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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의 고개
이병욱 지음 / 월간문학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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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의 운명은 그가 태어나고 살아가는 사회와 시대의 큰 틀에서 운명적으로 결정되는 게 많다. 어쩌면 그것이 공동체 속에서 나고 가는 인간의 숙명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모든 사람의 삶은 '역사적인 삶'이라고 할 수 있다. 고귀한 삶.. 허드레 삶이 구분되어 있는 게 아니다.

  문학이 사회 구조와 공동체 삶에 대한 천착이 더욱 깊고 넓게 요구되는 까닭이다. 그런 점에서 작가 스스로 말했듯이 첫 작품 '숨죽인 갈대밭' 이후 자신이 속해 살아가는 사회구조와 사회적 제반 현상에 대한 관심과 천착이 더욱 깊어졌다고 하는 것은 그만큼 사회를 보는 시선이 따뜻해졌음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할 것이다. 동시에 모든 것이 그런 구조적인 연유나 배경에만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요소도 깊게 내재되어 있다는 걸 말하고 있는데 전적으로 공감하는 사실이다. 왜냐면, 같은 배경, 같은 환경 속에서도 저마다의 삶은 동일하지 않기 때문이다. 타고난 업도 있을테고 기질 성격 개인사도 다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삶은 어찌보면 선택이다. 선택의 연속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K와 비슷한 류의 모습으로 살아간다. 이 글을 쓰는 이도 거기서 거기다. 많은 공감을 주는 이 책 'K의 고개'를 적극 추천한다. 이 글 쓰는 이도 그 "밋밋한 고개" 그 언저리에서 지금 밋밋하게 살아가는 소심한 민초의 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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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심이병욱 2019-01-22 17: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사합니다 k의 고개를 쓴 작가 이병욱입니다 님의 말씀에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그들이 어느 날 [희망의 집] 맨 뒷편에 있는 교회 예배당에 나타났다. 다들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어쩐 일이여???"

  "글쎄 말이여...?"  그들은 다름 아닌 기춘이랑 윤선이였다. "며칠 있으면 재용이도 온다"는 소문이 벌써 파다하다. 

  예배당 온종일 갇혀 지내는 이 곳 생활 중 모처럼 제법 멀리(그래야 몇 십미터지만) 외출하고 사회인을 대해볼 수 있는 때가 종교활동 시간이다. 같은 교도소 안이라도 이 때 만큼은 미결수들은 그 축에 끼지 못한다. 기결수의 특권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들은 지금 비록 미결수라고 해도 '특수한' 별외의 인물들이라서 "이 정도야 별 문제 아닌 걸"로 한 모양이다. 보안과장 전결에 무슨 에외적 단서 조항이 있을 것이다. 범털 위한 빠져나갈 구멍은 만들어놓고 규칙을 만드는 법이니까. 

  한편으로는, 예수.부처를 믿는 놈들이 이런 천하 몹쓸 곳에 죄 짓고 들어온다는 게 말이되는가싶은 생각도 들었다.  틀림없이 이 시간에 예배당, 법당은 파리만 날릴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게 아니다.   매주 화, 금요일 두 번 있는 교회와 精舍(절) 예불 시간만 되면 신자 죄수들로 초만원을 이룬다.  옆 방 사람한테 이유를 묻자 “바람쐬러 가는 시간”이라며 빙긋 웃었다.  수용자 막사를 개조해서 만든 넓은 방을 예배당, 법당이라고 하는데 대부분이 무신론자이고 무슨 위안이나 교화를 얻고자 가는 사람들은 극히 일부라고 했다.  거기 가서 바깥 소식좀 귀동냥하고 민간인도 보고, 평일 날 감방 벗어나는 해방감과 여러 사람을 만나는 기대감 그리고 찬송가나 찬불가를 구실로 소리를 실컷 질러댈 수 있다는 이유 크다고 했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이유로 예배당과 정사를 왔다갔다 한다고 했다.

 

  2079번 있던 4동 독방舍 맞은편 두 번째 건물이 반절씩 쪼개 절과 예배당이다.  문제는 그 곳이 아니라 맞은 편 사동이다.  이 사동은 기결수 합방 사동인데 종교를 가진 사람들이 종교별로 나누어 수용된 곳이다.  공장 나갔다 돌아와서 저넠 밥을 먹자마자부터 울려오는 소리는 여간 소음이 아니다.

  불경,성경을 외우는 소리, 통성기도 소리, 노래부르는 소리 등등...게다가 불교와 기독교 사이에 서로 경쟁이 붙어 상대방을 이기려는 듯 옥타브가 점점 올라가는데 7-8미터 떨어진 내 사동은 꼭 빈 집같다.  한 장기수 왈 “난 체질이 맞지않아 안 갔지만 저게 다 자기 건강관리법입니다”  하긴 교도소 사람들이 제일 끔찍히 생각하는 것이 [건강]이다.  건강한 몸으로 밖에 나가야 한다는 일종의 강박관념이었다.  꾀병부려 의무실 들락거리는 사람들도 이런 이유다.

  다른 사동에서 저렇게 소리치고 떠들었다가는 당장 징벌방감이었다.  “저기서야 동해물과 백두산이를 아무리 목놓아 불러대도 좋으니 얼마나 스트레스가 풀리겠습니까?” 맞는 말이었다.  “그래 목사님이나 스님들이 어떤 설교.설법을 하십니까?” “순 공팔(갈)만 치다 가는거지요 뭐...”  “뭐라고 그러는데요?”  “뻔한 거 아닙니까?  또 나쁜 죄 저지르면 심판 때 깊은 지옥 맨 밑바닥에 떨어진다..다음 세상에 소,도야지로 태어나 평생 쇠빠지게 일만하다가 푸주간 매달리는 신세가 된다...그러니 앞으로는 착하게 살아야 한다는 거 뭐 그런...인생을 살아도 더 험하게 살면서 난다 긴다하다가 여기 온 놈들인데 그 앞에다 대고 국민학교 1학년 애들한테 말하는 식이니 그 사람들이 애들 같다는 생각도 들어요”  그래도 사람들은 거기 가는게 좋다는 거였다. 

  그런 중에 간혹 주기도문이나 반야심경을 제대로 외는 소리가 들린다.  이럴 때 다시 떠오르는 소박한 의문이 있다. 

  “인간이 죄를 만들었나, 죄가 인간을 만들었나?  욕망과 이성은 얼마나 가깝고 멀까?  저 안에는 흉악범과 사기범 양심범 어쩌면 억울한 누명을 쓴 무죄의 죄인들도 함께 섞여 있을 터인데.....”   2079번 맥 없는 자문이다.

  얼마 후 종교인 사동은 점차 사그러들어간다.  나지막한 기도소리가 들려온다.  취침 시간이 점점 다가온다. 저녘 8시면 무조건 잠들어야 한다.  저 사람들은 지금 이 순간 숨을 죽인 채 한결같은 마음으로 간절한 기도를 하고 있으리라. “빨리 이 곳을.. 무사히 나가게 해달라!”고.....

  지금 기춘이랑 윤선이가 매주 한 번씩  거기에 열심히 나가고 있다. 빼먹지 않고... 사람되려고 말이다. 이런 걸 '개과천선'이라고 하던가?  지금 그런 와중에 있다. 그런데...그런데 말이다. 엊그제 재용이가 들어왔다. 이 건 전혀 생각 못한 일이다. 어찌 대한민국에 이런 일이.....

  그 천하에 없는 귀공자 재용 왕부회장이 여기에 올 줄이야  꿈엔들 생각이나 가당한 일인가?  "아~  이 나라가 어찌될 것인가?  그럼 우리 근혜 공주님은?  이건 분명히 사태다. 내란이고 반란이다. 대체 청와대는 지금 뭘 하고 자빠진 건가...TK랑 태극기는 왜 이리 더듬거리는가?" 발발 동동거리는 기춘이는 이럴수록 더 열심히 기도에 정진하리라 마음 독하게 먹고있는 중이다. 요즘. 윤선이는 변호사 남편 내세워 매일같이 접견실에서 '이산가족 상봉'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윤선이에게는 지금 근혜 공주가 없다.  예배당에 나가 열심히 기도하기는 기춘 오빠랑 매 한가지다. 기도 제목이 좀 다를 뿐이다. "내 코가 석자!"다. [빼박켄트]에서 얼른 탈출하는 거다. 탈옥이라도 하고싶은 심정이다. 그렇게 힘들고 고되다. 하루가 천년 이다. 생전 관심없던 윤선이의 기도빨이 요즘 더 세어졌다. 그래서 교도소가 아닌 "희망의 집"이라고 그런다. 다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두고 볼 일이다. 개과천선이 될지 아니면 개차반 개털천악이 될지 말이다.

 

[사족] '징벌방'이란 감옥안의 감옥이다.  마침, '2079번' 방 바로 옆방부터 4개 방이 그 징벌방이다. ('2079번' 방과 징벌방은 0.7평, 교실 교단 두개 이어붙인 넓이다. 이 곳서 두 차례 1년 가까이 특별대접 받으며 보냈다^^)  징벌방이 다른 점은, 사방이 먹칠한 합판으로 차단되어 24시간 햇빛과 절연되어 있는데다가, 손.발이 포승과 수갑으로 묶이고 채워져 있어서 앉지도 바로 눕지도 못하고 모지게 웅크려 있어야 한다.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포승줄이 몸에 파고들어 마치 저 ‘빠삐용’에 나오는 그런 독방보다도 더 참혹한 곳이다.  식사도 입으로 해야 하고 용변도 억지로 억지로 보는 등 사람이 아니다. 

