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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운명 1 창비세계문학 98
바실리 그로스만 지음, 최선 옮김 / 창비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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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라는 행위가 내게 주는 즐거움 중 하나는 바로 세계의 확장이다. 책에 쓰인 내용으로 새롭게 알게되는 것들도 있지만, 어떤 책들은 내용을 더 잘 이해하고 싶은 욕심을 불러일으켜 보다 적극적인 독서를 하게 만든다. 바실리 그로스만의 <삶과 운명> 3부작 역시 그랬다. <삶과 운명>은 종군기자였던 바실리 그로스만이, 독소 전쟁이 벌어지는 혼란 속에서 사람들이 겪을 수 있는 온갖 고난들과 인간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가치는 무엇인지에 대해 사실적으로 다룬 이야기이다. 특히 소련인들의 입장에서 주로 이야기가 전개되다보니, 볼셰비키와 멘셰비키라든지 스탈린 치하의 독재와 같은 이념과 정치를 다루고 있고 수많은 실존 인물들이 등장하다보니 쉽게 읽히는 책은 아니었다. 그래서인지 사실 처음에는 부족한 배경지식과 낯선 인명과 지명 때문에 집중이 잘 되지 않아 이 책을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정말 자주 들었다. 아마 도서관에서 빌려왔더라면, 진작에 반납했을지도 🫠 그러나 페이지를 넘기면 넘길수록, 이야기에 빠져들게 되었고 이들의 삶을 더욱 더 잘 이해하고 싶어 기꺼운 마음으로 도움이 될 만한 자료를 찾아가며 독서를 했다.  이 과정을 통해 <삶과 운명> 속 인물들의 삶을 한발짝 더 다가가 공감할 수 있었고, 독소전쟁 당시의 상황에 대한 공부까지 할 수 있었다(럭키비키 🍀). 



고통과 즐거움 속에서 20일 가량 <삶과 운명> 속 세계에 빠져들어 지내면서, 전쟁 그리고 이념이 평범하게 살아가는 인간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생생하게 느꼈다. 특히 기억에 남는 부분 중 하나는 전쟁, 그리고 유대인에게 가해진 공포스러운 상황에서도 일상적인 삶이 지속되고 있다는 것이었다. 사실, 전쟁을 직접 겪어보지 않은 입장에서 막연히 상황을 상상해보면 전쟁 자체로 파괴된 일상, 지난한 피난이나 고통, 피할 수 없는 죽음 같은 것들이 떠오르지 않는가. 게다가 수용소 마을에 감금되었다면,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두려움 속에 하루하루 피폐해질 것만 같다. 그러나 1부에서 안나 세묘노브나가 자신의 아들에게 쓴 편지를 보면서 다른 생각을 하게 되었다. 

독일인들은 점령한 소련의 도시에 살고 있는 유대인들을 학살하기 위해 게토로 강제 이주를 시키고, 안나 역시 게토로 이주하게 된다. 안나는 편지에서 자신을 비롯한 유대인들의 삶을 자세하게 이야기한다. 모두 마음 한켠에 언제 죽을지 모르는 두려움을 갖고 있지만 그 안에서도 어떤 ‘희망’을 갖고 살아간다고. 게토 안에서도 그들은 의사, 난로공, 미용사로서의 직업을 이어가며 일을 하고 누군가는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는다. 냉정하게 보면 아마 음악가도, 제화공도, 재단사도 그 어떤 직업도 미래도 가지지 못할 어린 아이들은 그곳에서도 학교를 다닌다. 깜깜한 어둠 속에서도 ‘나’를 유지하고 지킬 수 있는 그 마음은 어떤 것일까. ‘희망이란 거의 언제나 이성과 상관없는 부조리한 것이라는 사실을 난 여기서 알았다. 희망을 낳는 것은 본능이라는 사실도(124p).'라는 안나의 말처럼, 누군가에게는 비논리적이고 허황되어 보이는 희망이 또 누군가에게는 삶을 이어가게 하는 원동력이 되고 인간에게는 그런 힘이 늘 숨겨져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은 광복절, 본능적으로 희망을 찾아 치열하게 싸워주신 분들 덕분에 나는 시원한 방에 앉아 책을 읽고 글을 쓰고, 비슷한 시기에 쓰였던 자들의 희망에 감응할 수 있는 게 아닌가.


