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판사, 나쁜 판사
류기인 지음 / 펜타클 / 2026년 8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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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를 통해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후기입니다.

소중한 책 보내주셔서 감사합니다.


과거 한참 넷플릭스에서 유행했던 소년심판을 아주 흥미롭게 빠져들며 볼 때가 있었다. 촉법소년들을 아주 혐오하는 김혜수의 광적인 연기에 압도되어서 말이다. 공권력이 많이 무너져 학교 선생님들의 비극적인 뉴스를 많이 접하는데, 넷플릭스에서 방영 중인 '참교육'도 지금 우리 사회를 대변하고 있다. 선 넘는 학생과 학부모, 교사들로 인해 무너진 교육 현장을 바로잡기 위해 창설된 교권 보호국의 이야기를 담은 작품으로 완주하고 나니 소년재판이 상기됐다. 소년심판과 참교육의 공통점은 바로 소년재판이 나온다는 것이다.


소년재판을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은 사실 기준에 따라 달리 해석된다. 창원지방법원 소년부 부장판사인 류기인 판사가 착한 판사냐 나쁜 판사냐를 판단하게 되는 기준이 다르다. 창원지방법원은 전국에서 가장 많은 소년사건을 처리하는 곳으로 류기인 판사가 아닌 판사는 그저 단기간에 다들 그만두었을 것 같은 느낌이 왔다.


소년재판을 오래 하게 될 줄 몰랐던 류기인의 삶이 녹아져 있는 목차에는 저자의 삶 얘기와 아이들을 만나 재판한 이야기, 재판 그 이후의 아이들의 삶 이야기가 있다. 재판 이야기만 나오는 게 아니라 중간중간 류기인 판사의 삶 이야기도 나오니 더욱더 인간미 있게 느껴졌고, 판사복을 입은 모습뿐만이 아니라 그저 편안한 어른의 모습도 느껴졌다.


<착한 판사, 나쁜 판사>는 5년째 소년부 업무를 계속해서 이어 나가는 류기인 판사의 아이들을 만난 하루, 하루를 기록해 놓은 기록물로 저자의 삶까지 녹아있다. 그래서 더 잔잔한 마음으로 보게 되었다. 사실 나는 이러한 에세이를 읽으려 하지 않는다. 되도록이면 피하려고 했었다. 하지만 아이를 낳고 보니 이 세상에는 옳고 그름을 분명하게 해줄 어른이 바로 서야 아이도 있기에 <착한 판사, 나쁜 판사>를 통해 이 세상을 읽고 싶었고, 아이의 심리를 간파하고 읽어 내려는 류기인 판사의 시선을 따라가고 싶었다.


류기인 판사의 진심이 책 한 권으로 어찌 다 담길 수 있을까. 저자의 진심을 법정에 선 아이들이 10년 뒤, 20년 뒤 다시 떠올리며 감사하다는 말을 아마 전해 올릴 것 같다. 나의 아이를 파악하는 것도 쉽지 않은데 문제를 일으킨 아이들의 환경과 내면, 심리적인 상태, 법정 이후의 삶들까지 생각하며 한 아이의 인생 전체를 책임지려하는 모습이 그리고 판사의 옷 자체가 엄청난 무게의 갑옷처럼 느껴졌다.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말이 있는데 사실 지키기가 쉽지 않지만 류기인 판사는 이 말을 가슴에 새기고 사는 분 같았다.


판사로서 재판하는 일상이 아닌 인간 류기인으로 돌아와 일상을 사는 내용도 보인다. 그 내용 중에서도 나는 아내를 통해 독서모임에 참가하여 아이들도 독서 모임에 참여시킨 내용이 참 가슴에 남았다. 나 또한 미래에 우리 가족과 아이와 함께 해보고 싶은 것이었기 때문. 내가 읽은 문장을 상대방은 어떻게 느낄지, 그리고 나는 기억조차 나지 않는 책의 문장을 가슴에 깊이 새기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느끼는 바가 사람들마다 다르기에 바쁜 일상에 멋진 취미를 추가한 것 같아 마음이 훈훈해졌다.


그리고 아내의 화분을 분갈이를 함께 하는 모습이 담긴 내용이 있다. 읽으면서 나의 신랑이 생각이 났고, 묵묵히 그저 자리를 내어주는 판사의 아내분의 모습처럼 행동하고 싶어졌다. 독서모임 이후로 기억에 남는 장면이다.


소년재판을 받은 이후의 아이들은 보호가 가능한 환경이면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지만, 그렇지 못한 환경이라면 청소년회복 지원시설이나 소년원으로 가게 된다. 나는 무조건 죄의 크기가 무거우면 소년원으로 가는 줄 알았다. 내가 잘못 알고 있었던 사실이다. 형사재판과 소년재판은 저울의 영점이 다르다는 것부터 나의 과오를 깨달았다. 형사재판은 과거 죄에 향해있지만, 죄의 유무를 가리고 죄의 무게에 상응하는 형벌을 내리는 것이다. 하지만 소년재판의 보호 처분은 비행의 무게와 반드시 비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법적으로 가벼운 절도나 단순 사건이라 하더라도 집에 아이를 챙겨줄 어른이 없고 가정으로 돌려보내기 어렵다는 판단이 서게 되면 먹고 자고 배우는 시설이나 소년원에서 생활하게 해야 할 수도 있다. 아이가 저지를 행동만 보고 처분을 정하지 않고 행동을 한 이유와 반복될 위험의 유무, 또다시 같은 생활환경에 돌아갔을 때 아이를 잡아줄 어른이 있는지까지 함께 살피는 게 류기인 판사의 책임이었다.


읽으면서 걷기 학교와 시집을 아이들과 함께한 판사의 모든 행적들이 사랑이 아니고서야 감히 이렇게까지 할 수 있을까 싶다. 아이들을 사랑하기에 막중한 책임감을 가지고 판사복을 입고 있는 것이겠지. 법정에 선 아이들이 앞으로 사회에 나와 평범한 경험을 안고 사는 사람들보다 더 잘 돼서 더 좋은 영향을 사회에 끼쳐주면 너무나 좋겠다. 그렇게 될 수 있는 희망을 <착한 판사, 나쁜 판사>에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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