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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시 100선 - 소중한 사람과 함께 읽는
윌리엄 B. 예이츠 외 지음, 김옥림 옮김 / 미래북 / 2013년 11월
평점 :
뛰어남과 소중함이 항상 같지는 않다. 그래서 몰스킨 다이어리는 애초에 사지도 않는다. 컴팩트한 디자인과 헤밍웨이같은 사람들이 즐겨 사용했다는 이야기조차도 내가 이걸 즐겨 쓰지는 않을 거라는 예상을 바꾸지 못한다. 뛰어나서 즐겨 쓰게 되는 게 있는 반면, 뛰어나도 정을 못 붙이는 물건들도 있는 것 같다. 뛰어나서 즐겨 쓰는 것들은 3일을 못가고, 뛰어나도 정을 못 붙이는 물건들은 결국 소중하지 않다.
나는 H에게 읽어 줄 요량으로 『사랑시 100선(소중한 사람과 함께하는)』이라는 책을 산적이 있다. 매일 H가 잠들기 전 화상통화로 이 책의 시 두 세편을 음독한다. 어눌한 발음이 갑작스레 선명해지다, 다시 어눌한 발음으로 돌아온 것을 자각하면서 읽는다. H가 한국어로 된 시의 의미들을 잘 따라오고 있는지를 살펴보는 일도 중요하다. 너무 짧다고 느끼면, 시 한편을 더 읽자고 생각한다. 시 두편 쯤을 읽을 때 쯤 하나의 눈이 감기고, 호흡이 공기가 되는 H의 모습을 본다. 그럴 땐 멈추고 H에게 잘 거냐고 물어본다. 그리고 H는 잠에 든다.
이책에도 당연히 어색한 번역도 있다. 어떤 시는 시라기엔 너무 짧고 일상적이라 인용문을 적어둔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삽화들도 무척 ‘감성적’이라, 내가 읽기에는 조금 유치한 건 아닌가도 싶다.
한편으로 꽤 뛰어나기도 하다. H에게 읽어 줄 사랑시 선집을 찾다보면, 내용이 지나치게 추상적이거나, 단어가 너무 어려운 책들이 많다. 게다가 현대의 시들은 대체로 좀 어두운 느낌이 든다. 이 책은 그런 의미에서 ‘대중적’이다. 밝고 어두운 면 모두를 가진 한 사람에게 들려주기에 충분히 훌륭한 시집이다.
이 모든 것을 떠나, 이 책은 ‘뛰어남’같은 평가를 벗어나 ‘소중함’의 영역으로 들어오고 있다. 묵직한 인문학 고전들 사이에 이 책이 당당히 꽂히고, 우리가 한 공간에서 그 책을 수시로 꺼내보는 그런 순간들을 그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