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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미노 in 상하이 도미노
온다 리쿠 지음, 최고은 옮김 / 비채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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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그럴 때가 있다. 그저 재미있는소설을 읽고 싶을 때, 진지하지 않고 가벼운 마음으로 한 장 한 장을 넘기는 데 큰 힘을 들이지 않고 싶을 때가 있다. 온다 리쿠의 소설 도미노 in 상하이는 그런 기분에 딱 들어맞는 소설이다.

이 소설은 이미 세상에 나온 소설 도미노의 중국판이지만 전작을 모르고 보아도 무방하다. 소설의 배경은 중국 상하이, 더 자세히는 외곽에 자리한 호텔 청룡반점이 중심이다. 미국에서 상하이로 현지 촬영을 온 영화팀, 영화감독이 불법으로 데려온 이구아나 다리오’, ‘청룡반점요리사, 풍수사, 범죄 조직, 경찰, 관광객, 배달 초밥집, 빚에 허덕이는 미술가, 그리고 동물원을 탈출하는 판다 강강과 그를 좇는 사육사 . 이 모든 등장인물들이 도미노 조각으로 작용하고, 저자는 이들을 다소 복잡하지만 흥미롭고 재치있게 줄 세운다. 누가 어디서부터 시작했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다.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나름대로 궁리하고 행동한 결과, 꼬리에 꼬리를 물 듯 서로에게 이어진다.

저자가 세세한 묘사를 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장면들이 눈에 선하게 그려지는 것은 왜일까. 빠른 장면전환 역시도 마치 영화를 보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생생한 속도감은 소설의 가볍고 우스꽝스러운 분위기를 배가시킨다. 죽은 다리오의 영혼을 달래기 위해 호텔 이곳저곳에 향을 피우는 장면이나, 강시와 좀비 분장을 좌우로 반반씩 한 풍수사를 따라 다리오의 성불을 위해 영화팀이 동분서주하는 장면은 특히나 그렇다. 그리고 판다 강강이 인간 못지않게 교묘한 수법을 부려 탈출을 감행하는 장면도 마찬가지다. 언제 찾아올지 모를 기회를 위해 사육사 몰래 트레이닝을 해왔다는 설정 역시도 웃음을 자아낸다(하지만 사실 강강이라는 인물이 가지는 의미는 마냥 웃어넘길 수 없기는 하다). 이렇게 말 그대로 난장판인 가운데 눈여겨볼 것은 저자가 인물들의 에 많은 무게를 두고 있다는 점이다. 인물들 대부분이 각자의 영역에서 탁월한 능력을 보이는 이들이라, 그들의 은 어딘가 께름칙한 것에 기민한 반응을 보인다. 그리고 그들은 그 을 따라줄 충분한 능력도 가진 터라 그 덕분에 소설 전반에 경쾌한 활극 같은 느낌이 감돈다. 곳곳에 긴장감이 서려 있기에 더더욱 영화 같은 분위기를 풍긴다. 독자 입장으로서는 읽는 행위에서 즐거움을 느낄 수밖에 없다.

사실 판타지에 가까운 이야기다. 세상 어딘가에 있을 법하지만 그 모든 것들이 동시에 난장을 벌일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특히 판다까지 동물원을 탈출할 경우가). 하지만 우리는 안다. 날마다 반복되는 지겨운 생활에는 이런 활기차고 경쾌한 이야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말이다. 아마 당신 앞에 놓인 이 도미노 조각들이 그 이야기를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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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맞은 자전거
우밍이 지음, 허유영 옮김 / 비채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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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이라는 말에 곧바로 따라붙는 단어는 ‘끝’이다. 많은 이들이 이 두 단어를 함께 생각한다. 글을 쓰는 이는 한 단어로 시작해 또 다른 단어로 끝을 맺는다. 그림 그리는 이는 거친 드로잉과 함께 시작하고 마지막 붓 터치 혹은 서명으로 작품을 끝낸다. 하지만 이 일련의 과정에 시작과 끝이라는 분명한 선을 그을 수 있을까? 탄생과 동시에 의미가 배태된다. 이 의미는 창작자에게서 향유자로, 그리고 또 다른 향유자에게서 또 다른 창작자로 연쇄되어 매 순간 새롭게 태어난다. 의미는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다른 모습으로 어딘가에 존재한다. 누군가의 머릿속에, 혹은 어떤 글 속에 있다. 대물림과도 같은 이러한 연쇄는 거창해 보이는 예술작품의 의미에만 해당되지 않는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만지는 물건과 어릴 때 수없이 반복해서 들었던 옛 이야기에도 마찬가지다. 우밍이吳明益의 묵직한 소설 『도둑맞은 자전거』가 품고 있는 씨앗도 바로 그것이다.