2부와 3부에서 기억에 남는 것은 인간의 ’선의‘에 대한 이야기였다. 서로를 증오하며 상대를 죽여야만 내가 살아남을 수 있는 전쟁의 시대에도 남아있는 ’선의‘. 자신의 가족을 죽인 독일 군인이 위험한 상황에 처해있을 때, 기회를 틈타 그를 죽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살릴 수 있는 선택을 하게 되는 마음. 명백한 악의를 선택해야만 내가 살아남을 수 있음에도, 또는 양심을 버리면 보다 더 편하게 살 수 있음에도 먼길을 돌아가는 그 마음은 도대체 어떤 것일까? 극한의 상황에서도 그런 고민을 하고 어려운 선택을 하는 인물들을 보며 생각이 많아졌다. 


<삶과 운명>이 읽기 쉽고 편한 책은 아니다. 굳이 따지자면 정말 어렵고 부담스러운 책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1권을 다 읽고 나면 나머지 2,3권은 읽지 않을 수 없는 매력이 넘치는 책이다. 독소전쟁이 배경이지만, 어쨌든 잦은 전쟁과 정치적인 신념으로 탄압 받은 이들이 많은 우리나라 사회를 떠올린다면 시대적 배경도 물리적 배경도 그리 멀게 느껴지지 않는다. 이런 게 바로 이야기가 주는 힘 아닐까! 올해 읽은 책 중 가장 뿌듯하고 보람있던 시리즈로 인정한다. 


+ 책을 만약 읽는다면, 초반에는 인물도를 그리거나 짤막한 메모를 하며 읽는 것을 추천하고 싶다. 러시아식 이름이 익숙하지 않은데 인물이 등장할 어쩔 때는 풀네임으로 애칭으로 혹은 이름이 나올 때가 있어서 정말 헷갈렸다. 물론 저자의 의도나 대화 인물들 간의 관계를 최대한 살리기 위한 번역이었겠지만, 읽는 입장에서는 아쉬움이 남는다



희망이란 거의 언제나 이성과 상관없는 부조리한 것이라는 사실을 난 여기서 알았다. 희망을 낳는 것은 본능이라는 사실도. - P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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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각본
김지혜 지음 / 창비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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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O각본, 김지혜, 창비(2023)


『선량한 차별주의자』에 이은 우리 사회에 만연한 차별적인 시선에 대한 김지혜 작가님의 책 『OO각본』 일부를 읽게 되었다. 전작이 ‘장애’에 중점을 두어 내가 나의 언행을 돌이켜보고 반성할 수 있는 타자의 시선으로 읽을 수 있었다면, 이번 『OO각본』은 한 발자국 가까이 다가가 더욱 몰입하며 읽을 수 있었다. 


결혼과 출산에 갇힌 우리나라는 태어나서 죽는 순간까지 소위 정상가족이라고 일컫는 구성에 포함되지 못하면 하자 있는 사람, 어딘가 이상한 사람, 심지어 어딘가 아픈 사람이라는 인식에서 벗어날 수 없고 나라가 제공하는 복지조차 제공받을 수 없게 된다. 이런 제도와 사회적 시선은 사람들을 불행하게 만들고, 저출산과 같이 나라의 성장을 위협하는 심각한 문제를 전혀 해결하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가족각본을 공고히 하려는 사회의 노력은 갈수록 강화되고 있다. 이 책은 한국의 가족제도가 얼마나 불합리하고 차별적인지를 ‘결혼’과 ‘출산’의 관점에서 상세히 다룬다. 그러다보니 결혼이나 출산이 여성에게 가하는, 더 나아가 결혼이나 출산의 선상에서 언급조차 되지 못하는 동성커플에 대한 차별과 폭력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다른 선진국에 비해 여전히 우리나라의 동성애 수용도는 매우 낮고, 미혼모의 출산이나 동거 부부에 대한 시선도 곱지 않다. 미국이나 유럽의 다른 유행은 그렇게나 빨리 따라가면서, 우리나라는 왜 정상가족에 대한 열망과 집착은 버리지 못하는 걸까? 