  조직폭력배들이 난리를 쳐서 이 곳에 들어 올 경우, 동료 수감자들이나 소지가 담당의 묵인아래 밥을 넣어주는 ‘식구통’으로 복도에 쪼그려 앉아 숟가락으로 밥과 반찬을 떠넣어주는 풍경도 흔하다.  이 징벌방은 수형자들이 어떤 사단을 일으켰을 경우 보복적 수단으로 이뤄지는 것인데 그 기준이 자의적이라 남용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2079번' 옆 방에서 또는 복도에 나왔을 적에 신음소리만 간간히 들었다.  징벌방 자체가 잘못된 불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조폭은 별중의 별로 쳤다.  지금은 달라졌을 것으로 믿고싶다.  '2079번' 생각이다. ♣ -끝.

 

-"그들이 나타났다.." 오늘이 토일도 아닌데. 억센 대구사투리로 앙칼지게 악 쓰는 중년여인이 생경하다. 여긴 TK가 아닌데..? 북쪽 땅끝 감자바우 변방인데..! 두 대 크레인에 걸린 16개짜리 고성능확성기가 작은 네거리를 흔들어댄다.  그러고보니 관광버스도 있고 장비트럭도 서 있다. 노인들이 많다. 아마 전국 투어를 하는가 보다. 일당에 밥과 간식에 '애국 여행'도 하고, 좋은 일자리 창출인 것 같다. ("돈은 어디서 나올까?") 山人도 노인네 축이라 몇 마디 나눠봤다. "이 나라는 벌써 빨갱이 나라가 다 됐다"는 투다. 검찰도 판사도 죄다 포섭된 종북들이 지배한단다. 그래서 "사법내란이 지금 벌어지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박근혜가 불쌍하다!"고 한다. 나라가 불쌍한 건 아닌 듯 했다.  山人은 이들이 열배 백배 더 불쌍하게 보였다. 기초연금이라도 받아 살면 다행이겠다 싶다. 젊은이들이 돈벌어 이들을 먹여살리니 이런 일로 나대는 것 같아 동류 세대 처지에서 면목이 안선다. "미안합니다..지금 50대 이하 젊은 세대여! 그대들은 늙어가도 이들 따라가진 않으실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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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혜대통령 최순실과 공모”하여 국정농단을 일삼은 그 죄로 인하여 연이은 거대한 시민 촛불항쟁에 맞닥뜨린 지난 12월9일 국회에서 압도적 다수표로(234/300) ‘탄핵소추’를 당했다. “이름 석 자도 듣기 싫고 대통령이라는 명칭을 붙이는 건 더욱 아깝다“는 게 지금 세상 민심이다. 시간이 갈 수록 깊은 흉터로 남을 일이지 잊힐 일 아닌데 상황반전을 꾀하니 딱하다.

 

  그런 그녀가 엊그제 헌법재판소에 13개 탄핵사유에 일일이 대응하는 장문의 ‘답변서’를 냈다. 언론에 공개된 내용을 읽어보니 궤변에 가득찬 억지와 요설饒舌(‘제 입속 말이라고 혓바닥을 함부로 놀림’) 일색이다. 지식엘리트의 상징인 변호사들이 썼다고는 도저히 믿어지기 어려운 조잡하고 사실관계 앞뒤가 맞지 않는 저급한 문체로 일관돼 있어 그 몰상식과 동떨어진 반이성적 지적 인식수준이 또 공분을 일으키며 허탈함을 안긴다. 모르긴 몰라도 "5%.. 100만 촛불로 탄핵 불가" "세월호에 난 직접 책임없어 부당.." "최순실 개입 1%도 안돼.." "국회탄핵이 되려 위헌.." 등 무모하고 질낮은 표현 등이 그녀의 완고한 요구로 삽입된 것 같기도 하다. 맞을 것이다.  막무가내 우기며 시키는 그녀나 받아 적는 변호사나 앞서거니 뒤서거니다.  논리로나 법률로나 문장력으로나 누더기 종잇짝이다. 세 차례 담화문도 스스로 모두 맘에 없는 거짓이었다는 자기 고백서다. 그녀는 한 입으로 세 말 했다.  이쯤 되면 헌법재판소와 재판관들에게는 일종의 모욕이다. 온 세계에 5천만 국민이 웃음거리 된 셈이기도 하다. 이제 지구상에 대한민국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듯 하다면 과장일까? 그녀의 지지자들이 “이러려고 선거일 날 생업 제껴두고..아픈 몸 일으켜 꽃단장 의관정제하고 투표장에 나갔나...“ 감춘 울분을 토로한다. 허상에 속고 짝사랑에 속고 ”아~ 으악새 슬피 우는 가을인가요!“다.  山人이 보기에 그 답변서라는 게 아무리 높게 쳐줘도 고졸 수준쯤이다.  

  그녀는 자신이 임명한 검찰총장과 검찰의 대면조사를 부정하고 공소장 일체를 부정하고 국회 탄핵소추장도 부정하고 한술 더 떠 탄핵의결도 ‘위헌’이라고 부정했다. 국헌을 부정하고 헌법을 유린한 것 넘어서서 논리적으로는 자기 자신마저 부정한 것이다. 답변서 내용만 궤변이 아니라 이런 막장 무대뽀 행태 자체가 궤변이다. 이런 걸 헌법상 최고재판소인 헌재에 내민 대통령의 답변서라고 그래도 재독..삼독..심각하게 절차를 엄중히 따져가며 변론심의를 해야 하는 헌재 재판관들이 딱하게 됐다. 그들의 자존감과 자부심을 우롱하는 모양새다.
  입만 떼면 ‘국기문란’ 남발하며 거짓을 거짓말로 수하에게 덮어씌우는 그녀의 궤변적 공포통치 행태는 제 아비의 유신철권통치를 빼다 박았다. 보고 배운게 그거다. 70년 친일분단기득권으로 지칭되는 정·관·군·경·언 지배커넥션이 옹위하는 위장된 민주주의 권력 종착지가 결국은 그녀였던 것이다. 밝혀지고 있는 그녀의 실상은 알다시피 까도까도 끝없는 양파껍데기다. '종편'조차 그녀 한 사람만 종일 파고 또 파도 시간이 모자란다. 특종이 넘쳐나서 이젠 면역이 된 듯 하다.

  거짓말이 내면화 된 파탄 난 인격체, 파편화되고 해체되다시피 지리멸렬한 피드백 불능의 한 인간에게 지도자의 심성과 덕德을 기대한 어리석음을 후회해도 물은 엎질러졌다. 누가 그녀를 대통령으로 만들어 냈을까? 새누리인가 언론 검찰인가, 비겁한 지식인들인가 우매한 유권자들인가? 아니면 제왕적 대통령제 탓인가!  한국 민주주의의 적나라한 현 주소다. 

 

  탄핵의 사법적 근거는 ‘공소장’이다. 대통령에게 ‘충성서약서’를 쓴 총장이 지휘하는 정치검찰의 오명이야 갈 데까지 가버린 현실이기는 해도, 거대한 국민적 저항을 외면하기 어려운 처지에 빠진 검찰이 그나마 최소한의 때늦은 양심으로 수사하여 작성해 낸 공소 솟장은 법적 사실관계의 다툼에 있어 가장 중요한 原典이다. 그나마 뇌물죄니.. 3자 뇌물 강요·강탈, 횡령 등 죄질이 가장 나쁜 항목은 대통령, 재벌이라고 봐준 건지는 몰라도 이런 저런 이유로 빼고 특검에 떠넘겼다.

  이를테면 뼈 빼고 따귀 빼고 봐 준 물렁한 아구탕이다. 그래도 그 솟장안에는 움직일 수 없는 명백한 여러 가지 사실과 그 인과관계가 일정부분 분명하게 담겨있다.   왜냐하면 이른바 조작간첩 사건 등 공안 사건들의 경우에는, 없는 사실.. 없는 죄까지 뒤집어 씌워 정치적 목적달성을 구하는 소위 사법공학적 악폐가 적잖이 있었던 게 사실이지만 이번 탄핵 사태의 경우, 명령 상·하복 관계에 있는 정부조직법상의 체계와 정치적 주·종관계라는 현실적인 권력적 위계 상황에서 자신의 최고 상관이자 국가 최고지도자를 수사 처벌해야 하는 검찰의 공소는 따라서 사실관계의 획정과 적용 기소법규(죄목 구성)가 ‘최소한’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미 연방검찰이나 일본의 중앙검찰소 동경경시청도 아닌 터에, 권력의 말 한마디 손가락질 한 끝마디 놓칠 새라 수첩에 받아 적기 바쁘고 자동녹음까지 마다않고 主君 떠받들기 문화가 일상화 된 공직풍토는 당사자들과 그 일원은 부정할지 모르나 부인할 수 없는 현실임을 모르는 국민들은 없다 할 것이다. 그래서 법과 공적 시스템이 한순간에 흔들리고 무너져내리는 한국적 현실에서 검찰이 살아있는 최고권력자를 향해 있는 죄, 없는 죄 탈탈 털어서 공소를 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만고의 하극상쯤으로 되몰리기 십상이다. 검찰의 공소장이 “움직일 수 없는 최소한의 범죄 사실관계”임을 거증擧證하는 상식적인 연유다. 그들이 집권여당 국정원 청와대민정수석실 감사원.. 하다못해 ‘박사모’ 등 시퍼런 눈 깔아대는 ‘힘’들을 도외시 함부로 할 수는 없는 것이다. 

  山人이 옛 책들을 뒤적이다 보니 요즘의 우리 사회와 정치권 행태에 딱 들어맞는 촌철살인이 여럿 눈에 들어온다. 그 중 몇 가지를 옮겨 본다.

