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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합니다, 하느님을 사랑한 사람들 - 심리학자 이나미가 만난 교회의 별들
이나미 지음, 심백섭 감수 / 생활성서사 / 2023년 5월
평점 :
생활성서사 신간 ‘행복합니다, 하느님을 사랑한 사람들’은 33명의 고대, 중세, 현대의 교회 성인과 현자들의 이야기를 소개하고 있다. 교훈과 감동을 주는 성인전이야 이 책 외에도 많지만, 이 책만의 특별한 점은, 융의 분석 심리학적 관점으로 성인들의 삶을 분석하고, 개인, 공동체뿐 아니라 시대적 관점에서 새로운 통찰을 제공하며, 더 나아가 우리가 하느님의 뜻을 추구하면서 ‘참 자아’를 찾아 진정한 ‘개성화’를 이루어가도록 이끄는데 있다.
저자 이나미 박사님이 정신과 전문의면서 융 분석 전문가라는 점도, 이 책이 (대중이 접근하기 어려운 딱딱한 학술적인 책이 아니면서) 일반 성인전보다는 훨씬 깊이 있는 통찰을 제시하기에, 평소에 이 부분에 관심 있거나 공부 중인 분들이라면 필독서로 읽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이 책은 교회의 많은 성현의 삶을 분석할 뿐 아니라, 신앙과 삶에 대한 깊은 통찰, 그리고 저자의 솔직한 자기반성과 현대 문명에 대한 회고는 지금 나의 삶에 성인들의 교훈을 어떻게 구현할 것인지 생각해보게 만든다. 성인들은 각자 처한 자리에서 어떤 선택과 결정을 했는지, 하느님의 뜻을 어떻게 추구해가고 그 길을 어떻게 걸어갔는지를 보면서, 다원주의적 세계 속에서 혼란을 겪는 신자들이 삶에서 정말 중요한 가치가 무엇일지, 개인으로서 그리고 공동체 일원으로서 어떤 생각을 가지고 살아야 할지를 생각하게 한다.
종교가 나약한 이들이나 믿는 조롱거리로 여겨진 세태가 된 지 오래지만, 심리학계의 거두인 융은 종교심을 “인간의 원형적 특징으로 매우 중요한 본능”이며, “삶 저 너머에 있는 죽음을 인식하고 자신의 한계를 의식하는 종교심이야말로 인간과 타 생명체를 구별하는 인간 존재의 의식적 중심”으로 보았다. 융 심리학을 전공한 저자는 이에 따라 교회사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들의 삶과 사상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개인의 삶과 공동체에 종교심이 미친 영향에 대해 분석한다. 종교(기독교)에 대해 잘못된 고정관념이 있던 분들은 이 책 속 성인들의 삶과 그에 대한 해석을 보면서, 많은 부분 다시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세속적 성공을 추구하는 자기계발서, 혹은 무한경쟁 속에서 자아실현에 실패한 이들을 값싸게 위로하는 책, 혹은 느림, 멈춤을 강조하거나 꿈이고 뭐고 지금 순간이나 맘껏 즐겨라 같은 책에 둘러싸인 자기-중심적 현대인들에게는, 나보다 하느님을 중시하면서 고통도 겸손히 받아들인, 더 나아가 자진해서 고통을 추구한 성인들의 이야기는 낯설 수 있다. 융의 관점에서 보면, 오늘날 유행하는 개념들은 모두 진정한 개성화, 더 나아가 신앙인이 추구해야 하는 인간형과는 거리가 멀다고 볼 수 있다.
우리가 어떤 이데올로기에 따라 자기-중심적으로 내 욕망을 실현해야 성공적 삶이라고 보는 관점에 매몰되었다면, 융의 개성화도 그런 잘못된 시각에서 바라볼 수도 있다. 신앙인이라면 인간중심적 패러다임에서 벗어나, 즉 나 자신의 성공, 혹은 그저 잇속만 챙기거나 현실을 즐기자는 것이 아닌, 주어진 현실 속에서 어떻게 하느님의 뜻을 구현할 것인지를 고민해야 한다. 참된 나로 살아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생각해야 한다. 이 책은 천주교 성인들은 자기 실현 즉 개성화를 어떤 식으로 이루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이 책은 현대인의 고정관념을 타파시키고 ‘개성화’의 의미가 무엇인지, 인생(그리고 삶의 고통)을 바라보는 시각을 전환하는데 도움을 준다.
