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바다를 닮아서 교유서가 산문 시리즈
반수연 지음 / 교유서가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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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바다를 닮아서』를 읽으면서 반수연 작가님의 삶이 파도에 깎이는 유리 조각 같다고 느껴졌다.


세상이라는 파도에 치이고 닳은 유리 조각. 햇볕에 반짝거리는 모습이 참 예쁜 맑은 유리 조각. 세월에 닳아 알록달록 예쁜 모래가 되고 있다고.







이 산문집은 읽다 보면 눈시울이 붉어진다. 힘겨운 이민생활과 녹록지 않은 삶을 담아서 그런가. 글 저변에 슬픔과 외로움이 깔려있다. 좋은 모습만 상상했던 이민 생활이 이렇게 힘든 것인가 싶다.








나도 막연히 외국 살이를 꿈꿨던 적이 있다. 아직도 그 꿈을 버리진 못했지만,, 그땐 그냥 가서 부딪히면 뭐라도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나는 바다를 닮아서』에서 작가님은 참 많은 고생을 한다. 결혼해서 남편과 어린 자녀와 함께 가는 것이 든든할 줄 알았는데 쉽지 않았다. 영어도 부족하고, 돌봐야 할 가족도 있고, 전업주부라 새로운 사람을 사귀는 것도 힘들었을 것이고 읽다 보면 마음이 짠해진다.





그 시절 나는, 우리는, 미안하지도 않으면서 너무 자주 미안하다고 말했다. 그게 쉬웠고 간단했으니까. 자존심이나 자존감마저 종종 사치로 여겨졌으니까. 그러니 미안하지 않은 일에 사과하지 않아도 될 만큼 영어 공부를 열심히 해보자. 그런 의미가 더 컸으리라. P42 l 미안하다고 말하지 마



좋아하는 영화에서도 이런 대사가 나온다.


Don't say sorry. You don't need to do that. You don't need to apologize.


예전의 나도 영어를 꽤나(?) 못했을 때는 쏘리를 연발했다. 그래서 이 글을 읽으면서 공감할 수 있었다. 영어도 영어지만 원체 마음이 착하고 여린 사람들이란 게 바로 느껴졌다.








참 따뜻한 마음이 느껴지는 게 글의 마지막에는 항상 상대방을 이해하고 걱정하며 끝맺는다.


낯선 땅에서 만난 다른 이민자를 걱정하고, 수영장에서 만난 할머니의 마음을 헤아리고, 딸이 해준 말을 반추하며 자신을 돌아보는 그런 따듯함이 가득한 글이다. 그래서 바다를 닮은 것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모든 걸 품어주는 바다라서.




『나는 바다를 닮아서』 작가님의 어려웠던 시절과 수술한 이야기 등 쉽게 꺼낼 수 없는 이야기가 담겨 있다. 독자인 난 참 감사하다. 이 글로 위로받는다. 때론 속절없이 웃기도 하고, 음식 이야기에 침을 꼴깍 삼키기도 한다.





그러니 회복 가능한 것에 너무 괴로워하지 마.



사라질 것보다 내가 매달릴 수 있는 것에 얼마나 집착했나. 사소한 것에 슬퍼하고 분노하였는가. 소중한 것을 잊어버린 지 오래고, 삶이 팍팍하다며 스스로를 괴롭히지 않았는가.





엄마, 나는 내가 뭘 못하는 게 그리 힘들지 않아. 그래서 못해도 재밌어. 그런데 못하는 걸 잘 못 견디는 친구들은 나보다 훨씬 잘해도 시도하고 싶어하지 않더라.



한동안 괴로워했다. 직장에서 실패는 가상의 단어다. 나를 평가하는 기준이 되고 나를 극한으로 몰아붙이는 이유가 된다. 실패가 두려워서 시도조차 안 했다. 나중엔 무엇이 목적인지도 잊고 실패만 피하면 된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 작가님도 그랬다고. 이제는 나만의 실패의 정의를 다르게 바꿔 버렸다. 그래서 이 말이 더 좋다. 그래서 못해도 재밌어.







고사리 괴담과 매년 사는 맛없는 쑥, 복국 이야기는 읽으면서 코끝에 음식향이 스쳤다. 아는 맛이 무섭다고 그리 맛있게 글로 쓰시면 읽는 독자 배고파요.




하지만 복국의 핵심은 생선 살이 아니라 국물에 있다. 콩나물과 미나리 몇 가닥이 전부인 맑은 국물에 식초를 몇 방울 떨어트리면 그 청량하고도 깊은 맛이 순식간에 몸의 말단까지 번진다. 곧이어 국물에 닿은 모든 곳이 맑아지는 기분이 든다. P.62 l 서호시장







내겐 일상에서 멀리 떠날 때에만 가질 수 있는 마음이 있었다. 환기가 필요했다. 멀리 떠날 것. 그리고 돌아올 것. 힘껏 돌아올 것. P.162 l 돌아오기 위해 떠나는 길




중간중간 가슴이 먹먹하고 아리는 이야기도 있지만 그래서 이 책이 참 좋다. 바다 곁에서 태어나 바다를 사랑하고, 바다를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바다 때문에 이민지도 정한 작가님. 삶이 순탄치만은 않지만 글이 위로가 되고, 이 글로 독자는 작가님과 이어질 수 있어 참 좋다.