 

‘수석침류摗石枕流’말이 먼저 생각난다. 지나의 사서史書 <진서晉書> ‘손초전孫楚傳’에 나오는 말이다. 풀어 얘기하면, “돌로 양치질하고 흐르는 물을 베개로 삼는다”는.. 말도 안되는 어거지를 부리는 사람이나 집단의 행동을 일컫는 뜻이다. 실패를 인정하려 들지 않고 억지를 쓰거나.. 억지를 발라 맞춰 이리저리 발뺌을 하는 것.. 또는 남에게 지기 싫어서 여간해선 체념을 안하고 억지 고집을 끝까지 세우는 걸 이르는 고사성어다. 이와 비슷한 말로, 견강부회牽强附會 아전인수我田引水 추주어륙推舟於陸이 있다. 통칭 ‘궤변詭辯’이다.
  (AD265~317)나라 초기, 풍익 태수를 지낸 손초가 벼슬길에 나가기 전, 젊었을 적 일이다. 당시 사대부 사이에는 속세의 도덕 명문名聞을 경시하고 노장老莊의 철리哲理를 중히 여겨 담론하는 청담淸談이 유행했다. 손초도 ‘죽림칠현’처럼 속세를 떠나 산림에 은거하기로 작정하고 어느 날, 친구인 왕제에게 가슴속을 털어놨다. 이 때 ‘돌을 베개삼아 눕고, 흐르는 물로 양치질을 하고 싶다(침류수석枕流摗石)’고 해야 할 것을 반대로 ‘돌로 양치질하고 흐르는 물을 베개로 삼겠다(수석침류摗石枕流)’고 잘못 말했다. 왕제가 웃으며 실언임을 지적하자 자존심이 강한데다 문제文才까지 뛰어난 손초는 서슴없이 이렇게 강변했다. “흐르는 물을 베개로 삼겠다는 것은 옛날 은사隱士 ‘허유’와 같이 쓸데없는 말을 들었을 때 귀를 씻기 위해서이고, 돌로 양치질한다는 것은 이를 닦기 위해서라네.”
  누구를 두고 말하는 건지..어느 집단들인지 요즘 딱 들어맞는 뭔가가 어렵잖이 떠오를 것이다. 2천년 전이나 지금이나.. 앞으로도 예서 벗어나기 어려운 삶의 양태다.   

농단壟斷 : 이익이나 권리를 교묘한 수단으로 독점함..모든 이익을 취할 수 있는 유리한 위치..언덕 농壟 나눌 단斷이다. 이 말은 ‘용단龍斷’이란 말을 비하하거나 요즘 말로 패러디 한 말이다. <용단龍斷> -임금 龍 나눌 斷, 즉 나라를 경영하기 위해 임금이 구분해 놓은 중요한 벼슬자리다. 이 말뜻이 저잣거리에 흘러나와서는 ‘농단’으로 바뀌었다. “약싹빠른 장사치가 시장에서 제일 높은(좋은) 곳에 올라가 시장 상황을 한 눈에 바라보고 제 맘대로 골라서 시장의 이익을 독차지 하는 사람”을 지칭할 때 쓰는 말이다. 그래서 임금 용龍 字 밑에 시장을 뜻하는 土를 붙였다. -맹자 공손치하 10장.    

-그녀와, 난데없는 私人 순실이 일당이 오랜기간 국가 공조직과 그 구성원들을 사적으로 머슴 부리듯 장막 뒤에서 나랏일에 대해 거리낌 없이 이거저거 마구 손대고, 재벌들과 이권 흥정 벌이고 마치 제 쌈짓돈 쓰듯 세금 맘대로 꺼내쓰며 주물러 댄 행위를 언론에서는 ‘국정농단’이라 이름 붙였다. 제목은 바로 붙인 것 같다. 문장 한 구절.. 글자 하나가 모든 걸 단번에 설명해 준다. 그녀의 남은 미련 한 켠에선 ‘새옹지마’를 씹고 또 씹을지 모른다. 그게 “피눈물의 의미를 이젠 안다”는 것 보다 백번 낫다.

 

능서불택필(能書不擇筆) : “글씨를 잘 쓰는 사람은 붓을 가리지 않는다”는 뜻인데, 곧 그림을 그리거나 글씨를 쓰는데 종이나 붓 따위의 재료.. 도구를 가리는 사람이라면 서화書畵의 달인이라고 할 수 없다는 말이다. 당唐의 4 大家 중 구양순과 저수량에 대한 일화다. 우세남이 구양순을 두고 이렇게 칭송한 말인데, 당대의 쌍벽 저수량도 이 말에 두 손 들었다. 이와 비슷한 우리 속담에, “못난 목수가 연장 탓을 한다” 그 말이다. 

- ‘개헌론’ 정치권 일부에서 다시 회자되고 있다. 언필칭 <6월 항쟁>의 산물인 ‘87년 체제’의 효용 소멸론을 내세우면서 이원집정부를 떠든다. 합종연횡이 여기저기 흘러나온다. 시대에 따라 필요하면 변화가 있어야 하고 그 전제는 주권자의 뜻을 먼저 살피는 일이다. 또한 정치인들의 숨은 속내도 읽어봐야 하고 변화 선택의 선후도 냉철히 살펴봐야 한다.
  산인 보기에는, 현 집권세력..넓게는 기득권 세력이 어떡하든 권력을 유지해보려는 속임수 술책이다.  이들이 연장 탓, 지필 묵 탓을 하는 것이다.  지금 상황은 그게 선후의 답 아닌 것 같다. 국민 대다수(여론조사 71%)도 그렇게 본다. 주권자의 눈이 가장 정확하다(6~80대 대다수 노인층 빼고). 해방 후 70년 쌓여 온 적폐·불의에 대한 대청소와 이를 통한 국가 대개조의 밑돌을 놓는 과업이 다음 정권에 부여돼 있다. 주권자 국민의 명령이다. 그 엄중한 역사적인 임무를 국민(민)들과 긴밀히 소통 수용하면서 과감히 수행할 수 있는 가장 근접한 인물을 국민들은 선택할 것이다. 그 연후에 주권자들이 요구하는 내용으로 헌법을 개정하면 된다. 국민의 뜻만 따르면 될 일이다!  민주주의 요체는 '견제와 균형'이다. 이건 제도 보다 사람이 하는 것이다. 권력구조가 어떠하든 제도나 법규는 
 대동소이다. 대통령제든 이원집정 ..내각제든 문제는 사람이다. 사람을 잘 가려 뽑고 감시감독을 잘 하면서 주인된 도리를 다해야 한다. 그게 국민의 수준이고 국격이다.

 

대의멸친(大義滅親) : 대의를 위해서는 친족도 멸한다는 뜻이다. 국가나 사회의 대의를 위해서는 부모 형제의 정도 돌보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녜‘는 제 에비 대통령 시절 재벌들 돈 뜯어내 제 어미 명의로 만들어 준 ’육영재단‘과 수조 원에 이른다는 그 재산 다툼으로 백주대낮 조폭깡패 동원하고 수하 정치인들 끌어들이고 골육상쟁 벌이면서 이후 가까운 방계혈족 조카의 연이은 의문의 죽음이 벌어졌다. 말하자면 대제멸친(大財滅親)을 벌인 형국이다. 대신 그 자리에 최태민-순실이를 들였다.

불수진(拂鬚塵) : 남의 수염에 붙은 티끌을 털어준다는 뜻. 곧 윗사람이나 권력자에게 아부 아첨을 하고  상사에 대한 비굴한 태도를 보이는 행동을 비유하는 말이다.
  북송北宋 4대 왕 인종 때, 강직하기로 유명한 ‘구준‘이라는 정의로운 재상이 있었다. 그는 유능한 인재를 발탁 천거했는데 ’참정(종2품) 정위丁謂‘라는 사람도 그 중 한 사람이었다.  어느 날 구준이 중신들과 회식을 하는데 음식찌꺼기가 수염에 붙었다. 이것을 본 정위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자기 소맷자락으로 공손히 그걸 털어내다. 그러자 구준이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허허, 참... 참정이라면 나라의 중신인데, 어찌 남의 ‘수염에 붙은 티끌을 털어 주는(拂鬚塵)’ 그런 하찮은 일을 하시오?” 정위는 부끄러워 고개도 들지 못한 채 도망치듯 그 자리를 물러갔다. '구준'같은 이들이 없는 청와대와 새누리에 간신이 들끓는 연유다. 반면교사요 타산지석이다.
-얼마 전, 새누리 비박들이 친박 지도부 8인을 찝어서 ‘최순실 부역 8인방’이라며 인적 청산을 주장했다. 정치인의 최고 덕목은 ‘책임을 지는 자세’다. 국민에게 지는 것이면서 자신의 양심과 정치행로에 대한 책임을 스스로 져 보이는 것이다. 山人 보기에는 립서비스일 뿐, 책임의식 자체가 없어 보이는 그들 8인이나 인적 청산을 요구하는 자들의 그에 못지않던 그간 행적들이나 시류 변화에 대응하는 전술만 다를 뿐 그게 그거다. 그들 모두 '보수?' 당연히 아니다. 이득계산에 밝은 맹목적 권력지향의 수구 기회주의자들이다.  차라리 정위丁謂‘가 백번 낫다. 그는 부끄러운 줄 알고 도망치기라도 했으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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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톨 씨감자를 심으면 보통 10~15배의 감자를 거둔다. 땅콩은 그 백 배를..깨는 천 배다. 그게 그렇다. 대한민국이라는 남한 땅에서 작금 활개치는 '친일파'들의 번식 행태가 그렇다. 참으로 기막힌 일들이 도처에서 마구 벌어지고 있다. "독도는 일본땅"이고.. "위안부는 돈벌러 제발로 간 성매매 여인들이니 소녀상은 철거"시키고".."일본은 우리의 근대화 은인"이므로.."원수를 사랑하듯 일본도 사랑하라"고 외친다. 일본사람 아니다. 한국인들이다. 이런 걸 떠드는 이들이 한 둘 아니다. 극소수가 아니란 말이다. 인터넷 들어가면 입이 딱 벌어지는 일들 비일비재다. '관제 데모'로 모두 설명하기 어려운 구석이 분명히 있는 것이다. 남북한 관련해서도 이런 맥락은 동일하게 나타난다. 

