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 움베르토 에코 마니아 컬렉션 15
움베르토 에코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은 내게 월든같은 책이다. 사놓고 읽기까지 걸린 시간이 긴만큼, 읽은 후에 잔존하는 영향력의 기간도 길다. 심지어 이 책을 세 번이나 사고팔았다. 첫 번째 판은 흰 바탕에 파란 글씨로 제목이 적힌 표지였고, 두 번째 판은 왠지 모르게 형광색계통의 그림이 그려진 표지였다. 내가 이번에 읽은 판의 표지는 아마도 가장 차분한 축에 드는 표지이다.(알라딘 도서 DB에는 없는 모양이다. 알라딘에서 샀는데.) 

 

 책을 읽다보면 화장실에서 심각한 표정을 하며 글을 읽는 작가의 표정이 생각난다. 왜인지는 잘 모르겠다. 장미의 이름같은 훌륭한 소설을 쓴 사람임에도 그런 장면이 생각난다. 심지어 글의 내용들도 재기가 넘친다. 대체로 세련되게 빈정거리거나 진지하게 상대방을 맥인다. ‘합리적인사람들이 싸질러놓은, 도무지 비합리적인 행동을 이리저리 이해해보다 비합리적인 부분을 찌른다.

 

 인상적인 부분이 많았지만, 그 중에 미술전시회의 도록에 서문을 쓰는 방법이라는 에세이를 보자. 나는 이 글을 미술 비평이 보여주곤 하는 애매모호함에 대한 묘사로 읽었다. 이 글에서 움베르트 에코는 미술도록의 서문에 쓰이는 시인, 서한, 학문종사자의 글들을 재현한다.

 

다채로운 블랙홀 탓에 / 몸살을 앓는 우주, / 그것의 긴 선형 자취. / 화살처럼(, 잔인한 제논이여!) 비상하는 / 또 하나의 투창

 

친애하는 프로슈티니, 당신이 그린 삼각형들을 볼 때마다 나는 우크바르에 가 있곤 합니다. 그것을 증언해줄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호르헤 루이스입니다. ... 피에르 메나르라는 사람은 시대를 달리하여 당신을 이컬어 라만차의 돈키호테가 아니라 라만차의 돈피타고라스라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 ”

 

프로슈티니의 삼각형은 그래프이자 구체적인 위상을 지닌 명제함수이며 교차점이다. 한 교차점 U에서 다른 교차점으로 건너가려면 어떻게 해야하는가? ... ”

 

이 글의 마지막에서 움베르트 에코가 말한다.

 

그러고 보면 실행가능성과 효율성이라는 기준 말고도 서문 집필자가 염두해야할 기준이 하나 더 있는 셈이다. 다음과 같은 도덕성의 기준이 바로 그것이다.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고 방식은 여러 가지이지만, 중요한 것은 진실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고선 자신이 적은 서문을 부록으로 싣는다. 그건 각자가 보는 게 더 좋을 것이다.

 

 약 30년 전쯤 에코가 장난스럽게 말했던 것들 중에는 현재에도 유효한 이야기들이 많다. 여기에서 그 모든 것들을 적기에는 너무 귀찮다. 이 리뷰에서는 다만 여전히 웃으면서 화내고 싶게 만드는 바보들이 여전히 많다고 느꼈음을 남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인슈타인이 괴델과 함께 걸을 때 - 사고의 첨단을 찾아 떠나는 여행
짐 홀트 지음, 노태복 옮김 / 소소의책 / 2020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영감을 주는 책이다. '영감'같은 단어를 싫어하는 편인, 생각해보니 실제로 그랬다. 무한대와 무한소에 관한 이야기, ‘국소성’, 크립키가 나오는 진리와 지칭의 문제를 읽다보면 여러가지 생각이 들게되는 것이다. 잠재적 무한과 실체적 무한이라는 개념, 사유와 물리계를 잊는 무한소라는 개념, 혹은 크기가 있는 무한대와 두 물리적 대상이 인과관계가 있기 위해서는 어느 한 부분이 접촉해야한다는 국소성, 양자역학에서 차지하는 국소성 개념의 역할, 그리고 크립키가 만든 개념이 크립키 그 자신을 향해 논란을 일으키는 광경들을 지켜보는 가운데 어떤 삶의 아이러니까지 느낄 수 있었다.

