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과 함께하는 여정 - 그리스도에게 배우는 삶의 방식
임영수 지음 / 두란노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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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기 전에 혹시나 싶어서 신학을 공부하고 있는 동생에게 물어보았다. “모새골 알아?” 약간의 지체를 두고 대답이 돌아왔다. “모든 것이 새로워지는 골짜기. 임영수 목사님이 사역하시는 곳 아니야?” 왠지 반가웠다. 영성 공동체에 대해 관심이 많았기에 모새골에서 사역하시는 목사님의 말씀이 무척 기대되었다. 사실은 책의 서론을 읽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마음을 빼앗겼다. 구도자의 삶은 행위를 추구하지 않고 존재를 추구해 가는 삶이라는 말씀이 뜨겁게 다가왔다. 목사님은 존재 추구의 삶을 통해 하나님 인식이 올바르게 형성되면서 성장 시기에 생긴 상처와 강박 관념, 자기 억압, 왜고된 신앙이 치유되었다고 고백하신다. 그 분의 삶을 치유하고 바꾼 하나님은 지금도 역사하시고, 모새골 사역이라는 귀중한 사명을 부여하셨다. 경기도 양평에 위치한 모새골 공동체는 설립된지 올해로 12년째에 접어들었다고 한다. 언젠가 방문해서 하나님의 크고 분명한 음성에 좀더 집중하는 귀한 시간을 가지게 되길 소망해본다.  

 
  수많은 신앙인들이 그리스도로부터 삶을 배우는 것을 꿈꾸고 소망한다. 몇 해전 모새골의 신앙 생활 주제 역시 ‘그리스도로부터 삶을 배우기’ 였다고 한다. 목사님은 그 이유를 들어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삶의 원형이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신다. 철저히 하나님의 아들이셨지만 종의 모습으로 오셔서 종의 삶을 사신 예수 그리스도. 그러한 삶의 방식에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이 더욱 분명하게 드러난다. 만약 겉으로만 종의 모습을 취했거나, 내면적으로 하나님의 아들됨을 포기하셨다면 하나님의 아들로서 정체성이 드러나지 않았을 것이다. (p.35) 그 분이 머무는 자리마다 속박으로부터 벗어나는 자유가, 어둠을 물리치는 빛이, 생명과 진리가 함께 했다. 그리스도께서 기꺼이 섬김의 자세를 취하신 것은 사랑 때문이었다. 그것은 흔한 연민이나 싸구려 사랑이 아니라, 사람이 온 재산을 주어도 살 수 없는 온전한 사랑이었다. 약한 우리가 자기 자신을 넘어설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그리스도의 사랑에 답이 있다. 사랑은 깊고 신실한 교제를 통해 생명력을 얻는다.  저자 목사님은 낡은 옛 방식을 버리고, 새롭고 온전한 그리스도와의 교제에 깊이 참여할 것을 촉구하신다. 이 신실한 사랑의 교제가 열매 맺는 것이 새로운 새명, 즉 부활이다. “우리의 사귐은 영적 진화를 해 가며, 그 진화는 오고 있는 하나님 나라를 가리키고 있습니다. (중략) 영적 진화의 지향점은 부활하신 그리스도입니다.”