 

  노무현이 NLL을 포기하고 김정일에게 갖다 바친 증거라고 유세장에서 믿거나말거나 국가기밀 문서를 마구 흔들어대면 거기에 열광하는 사람들 또한 그 세가 만만찮다. 야당에게 '빨강'은 금기색이다. 당장 빨갱이 종북좌파 딱지다. 그런데 새누리당의 깃발은 시뻘건 색깔이다. 유니폼도 시뻘건 걸 입고 선거판을 휩쓸고 다닌다. 누가 거기에 시비거는 이들 없다. 야당도 그렇다. 그거 시비하면 역풍이 두렵다. 북한의 조선중앙방송과 남한의 조선일보 조선 TV방송은 같은 '조선'인데도, 우리 남한사회에서 [조선일보] 아닌 '조선'이란 단어는 자기검열 용어다. 그렇게 '색깔' 하나로 세상을 편가르며, 같은 색깔 하나가 한 쪽에는 주홍글씨로..다른 쪽엔 체제수호 상징으로 전파된다. 이 쯤되면 나찌 정권의 선전상 '괴벨스'가 한 수 배우러 올 만도 하다. 안익태의 교향악 공연을 친전한 히틀러의 감탄이 괜한 것 아니다. 

  이들은 국정 역사부도에 제주도 을릉 독도가 왜열도와 같은 색깔로 칠해지고 남한 땅이 단군조선 영역에서 비껴난 왜열도 비슷한 채색구분을 애써 모르쇠 하면서 소위 '식민지 근대화론'이라는 뉴라이트 깃발을 흔들어 댄다. 촛불집회에 맞선다는 이른바 맞불집회장에 나부끼는 태극기가 바로 그 깃발이다. 그 깃발이 실은, 태극기로 위장한 '일장기'에 다름 아니다.
  이들이 뜬금없이 들고 나온 그 거대한 '성조기'도 본질적으로 '일장기'다. 대일 항쟁기, 친일파들이 조선 8도 방방골골을 누비면서 흔들어대던 그 일장기가 성조기로 바뀐 것뿐이다. 그 일장기를 내걸고 조선의 농.임.광산 자원을 반출하는데 앞장서고, 조선의 젊은이들 300만 명을 징병 징용 정신대로 내몰아 왜 열도는 물론 동남아 남북태평양 사할린 지나 위그루 사막까지 전개시키는데 주구走狗로 견마지로를 다 바쳤다.
  친일파들의 머리속 사상 이념은 가족과 개인의 일신 영달이라는 계급적 기득권이다. 국가나 민족은 그걸 지켜주는 보호막에 불과하다. 그 보호막이 제 구실을 못하면 다른 걸로 바꾸면 그만이다. 이들에게는 계급의식이 이념이고 신념이다. 그래서 생태적으로 '권력지향'이다. 권력은 자신이 가진 모든 걸 지켜주는 체제적 '끈'이다. 이걸 놓치면 모든 걸 잃는다. 일반인들에겐 추상적이고 몰체감적이지만, 이들에겐 매우 구체적이고 실체적인 생존의 항등식이다. 그래서 매국노라는 개념 자체가 없는 것이다. 이해 되시겠는가?
  "피도 눈물도 없는" 반동족 반인륜 반상식인 이들의 사고 성향과 그 잔혹했던 패악적 행태의 내면적 배경이 설명되어지는 연유다. 권력의 충직한 속성이기도 하다. 그 부류는 항시 인류사의 항수였다. '현대 시민민주주의'에 한 점 보탬은 커녕 그걸 막고자 애썼던 이들 치고는 뻔뻔한 개평꾼이고 참으로 고약한 말종이기는 한데, 부인할 수 없는 현실적 실체다. 민족모순이 청산되지 못한.. 외세 분단체제하 주변부 부르좌 사회의 피할 수 없는 정의의 괴리다.  

  오늘의 정치 사회적 시국 상황은 결국 이런 민족모순 외세개입 체제가 빚은 현대 인류사적 화약고의 내적 비극이다. 동시에 반민족 친일매국노집단 '청산'이라는 인류사의 보편적인 역사적 과정을 '기각'당한 세계사적 역사 모순의 집약적 포커스다. 이러한 거시사적 위치속에 민중의 피땀으로  일궈낸 물량경제적 지표가 던져주는 위안이 과연 어떤 근본적  민족 민중 에너지로 승화될런지, 아니면 양극 양분 고착화의 분열적 지리멸렬 기제로 작동될런지 2017년은 중차대한 변곡점의 기로에 처해있다고 보여진다. 山人은 그렇게 역사과학적 시각으로 예견한다.
  오늘의 현상이 누적된 우리 사회의 반역 불륜이 잉태한 번식의 결과물이라면, 현재의 '촛불 탄핵'과 반동의 대치전선은 헌재의 결론과 맞물려 향후 우리민족의 지평을 통합이냐 쇠멸이냐를 가름하는 분기점으로 규정짓는 결정적 시기로 본다. 역사의 후과는 분명히 그렇게 결말지어질 것이다. 시.공간을 넘어선 인류사 교과서가 그렇게 일러준다. 외세가 빚어놓은 반쪽의 광복에 기생해서 뿌려진 동족 상쟁의 전란과 각각의 흑역사는 "시작은 초라하지만 결과는 창대하리라!" 그대로다. 
  임진란 초반 조령이 뚫리자, 집권 서인세력 조정은 전라.경상을 왜에 떼주고 화약하자 했다. 그 때 유성룡이 나섰다. 청일전쟁 때도 그랬다가 원세개의 '청.일 조선 분할론'을 러시아 개입과 조정의 일치된 국론으로 저항해 막았다. 그러다가 종래엔 팔아넘겼다. '을사 5적'이 다 아니다.  그들은 얼굴마담이다. 조정 핵심일당이 한통속이었다. 200여년간 이어져 온 노론세력과 순조이후 권세를 잡은 김씨-조씨-민씨 척족의 세도권력이 야합한 '계급 기득권'의 "이익 공유" 농단 앞에 국가는 이미 형해화 된 송장이었다. 그러니 고종이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일제 작위 받은 자가 병탄 초기에 200여 명이다. 그들이 바로 그들이다.  박정희-근혜 정권의 권력유지 행태..이너써클의 국정농단 행태가 판박이다. 우연 아닌 썩은 권력 종말의 '정석'이다. 계급적 봉건지배권력체가 걷는 '제국 소멸'의 길 그대로였다.  그랬다. 지금이 그 때보다 달라지고 나은 게 뭔지.. 생각있는 시민 각자의 몫이다. 촛불집회 박사모집회 아니면 침묵의 방관자로 갈리는 기로다. 백두산 금강산 지리산 두 다리 성하면 반도 전역과 만주간도를 그래도 내 강토라고 제약없이 다닐 수 있었던 시절과 지금을 생각해 보라!
 
  꽉 막힌 불통 긴장을 쏟아내는 안팍내외의 전쟁위협에 녹아나는 하시절을 답답하다 못해 숨막히는 이 세월이다. 허나, 이 땅 어느 하늘아래 밤마다 축배의 잔을 치켜들며 "지금 이대로~!".. "위하여 위하여!" 건배하는 그들의 代 이은 만찬이 요즘 '순실이'로 인해 일시 불편한 한 편에선, 200만 같은 동족 젊은이들이 서로를 "주적" 삼아 휴전선에 사생결단 묶여있다.
  남북 군비 연간 400억불..세계 4~5위권 군비부담을 짊어지고 있다. 이스라엘 뉴질랜드 GDP 수준이고 아프리카 최상위권 국력이 그렇게 동족대결 소모재로 사라진다. 대일 대중 대동북아  안보 대신, 동족상쟁의 분단안보가 자리하고 있다. 중국 비호를 받는 70년 단일독재 북한 김씨 왕조와 미국 일본 엄호를 받는 남한 친일지배권력의 상존은 유일무이 세계 분단국의 불가사한 특이 병존체제의 결정판이다. 밖에서 보는 눈이다. 우리의 절대동맹국으로 목매는 미국내 식자 중산층 다수가 뜻밖에도 '코리아' 하면 (부정적 뉴스로 보도되는 적대국) '북한'으로 알고 있다는 모 방송(인간극장) 출연 미국인의 얘기는 내국인과 다른 국제 사회의 인식을 보여주고 있다.  남북한 구별이 우리같지 않은 것이다. 우린 그저 "코리아!" 하면 다들 "아, 대한민국?" 인 줄 알지만 아니다. 남·북한 모두 코리아..한반도 한민족 모두 코리아인줄 그들은 바로 알고 있다.
  북한주민의 삶은 당장 논외로 치고, 오늘날 우리 사회의 소득격차 사회격차는 실로 심각하다. 하위 20%는 '삶의 질' 측면에서 조선말 노비층과 별다른 차이 없는 사회 경제적 처지에 놓여 있다는 게 경제사학자들의 진단이다. 상위 10%(10분위)가 국가총소득(GDI)의 50%를 가졌고, 소득격차 지표인 '지니 계수'는 0.6에 달해 멕시코 등 중남미 보다도 나쁘다. 부패한 친일 기득권 세력 미청산이 불러온 정치.사회적 후과다. '도전과 응전'은 그래서 피할 수 없는 이 시대의 운명적 해결 과제다. '촛불 혁명'은 그런 현대사적 맥락의 중심에 자리한 살아있는 실체적 역사의 변곡점이다.
  