 

 괴델의 일화(‘괴델이 미국의 헌법을 문제 삼다’)는 지식인이 현실적인 문제를 대하는 방식 중 하나를 보여줬다. 해리 프랑크푸르트의 개소리논란은 철학 저작이 사회에서 이슈가 되는 과정을 보여줬고, 문학작가로서 무한대를 연구했던 데이비드 포스터 월러스와 스티븐 핑거, 사이먼 크리츨리에 대한 언급들을 보면서 동시대의 지식인들을 도외시하지 않는다는 인상을 받았다.


 워낙 담긴 내용이 많은 책이기에 어떤 기억으로 남기고 싶은지 고민해봤다. 역시 지적 신뢰성이 가장 인상 깊었다. 이 책에서, 그리고 이 글의 저자로부터 꼭 닮고 싶은 부분이라면 역시 지적 신뢰성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물리학 이론은, 특히 내게는, 일종의 콤플렉스이다. 철학을 전공했던 때에도 그랬다. 특히 내 경험상 현대영미철학은 과학의 발전을 절대로 도외시하지 않는다. 개념을 삶의 맥락으로의 접합하는 데에 있어서는 어떤지 잘 모르겠지만, 특히 미국의 아카데믹 철학은 개념과 논증의 싸움이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과학적 성과물들을 자주 이용한다. 뇌과학, 물리학, 수학 등 이용하는 분야도 다양하다. 그리고 짐 홀트씨는 이 부분들을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자신의 방식으로 담론을 구성하며, 필요하다면 당사자들에게 연락하는 것 또한 과감히 시도한다. 내용들을 잘 소화하면서, 전달하고, 또 신뢰성 또한 잃지 않는다.

 

마이클 폴란의 주말 집짓기와는 조금 다른 느낌의 글이기도 했다. 마이클 폴란이 자신의 지식들을 체화하는 과정을 담았다면, 짐 홀트는 자신의 지식들을 그려보는 과정을 담았다고 볼 수도 있겠다. 무엇이 더 낫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려진 청사진이 아주 근사했다.

 

 나의 경우는 모르는 것을 에이, 일단 지나가보자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지식 수집의 용도로 책을 읽지는 않기 때문이다(그럼 왜 읽는건지...?). 다만 재밌고 싶다. 영감을 얻고, 생각에 빠지고 싶다. 그게 큰 것 같다. 그러니 나로서는 알고 싶은 부분을 알 수 있도록 설명하면서학자들의 삶 또한 놓치지 않으며이 모든 것들에서 오는 어떤 종류의 아이러니와 감정들 또한 세련되게 그려낸 이 글이 줬던 생각들을 기억하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블랙홀
찰스 번즈 지음, 박중서 옮김 / arte(아르테) / 2016년 3월
평점 :
절판


 서점을 발견하면 자동적으로 빨려 들어가던 시기가 있었다. 불광역을 향하다 전원적인 느낌의 작은 북카페를 발견했을 때도 그랬다. 나는 연역적으로 카페를 방문했다.

 

 책장에 책이 아주 많지는 않았다(책장 자체가 작은 것 하나밖에 없었다). 다만 책장에는 내용이 있어 보였다. 환경문제, 사회문제, 예술 서적들, 몇몇 문학 작품들. 그리고 이 책장에 블랙홀』이 있었. 북카페를 나오며 이 책을 알라딘 어플 장바구니에 저장했다. 며칠 후 이 책을 주문했을 때에 망설임 같은 건 없었다.

 

 일단 그림체가 노골적이고 역겹다. 사람들의 음영은 톱살모양으로 표현되는 데, 작가들이 벌레들을 그릴 때 쓰는 방식과도 같았다. 남자 성기, 여자의 가슴, 뼈, 벗겨진 피부 따위가 등장한다. 게다가 블랙홀이라는 메타포가 훌륭했다. 이 작품에서 블랙홀은 한 방울의 타액만 묻어도 전염되는 병이다. 병에 걸리면 몸 한 부분에 심연이 생기는데, 증상은 제각각이다. 어떤 케릭터는 피부 껍질이 벗겨지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꼬리가 생기기도 한다. 병에 걸리면 분명히 외면으로 드러나서, 이 질병에 걸린 사람들은 사람들로부터 괄시와 혐오를 받는다.

