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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동 투구를 쓴 소년 ㅣ 온그림책 18
소윤경 지음 / 봄볕 / 2024년 7월
평점 :

정말 오랜만에 가슴 울렁거림을 느끼게 하는 그림책을 만났어요.
역시 소윤경 작가님 이라는 생각과
이 책은 어린이, 성인 독자 층을 나누지 않고 이 책을 만나는 모든 이에게 사랑받겠구나 하는 맘이 들었습니다.

겉싸개를 벗기면 저렇게 청동 투구의 모습이 전면에 드러납니다.
이 책의 시작이 바캉스 프로젝트 '국립 중앙 박물관 유물 프로젝트' <청동 투구>에서 시작했음을 보여주는 각인이랄까요.
이야기는 특이하게 청동 투구의 시점에서 시작합니다.

2600년 전 그리스에서 불 속에서 삶을 얻는 청동 투구는 자신의 주인을 용감한 병사로 변모시킵니다.
그런 청동 투구의 숙명이랄까요.
수많은 생명을 빼앗고 죽는 인간들의 참혹한 전쟁터에 함께 하게 되지요.
그리고 이야기는 새롭게 시작됩니다.
2600년의 세월 동안 청동 투구가 만나게 된 두 청년의 이야기를 들려주지요.

2400여년의 세월을 사이에 두고 달리는 두 청년의 모습이 교차됩니다.
이 두사람은 무엇을 위해 저렇게 달리고 달리는 것일까요.

기원전 460년 그리스
태양이 불타는 마라톤 벌판, 한 청년 병사가 먹지도 마시지도 않고 달려갑니다.
40여 킬로미터를 달려 아테네에 도착한 청년은 승리를 전하고 죽음을 맞이합니다.
그가 목숨과 바꾼 승리의 소식은 단순한 승전보가 아닌, 수많은 이의 목숨을 구함이었지요.
그리스 도시 국가인 아테네가 거대한 대제국 페르시아와 맞서 죽음을 각오하고 싸워 이긴 페르시아 전쟁의 승전보.
그 당시의 전쟁의 승패는 패전국 국가의 병사는 대학살을, 패전국 백성은 학살과 노예로 비참한 삶을 이어가는 결과로 이어지기에 그 무엇보다 기쁜 소식이었지요.
어쩌면 역사가 이 그림책의 스포일까요?

식민지 조국에서
가난과 차별 속에서도 꿈을 키워온 한 청년이
그렇게 달리고 달려...
1936년 독일 베를린 올림픽 스타디움 피니시 라인을 끊습니다.

올림픽 최고의 명예, 마라톤의 우승을 하고도 고개를 푹 숙이고 들어오는 손기정 선수와
시상대에 올라서도 죄 지은 마냥 고개를 떨군 또 한 명의 영웅 남승룡.
머리에 월계관을 쓴 우승자 손기정이 부상으로 받은 묘목화분으로 가슴을 가린 이 장면은 1936년 8월 25일자 동아일보의 [일장기 말소 사건]으로 이어집니다.
올림픽 마라톤 우승자에 선물로 주어지기로 했던 청동 투구는
이 슬픈 우승자를 만나지 못합니다.
베를린의 한 박물관에서 전시되며 진짜 주인을 50년을 기다리게 되지요.
2600년의 세월을 사이에 두고
기원전 460년전의 그리스의 청년 병사 페이디피데스
1936년 식민지의 울분을 담고 달렸던 청년 손기정.
그리고
2600년전 생명을 얻어 전쟁터에서 삶과 죽음을 목격하다가
올림피아 깊은 땅속에 묻혀있다가
1875년 발굴되어 세상 빛을 다시 보게 되어
1936년 머나먼 동양의 식민지 청년에게 영광의 선물로 주어졌지만 잊혀져
베를린 한 박물관에서 50년간 주인을 기다리다가
1986년 대한민국이란 머나먼 나라에 오게 된 청동 투구.

이렇게 세 존재는 어떠한 인연으로 이어진 것일까요?
각각의 드라마틱한 이야기들, 두 청년의 삶을 이어 생각해보면 극적 서사에 가슴이 쿵쾅거리다가도 또 한편 가슴 시리게 아파오기도 합니다.
이런 삶과 이야기를 바라보는 소윤경 작가님의 시선과 색연필 선 하나, 하나 긋고 엮어 아름답고 슬프게 구현한 예술성에 감탄하게 됩니다.
이번 책 [청동 투구를 쓴 소년]이 많은 어린이 독자에게 가닿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