  이승만~박정희..박근혜=대한민국=자유민주 체제! 를 동일시 선전 선동하는 이들이 과연 누구인가? 여전히 저강도 전술로 금압받는 '사회적 의제'다. <블랙 리스트>는 표층수의 일각이다.  일제의 군국적 전체주의 유산을 불하받은 친일 정치.언론.재벌 연합의 메이저 커넥션 슬로건이 전략이라면, TK-호남  지역 갈라치기와 저학력 빈곤층 ..농촌.노인층..도시의 노령부녀층은 전술적 동원집단이다. 그런데 최근에는 탈북새터민과 '일베' 등 현실에 좌절한 젊은 자생층들을 동원세력으로 끌어들여 정치적으로 부려먹고 있다.
  1945년 9월 남한의 통치권력을 온전히 인계하고 떠나면서 조선민중에게 일갈한 식민권력자 사이토의 "우리는 패해서 나가는 것 아니다..잠시 (미국에게) 맡겨둔 것이다..100년 안에 다시 들어온다!" 는 지금 현실이 되어가는 양상이다. 평화협정을 외면하는 분단.휴전협정의 당사국 미국 군산복합체의 지속되는 '악의 축' 전략과 절대권력 체제유지에 전일적 동원역량을 몰아넣는 김일성체제하 김정은의 공포독재는 상호 구실을 주고 받으며 저마다의 내부 균열과 민족의 위기를 부채질 하고 있다. 각각의 누적된 모순으로 누란에 걸린 건곤일척의 엄중한 현실앞에 생각있는 씨알 시민은 나라와 민족의 진운에 대하여 고민이 깊어진다.

  이러한 민족의 엄중한 현실앞에 북한정권의 핵 전략은 미국의 동북아 군사외교적 고강도 전략인 사드의 한반도 남부배치와 명분을 주고 받는 권력의 지렛대이자 반면에 주변국들의 꽃놀이 패다. 이들은 한반도를 마작판 수패 굴리듯 우리 민족의 동질적 주권적 존엄성을 희롱하면서 저마다 군비확장과 '전쟁 가능국가' 부활의 핑계 거리로 삼고 있다. 그럼에도 핵에 올인하는 김정은의 체제유지 전략의 지속성은 되려 내외적 위기에 점점 봉착해 가고 있는 한편으로, 우리 사회의 분명한 권력적 존재집단인 친일숭미 커넥션은 성조기 시가행진으로 주권국 내부문제에 개입해달라고 매달리며 위안부 협의를 역사적 합의로 강변하는 반민족 반민주적 행태에 거침이 없다. 둘 다 민족의 화해 평화통일, 사회통합에 큰 우환거리다.
  이들은 남북한 저마다의 체제에서 크게 보면, 그냥 절대지배권력 또는 계급적 기득권 그 자체만을 위한 '체제 유지'가 유일한 목적으로 보인다. 연이은 홍수와 흉작..부실하기 짝이 없는 치산치수 현실로 200만, 300만 인민들이 죽어나자빠져도 털끝만큼 책임지는 것 없이 되려 체제유지를 위한 절대권력에 광분한다.  주권 시민 연 1천 몇백만여 명이 광장에 촛불 횃불 들어도 입만 떼면 거짓말로 가리기에 급급하고, 나라와 국정이 혼란과 파탄에 빠지거나 말거나 제 자리 보존을 위한 갖가지 꼼수와 억지로 국법위에 군림하며 무슨 치외법권자나 되는 듯이 헌정 유린을 멈추지 않는 '근혜'와 '새누리'의 무책임한 후안무치 뻔뻔함도 별 대차 없는 막상막하다. 불쌍한 한반도여.. 민중이여..만백성들이여!  '수구 꼴통'이라는 작칭도 아깝다. "수구 우파"? 글쎄다. 이 분류가 과연 얼마나 적절한 지도 생각해 볼 일이다. 결론적으로 '수구'는 역사관이 없거나 박약하다. "내 코가 석 자"로 제 누리는 밥그릇 지키기다. 그러니 사실은 좌.우도 없다. "그럼 뭐가 우파 좌파냐?" 지금부턴 이걸 좀 언급하고자 한다.

  흔히 맑스의 '계급론'을 드는데, 이건 선행적 계급에게 조응해서 만들어진 19세기 용어다. '계급'이라면 고대 국가체제가 형성되고 완고한 율령이 자리잡으면서 상수常數가 된 "지배 계급"이다. 이 계급의식은 강고하고 끊임없이 지속가능한 내재적 동기유인을 강렬하게 깔고 있다. 그 핵심은 [착취 구조]다. 그걸 합리적으로 가능하게 하는 권력의 설득력 여하에 따라 생명력의 장.단이 갈린다. 그러나 총체적으로는 권력적 계급집단은 다소의 '구성원적 결'은 교체되지만 지배체제의 연속성.계속성이라는 교체권력의 필요성에 의해 대체로 온존된다.
  이러한 계급의식과 이해관계의 조정.해결 방식이 크게 달라진 게 17세기 유럽의 시민혁명이다. 직접적으로는 1789년 프랑스대혁명 이후 생겨난 좌.우파다. (여행 버스 안에서...) -다음에 계속!

  루이 16세와 오스트리아제국 황손녀인 앙트아넷을 단두대로 처형한 혁명세력은 혁명이 성공하자 오래잖아 두 패로 갈라선다. 그리고 그들이 장악한 베르사유 왕궁을 가운데 두고 좌우에 각기 혁명본부를 둔다. 왼쪽은 '자코뱅(당)', 오른쪽은 '지롱드(당)'이 그것이다.  좌편은 완전한 '공화정 파'이고, 우편은 영국을 롤모델로 한'입헌 공화정 파'다. 상대적으로 전자는 당시대적으로 "급진(Redical)" 소릴 듣고..후자는 "온건"하단 소릴 들었다. 이게 좌파 우파 시발이 됐다.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지향하는 세상과 이념 방법론이 둘 다 같았다. 말하자면 '동종 이란'이다. 둘 다, 절대군주정을 거부하고.. 시민(당시에는 제한적 시민)계급에 의한 공화민주주의 수립..개혁불가 혁명투쟁 등이 동일 동질적인 혁명동맹군이다. 갈라진 것은 권력에 대한 세력분할의 합의 불발이 본체다.
  좌:우가 진보:보수로 전화 한 건 맑스-레닌의 1848년 인터네셔널 콤뮤니즘 선언 이후다. 사회주의(공산주의) 노선이 밝힌 노동자 중심의 자본주의 질서재편 요구와 잉여가치론..유물론적 변증사관..생산수단의 국유(공공)화와 생산잉여의 공동분배 등은 당시에 급진혁명의 깃발이었다.  이게 앞선 시대의 공화좌파를 "덮어쓰기" 하면서, '진보..좌파'..급진적 진보로, 상대적으로 부르주아 자본가계급은 '보수..우파'..온건한 진보로 변환됐다. 어쨌거나 이렇듯 진화(?)한 신개념 "진보..보수"도 큰 틀에서는 동일한 출발선상에서 진전돼 온 쌍생아다.

 

  이를테면, 첫째로 둘이 본시 한 몸으로 봉건적 절대군주정체를 시민적 계급혁명으로 혁파하고 들어선 새로운 정치체제의 주체세력이란 점이다. 둘째로 14~16세기 르네상스를 17~8세기적 시대정신으로 이어받은 '자유주의' 정신의 사회.경제적 결과물이란 점이다. 셋째로는 이들의 지향가치의 출발점이자 사회적 통합정신이 '보편적인 자유'..'청렴한 정의'..'평등 균형 사회의 실현'이다. 이게 서구 부르주아 보수의 출발점 이념이고 그런 가치를 나름대로 일정하게 추구해 온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생산방법과 생산력의 혁신이 끊임없이 획기적으로 이뤄짐에 따른 경제력의 대규모화..경제력 집중..대량화된 기계적 생산설비와 노동자 계급의 발생..경제권력의 정치권력화에 따른 독과점 발생과 사회 경제적 빈부격차 확대는 새로운 사회 문제를 쏟아냈다. 따라서 이들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바로 자본주의 체제유지와 직결되는 문제였기 때문에 그에 대응하는 방법도 "현상 유지"로 풀어질 일이 아니었다. 끊임없는 "개혁"과 쉼 없는 "혁신".."온정과 사회적 기여".."개인적 청빈"만이 기득권 보수집단인 부르주아 계급과 자본주의 체제가 맑시즘과의 투쟁에서 이겨내고 살아남는 생존 전략이었다. 이러한 역사적 과정과 그 함의를 생각한다면, 오늘날 한국사회에서 자칭하는 '보수'가 그 태생적 역사성이나 지향 가치는 물론, 정치 사회적 책무성.. 행태 등 어느 하나라도 "보수적 가치"에 합당한 것인지 "맹목적  수구집단"으로서 사회공동체의 합목적적 상식의 질서를 훼손하는 맹동성 준동세력인지 자문해 볼 일이다. 
  