 

 재밌는 건, 10대들의 일상이 블랙홀이라는 상징 속에서 어떤 이질감도 없이 잘 녹아든다는 것이다. 블랙홀이 갖는 의미가 뭐길래 이게 가능할까 생각해보니, ‘블랙홀’은 무한소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과 연루되면 대상들은 곧 0에 가깝게 소멸한다. 0이 아니라는 사실이 중요할지도 모른다. ‘가 되는 일은 자신의 의지가 없으면 어려운 일이기에 사람들은 '비루한' 생존을 이어간다. 게다가 블랙홀에 대해, 이것의 발생원인도 모르고, 이것을 더 이상 없앨 수도 없기에, 당사자들은 곤란함을 느낀다. 

 

 이렇게 보면 결국 이 책은 훼손으로 잠식되며 사라져가는 사람들이 맺는 관계들에 대해 다룬다.(그렇지 않은 사람이 없다고 가정하면, 굉장히 강력한 상징이 된다.) 이들은 정상인들로부터 멸시를 받지만, 역시나 사랑하고 사랑 받는다. 때론 정상인을 만나 위로 받기도 하고, 때론 같은 종류의 사람을 만나 같은 상실을 나누기도 한다. 그 어떤 관계에서든 불안이 만들어지지만, 그 불안이 여름 해변의 모래 같은 온기와 시간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이런 과정을 지나면서 결국, 그들은 살아남아 다른 세계로 향한다. 이 작품의 세계관에서는 이렇게 말할 수도 있겠다. “블랙홀을 지니게 되자, 시간이 시작되었다.”

 

 그런데, 나의 블랙홀은 어떤 모양일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마이클 폴란의 주말 집짓기 - 한 칸짜리 작은 집을 지으며 건축의 세계를 탐구하다
마이클 폴란 지음, 배경린 옮김, 나기운 감수 / 펜연필독약 / 2016년 5월
평점 :
품절


이 책은 공짜로 얻은 책이다. 어느 날 펜연필독약의 운영자분께서 SNS로 이 책의 파본을 나눠준다는 피드를 올리셨다. 좋아요 클릭, 빠른 댓글 완료. 그러고 나니 얼마 후 정말로 책이 도착했다.

 

이런 식으로 책을 받으면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할 지 잘 모르겠다. 나는 그 분께 천천히 읽어보겠다고 먼저 말씀을 드렸던 것 같다. 공짜로 얻은 책이기에 당연히 칭찬하고 싶지는 않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2~3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정말로 천천히 이 글을 읽었다. 너무 무거운 철학책을 읽고 싶지는 않았고, 너무 가벼운 그래픽 노블을 더 읽기에는 애매한 시점이었다. 에세이를 찾아볼까, 하고 책장을 보니 스타인웨이 만들기라는 책 옆에 이 책이 놓여있었다. 그러니까, 나는 공짜로 얻은 책이라서 괜히 좋은 점들을 말하려는 게 아니라는 것을 말하고 있다.

 

사변이 공허할 때가 있다. ‘아니 들뢰즈를 읽어서 어디에 쓴담. 소화하는 것조차 쉽지 않은데.’ 이런 생각이 드는 건, 이런 생각 자체가 어렵기도 하지만, 이런 생각을 적용하여 전달하고자 하는 건 더 어렵기 때문이다. 이런 시도에서는 대체로 이론이 지나치다.

 

마이클 폴란은 자신만의 서재를 갖고 싶었다. 그건 건축가 찰리와의 대화에서 우연히 나온 생각이었는데, 그 우연한 생각을 마이클 폴란은 곧 현실화하기로 한다. 그 과정에서 드는 사소한 궁금점들과 사상적 맥락을 사색한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가 자신이 지은 집에서 사색했듯이.

 

도면 작업, 골조 작업, 기둥 작업, 지붕 작업, 마감처리까지. 기둥을 위한 나무를 깎을 때 끌을 쓰는 이유와 끌의 구조, 넓은 창문을 왜 그토록 모더니스트 건축가들이 추구했는지 분만 아니라 각 자재의 부분마다 세분화된 명칭들, 그것을 잇는 작업들까지도 체험적으로 묘사된다. 나아가 목수와 건축가의 기싸움이나, 자재의 가격처럼 현실적인문제들도 언급하고, 그 자신이 목수의 작업들에 익숙해져가는 성장적 요소들 역시 글을 채운다.

