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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물의 기억 ㅣ 사계절 민주인권그림책
최경식.오소리.홍지혜 지음 / 사계절 / 2024년 10월
평점 :
기억의 힘은 세다.
기록의 힘은 칼보다 세다.
몸으로 새겨진 기억은 뇌에 새겨져 이어진다.

1987년 신년벽두에 사람들의 머리를 강타한 말은 이것이었을지 모릅니다.
"책상을 탁!치니까 억!하고 죽었다."
1987년 1월 14일 서울대학생 박종철군의 고문치사 사건에 당시 치안본부장 강민창이 사망원인에 대해 정식 사인으로 언론에 발표된 말입니다.
사람들에게 꽁꽁 가려져있던 남영동 대공분실이 사람들 눈앞에 드러나던 순간입니다.
그 당시 민주화운동을 하던 정치인, 학생, 지식인,민간인들이 간첩의 누명을 쓰고 끌려가서 고문을 당하던 곳이었지요.
박종철군의 고문치사 사건으로 인해 사람들의 민주화열망은 불타올랐고 6.10 민주항쟁으로 이어져 전두환 정부의 독재를 끝내고 6.29 선언, 대통령제 직선제를 이끌어냅니다.
그 비극의 현장 무대였던 남영동 대공분실의 이야기를 다룬 그림책이 나왔습니다.
최경식,오소리, 홍지혜작가 세 명 각각의 색채와 목소리를 담아, 건축물 이야기/ 그 속에 일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고문피해자의 이야기 를 각각 담아냅니다.
책장을 넘기며 세 분 작가가 전해주는 이야기와 실질적인 건축물의 형태가 엮어 소름이 끼치고 맘이 먹먹해졌습니다. 건축을 전공했던 사람으로서 이 건축물이 얼마나 정교하게 피해자들을 얽어매고 심리를 자극하고 사람을 끝까지 몰아대는지 너무나 와닿았기 때문이에요.
그리고 그 속에서 대공수사관으로 일하는 사람들의 목소리와 행동.
국가 안보를 위해 빨갱이를 가려내고 색출한다는 신념에 가득찬 사람들.
자신들의 직무에 너무나 충실하고 자부심마져 느꼈던 그들의 목소리에 한나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을 느꼈다고 할까요.
책은 최경식 작가의 목소리로 시작합니다.
건축을 전공했던 작가답게 연필선으로 치밀하게 남영동 대공분실의 모습을 건축 입면도, 투시도를 그려내듯 담담하게 보여줍니다.

건물 바로 옆에 남영역사가 있습니다.
담장 하나를 두고 평온하게 출근과 퇴근, 일상을 살아가는 이와
이 건물 두터운 담장안에는 밤잠을 재우지않고 육체 고문과 전기고문, 물고문까지 정신과 육체를 망가뜨리는 견고한 벽돌로 한 장, 한 장 세운 성채같은 건물이 세워져 있습니다.
일반 대중에게는 '국제해양연구소'라고 불렸던 곳이었지요.
얼마나 귀한? 희귀한 것을 연구하는 곳이기에 육중한 철문과 높다란 담으로 보호받던 그 곳.
왜 이런 것이 필요했을까요?
“그 소리를 들으면, 소름이 돋았어요. 눈앞에 껌껌한 채로 엎드려 있는데 차는 멈추고 어디서 탱크 소리가 들린다고 생각해봐요. 극도의 공포감을 느끼는 거지. 혹시 군부대로 끌려온 건 아닐까, 무섭고…” 고문피해자 유동우.
피해자의 증언을 통해 이 철문이 하는 역할을 미루어짐작해볼 수 있습니다.
건물 뒤편 쪽문이 있습니다.
눈은 안대에 가려졌거나 머리에 검정 주머니를 뒤집어 씌워진 채 연행된 피해자들은 이 쪽문을 통해 건물로 들어섰습니다.