화자 청은 “내가 들려줄 이야기는 자전거에서 시작된다”(15)고 말하며 문을 연다. 그의 말은 헛되지 않다. 세대와 장소를 넘나드는 이야기의 중심에는 자전거가 있으니 말이다. 청은 수십 년 전 불현 듯 사라진 아버지의 흔적을 좇는다. 당시 아버지가 아끼던 자전거와 함께였다는 사실에 청은 집중한다. 그는 자전거를 추적하면 아버지의 실종에 대해 알 수 있으리라 희망한다. 우연과 운의 도움을 받는 청은 여러 사람을 거친다. 독자는 이 흐름을 그대로 타고 서사를 따라간다. 청에게서 청의 아버지로, 청의 아버지에게서 압바스에게로, 압바스에서 바쑤야에게로, 바쑤야에게서 무 분대장으로 이어지는 서사를 감싸는 것은 전쟁이다. 이들뿐만이 아니라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전쟁을 직간접적으로 겪었다. 저자는 그 역사적 흐름 가운데 뚜렷이 자리하는 자전거에 초점을 맞추는 동시에, 전쟁이 진영을 막론한 모든 이들에게 남긴 흔적에 고개 숙인다. ‘전쟁은 많은 것을 앗아간다’는 진부한 설명 대신, 그는 생생하고 날카로운 묘사를 선보임으로써 독자로 하여금 당시의 공기를 깊게 호흡하게 한다. 그 공기는 매캐한 연기를 품고 있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습기 가득한 밀림의 생명을 머금고 있다.

이 책에서 눈여겨볼 만한 점은 바로 동물이다. 전쟁에 희생된 것은 인간, 기술, 식량뿐만이 아니라 그러한 인간사와 전혀 무관하다 짐작되는 동물이기도 하다. 코끼리는 여러 인물을 한 데 묶는 또 다른 소재다. 전쟁에서 코끼리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 인간에 의해 희생되어야만 했던 코끼리가 생존을 위해 어떤 식으로 학습해야 했는지에 대해 저자는 사실적이면서도 동시에 초현실적으로 서술하고 있다(특히 후반부의 ‘림보’장이 아주 매력적이다). 코끼리에 대한 여러 사람의 기억은 이곳에서 저곳으로, 말과 말을 통해 이어진다. 코끼리의 이야기에 있어서도 시작과 끝이 어디에 있는지 우리는 여전히 알 수 없다.

주제가 주제인 만큼 무겁고 씁쓸한 소설이다. 하지만 저자는 이 이야기를 비극으로 끝맺지 않는다. 사라지지 않고 여전히 존재하는 것에 대해 기억하자고, 그는 그렇게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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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의 의식
미야베 미유키 지음, 홍은주 옮김 / 비채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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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기계 그리고 신에 대한 물음이 이어진다. 셋을 가르는 경계는 무엇이며, 그 선을 마주한 우리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미야베 미유키는 길고 짧은 여덟 편의 단편들에서 이 물음들을 내보인다. 글 대부분 서늘한 분위기를 풍긴다. 그래서 독자는 인위적인 희망과 따뜻함을 읽어내기 힘들다. 하지만 그렇기에 더욱 흥미롭다. 무엇이든 낙관적인 생각으로 덮어두는 대신 마주하고 부딪히며 미래를 바라보자고, 저자가 말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추리물로 유명한 작가인 듯한데, 부끄럽게도 나는 이 책을 통해 처음 만났다. 작가 역시 sf물을 펴낸 것은 처음이라고 한다. 그에게도, 나에게도 산뜻한 출발이지 않을까. 


여덟 편의 글 가운데 가장 좋았던 것은 <전투원>. 가장 흥미진진했던 것은 <성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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