 

이런 내용들을 단지 나열만 했다면 재미가 없었을텐데, 마이클 폴란 자신이 떠올린 사소한 질문들을 놓치지 않았기에 솔직함이 묻어나온다. 너무 솔직해서 주절주절 자기 이야기만 하느냐, 하면 당연히 그런 것도 아니다. 각 소챕터들은 최대 6장이 넘어가지 않는다. 개인적으로 마지막 장면이 무척 인상 깊었다. 집의 마감작업까지 대체로 마친 후, 아내와 아들이 찾아온다. 집을 짓기로 했을 때 갓난 아기였던 아이가, 2년이 지나 조금 걸을 수 있을 정도로 자라있었다.

 

장난감 배와 동화책 한 권을 들고 왔는데, 그것들을 빈 책장 위에 턱 올려놓고는 아내의 손을 잡고 본채로 돌아갔다. 아이삭(아이의 이름)이 집들이 선물로 이 물건들을 가지고 온 것인지, 새로운 공간에 자기 영역 표시를 함으로써 다시 돌아올 수 있는 빌미를 마련한 것인지 알쏭달쏭 했다.”


Essay(에세이)라는 말은 Esse, 시도라는 프랑스어에서 왔다고 마이클 폴란은 설명한다. 그는 건축의 체험을 시도했고, 사유의 체험을 시도했다. 우리가 노동에서 어떤 견실함을 발견할 수 있다면, 그는 몸과 마음으로 정겨운 견실함을 만들어냈다.

 

+추가로, 책 자체의 짜임새도 좋다. 번역도 어색한 부분이 거의 없었고, 표지와 내지도 예쁘게 디자인 되었다. 책의 크기도 책의 내용처럼 캐쥬얼한 크기였다. 마지막엔 용어에 대한 설명적 그림도 약간 추가되어있어 재밌게 볼 수 있었다. 짜임새 있는 책이 주는 만족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사랑시 100선 - 소중한 사람과 함께 읽는
윌리엄 B. 예이츠 외 지음, 김옥림 옮김 / 미래북 / 2013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뛰어남과 소중함이 항상 같지는 않다. 그래서 몰스킨 다이어리는 애초에 사지도 않는다. 컴팩트한 디자인과 헤밍웨이같은 사람들이 즐겨 사용했다는 이야기조차도 내가 이걸 즐겨 쓰지는 않을 거라는 예상을 바꾸지 못한다. 뛰어나서 즐겨 쓰게 되는 게 있는 반면, 뛰어나도 정을 못 붙이는 물건들도 있는 것 같다. 뛰어나서 즐겨 쓰는 것들은 3일을 못가고, 뛰어나도 정을 못 붙이는 물건들은 결국 소중하지 않다

나는 H에게 읽어 줄 요량으로 사랑시 100(소중한 사람과 함께하는)이라는 책을 산적이 있다. 매일 H가 잠들기 전 화상통화로 이 책의 시 두 세편을 음독한다. 어눌한 발음이 갑작스레 선명해지다, 다시 어눌한 발음으로 돌아온 것을 자각하면서 읽는다. H가 한국어로 된 시의 의미들을 잘 따라오고 있는지를 살펴보는 일도 중요하다. 너무 짧다고 느끼면, 시 한편을 더 읽자고 생각한다. 시 두편 쯤을 읽을 때 쯤 하나의 눈이 감기고, 호흡이 공기가 되는 H의 모습을 본다. 그럴 땐 멈추고 H에게 잘 거냐고 물어본다. 그리고 H는 잠에 든다.

 

 이책에도 당연히 어색한 번역도 있다. 어떤 시는 시라기엔 너무 짧고 일상적이라 인용문을 적어둔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삽화들도 무척 감성적이라, 내가 읽기에는 조금 유치한 건 아닌가도 싶다.

 한편으로 꽤 뛰어나기도 하다. H에게 읽어 줄 사랑시 선집을 찾다보면, 내용이 지나치게 추상적이거나, 단어가 너무 어려운 책들이 많다. 게다가 현대의 시들은 대체로 좀 어두운 느낌이 든다. 이 책은 그런 의미에서 대중적이다. 밝고 어두운 면 모두를 가진 한 사람에게 들려주기에 충분히 훌륭한 시집이다.

 이 모든 것을 떠나, 이 책은 뛰어남같은 평가를 벗어나 소중함의 영역으로 들어오고 있다. 묵직한 인문학 고전들 사이에 이 책이 당당히 꽂히고, 우리가 한 공간에서 그 책을 수시로 꺼내보는 그런 순간들을 그려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