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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신이여, 가장 큰 소리로 웃어라 - 니키 드 생팔 전기
슈테파니 슈뢰더 지음, 조원규 옮김 / 세미콜론 / 2006년 12월
평점 :
절판
『우리 안에는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것보다 더 위대한 창조적인 힘이 있다고 나는 믿습니다 』
평범한 사람들과 확연히 다른 기발한 발상과 독창성을 구비한 한 시대를 풍미하는 세계적인 예술가들은 얼마나 많은가. 그들은 분명 태초부터 타고난 예술적 능력을 부여 받았으리라고 생각한다. 흔히 예술가의 길은 바다에 혼자 떠있는 새처럼 고독하고 외로운 과정이라고 이야기한다. 하나의 편견이 될 수도 있겠지만 한 때 「미와 추의 경계를 뛰어넘은 현대 미술의 매혹적인 반항아」라는 타이틀을 가진 니키 드 생팔의 삶의 발자취를 통해 어느 정도 일관성이 있는 이야기임을 알게 된다. 많은 이들의 주목과 관심을 받았던 그녀를 만나 보자.
1930년 10월 29일 프랑스 파리의 뇌이쉬르센에서 어머니 잔 재클린 드 생팔과 아버지 앙드레 마리드 생팔 사이에서 오 남매 중 둘째로 태어난다. 경제적으로 힘든 시기, 아버지는 바람을 피웠고 그녀는 자신이 탄생을 이렇게 회고한다. ‘나는 우울한 엄마 속에서 태어났다’라고. 탯줄이 목에 감기는 사고로 질식사로 인한 죽을 고비고 넘긴 그녀. 「태어날 때부터 위험이 나를 따라다녔고 내가 마주쳐 이겨 내야 할 위험과 이기와 모험은 아직도 많이 남아 있었다. 내 별자리 전갈자리는 모든 장애를 극복하고 장애 그 자체를 사랑한다」탄생부터 예사롭지 않았던 그녀의 삶의 모습은 어떠할까? 어렴풋이 예상해볼 수 있으리라.
정규적인 미술교육을 받은 적도 아니지만 수녀원 학교 시절 그리스 석고상들의 성기 부분에 빨간 무화과 잎사귀를 그려 넣었던 것만 봐도 보통 또래들과는 확연히 다른 사고를 가진 듯 하다. 열아홉이 되기도 전 유복한 가문 출신의 해리 매튜스와 결혼, 예쁜 딸아이를 출산하지만 그녀에게는 남모를 아픈 상처가 있다. 자신의 아버지로부터 어린 시절 성폭행을 당했던 것이다. 어느 누구에게도 발설하지 못한 채 그녀의 삶의 과정 내내 따라다닌 상처. 행복했지만 자신의 자아에 대한 강한 욕망으로 한번의 결혼생활을 마무리 짓고 그녀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주는 환상의 파트너 예술가 장 탱글리를 만나게 된다. 친구이자 동료로 서로의 일에 따뜻한 충고와 조언으로 모든 이들에게 인정받은 커플. 하지만 그 역시 젊은 여자와의 사랑으로 그녀에게 큰 상처를 안겨주게 된다. 이로 인해 우울증과 슬픔에 빠지지만 자제력을 잃지 않고 이를 예술로 승화하려고 거듭 노력하게 된다.
『나는 주어진 역할을 하고 싶지 않았다. 절대 그러고 싶지 않았다. 특히 내가 속한 계층의 여인들을 떠올리면, 몹시 불행한 무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들처럼 되고 싶지 않았다. 아궁이 불이나 지키는 여자, 집에서 여왕벌이 될 수는 있지만 그게 다인 존재는 되고 싶지 않았다』- p144
한정된 여자의 역할에 대한 이탈을 꿈꾸었던 그녀. 그래서였을까. 여성의 모습을 형상화한 시리즈물을 연이어 선보이고 많은 이들의 주목을 받는다. 그녀의 대표적인 작품인 나나 시리즈 중 하나인 「혼」은 만삭의 배를 한 채 바닥에 누워 다리를 벌리고는 질부를 통해 관객들을 맞아들인다. 석기시대부터 임산부와 출산하는 여성에 대한 묘사가 존재했음에도 일부에서는 그녀의 작품이 외설적이라 비판한다. 한편 책의 표지에도 실어있는 여성 조각상 나나도 화려한 꽃무늬의 문양과 색깔로 자유로운 여성상을 한껏 드러내 보인다. 절대적인 미의 가치 기준을 두지 않은 채 자신이 색깔을 펼쳐 보이는 듯. 그 시대에 드리워진 여성에 대한 편견과 굴레를 떨쳐버리려는 니키 드 생팔의 의도가 담겨 있다.
하나의 예술작품을 탄생시키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 공을 들이고 땀을 흘려야 하는지 언론들이 어떤 질문을 자신에게 쏟아낼지를 꿈속에서까지 만나 혼란스러워 하는 모습까지 우리 시대 예술가들의 힘든 노고의 단면이 엿보인다. 자신에게는 숨기고 싶은 상처까지도 조심스럽게 자신의 깊은 내면의 성찰을 느낄 수 있도록 이야기한다. 부조와 여성조각상에 이어 많은 이들의 주목을 받고 예술가로 인정을 받게 되면서 그녀는 실크 스크린 뿐만 아니라 영화제작에도 참여하며 자신이 끼와 역량을 마음껏 펼치게 된다. 왕성한 활동과 비례해 몸은 점차 쇠약해졌지만 위기의 순간에서도 예술작품에 대한 혼과 열정은 끊이지 않는다.
『니키와 같은 부류의 예술가들은 힘이 빠지거나 나이가 드는 법 없이 매일 발전하고
일하며 이미 만들어진 것에 조금씩 무엇을 덧붙이고 매일 자신을 쇄신시켜 나간다.』- p225
예술에 대한 자신만이 주관도 뚜렷하다. 관객들로부터 전적인 이해와 협조를 구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작품을 통해 예술가의 의도를 잘 파악하고 받아들일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책의 구절을 통해서도 드러나 있다.
『우리는 전능한 창조자가 되길 원치 않습니다. 관객들이 작품 앞에서 경외감에 눌려 뒤로 물러서고, 스스로 작아지는 것을 원하지 않아요. 우리는 사람들과 만나기 원하고 우리의 작품은 모두를 위해 존재합니다.』 - p 249
『우리 인간에 대해 생각할수록 한 가지 사실을 점점 확신하게 된다. 우리 안에는 모든 것이 들어 있다는 사실이다. 선함과 창조력, 어리석음, 악마와 신, 우리는 이 모든 것을 내부에 간직하면서 자신이 무엇이고, 무엇이 될 것인가를 선택하는 것이다』- p291
한 예술가의 파란만장한 삶의 과정을 통해 우리는 많은 깨달음을 얻을 수 있으리라. 험난한 삶의 굴곡을 견뎌내게 한 것은 다름 아닌 작품에 대한 열정과 끊임없는 쇄신 때문이 아니었을까. 한 시대의 획을 그은 투혼의 정열. 땀과 숭고한 노력의 결실이 후세에까지 길이 남아 오랜 영향을 주기를. 한편 그녀가 올곧은 예술가로 인정받기까지 옆에서 큰 지지대가 되어준 많은 동료들의 존재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예술가의 길은 멀고도 험하지만 그 보다 더 큰 위안은 관객들의 관심과 사랑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