라도 사랑에 불타는 독자들이 있는 한 유가시마의 소년은 외롭지 않을 것입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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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eatDane 2025-05-30 10: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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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blog.naver.com/ba8949/223882479507

블로그에 수정, 업로드했습니다.
 
데스매치로 속죄하라 - 국회의사당 학살 사건 온우주 단편선 15
손지상 지음 / 온우주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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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책에는 각각의 맛이 있다. 그러나 인상에 남는 맛을 지닌 소설은 얼마 되지 않는다. 여고생 고기로 시작하여 완숙으로 끝나는, 다양한 시도와 소설의 맛을 보여주는 소설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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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대전 Z 밀리언셀러 클럽 84
맥스 브룩스 지음, 박산호 옮김 / 황금가지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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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광명시




카방글은 얼마 전 생긴 자금을 인터넷 도서 주문으로 모두

날리고 말았다. 나는 그의 집에서 인터뷰를 하기로

했다. 그의 책상에는 어느 좀비 소설이 놓여 있었다.




  저는 호러 영화를 좋아하지 않아요. 특히 공포 영화는요. 왜 아까운 돈으로 스트레스를 받으려고 하는지 이해가 안되거든요. 천성이 착하고 여린(그는 잠시 내 눈치를 살폈다.)저는 잔인한 것도 싫어해요. 그러니 좀비물을 좋아할 리는 없죠. 좀비는 멋있지도 않거든요.
  물론 좀비 물을 본 적은 있어요. 리처드 매드슨의 <나는 전설이다>라는 소설이죠. 워낙 유명하다고 하니 한번 읽어보기는 했는데, 클리셰가 되어버린 탓인지 인상 깊은 작품은 아니었어요. 물론 영화는 어이가 없어서 인상에 남긴 했지만요.
맥스 브룩스의 <세계대전z>를 접한 것은 판겔이었어요. 판겔이 뭐냐고요? 디씨인사이드 판타지 갤러리란 곳이예요. 이벤트를 열기 때문에 가끔 들어가보는 곳이죠. 판겔이란 곳은 복수의 사람들에게 좋은 평을 듣기는 힘든 곳이예요. 심지어 톨킨마저도 까고 보거든요. 어느 날 가보니 다들 <세계대전z> 얘기가 한창이더라구요. 어떤 책인가 궁금해지더군요. 가끔 낚시를 하는 곳이기도 하기에 다른 믿을만한 친구에게 물어보기도 했죠. 평이 좋았어요. 흥미가 생겼죠.
  흔해빠진 좀비 소설이라면, 흥미가 생기진 않았을 거예요. <세계대전z>가 다른 점이라면 이야기를 끌어나가는 방식이었어요. 좀비로 인해 세계가 초토화된지 20년이 흘렀고,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며 생존자들을 대상으로 인터뷰를 하는 다큐멘터리 방식이었거든요. 소설은 무엇을 쓰느냐 못지않게, 어떻게 쓰느냐가 중요한 장르거든요. 그래서 제가 포스트모더니즘 소설을 좋아하구요.
  독특한 방식이었지만 읽는데 지장은 없었어요. 지장은 커녕 매우 재밌게 잘 읽혔어요. 형식은 내용만큼 중요하다는 점을 알려준 소설이라 할 수 있죠. 몇몇 부분은 감동적이기도 했어요. 인터뷰 방식이 아니었다면, <세계대전Z>에서 인터뷰 당사자들의 입장이 이렇게 생생하게 전해졌을까요?<세계대전Z>의 좀비들은 일종의 재난이라고도 볼 수 있었어요. 인터뷰란 방식을 통해 그럴 듯한 구라를 친거죠.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며 카메라 대신 인터뷰를 통해 독자들에게 재난의 현장을 보여주니 이 구라에 어찌 넘어가주지 않을 수 있겠어요?
  지루하지 않냐고요? 인터뷰란 방식이 500P동안 계속 되니 지루한 점이 없지는 않아요. 하지만 인터뷰 하나하나가 일종의 챕터의 역할을 하고, 그 이야기가 점진적이나마 이어지고 있기 때문에 그럴 새는 별로 없죠. 재밌다는 점만큼은 보장할 수 있어요 읽다보면 절로 머릿 속에 소설 속의 모습이 실감나게 그려지거든요. 밀리터리 매니아들은 더더욱 좋아할 것도 같아요. 물론 인터뷰라는 형식 자체가 불편한 사람들에게 추천하진 않아요. 누구나에게 재미있는 소설은 존재하지 않으니까요.
  사실 이 소설이 불편한 것은 정치성이예요. 물론 저는 정치적으로 공정한 소설 따윈 별 의미가 없다고 보고, 좀비라는 재난을 통해 시스템에 대한 비판을 시도할 수는 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페어플레이는 해야죠. 오타쿠에 대한 묘사야 뭐 넘어가더라도, 인간의 본성이 나라마다 다를까요? 그리고 미국의 적성국들의 시스템만 그렇게 특별히 문제가 있을까요? 작품 말미의 러시아 여성에 대한 묘사는 또 어떻고요? 마지막으로 '미국의' 대통령이 멋있게 그려진다는 점에 이르면 결론은 나오는거죠. 물론 창 독트린 같은 경우는(발안자가 이회창 같지만)재밌게 봐줄 수는 있었지만요.
  조지 A. 로메로에게 감사의 글까지 바친 것을 보면 B급 문화의 저력을 볼 수 있는 작품이었어요. 영화가 만들어진다는데, 영화도 기대가 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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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온 2008-07-24 16: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 ThanksTo를 클릭하는데 낯익은 이름이 ...

GreatDane 2008-07-24 20: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필리온/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