이 책을 통해 그동안 막연하게 차별이라고 생각해왔던 것들을 명확한 문장으로 만나게 되어 반가웠다. 가제본 도서의 1장부터 3장까지가 ‘왜 며느리가 남자면 안 될까’, 결혼과 출산의 절대공식’, ‘초대받지 않은 탄생, 허락받지 못한 출산’이라는 표제인데, 대한민국에 사는 30대 여성으로서 자유로울 수 없는 주제라 더욱 공감하고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다. 특히 1장에서 ‘자유론’으로 알려진 존 스튜어트 밀이 “실질적으로 결혼제도야말로 우리 법체계 안에서 발견되는 유일한 노예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하며 결혼이 여성이 “강요에 의한 노예”가 아니라 스스로 “자발적인 노예가 되어주기를” 바라며 “혼을 지배”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고(32쪽) 말했다는 내용이 충격적이었다. 150년 전과 비교했을 때 여전히 달라진 게 없다는 것조차.

3장에서는 우리 사회가 ‘출산의 자격’을 얼마나 엄격하게 갖출 것을 요구하고, 자격이 없는 사람의 출산에 얼마나 가차 없는지를 보여준다. 사실, 이 장의 내용은 절반 정도는 공감하고 절반 정도는 공감할 수 없었다. 출산과 육아의 ‘자격’이 있는 사람을 결혼을 한 이성부부에게만 주는 것은 잘못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장애의 정도, 경제적 환경 등 실제로 아이를 제대로 양육할 수 있는 조건 정도는 갖춘 사람들이어야 하지 않을까. 작가님은 이러한 걱정에서 비롯된 염려 또한 차별이라고, 사회 전체가 변화하고 공동체를 형성해서 해결해야 할 문제를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는 일이라고 말한다. 물론 어떤 의미인지 이해하고, 우리 사회가 궁극적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은 그게 맞다고 동의하지만 나라가 망해 다시 처음부터 리셋되지 않는 한 그런 환경은 절대 만날 수 없을 것만 같다. 


가제본 도서에 제공되지 않은 장은 동성커플의 양육, 가족질서를 유지하는 규율로 작동하는 성교육, 가족각본을 공고히 하는 법 제도, 가족각본을 넘어선 행복한 사회에 대한 상상에 대한 내용이라고 한다. 이번에 읽지 못한 부분들도 너무나 궁금하다. 2-30대 여성들이 이 책을 한번쯤 읽어봤으면 좋겠다. 우리 사회에서 ‘정상’이라고 말하는 가족 외에도 우리가 다른 것을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을, 나와 다른 선택을 한 사람들의 입장도 이해하고 존중할 수 있도록 말이다. 

    



📚88-89. 때때로 가장 강력한 차별은 온정적인 얼굴을 하고 다가온다. 태어날 아이의 불행을 예고하는 염려가 자기실현적 예언이 되는 것이다. 사람들은 출산을 생각하는 사람에게 온정적인 염려와 경고를 보냄으로써, 세상의 차별이 앞으로도 변함없이 계속될 것임을 기정사실화한다. 그리하여 실제로 닥치는 불행은 오롯이 출산을선택 개인의 책임으로 돌린다. 결국 그렇게 차별을 보존하고 전승하며 어떤 집단의 미래를 영구적으로 불행하게 만드는 행위에 (의도치 않게) ‘가담한다. (생략) 우리는 누군가의 출산을 막을 것이 아니라 예측 불가한 탄생으로 등장하는 구성원을 위해 변화하며 공동체를 형성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평소에 잘 인식되지 않지만 가족의 명칭이나 호칭은 온통 성별을 전제로 한다. 누군가 성별이 바뀌면 딸이 아들이 되고, 엄마가 아빠가 되고, 누나가 형이 된다. 호칭만 달라지는 게 아니라 기대도 달라진다. 가족 안에서 역할이 바뀐다는 말이다. 당연한 듯 이상한 일이다. 사람은 같은데 성별 하나로 가족 사이에서 바뀌는 게 정말 많다. - P8