  "보수"도 다 같은 게 아니다. 굳이 들자면, 수구적 보수..온건 보수..중도 보수..개혁 보수..진보적 보수 등이 있다. "진보" 또한 그렇다. 온건 진보..중도적 진보..강경 진보..혁명적 진보 등! 이 양 편 양 극단에 극우, 극좌로 불리는 정치적 이념형 극렬 집단이 존재한다. 히틀러 나찌와 현재의 일본 자민당 아베정권이 전자라면, 스탈린 모택동 김일성은 후자로 볼 수 있다.
  최근 논란이 큰 '박사모'..'일베'류는 이념적 극우 아닌, "극우 정치추종적 극렬 집단"이 적확한 성격일 듯 하다. 그런데 '마오'는 코뮤니즘에 중화주의와 다민족 포섭주의가 섞여 있고, 김일성 주의는 강한 민족주의가 가미된 복합적 성격을 띠고 있어 고전적 의미로 일도양단하기는 어렵다. 그만큼 사상..이즘(~ism)을 정형화 해서 규정짓기 모호한 것이다. 따라서 철학적 공론이나 담론보다는 정치적 쟁투의 강력한 수단으로 이용돼 오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여기서 公論 하나를 짚어본다. 한국 사회에서 "좌파"가 무엇인가?..에 대한 것이다. 결론적으로 "빨갱이.."에 대한 다른 표현이고 의미상의 동의어다. 이는 북한에서의 불순 성분 대명사인 '부르주아' 보다 더 지독한 악칭이다. 위에 언급한 바와 같이, 좌파든 우파든 그 층이나 스펙트럼은 매우 다양하다. 우리 사회에서 정치적인 '좌파'의 의미는 아무리 좌로 잡아도, "적극적인 개혁"..성장과 분배 균형에 방점을 둔 "복지 강화"..사회 정의와 미래지향성을 추구하는 본래적 의미의 "진보적 사고" 를 말한다. 또 다른 기준(아랫단에언급 참조)으로는 집권당에 반대편에 서 있는 '야당' 지칭으로 "좌파"라 부를수는 있다. 그 이상을 벗어나지 않는다.  결국 '보수'다. '더불어민주당'이 딱 이 정도다. 미국 민주당~영국 보수당~독일 기민.기사당의 "비빔밥" 수준이다. 기본적으로 보수적 기조에 기반한 상대적 개혁진보성향이다. 이걸 공산당식 좌파라고 턱도 없는 악을 쓰며 자기가 보수라고 자칭하고 뒤로 잇속 챙겨먹기 바쁜 거다. '정의당'은 여기에 계층계급에 천착한 노동자성을 조금 더 강조하는 실용 노선을 간다는 점에서 서구 여러 나라에서 현재 집권하고 있는 사민당 수준이다. 정의당이든 사민당이든 브라질 룰라의 노동자당이든, 노동자성을 강조하고 그 계층을 주요 지지기반으로 한다는 점에서 '진보' 혹은 '보수좌파' 쯤이다. 해산당한 민노당의 경우, 분단된 민족 현실에 강한 문제의식을 두고 자주적인 민족통일을 통한 민족해방을 지향하는 정강노선을 추구했다는 점에서 강경(?) 좌파라 할런지 아리송하다. 왜냐하면, '민족'을 강조한 지점에서 본래적 사회주의 노선과는 일정한 거리가 있다고 보여지기 때문이다. 사회주의 본류로 보기 어려운 이유다. 거기에 주체사상을 일정부분(?) 수용했던 것으로 알려진 게 맞다면 일반적인 사회주의 노선 보다도 소위 '김일성 주의'에 더 가까웠던 것 같다. '민족좌파' 쯤일런지... 역시 아리송하다. 사상이나 이념이란 게 현실적 접목 방식에서 유동성이 크고, 가치의 속성상 인식이 주관적이다. 따라서 좌파 우파 진보 보수 등 몇 몇 단어로 쉬이 판단하거나 재단할 성질의 것이 아니다. 이는 양심의 자유와도 긴밀하게 연계되어 있는 내면세계에 대한 자기결정권적 인권의 측면도 크다. 이걸 정치적 이해관계로 써먹는 것 자체가 反정치적이다.  
  어쨌거나 민노당 해산 사건은 "한국 민주주의의 다면 다양성 허용 범위에 대한 시험대였다"는 국제사회의 비판적 시각과 국내적 찬반 논란은 물론, 극우 정권에 의한  정치적 공안탄압과 '헌재'의 독립성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는 가운데 사법적으로 종결되었다. 그럼에도 이명박정권 때 다시 생겨난 탈북자 조작간첩사건부터 좌파 종북 소동은 여전하다. 
  山人이 객관적 역사적 학문적인 관점에서 소견컨데는,  현재 국회의석을 가진 대한민국 정치결사체(정당)에 정체성 불명의 집권 극우 정당과 몇몇 보수~범보수 정당은 있으나 좌파 정당은 커녕 혁신 정당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왜 여전히 색깔을 통한 '공안 정치'가 판을 치고..선거철엔 어김없이 등장하고 약발이 먹힐까? 대체 어디서부터 시작됐을까?

 

  줄여 논해보자면, 이는 크게 세 가지 정도의 배경을 들 수 있을 것 같다. 첫째로는, 친일-남로당 출신 박정희의 '레드 컴플렉스'가 혁명공약 1장에 박아넣은 "반공을 국시로 한다!".  이게 그의 18년 집권동안 정치권력을 유지하는 동력이 되고 사회 전체의 내면화 기제로 작용하는 결정적인 요인이 됐다. 둘째로는, 박정희를 포함한 수십 년간 지속된 정통성 부재의 역대 독재정권이 이를 자신의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는 무기로 고비 고비마다 써먹었다. 셋째로는, 6.25 한국전쟁으로 입은 "전쟁"과 사상적 결벽에 대한 국민적 트라우마가 그 토양이 됐다는 점이다. 
  "빨갱이"라는 말은 한국 사회에서 가장 비열하고 치명적인 공격 수단이다. 근거도 없이 마녀 사냥식 덮어씌우는 '좌파 프레임'은 '저비용 고효율'의 가장 많이 남는 장사다. 이 말을 쓰는 사람들은 입만 뗏다 하면 아무렇지도 않게 쉽게 올린다. 세상은 돌고 돈다는 말이 이것이다. 1963년 11월 군복을 벗고 윤보선과 6대 대선에서 맞붙은 박정희가 받은 가장 괴로운 공격이 "박정희는 남로당원으로 군에 침투하여.. 여순반란 사건 실질 주모자.." 였다. 이 사건으로 그는 사형을 언도 받은 후 무기징역으로 감형 받았는데, 한국전쟁 초반 대혼란기에 과거 상관이었던 이용문에 의해 기적같이 소령 계급장을 달고 복귀하는 사건이 일어난다(후일 朴은 그 아들 이건개를 약관 35살에 서울시경국장-치안본부장-서울시장으로 은혜를 갚는다).
  윤보선이 이걸 문제삼은 것이다. 그러자 박정희는, "...지금 상대 후보가 나를 '매카시'적 수법으로 마녀 사냥을 하며 국민들을 혼란시키고 있다.."며 개탄을 쏟아냈다. 그러던 그가 집권 내내 되써먹으며 공안통치 연명하고 후계자 전두환-노태우가 따랐다. 그러나 '문민~국민~참여 정부'도 이걸 치유 못했고 이명박정권이래 근혜정권까지 기승을 부리고 있다. 
  그런데 이 "빨갱이"가 남북간 대화와 왕래, 이산가족 상봉 및 금강산 개성 등 경제 문화적 교류 등으로 더 이상 써먹기 불편해지자, "좌파"로 그 자리를 대체했다. 이 단어는 다시 "종북좌파"라는 기발한 단어로 진화하며 병행 등치 시켰다. 즉, 좌파=종북=빨갱이의 등식이다.  보수도 못되는 수구 친일 지배잔당은 보수 정치세력을 "진보 좌파"라고 을러대며 색깔을 입혀 자신들을 '보수'로 치환시키는 것이다. 진짜 생각이 그렇다면 知的 '무지렁이'이고, 알면서 그러면 아주 "나쁜" 人性이다.
  "빨갱이"는 옛소련 중국 북한 등 일부 공산주의 국가의 국기 바탕색이 '빨강'을 빗댄 적대적인 형용사다(*과거 공산권인 동구라파 나라들의 국기바탕색이 빨강은 거의 없다).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은 좌파 정당"이라는 건데, 말하자면 "공산주의를 지향 또는 북한정권을 추종하는" 빨갱이 혹은 종북 정치집단이고..그런 개인은 공산주의자라는 지칭을 에둘러 말하는 것이다.  남한 사회에서 이런 말은 북한에서 반동으로 몰린 월남자 가족과 같은 격이다. 분단과 남북관계를 정치에 끌어들이고, 지역 계층에 더해 무책임한 사상 공세로 찢어발리는 분열 정치공학의 전형이다. 반이성적 광기가 아닐 수 없다.  무슨 권리와 믿는 구석 있을까?  이른 새벽 낮게 깔린 자욱한 물안개다. 우리 사회의 낯익은 내면 풍경이다.    