피해자들은 5층에 오르기까지 안대를 하고 계단참도 없이 계속 비틀거리며 공포심에 시달리며 원형계단을 올라야했지요. 자칫 발을 헛디뎌 넘어지기도 비틀거리기도 하며 끝도 없는 공포감에 시달려야했을거에요.
그리고 이런 경험을 계속 하다보면 방향감도 위아래구분하는 감각도 잃게 됩니다.

그렇게 들어선 그 곳은 끝도 없는 똑같은 색깔과 모양의 문이 이어지는 길다란 복도.
혹여 그 방에서 탈출하더라도 어디로 가야할지...알 수 없는 상황이 이어집니다.
고문 과 취조에 최적화된 공간.
여기서 종사하는 사람들은 또 자신의 신념에 충실한 사람들입니다.
이 몽상가들!
이건 아주 지독한 전염병이야.
꿈을 깨뜨리고 현실을 깨우쳐 줘야지.
다 국가를 위한 일이야.
우리가 치료를 해야 해.
우리가 안 한다고 해도 다른 사람이 할걸.
누군가 해야 할 일을 기꺼이 할 뿐이야.
우리는 나라를 위해 희생하는 거야.
그렇게 그들은 고문을 하고, 사람을 취조하고, 잠을 재우지 않고
물에 쳐넣고, 물을 끼얹고, 전기 고문을 하고...
자신의 일을 일종의 예술로 바라보며 자랑스러워했습니다.

서울대 3학년 박종철군이 잡혀온 지 하루만에 물고문에 숨을 쉬지 않는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조사실에 욕조가?
조사받는 과정에 침대에서 잠을 자고 욕조에서 몸을 씻고 쉴 때 쉬라는 건가?
모든 것이 정교하게 조정되고 만들어진 이 곳.
자해를 막기위해 조명장치에 철제 커버를 씌우고
조사받고 자술서를 쓰기 위한 책상과 의자는 고정되어 있고
사람이 들어가 누울 수 없는 욕조.
“처음에 욕조를 봤을 땐 ‘저기서 목욕이라도 하라는 건가’ 싶었죠. 고개를 쳐 박히고 나서야 그게 물고문 도구였다는 걸 알았지요.” 고문피해자 최연석

홍지혜 작가가 보여주는 피해자의 이야기는 너무나 처절합니다.
건축물 청사진에서 보이는 듯한 블루빛 그림은 너무나 처연해서, 더욱 가슴을 아프게 합니다.
전기 고문이 일어나고 물고문이 자행되고
사람의 몸과 정신이 부서지는 순간
그 현장의 수사관들의 일상은 이어집니다.
누군가의 아들, 딸이 쓰러진 옆에서 그렇게 자식 걱정을 합니다.
네.
눈앞의 피해자들은 빨갱이니까요.
세상에서 없어져야할, 정신개조시켜야할 병든 물고기 같은 존재들

역사의 시간이 한 켜, 한 켜 쌓여가며...
이 건축물은 무엇을 우리에게 말하고 있을까요?
흙을 빚어 고온에서 구워낸 단단한 벽돌,
벽돌 벽을 쌓을 때면 한 켜, 한 켜, 쌓아갈 때마다 기준선에 정신을 바짝 차리고 벽돌을 올려야합니다.
한 장이 비뚜러지게 기준선 밖을 나가면 그 건물의 외벽은 마치 구겨진 종잇장처럼 어긋나게 되거든요.
지금 이 시간 역사의 시간 속에 한 발, 한 발 걸어나가는 우리에게 전해주는 이야기일까요.
이 건물이 버텨온 저 벽돌벽에는 이 건물안에 스러져간, 수많은 민주시민들의 피와 눈물이, 민주화에 대한 열망이 담겨 있습니다.
이 책에 대해 개인적인 감상보다 그저 이 건물이 전하는 이야기를 좀더 더해서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무어라 말을 더할 수 없었습니다.
그저 책과 건축물의 이야기, 그것만으로도 온몸을 두들겨맞는 것처럼 아프고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이 참혹한 시기에 민주그림책을 펴내신 사계절출판사와 작가님들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