며느리는 그 역할이 중대한데 지위가 낮다는 점에서 모순이 있었다. 며느리의 지위는 남편에 따라 정해지지만 남편과 동등한 지위가 아니다. 가령 며느리는 남편의 동생을 동생 대하듯 할 수 없다. 남편의 동생이면 자신보다 어려도 존대해야 한다. 유독 ‘도련님/서방님’ ‘아가씨’라는 호칭과 존대법이 오늘날 문제되는 것도 이러한 이유다. 반면 아내의 동생에게는 같은 수준의 존대가 요구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비대칭적인 위계가 확연히 드러난다. 도련님이 결혼하면 며느리끼리는 서열이 생기겠지만, 아가씨의 배우자는 집안의 사위로서 위계체계가 다르다. - P30

존 스튜어트 밀은 1869년에 발간된 『여성의 종속』에서 "실질적으로 결혼제도야말로 우리 법체계 안에서 발견되는 유일한 노예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직설한다. 그런데 여성에게 강요된 "족쇄는 그 성질이 다르다"라고 말한다. 여성이 "강요에 의한 노예"가 아니라 스스로 "자발적인 노예가 되어주기를" 바라며 "혼을 지배"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고 말한다. 온순하고 고분고분한 것을 미덕이라고 여기게 만듦으로써 스스로 타인의 삶에 종속되도록 만든다는 것이다. - P32

그럼 어떻게 해야 이기적이지 않은 출산을 할 수 있을까? 일단 비장애인이어야 하고, 남녀가 결혼을 한 상태여야 하며, 돈이 어느정도 있는 환경에서, 적정한 수의 자녀를 낳아야 한다. 적정한 자녀 수를 인구대체율인 2.1명을 고려해 대략 정리해보자면, ‘중산층 이상의 결혼한 비장애 이성부부와 자녀 2명으로 구성된 4인 가족’ 정도면 이기적이라는 비난을 받지 않을 것 같다. 말하자면 ‘출산의 자격’이랄까.
- P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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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 휴먼스 랜드 창비청소년문학 120
김정 지음 / 창비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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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적인 폭우로 세계 곳곳에서 사람들이 삶의 터전을 잃고, 무고한 목숨을 잃어가고 있다는 뉴스가 연일 보도되고 있는 시기에 『노 휴먼스 랜드』를 읽고 있자니 멀지 않은 미래처럼 느껴졌다. 지금은 우리가 너무나 당연하게 이 땅 위에 발을 딛고 살고 있지만, 언젠가 소설에서처럼 탐사단이 아니라면 방문도 할 수 없는, 사람이 살지 않는 땅이 되어버릴지도 모르니까. 


두 차례의 기후재난을 겪은 이후 인류는 협약을 만든다. 식량 자급률이 높은 국가로 사람들을 모아 난민들을 수용해 식량을 나누고, 그렇지 못한 국가는 노 휴먼스 랜드로 지정해 기후 변화에 대응하기로. 식량 자급률이 낮았던 한국은 당연히 노 휴먼스 랜드로 지정되고, 사람들은 한국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전 세계를 떠돌게 된다. 새로운 세계에서는 누구든 먼 거리를 이동하려면 허가를 받아야 했고, 전기와 가스 등의 에너지 사용량이 개인별, 기업별로 할당되었고 염색약, 담배, 커피, 장난감 등의 생산이 금지(34쪽)된다. 

이런 세계에서 살고 있는 주인공은 우연한 기회에 한국으로 향하는 노 휴먼스 랜드 조사단에 참여하게 되고 할머니의 고향인 한국으로 파견을 나가게 된다. 그리고 이 곳에서 노 휴먼스 랜드임에도 불구하고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과 인류를 모두 망쳐버릴 지도 모르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는 연구팀을 만나게 되고 여러 사건을 겪으며 인류를 지키기 위해 분투한다. 