 

  헷갈리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면, 옛소련에서 집권자인 스탈린은 보수우파..트로츠키는 레닌시절 보수좌파로 불리다가 스탈린에 쫒겨난 후엔 진보좌파 또는 급진좌파로 불렸다. 중국도 그렇다. 모택동이 보수우파라면, 등소평은 진보좌파였다가 복권되고 권좌에 오르자 보수우파가 됐다. 교과서적으로 본다면 둘 다 역사적 맥락에서 진보..좌파다. 그럼 왜 그럴까?
  보수..진보 개념의 또 다른 구분 기준이 권력자의 피:아 어느 쪽이냐에 따라 권력측은 우파, 그 반대편에 서면 좌파로도 불린 것이다. 이 기준으로 본다면, 박근혜는 우파(*드러난 통치행태를 보면, 새누리나 그녀나 '우'도 '보수'도 아닌 무이념의 '극렬 극우다'),  이명박이나 김무성은 (친일)좌파 보수로 불릴만 하다. 고정 불변이 아니란 말이다. 순전히 주관적인 상대적 용어다. 따라서 사회과학적인 전문용어가 아니기 때문에 학술적인 용례로 사용하기에 적절치 않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는 이걸로 죽기살기식 싸움판이다. 침 튀기면서 사상검증이니 어쩌니 삿대질 하던 정치인들이 어렵잖게 그 정당으로 옮겨가는 일이 다반사다. 유치하고 웃기지도 않는 난장판이다. 정치불신이 사회불안으로 전이되는 경로다.
  이런 와중에 국내정치판에 뛰어든 반기문은 "나는 진보적 보수주의자다"라는 글로벌틱한 멋진 말 한 마디가 뭔 잘못인지 낙마했다. 뭣이 문제였나? 그건 역으로 우리 사회가 보수 진보의 개념이 명확하게 역사성을 획득하지 못한 채 분단의 논리에 지배당해 온 반증이다. 파행적 정치와 그 논리로 지배해 온 정치집단의 이분법적 속임수가 불러온 집단적 국민의식의 왜곡 결과다. 거기선 감귤이 여기선 탱자가 된 것이다. 문제는 탱자가 귤 행세를 해 온 것이다. "친일파가 보수 행세를 하는 나라"의 백성들이 겪는 혼란이자 비극이다.

 

  山人이 냉정하게 판별해 보건데는, 역사.현실적 본래의미로 재어볼 때 한국정치판에서 보수 우파(익)은 '민주당'과 '국민의당' 쯤이다. 그것도 '온건 보수'다. 진보 혹은 좌파라고 억지를 부리자면 '정의당' 쯤이다. 새누리(자유한국?)가 볼 땐 제일 먼 곳에 있으니... 그러나 정의당도 민주당 보다 아주 조금 더 나간 수준이다. 넓게 보면 "보수적 진보" 또는 앞서 언급한 바 "보수 좌파" 쯤?이다. 이를테면, 서구의 좌파라는 '사회민주주의'(*더러는 사회주의와 구분하여, '개량사회주의' 또는 '사회복지주의'라고도 부른다) '사민당'과 비교적 유사하다. 바른당  대선후보들의 경제 사회 공약을 보면 정의당과 뭐가 다른지 모를 정도다. '큰 정부론'의 확장형이 오늘날 세계의 보편인 점을 감안하면 전혀 이상할 게 없다. 이걸 좌파 우파 타령으로 선거표 따먹으려는 정치 후진성과 이념적 폐쇄성이 사회 갈등의 뿌리 아닌가싶다. "~쯤"이란 건 서구처럼 상대적으로 명확치 못하다는 뜻이다. 정강 정책이나 정치적 주의 주장..행태(비헤비얼리즘)적 측면에서 그렇게 본다.  
  '새누리(자유한국당?)..바른정당'? 이들은 겉만 정당이지 본질은 권력적 이해관계로 모인 모리배들의 수직적 집합체다. 이 글 맨 앞단에 언급한 '계급적 기득권'을 위한 이익의 공유를 향해 모여든 정체성 불명의 변형된 친일파 잡탕나부래기다. 그래서 오히려 구심력이 질기다. 분열보다는 '이익의 단결력'이 강하다.  되려 자유주의적 오리지널 보수성향이 강한 현재 야권 정당들이 그 원심력으로 인해 이합집산이 빈번하다. 대비되는 지점이다. 친일수구집단 장기집권의 밑바탕이기도 하다. 이런 걸 정치의 아이러니라 한다. 이들은 물론 보수도..수구적 보수도 아니다. 그럼 뭐냐? 그냥 새누리..바른당이라 부르면 된다. 이념적 가치 중심의 정치결사체로 보기 어렵다. 꼭 우긴다면, 반공..종북좌파 척결이 정치이념이라면 이념일 수 있다. 그런데 민족이 통일되거나 북한체제가 변화된다고 하면 이런 구호도 자동소멸 되니 이념일 것도 없이 그냥 정치적 선동 구호에 불과하다. 그래서 정당결사체로 보기 쉽잖다는 말이다. 이들의 태생적 컴플렉스가 보수:진보 편가르기에 열심인 까닭이다. 혹여 이념이라 우겨도 문제다.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 '사상의 자유'는 핵심적 지주다. 사회주의적 이념의 경우, 다만 분단의 특수한 상황아래 국민적 합의로 일정한 법률적 제약을 두고 헌법재판소에 엄격한 판단을 맡기고 있다.  따라서 영원불변 금지 아닌 합법화 구성요건 충족시기 까지(그 때가 언제일진 모르지만) 한시적 유보의 성질로 보는 것이 보편적 합리해석이라고 소견된다.  아직 우리 대한민국은 "반쪽 민주주의"를 살고 있다는 말이 된다. 
 


  시민들은 겉으로만 헌법적 주권자이지 실상은 흑싸리 껍데기였다. 대중조작에 놀아나며 환호하는 열성적인 팬클럽 아니면 침묵하는 다수로 여기저기 동원되고 아전인수 해석당하는..심하게 말하면 민법상의 '물권적 객체' 쯤~ 이라 해도 과한 비유 아니다.  "근혜-순실이" 사태에서 적나라하게 보여준, 국민이 신성한 투표권을 행사해서 현명하게 뽑은 대통령의 실체가 말해주고 있다. 뉘 탓할 일도 아니다. 쥐구멍에 머리 처박기는 커녕 또 근혜류 동종이인에 묻지마 투표할 선량한 유권자들 여전히 늘어서 있다. 그들 위에 친일파 못지않게 똑같이 매국매민에 앞장 설 상부구조물도 역시 늘어서 있다. 대한문 광장에서..일베류 인터넷 공간에서 그들을 만나는 건 식은 죽 먹기다.

  "그래서 뭘 어쩌자는 말인가?"
  묻는 당신에게 山人이 되묻고 싶은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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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동야사나 목민신서 매천야록 등에 나오는 공통된 말이 있다. "미꾸라지는 개울을 어지럽히고.. 간신은 사직을 어지럽힌다"는 말이다. 조정에 들끓는 간신의 폐해를 탄한다. 이와 비슷한 법언(法諺)도 있다. "미꾸라지는 강물을 흐리고 악법은 세상을 흐린다". 후자의 두 말을 합성하면 '법꾸라지'다.   