이 책은 심리학 개념이나 인문학적(신학적) 지식, 혹은 여러 성인에 대한 배경지식이 있으면 더 잘 읽히겠지만, 이 책만 여러 번 정독해도 저자의 의도를 파악할 수 있다. 읽을 때마다 깨달음의 깊이가 달라질 수 있으므로 소장해서 오래 두고 읽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책이 연결되는 내용은 아니고, 각 성인의 삶이 소개되고 이에 대한 분석과 통찰이 제시되므로, 한 성인씩 천천히 시간을 두고 읽을 것을 권장한다.
참고로 이나미 박사님은 평화방송 유튜브 “심리로 본 성경과 사람” 프로에서 심리학적 관점에서 본 성경 이야기를 전해주고 계신다. 이 유튜브 방송과 책이 직접적 연계는 없어도 결국 심리학을 토대로 설명하기 때문에 계시기에, 책 내용을 더 깊고 풍성히 이해하는데 유익할 것이다.
<추천 대상>
성경, 심리학, 신학 공부 중인 신자분들
융 심리학 관점에서 교회 성현들의 삶을 해석하고 싶은 분들 (심리학 전공자들)
성인의 삶에서 교훈과 신앙 지침을 얻고 싶은 분들
다양한 성인의 이야기에 관심 있는 분들
실제 성인의 사례를 통해 개성화(자아실현)의 진정한 의미를 알고 싶은 분들
성공 지향적 자기계발서(처세술서)나 얕은 위로를 전하는 책에서 벗어나 인생의 깊은 의미를 추구하려는 분들
<책 속으로>
대부분의 융 심리학자들은 현실 지향적 심리학자들과 달리 세속적 성취나 개인의 행복 혹은 만족보다는 큰 자기를 위해 작은 자아를 버리라고 말하기도 한다. 고통 속에서 역설적으로 살아갈 의미를 찾는 것이 진정한 자기실현, 즉 개성화 과정이라는 뜻이다. ..그런 의미에서 데레사 성인은 개성화 과정을 실천한 사람이다. 고통 속에서도 인류를 사랑했던 예수님을 사랑하는 축복이 세상의 그 무엇보다 아름답고 행복했기 때문이다. (27쪽)
콜베 신부의 태도는 작은 자아, 내 집단, 내 것에만 사로잡혀 오로지 자신의 소망, 성취욕, 성공, 애정 욕구, 건강 등을 하느님처럼 섬기며 붙잡고 사는 21세기 우리와는 참 많이 달라 보인다. 가장 낮고, 힘없고, 외로우며, 고통받는 이들과 항상 함께하시고 마침내 그 안에 현존하시는 하느님의 뜻을 모르는 이들에게 고통스런 고문과 아사에 이르는 마지막을 선택한 콜베 신부의 결정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콜베 신부는 자아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예수님의 죽음을 닮는imago Dei 선택을 해서 마침내 하느님과 일체가 되려는 큰 자기를 지향함으로써 진정한 자기실현이 무엇인지 우리에게 보여 준, 이 시대 우리 마음에 여전히 살아 있는 성인이다. (34쪽)
미국 중심의 과학과 현실에 충실한 심리학자들마저도 세속적인 성공, 대인관계에서 얻는 행복감 등을 자아의 성취 지향으로 꼽는다. 그들은 사이비 종교 집단의 부흥회처럼 긍정적으로 모든 것을 헤쳐 나가라며 부추기며.....역경은 성공하기 위한 기반이라고 말할 뿐, 고통의 진짜 의미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 ..그들이 다미안 신부나 마리안느 수녀의 선택을 이해할 수 있을까? 칼 융은 죽음을 직면하고, 고통을 견디는 것이 현실 생활의 성취를 위한 도구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가치가 있다고 본다. 우리 안의 악, 그림자를 인정하고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고통에서 도망가지 않아야 우리의 전체 정신인 자기실현이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60쪽)
자기의 욕망에 대한 질문만으로는 자아에 대한 객관적 통찰이 생기지 않는다. ...나의 욕망과 쾌락이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어떻게 생겨나 기능하고 변해가는지를 관찰할 때 비로소 타인에 눈에 비친 나, 거꾸로 내가 생각하는 타인에 대한 객관적인 인식의 단초가 생겨난다. (132 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