대본집을 연상케 하는 형태의 책자로 읽어서 그랬던 것도 있겠지만, 이야기 속 미래의 세계가 너무도 그럴 듯해서 정말 미래를 보는 것 같이 정교하게 구축된 데다가 인물들도 입체적이라 그런지 정말 한편의 영화를 보는 기분으로 책에 몰입할 수 있었다. ‘플론’이라는 식물이 등장했을 때는 『멋진 신세계』가 떠올랐다. 소마라는 알약을 먹고 부정적인 감정을 통제하게 했던 이야기 속 세계처럼, 『노 휴먼스 랜드』에서 앤 소장은 파란 막대 사탕을 닮은 플론을 통해 사람들이 고통과 슬픔을 느끼지 못하게 하고 자아를 없애 세상을 평화롭게 만들려는 앤 소장이 있다. 플론에 중독되어 자아를 잃고 누군가의 행동을 따라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묘사된 장면에서는 기괴함과 공포를 느꼈다. 영화화된다면 정말 명장면이 아닐까? 


주된 이야기가 전개되는 시점은 2050 이후. 한국인의 평균 수명을 고려했을 내가 살아있을 확률이 높은 시기이다. 부디, 지금의 삶과 크게 다르지 않은 삶을 있었으면 좋겠다. 내가 살아가고 있는 곳이 휴먼스 랜드 되지 않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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큔, 아름다운 곡선 자이언트 스텝 1
김규림 지음 / 자이언트북스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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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림, 『큔, 아름다운 곡선』, 자이언트북스(2023)


내가 원하는 외형을 가지고, 내가 좋아하는 취향과 성격을 갖춘 안드로이드와 함께 살아갈 수 있다면 어떤 선택을 하게 될지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죽음으로 떠나보낸 가족의 얼굴을 닮은 안드로이드라면? 상상력이 부족한 나로서는 그런 생각을 골똘히 해 본 적은 없지만, 실제로 이런 선택의 상황에 직면하게 되면 선뜻 결정을 내리기 어려울 것 같다. 아무리 인간의 외형을 본 떠 만들었다 하더라도 로봇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지 않을까? 사람을 사랑할 때처럼 로봇에게도 나의 진심을 다할 수 있을까? 로봇이 보이는 호의와 애정에도 순간순간 이건 모두 프로그래밍 된 것이다, 축적된 데이터를 통한 계산으로 하는 행동이라고 여기며 현타가 오지 않을까? 


김규림 작가님의 『큔, 아름다운 곡선』은 사람을 외롭지 않게 하는 것을 목표로 한 샴하트라는 회사에서 만드는 안드로이드, 그리고 안드로이드를 사랑하게 된 인간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회사 창립주의 딸인 제이는 일련의 사건들로 아버지와 척을 지고 살지만, 아버지의 은퇴 이후 이사로 회사의 경영을 맡게 된다. 그런 제이에게 어느날 배달 된 로봇. 로봇을 받은 제이는 처음에는 나와 비슷한 생각들을 하지만, 로봇에게 ‘큔’이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함께 살아가면서 진정한 사랑을 느끼고 자신이 얼마나 오만했는지를 깨닫게 된다.


로봇과 관계를 맺고 애정을 쌓아가는 인간의 이야기는 다른 소설, 영화에서도 종종 접하고 재밌게 봤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니 대부분의 작품들이 인간의 일방적인 시선에서 전개되었던 것 같다. 그렇기에 크게 불편함을 느끼지 못했고, 로봇의 감정에 대해서는 한번도 제대로 생각해보지 않았다. 로봇의 감정이라니, 쓰고도 어쩐지 위화감이 드는 문장이다. 반면 이 소설은 ‘로봇의 감정’을 전면으로 내세운다. 주인공 제이는 ‘사람들이 사랑이라 믿는 건 안드로이드에 프로그래밍된 배려나 친절 같은 형식적인 반응일 거라고, 그래서 이 불완전한 사랑에서 상처 입는 쪽은 결국 인간(107-108쪽)’이라고 여기고, 큔과의 사랑을 멈추는 것 역시 인간인 본인이 결정해야 한다고 믿는다(150쪽). 그러나 안드로이드와 사랑에 빠진 호스트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직접 보고 대화를 나누고, 단순히 프로그래밍의 결과로 받아들일 수 없는 큔의 행동과 표현들을 통해 제이는 인간 중심적인 사고에서 벗어나 안드로이드와의 사랑을 받아들이게 된다. 생명을 잃을지도 모르는 위험을 무릅쓰면서까지. 