  요즘 '법꾸라지'가 유행어 중 하나다. 김기춘에 대해 박지원이 처음 비꼬아 붙인 말인데 바로 귀에 꽂혔다. 참 잘도 붙인 별명이라 탄복했다. 山人만의 생각은 아니었다. 누리꾼들 반응은 삽시간에 실시간검색어(실검) 1위로 뜨고 이를 받은 언론들에 의해 '국민 별명'이 됐다.  이런 것도 능력이다. 말하자면 그는 '언어적 함의 정치'의 고단수다.
  군인은 총으로 싸우지만, 정치는 말로 싸운다. 대중 정치인이 갖춰야 할 제1의적인 자질이고 자산이다.  돈도 명분도 정치생물을 움직이는 중요 요소이긴 하나, 사회적 이목과 이슈를 이같은 짧은 한 마디에 담아 정치의제화 시키고 시대적 담론으로 집약시키는 탁월한 언어 선택과 구사 능력이 거저 생겨나는 건 아니다. KTX급 두뇌 회전과 순발력 있는 정치감각도 있어야겠으나, 무엇보다 개인적 삶의 곡절에서 뽑아낸 사회관통력을 효모 삼아 세상살이에 대한 성찰적 발효가 익어갈 즈음에 나올 수 있는 촌철멘트다. 바지런함의 대명사 박지원의 흔치 않는 사업적 이념적 정치적 편력의 다양함과 양극을 오르내린 부침이 긍정적으로 응결되어 빚어낸 결과물로 보인다. 물론 같거나 그보다 더한 경험을 가진 동시대인이라고 다같을 수도 없긴 하다. 역량..관심..분야의 차이점이 섞여있으니 스스로 자괴할 일도 비교삼을 일도 아님을 토(吐) 단다. 경제학적인 용어이긴 하지만..누구나 '(자신만의) 비교우위'가 있으니까.
  특정 정치인을 칭찬하는 것 아니다. 대중을 움직이는 사람이나 그 인기를 먹고 사는 사람 또는 직업인들의 언사와 행적이 끼치는 대사회.시민적 영향을 생각해보는 것이다. 자칭 타칭 소위 사회지도층..정치지도자라는 이들의 이상스런 언행으로 만백성 민중의 정신과 판단력을 갉아먹는 너구리 꽁쥐같은 부류들이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많고 그 설쳐대는 해악이 막심하다는 사실은 분명한 것 같다. 5공 청문회나 최순실 청문회나 30년 시차를 두고 개체만 다를 뿐, 등장 인물들의 한결같은 뻔뻔 오만함 앞에 주권자는커녕 봉건 영주들 발밑에 켜켜이 때절은 거지발싸개만도 못한 이 땅의 정치적 노예의 자화상을 들여다 보게 된다. 더러는 상대적으로 유복한 경제적 여유에 기대어 이런 사실을 애써 부인하고 외면하려는 '중산층' 또한 적지 않을 것이다.  이들이 이른바 제 3지대로 지칭되는 중도 중간층 또는 회색지대의 구성 토양은 아닌지 모르겠다.  '제한적 민주주의' 최소한의 다양성으로 山人 또한 애써 이해한다.
  그럼에도 한국사회의 전반적인 '모럴 헤저드'가 더욱 악화되고 질적으로 심화되었다는 점은 동의할 수밖에 없다고 본다. 정유라를 놓고 벌인 어떤 대학교의 몰지성 반사회적 규칙붕괴의 작란(作亂)과 권력-관료-비선빽들이 벌인 막장 흥정극을 보노라면, 우리사회의 작동원리가 도의규범에 기반한 자정과 균형적 시스템 아닌, 여전히 소수의 人治 통제로 굴러감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그것도 아주 태연하게 말이다. 돈으로 들고나는 대학의 부정입학과 학사비리가 그다지 비밀일 것도 없는..오래된 관행이지만 예산과 권력까지 끼어들어 벌어지는 놀음판에 '공정함'의 한가닥 짝사랑은 비애를 넘어 분노의 광장으로 어린 학생들을 끌어낸다. 시국선언 교수들도, 교육보국 내세운 재단이사장들도, 그 흔해빠진 대학 어느 하나도 그 커넥션에서 자유롭지 못한 불편함 탓인지 고요~하다. 어디 가서 "내가 교수다".. "선생노릇 몇십년 했다" 내보이지 말 일이다. 허깨비 꼭두짓으로 밥빌어먹은 '교육식충이' 자복이다.  너나없이 사회의 질적 타락 지표다.
  변변한 지적 이데올로기나 건학이념조차 없이 부의 수단으로 만들어진 정상모리배 족벌경영의 가짜 상아탑, 학문으로 포장된 위장지식인들이 누린 지위는 천민자본주의 앞에 무릎꿇은 '지성의 몰락'... 그 처참한 몰골로 산방 대문앞에 지금 비틀거리며 서 있다. 거울에 비친 바로 내 몰골이다.  이런 씨앗 종자는 이미 1890년대에 뿌려져 1910년 싹이 터 종기 자라듯 온강토 만민중 뇌리에 번져나기 시작했다. 그게 1945년 분단 재점령으로 개화되어 근혜통치로 열매 맺은 것이다. 문맹 없는 이 땅에 이거 모르는 등신 없다. 그런데 왜 여기까지 왔을까? 그랬다. '기득권'이다. 독립군과 일군 조선인부대 간도특설대가 갈라지는 지점이었다. 그게 지금도...다! 인간의 보편적 심리이거나 생래적 본능성일 수 있다. 여하튼 고전적 명제다.
  그렇지만 그게 다 아니다. 세상에 나서기를 꿈꾸는 사람은 달라야 한다. 우리 사회..우리가 만들어 낸 리더쉽의 비극 앞에 가지는 회한이다. 그나마 정상의 사고와 상식의 판단력을 지닌 대다수 대한민국 민초시민들의 흔들리지 않는 정의로움이 살아있어 그래도 예까지 왔다. 개인, 가족의 안위에 머물지 않고 영혼과 일신을 던져 나라의 독립과 통일.민주주의 등 우리 사회의 공동선에 헌신한 위인들이 있어 그래도 예까지 왔다. 희망을 품는 까닭이다. 질 수 없는 싸움이다.

  그래서 남 앞에 서는 사람..그것도 많은 사람 앞에 서는 사람, 그런 무대에 올라 떠들고 재주부려 밥술 얻어먹고.. 돈과 명예를 구하고.. 유명해지고싶어 하는 이들은 자신을 잘 들여다 보고 결심을 해야 한다. 빈곤한 역사의식이나 주견이랄 것도 없이 이리저리 떠다니는 겉저리 생각을 소신삼아 정견 포효하듯 함부로 나서면 안된다. 처지나 분수를 생각하고 욕심 욕망을 조절할 줄 알아야 한다. 쉬운 일 아니다. 그러니 생게망게 어중떠중 이합집산 철새텃새 잔머리또방 이득밝이대방들이 동남서북 성동격서 경박단소로 놀래고 어르달래며 정치 비즈니스를 편다. 박지원이 그래서 불안위태하다. 반기문만 "반반" 아니다. 한민당~자유당~공화당~민정~민자~신한국~한나라~새누리.. 어지럽다. 이번엔 무슨 이름으로 바꿔 달까? 사회과학에서 흔히 드는 '현상과 본질'에 딱 들어맞는 최적의 단어다. '바른 정당'?은 무엇이 같고 다를까?  "그것이 알고싶다". 
  그 오욕의 역사만큼이나 이름조차 역겹다. 그런데 태극기 흔드는 맞불 박사모는 친목으로 정치하고 촛불을 징치하는 담대함이 참 대단하다.  이 뿌리는 보기보다 아주 깊다. 칡뿌리 마냥 길고 질기다. 이들은 얼굴 없는 그 검은 장막의 그림자다. 민중 머릿속에 잠재하여 두려워 하는 심연이다. 그 이상한 공포심이 통치의 동력이다.

  '시일야방성대곡'을 쓴 장지연은 그 1년 후 전향해서 총독부 전속강사로 초빙돼 8도를 돌며 황국신민 충복을 자처했다. 작위까지 하사받은 그는 만년에 고향 마산에서 밤낮 없는 술타령으로 천수를 누렸다. '시일야..'는 조선민중에게 흉기였다. 당대의 개화지식인 육당 최남선은 2.8 동경유학생 선언문 베낀 3.1 독립선언문을 이완용 술집 태화관에 모인 허깨비 밥자리모임에 내던지고 슬그머니 빠지더니, 그 몇 년도 채 안돼 장지연의 뒤를 충실히 따라갔다. 친일집단으로 변신한 '신간회'.. '교육계몽, 자치론' 주장으로 독립투쟁의 불꽃을 흩흐러트린 안도산은 식민백성들을 혼란으로 몰고갔다. 육당 숭모자 춘원도..그 제자 모윤숙이나 김동인 김광섭 서정주 조연현 백철 등 문인그룹.. 김성수 방응모 등 매국언론.. 화신 박흥식 등 기업인들..총독부 고등계 90%를 점하고  잔인초극의 동족 고문살인에 앞장 선 조선인 매국경부들..독립군과 간도조선촌 초토화로 승승장구한 백선엽만주토벌대와 신경군관-제국육사 출신 다까끼 만주군맥의 반역 '조센 일군'들... 이들이 제헌의회 다수가 되고  정부수립의 현실적 뿌리가 되었다. 그걸 60대 중반의 산인도 어릴적부터 교과서로..선생님들로부터 배우고 또 배웠다. 그랬다. 역사도 국어 속 문학도 그런 사람들과 그런 글을 독립운동가..최초 신소설..최초 신식시..최초 어쩌구저쩌구로 외우고 시험쳤다. 그걸로 "공부 잘한다" 했다. 그게 지금도..다.

  인명진이 누군가? 70년대 그 엄혹한 박정희유신에 맞서 '도시산업선교회'를 이끌고 노동운동 벌이며 남산 중정에서 무지막지 매맞고 교도소 수도 없이 드나든 사람이다. 새누리당 살려내겠다고 나선 지금 그 사람이다.
  김동길은 작년 10월 박근혜 1차 담화문을 보고 "이제 우리나라에 다시 광명이 찾아왔다.."고 망발을 늘어놨다. 오래 전에 죽은 줄 알았다. 70년대 3.1명동선언 때 잡혀가 죽었으면 이름값이라도 건졌을텐데...! 김무성이야 졸개 때니 그렇다 쳐도, 근혜를 주군 삼은 서청원이 "칠푼이"로 취급했던 자신의 절대 보스 김영삼의 박정희 유신정권 타도 민주화투쟁의 행동대원이었다는 게 상상되겠는가?
  김문수 이재오도 대단한 표상이다.  자신의 이념을 따르던 동지들에 대한 '사상 테러'는 좌.우를 떠나서 세상을 혼돈시킨 또 다른 변절의 전형이었다.  UN사무총장 10년 채 끝나기도 전에 고국의 대통령후보로 나가겠다고 해서 UN을 나자빠지게 한  반기문의 세계적인 몰상식도 우리 안에서 배태한 찌꺼기 잔재다. "매 앞에선 장사 없다"는데, 자신과 一家의 기득권 앞에서는 나라도 민족도 친구도 적도 없는 듯하다. 거기에 일말의 양심이라도 기대하며 '청문회'를 놓질 못한 민초의 쓰라린 가슴속을 어찌 저들이 알겠는가? 살벌한 정글 속 미로를 더듬는다. 이 나라가 어찌 한 뼘 의리마저 말라빠진 하이에나 조폭집단처럼 굴러가는 투전판같이 돼서야 쓰겠는가?

  '인성의 기본'이 결여된 욕망의 맹동이 끝간데 없는 오지랖으로 세상을 어지럽힌다. 뭔가 해보겠다는 걸 탓하거나 말릴 재간도 없다.  '공무담임권'이라는 게 있으니... 그런  인물들이 수도 없이 "차고 넘쳐 나서" 일일이 열거하기 어려운 지경이라 이쯤에서 그만둬야겠다.  治國 平天下 멸사봉공 아니래도 일을 저지르지나 않았으면 더 바랄나위 없다.  허장성세 겉만 보고 대리만족 구하기 보다 이웃의 보통 평상인들을 가려 뽑는 평범한 선구안을 가진 주권 시민들이 많아지길 바래본다. 이것도 "오지랖"인가? 갑자기 뒷머리가 당기고 귀가 근지러워진다.
"넌 그 나이 먹도록 뭘 했나?"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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