책 뒤표지에 적힌 한지혜 소설가님의 추천사가 내 마음을 이렇게 잘 대변해 준다.


농담과 슬픔을 이렇게 잘 버무리는 걸 보니 엉뚱하게도 먼 나라에서 식당을 차린 적인 있다는 작가의 음식이 궁금해졌다.








친구들이 모여도 종종 고사리 괴담에 대해 이야기한다. (중략) 그렇게 의문이 수시로 고개를 들고 내게 고사리를 따도 된다며 유혹한다. P.19 l 번뇌의 숲




그 남자는 내게 왜 그랬을까. 나의 논리로 쉽게 이해할 수 없었던 그의 선의와 여태도 터무니없이 선명한 나의 두려움이 떠오른다. 선의를 선의로 받아들이기 위해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어쩜 논리가 아니라 용기일지도 몰라. 선의는 머리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가슴에서 나오는 것이니 가슴으로 느끼는 게 맞을지도 몰라. P32. l 가슴이 하는 일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도 했으니까 그냥저냥 살아졌다. 나의 무지에 얼마간 뻔뻔스러워지고, 어중간한 이해와 오해의 상태에 차츰 익숙해지는 것이 영어에 능숙해지는 것보다는 쉬웠으니까. P.40 l 미안하다고 말하지 마



노트북 같은 건 아무것도 아니라고. 그건 일해서 돈 벌고 또 사면 되지. 우리가 잃을 뻔했던 것에 비하면 정말 아무것도 아니잖아. 그런데 내 노트북이 그렇게 된 거야. 나는 내가 생에게 했던 말을 내게도 했어. 그 말이 내게 정말 위안이 됐어. 나 정말 괜찮아. 엄마가 속상해하지만 않는다면 완전히 더 괜찮을 것 같아. P.155 l 우리가 했던 말이 우리의 위안이 된다




거칠어진 파도가 끝없이 밀려들어 내 발아래서 하얀 거품을 남기며 순하게 사라지는 것을 오래 들여다본다. 아무리 큰 파도라도 왔던 길을 되돌아가지 않는다. 생성과 소멸을 바라보며 마찰과 해찰을 겪다 보면 가슴의 가장 아랫단에 쌓아놓은 박리된 생이 스르륵스르륵 거품으로 녹아난다. P. 170 l 돌아오기 위해 떠나는 길







교유서가에서 책을 제공받아 자유롭게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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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복국의 핵심은 생선 살이 아니라 국물에 있다. 콩나물과 미나리 몇 가닥이 전부인 맑은 국물에 식초를 몇 방울 떨어트리면 그 청량하고도 깊은 맛이 순식간에 몸의 말단까지 번진다. 곧이어 국물에 닿은 모든 곳이 맑아지는 기분이 든다. P.62 l 서호시장 - P62

내겐 일상에서 멀리 떠날 때에만 가질 수 있는 마음이 있었다. 환기가 필요했다. 멀리 떠날 것. 그리고 돌아올 것. 힘껏 돌아올 것. P.162 l 돌아오기 위해 떠나는 길 - P162

친구들이 모여도 종종 고사리 괴담에 대해 이야기한다. (중략) 그렇게 의문이 수시로 고개를 들고 내게 고사리를 따도 된다며 유혹한다. P.19 l 번뇌의 숲 - P19

그 남자는 내게 왜 그랬을까. 나의 논리로 쉽게 이해할 수 없었던 그의 선의와 여태도 터무니없이 선명한 나의 두려움이 떠오른다. 선의를 선의로 받아들이기 위해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어쩜 논리가 아니라 용기일지도 몰라. 선의는 머리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가슴에서 나오는 것이니 가슴으로 느끼는 게 맞을지도 몰라. P32. l 가슴이 하는 일들 - P32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도 했으니까 그냥저냥 살아졌다. 나의 무지에 얼마간 뻔뻔스러워지고, 어중간한 이해와 오해의 상태에 차츰 익숙해지는 것이 영어에 능숙해지는 것보다는 쉬웠으니까. P.40 l 미안하다고 말하지 마 - P40

노트북 같은 건 아무것도 아니라고. 그건 일해서 돈 벌고 또 사면 되지. 우리가 잃을 뻔했던 것에 비하면 정말 아무것도 아니잖아. 그런데 내 노트북이 그렇게 된 거야. 나는 내가 생에게 했던 말을 내게도 했어. 그 말이 내게 정말 위안이 됐어. 나 정말 괜찮아. 엄마가 속상해하지만 않는다면 완전히 더 괜찮을 것 같아. P.155 l 우리가 했던 말이 우리의 위안이 된다 - P155

거칠어진 파도가 끝없이 밀려들어 내 발아래서 하얀 거품을 남기며 순하게 사라지는 것을 오래 들여다본다. 아무리 큰 파도라도 왔던 길을 되돌아가지 않는다. 생성과 소멸을 바라보며 마찰과 해찰을 겪다 보면 가슴의 가장 아랫단에 쌓아놓은 박리된 생이 스르륵스르륵 거품으로 녹아난다. P. 170 l 돌아오기 위해 떠나는 길 - P1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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