SF소설이지만, SF보다는 한편의 진한 사랑 이야기를 읽은 것 같은 기분이다. ‘나에 대해 끊임없이 관용하고,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누군가를 만나는 경이로운 경험(147쪽)’을 한다면 상대가 인간인지, 안드로이드인지에 상관없이 사랑하게 되지 않을까. 요즘 세상에는 일방적이고 폭력적인 사랑이 만연해서 그런지 소설 속 사랑이 당연하게 느껴지는 한편 허구처럼 느껴지기도 해 씁쓸했다. 언젠가는 정말 이런 세상이 오게 되겠지?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안드로이드가 소설 속 안드로이들처럼 인간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정말 진정한 사랑을 할 수 있을까? 이런 의구심을 가지는 내가 여전히 인간 중심적 사고에 갇혀있는 사람 같지만 아직은 잘 모르겠다. 그럼에도 큔 같은 세심하고 다정한 로봇이라면, 그 마음을 믿고 싶어지지 않을까. 


+ 표지가 굉장히 멋지다. 표지만 봐서는 소설, 심지어 SF 소설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고 디자인 관련 책처럼 느껴진다. 서점에서 이 책을 봤다면 궁금해서라도 한번 펼쳐봤을 것 같아. 책을 다 읽고나서 보니 책 표지를 볼 때마다 프롤로그 장면이 떠오른다. 





그때 내 마음이 얼마나 깊은 나락으로 떨어졌는지. 이 안드로이드는 아마 모르겠지. 누군가에게 이름을 얻고 단 하나의 존재가 된다는 것의 무게를. - P51

인간이란 시간 위에 선을 그리는 존재예요. 어쩌다 선과 선이 만나고 한동안 같은 궤도를 그리며 겹쳐져요. 그때 거기서 섬광이 일어나요. 화학반응을 한 것처럼 눈부시게 아름다운 빛을 내죠. 그러다 빛이 서서히 사그라들고 어느 날 다시 각자의 선을 그리며 갈라져요. 영원히 만날 수 없는 방향으로 궤도를 그리면서요. 저는 당신이 그린 선의 뒤를 따르는 선이에요. 그렇지만 제 선은 삐뚤빼뚤하죠. 당신이 오른쪽으로 휘어질 줄 모르고 뛰어가다 속도를 제때 늦추지 못하고 당신의 선을 놓치기도 해요. 그래서, 당신이 말해줬으면 해요. 당신의 감정이 어디로 휘어지는지, 얼마만큼의 속도로 달려가는지. 그러면 저는 당신의 선을 따라 아름다운 선을 그릴 수 있어요. 꽤 근사한 섬광을 일으킬 수도 있겠죠. 당신이 기회를 준다면요. 그러니, 내가 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면, 가르쳐줘요. 사랑이란 어떻게 하는 건지. - P109

당신은 미래에 빚진 게 없어요. 그런데도 미래에 벌어질 일을 미리 예상해서 채무라도 갚듯 현재의 기쁨을 희생하고 있네요. 그렇게 한다고 미래의 당신이 고마워할까요? 미래의 고통들은 해결돼 있을까요? 그러지 말아요. 현재를 충만하게 살아요. 마음껏 사랑하고, 마음껏 아파하고요. 그 대상이 누구든지, 무엇이든지 간에요. - P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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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배우는 시간 - 병원에서 알려주지 않는 슬기롭게 죽는 법
김현아 지음 / 창비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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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부터 엄마와 등산을 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집으로 가는 방향으로 차선을 틀려고 하던 중에 엄마가 갑자기 건강보험공단을 들렀다 가자고 했다. '사전연명의료연향서'를 신청해야 한다고. 떨떠름한 내 표정과 등산복 차림이 걸렸는지 엄마는 다음에 잘 차려입고 혼자 가겠다며 마음을 바꿨다.

