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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인슈타인이 괴델과 함께 걸을 때 - 사고의 첨단을 찾아 떠나는 여행
짐 홀트 지음, 노태복 옮김 / 소소의책 / 2020년 5월
평점 :
영감을 주는 책이다. '영감'같은 단어를 싫어하는 편인데, 생각해보니 실제로 그랬다. 무한대와 무한소에 관한 이야기, ‘국소성’, 크립키가 나오는 진리와 지칭의 문제를 읽다보면 여러가지 생각이 들게되는 것이다. 잠재적 무한과 실체적 무한이라는 개념, 사유와 물리계를 잊는 무한소라는 개념, 혹은 크기가 있는 무한대와 두 물리적 대상이 인과관계가 있기 위해서는 어느 한 부분이 접촉해야한다는 국소성, 양자역학에서 차지하는 국소성 개념의 역할, 그리고 크립키가 만든 개념이 크립키 그 자신을 향해 논란을 일으키는 광경들을 지켜보는 가운데 어떤 삶의 아이러니까지 느낄 수 있었다.
괴델의 일화(‘괴델이 미국의 헌법을 문제 삼다’)는 지식인이 현실적인 문제를 대하는 방식 중 하나를 보여줬다. 해리 프랑크푸르트의 ‘개소리’ 논란은 철학 저작이 사회에서 이슈가 되는 과정을 보여줬고, 문학작가로서 무한대를 연구했던 데이비드 포스터 월러스와 스티븐 핑거, 사이먼 크리츨리에 대한 언급들을 보면서 동시대의 지식인들을 도외시하지 않는다는 인상을 받았다.
워낙 담긴 내용이 많은 책이기에 어떤 기억으로 남기고 싶은지 고민해봤다. 역시 지적 신뢰성이 가장 인상 깊었다. 이 책에서, 그리고 이 글의 저자로부터 꼭 닮고 싶은 부분이라면 역시 지적 신뢰성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물리학 이론은, 특히 내게는, 일종의 콤플렉스이다. 철학을 전공했던 때에도 그랬다. 특히 내 경험상 현대영미철학은 과학의 발전을 절대로 도외시하지 않는다. 개념을 삶의 맥락으로의 접합하는 데에 있어서는 어떤지 잘 모르겠지만, 특히 미국의 아카데믹 철학은 개념과 논증의 싸움이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과학적 성과물들을 자주 이용한다. 뇌과학, 물리학, 수학 등 이용하는 분야도 다양하다. 그리고 짐 홀트씨는 이 부분들을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자신의 방식으로 담론을 구성하며, 필요하다면 당사자들에게 연락하는 것 또한 과감히 시도한다. 내용들을 잘 소화하면서, 전달하고, 또 신뢰성 또한 잃지 않는다.
『마이클 폴란의 주말 집짓기』와는 조금 다른 느낌의 글이기도 했다. 마이클 폴란이 자신의 지식들을 체화하는 과정을 담았다면, 짐 홀트는 자신의 지식들을 그려보는 과정을 담았다고 볼 수도 있겠다. 무엇이 더 낫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려진 청사진이 아주 근사했다.
나의 경우는 모르는 것을 “에이, 일단 지나가보자”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지식 수집의 용도로 책을 읽지는 않기 때문이다(그럼 왜 읽는건지...?). 다만 재밌고 싶다. 영감을 얻고, 생각에 빠지고 싶다. 그게 큰 것 같다. 그러니 나로서는 알고 싶은 부분을 알 수 있도록 설명하면서, 학자들의 삶 또한 놓치지 않으며, 이 모든 것들에서 오는 어떤 종류의 아이러니와 감정들 또한 세련되게 그려낸 이 글이 줬던 생각들을 기억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