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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월의 보름
R. C. 셰리프 지음, 백지민 옮김 / 다산책방 / 2025년 6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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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스 가족은 20년 동안 매년 9월, 보그너로 보름 동안의 여름 휴가를 떠난다. 이 소설은 바로 그 반복되는 일상을 충실히 따르며, 우리 모두의 삶 속에 자리 잡은 소소한 행복과 긴장을 담담하게 그려낸다.
휴가를 떠나기 전날, 스티븐스의 아내는 날씨를 걱정하며 창밖을 내다본다. 그리고 "행군 명령이다!"라는 스티븐스의 유쾌한 한마디로 가족의 휴가는 시작된다. 각자 맡은 역할에 따라 짐을 꾸리고, 정리할 것들을 상의하며 가족들은 여느 해와 다르지 않게 준비를 마친다. 이웃에게 집을 맡기고, 이웃은 아무렇지 않게 그것을 수락한다. 그 모습에서 다정한 이웃의 풍경이 느껴진다.
스티븐스는 정확한 시간, 장소, 이동 순서까지 꼼꼼히 계획한다. 조금은 과하다고 느껴지기도 하지만 가족에게 실망스럽지 않은 완벽한 휴가를 선물하고 싶은 마음이 담겨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함께 든다.
그러나 스티븐스 아내는 그런 흐름 속에서 자신의 의견을 조심스럽게 접는다. 가족의 행복을 위해 기꺼이 배려하는 모습이 때로는 아쉽게 느껴지며 ‘조금 더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기차를 타고 떠나는 순간에도 스티븐스는 자신의 집을 바라보며 맡은 일들을 제대로 마쳤는지 점검한다. 그와 그녀의 불안이 너무 높은게 아닌가라는 걱정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막내 어니는 기차 밖의 풍경을 바라보며 눈을 반짝인다. 어른들에게는 익숙한 장면도 어린아이에게는 새로운 세상이다. 기차 안에서 스티븐스 부부는 함께 보낸 지난 시간을 되새기며 잔잔한 추억에 젖는다.
도착한 숙소는 낡고 허름하지만, 그들에게는 수많은 여름의 기억이 담긴 특별한 장소다. 가족은 바닷가를 거닐고, 수영을 즐기고, 각자 혼자만의 여유를 누린다. 새로운 사람과의 만남, 해변에서의 산책, 느긋한 대화.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이지만 그 속엔 오히려 진짜 휴식이 깃들어 있다.
이 소설의 가장 큰 매력은 바로 그 ‘평범함’이다. 잔잔한 휴가 속 가족 구성원들의 사소한 변화, 서로를 향한 배려와 따뜻한 시선이 마음에 잔잔한 여운을 남긴다. 특별한 사건은 없지만, 오히려 그래서 더욱 특별하게 느껴지는 여름의 한때다.
읽는 내내 '우리 가족도 보름간의 여행을 떠난다면 얼마나 많은 준비가 필요할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체크리스트를 만들고, 짐을 꾸리고, 출발하기도 전에 이미 지쳐버리고 돌아온 뒤엔 다시 정리해야 하는 무게감까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함께 떠나는 여행’을 꿈꾼다. 어디든 좋다. 가족과 함께라면.
『구월의 보름』은 그렇게 우리 삶에 존재하는 작고도 소중한 시간을 다시금 바라보게 만드는 책이였다. 지나쳐버리기 쉬운 일상의 조각들이 모여, 어느새 ‘행복’이 되는 과정. 이 책은 그 과정을 조용히, 그러나 깊이 있게 보여준다.
❝그들은 거의 뭘 하지 않았다. 실상 그저 해수욕을 했고, 빈둥거리고 다녔지. 그런데도 찬란한 휴가였다. 그들이 언제나 과거에 그랬던 것처럼 계속해서 휴가를 여전히 즐길 수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좋았다.❞ p431
#다산북스 @dasanbooks
#이키다서평단 @ekida_library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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