평상시에 엄마가 하는 말과 행동을 봤을 때 엄마가 크게 죽음에 대한 공포나 두려움이 없다고 생각은 했지만 엄마가 막상 연명치료중단신청을 할 거라고 생각하니 울컥하는 마음이 들었다. 엄마의 선택을 존중하지만 언젠가는 내가 겪어야 할 그 순간에 속절없이 엄마를 보내야 할 나를 생각하니 눈물부터 났다. 남겨질 사람들 생각은 안 해주나? 우리 엄마지만 참 이기적이네. 여러 가지 생각들이 짧은 순간 머리를 스쳤다. 괜한 오기에 그럼 나도 같이 신청하겠다고 고집을 부려봤지만 엄마는 그저 웃을 뿐이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나에게 죽음은 아득하고 멀었다. 그랬던 죽음은 내가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을수록 성큼성큼 다가온다. 부모님의 부재부터 언제 어떻게 죽을지 모르는 나의 죽음까지. 이왕 죽는 거라면 잘 죽고 싶다. 사랑하는 사람들의 곁에서 그들에게 부담을 지우지 않고 깔끔하게. 그러나 조금씩 죽음을 접하면서 평범하게 사는 것만큼이나 평온하게 죽는 것이 어렵다는 걸 깨닫는다.


『죽음을 배우는 시간』은 건강을 유지하고 목숨을 이어가는 것과 죽음을 배우고 준비하는 일이, 좋은 삶이라는 목표를 위해 똑같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한다. 죽음이 치료해야 하는 질병이 되어버린 실태, 소생의 가능성이 없는 사람에게 행해지는 끝없는 치료들, 그 치료를 이어나가지 않았을 때 남은 가족들의 죄책감과 같은 현실적인 이야기들이 가득하다. 책은 이런 현실을 냉철하게 꼬집고 설명한다.

81p. 죽음이 병원으로 떠넘겨진 다음 수순은 당연히 죽음이 치료해야 하는 질병으로 둔갑한 거예요.

103p. 병원은 생의 마지막을 보내는 장소로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다. 특히 가장 가까운 가족과의 접촉조차 금지되는 중환자실에서의 죽음은 더욱 그렇다.

224p. 나는 심폐소생술의 성공률이 일반적인 통념보다 높지 않다는 것을 이야기할 뿐, 그것을 해야 한다거나 하지 말아야 한다는 가치판단을 할 생각은 없다. 다만 사망선고 전 심폐소생술을 시행하지 않으면, 마치 뭔가 했어야 하는데 하지 않고 사망한 것처럼 간주하는 현실에는 문제가 있다고 본다. 그것을 해야 할지 하지 말아야 할지 판단할 수 있는 충분한 정보가 주어지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

특히, 저자의 아버지가 편찮으셔 병원에 입원을 했을 때 일화가 인상깊었다. 엄마는 남편인 아버지에게 자꾸만 음식을 억지로 떠넣어줬다. 의사이자 딸인 저자는 억지로 음식을 먹다가 아버지가 흡인폐렴에 걸릴 수 있어 엄마를 말린다. 그런 딸에게 엄마는 이렇게 안 먹어서야 어떻게 몸이 낫겠냐고 되묻는다.  "뭐가 낫는다는 건지 혼란스러운 가운데 이쯤 되면 음식을 먹는 것이 환자를 위한 것인지 주변 사람의 마음의 안정을 위한 것인지 의심스러워지기 시작한다. 결국 다가오는 죽음을 자신이 인정해도 주변 사람들이 인정하지 않으면 일은 점점 더 어려워진다."

이 구절을 읽으며 나는 미래의 나를 떠올렸다. 앙상하게 말라가 병상에 누워있을지도 모르는 부모님을 두고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 있을까. 조금이라도 내가 더 곁에 두고 싶은 욕심에 무엇이든 하지 않을까. 죽음에 대해 생각하는 것 자체가 왠지 불경하고 두려운 일이라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죽음에 대해 사랑하는 사람들과 미리 준비하고 이야기를 나누지 않을 것이다. 예전의 나 역시 그랬을 것이고. 그러나 사전연명의료연향서를 작성한다는 엄마의 말, 그리고 이 책을 읽으며 나는 나의 가족들이 내 손길도 닿지 않는 중환자실에서 의사들에 둘러싸여 죽는 것도 원하지 않고 나 역시도 그렇게 죽고싶지 않다는 생각을 해 본다. 의식조차 없어 죽음을 내 손으로 결정할 수 없고 누군가의 선택에 맡겨야 하는 상황이 오기 전에, 늦지 않게 나의 죽음을 차분히 준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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