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달리다
심윤경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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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긴 고기도 간장게장도 우적우적 잘 먹던 나에게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났다. 윗니 뒷쪽에 붙인 고정장치가 떨어져 철사가 계속 나를 찌르는거다. 하는수없이 급하게 경남 창원 고운치과에 몇년만에 다시 오게 되었다. 더 이상 연고가 없는 이곳. 창원에 말이다. 


4시간 고속버스를 타고 달려온 이곳에서 이빨안에 남아 있는 레진을 제거하고, 의외로 일찍 끝난 기쁨을 만끽하려고 주변을 돌아보다가 버거킹 옆에 새로 생긴, 적어도 3년전에는 없던 이탈리안 레스토랑에 들어갔다. 1인쉐프가 운영해서 음식이 늦게 나올 수 있다고 친절한 안내가 있는데, 12시를 막 넘은 이른 점심이라 그런지 마침 손님도 나 혼자였다. 고르곤졸라크림 스테이크 파스타와 클라우드를 주문했다. 예상치 못한 사치스러움을 즐기게 되었다. 따뜻한 레몬향 나는 물, 씨가 있는 진짜 올리브, 살짝 녹은 버터, 클라우드 맥주!!




게다가 벽에는 베네치아 처럼 보이는 그림이 있다. 당일치기로 치과에 교정체크 받으러 왔다가 먹는 점심 치고는 호사스러운 시간을 보냈다. 난 마치 맛집을 돌아다니는 파워브로거 마냥 스파게티를 먹었고 베네치아 어디 테라스에서 한낮에 맥주 마시는 예술가처럼 한 때를 즐겼다. 그리고 사랑이 달리다라는 재미있고 가벼운 소설을 읽었다.




삶은 불쑥 나타난 난제들이 당황스럽지만 그 숙제를 꾸역꾸역 해가는 과정에 예상치 못한 즐거움도 있다. 아니, 그렇게 만들며 살아가야 한다.




사랑이 달리다


이 책은 막장 드라마처럼 스펙타클하고 발칙한 대사들이 많다. 그리고 속도가 정말 빨라 손에 잡으면 술술 읽힌다. 하지만 작가분께는 아쉬운 일일지 몰라도 한류를 휩쓸 드라마가 될 일은 없을거 같다. 주인공 '혜나'의 의외로 성숙하고 따뜻한 감정을 독백처리 없이, 고급지게 연기할 만한 배우가 없는것 같기 때문이다. 있다면 연말 연기대상은 따놓은 당상이다.


혜나라는 주인공 여자를 둘러싼 가족들, 이혼후 젊은 여자와 재혼하고 신처럼 모시던 딸 혜나에게 더 이상 신용카드를 주지 않는 아빠. 이대 출신 인텔리지만 트럭운전사 아빠와 결혼했다가 이혼후 재산분할청구소송 하지 않는 고고한 엄마지만 멋쟁이 사채업자 박회장을 만나자 소녀처럼 귀여운 모습을 보이는 엄마의 따뜻함, 큰 오빠네, 작은오빠네, 공대생 남편 윤성민, 그리고 정욱연. 이들은 모두 혜나에게 시련을 주기도 하고 성장의 기회를 주기도 한다. 혜나는 이들 사이에서 철없고 양심없는 캐릭터로 시작하지만 시간이 지날 수록 자기 삶에 대해 맺고 끊으며 책임을 지는 캐릭터로 성장해 나간다. 혜나가 작은 오빠를 법원에 끌고가 구치소에 처넣고 이제 자기는 오창에 내려가 남편에게 빌어야겠다며 생각하는 부분은 정말 짜릿했다. 삶의 무게를 고스란히 책임지는 모습이랄까, 그게 좋든 싫든 말이다.


재미있게 잘 읽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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