 
모새골에 들어온 분들의 동기를 살펴보면, 하나님을 꼭 만나고 싶은 희망, 자신을 새롭게 발견하고자 하는 갈망 같은 영적인 성장에 대한 기대가 공통분모라고 한다. 이런 기대와 열심은 단지 모새골 일상에 참여한 분들에게 국한된 것은 아닐 것이다. 하나님의 내밀한 부르심에 응하는 사람들에게 영적인 상향 조정은 필연적인 것이다. “영적 생활에서 상향 조정의 동기는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빛, 생명입니다. 반면 하향 조정의 동기는 저속한 욕망입니다. 거기에는 공허, 무의미, 낮은 자존감이 그를 괴롭힙니다.” 나의 바람은 과연 높은 곳을 향해 있는지, 삶 전반에 걸친 새로운 조화를 체험하며 살고 있는지 자문하며, 영혼의 성장을 어떤 경우에도 포기하지 말아야함을 다짐해본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의도하신 삶은 무엇일까. 임영수 목사님은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여정이라고 말씀하신다. 이 여정은 우리 혼자만 감당하는 것이 아닌,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함께하시는 여정이다. 우리와 함께하시는 주님은 이 여정을 승리로 끝내신 분이시기에, 그분으로부터 여정의 삶을 배워야한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교회는 예수님의 부활에서 드러난 하나님 나라를 향해 여정 길에 오른 나그네들의 공동체이다. 그리고 부르심을 받은 삶은 하나님 안에 있는 부활의 새 삶이다. 이 땅에서 나그네로 살아가면서 동시에 의미와 목적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 가능한 것은 하나님 나라에 대한 확실성 때문이다. 신자 된 우리 가운데 현존해 있는 하나님 나라에 속해서 살아가는 것은 얼마나 기쁘고 즐거운 일인가. 여정이 힘들고 외롭게 느껴지는 순간마다 하나님의 임재를 생생하게 체험했으면 한다. 하나님과의 새로운 사귐을 통로로 복된 여정을 계속해나가는 사람이 되기를 소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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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살아냅시다 - 창세기 2 ㅣ 김양재의 큐티 노트
김양재 지음 / 두란노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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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와 회복이 일어나는 교회”, “고난이 부끄럽지 않은 교회” 서울시 분당에 위치한 우리들 교회의 별명들이다. 개척한지 12년 만에 성도 1만명의 교회로 성장한 우리들 교회는 성경 말씀을 묵상하는 QT(Quiet Time)와 죄 고백으로 유명하다. 담임이신 김양재 목사님의 설교를 한번 들은 적이 있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보다 깊이 있게 목사님의 말씀을 접할 수 있었다. 세상에 퍼져있는 악과 죄의 결과로 찾아오는 여러 고난과 시련에 대해 공부할 수 있는 기회였다. 특히 어둠의 세력이 넘쳐나는 세상에 대해 다시 한번 경각심을 갖게 되었고,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만이 회복의 단서라는 사실이 마음 깊이 와닿았다. 책의 도움으로 창세기의 노아 방주 사건을 큐티하면서, 하나님께 거듭 순종하며 복의 지평을 여는 것에 대해 묵상할 수 있었던 것도 큰 수확이었다.   

 
책 속에는 고난 중에서 하나님의 만져주심을 체험하는 우리들 교회 신자 분들의 간증이 함께 수록되어 있다. 사업의 실패, 엇나가는 자녀들, 믿지 않는 남편 혹은 아내와의 갈등, 고공승진하며 사회적으로 성공가도를 달리다가 한순간 추락하는 일 등등 감당하기 어려운 시련 속에서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한 이야기가 진솔하게 씌어져있다. 누구에게도 쉽게 털어놓을 수 없을 만큼 아픈 치부를 거리낌 없이 토로할 수 있는 것은, 더 이상 자기 자신이 인생의 주인임을 주장하지 않고 하나님만이 소망이며 참 진리이고 생명이라는 사실을 마음으로부터 받아드렸기 때문이 아닐까.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확신할 때 나의 고난은 변화의 전환점이 된다. 어쩔 수 없이 죄에 굴복하여 스스로 어둠 속에 행했던 나날을 뛰어넘어 빛으로 나아가는 자가 된다. 이 모든 변화가 하나님과 그의 나라 안에서 이루어지기에, 특히 고난을 겪은 자일수록 하나님께서 살아계심을 깨닫고, 마음으로부터 고백하게 되는 것이다.

 저자인 김양재 목사님께서는 불신 결혼과 같은 죄에 대한 경고와 이길 수 있는 믿음을 강조하시고, 위로부터 내려오는 능력을 일상에서 날마다 체험할 것을 촉구하신다. 또한 세상의 관점과 180도 다른 하나님 나라의 지복에 대해서 말씀하신다. 하나님의 확실한 언약의 말씀이 있기에 세상과는 다른 관점, 다른 위치에서 나의 현재 상황을 돌아볼 수 있다. 나와 이웃 가운데에서 누룩처럼 퍼져나가는 하나님의 나라가 있기 때문에 눈에 보이는 실패가 전부가 아님을 믿으며 살아갈 수 있다. 연약한 나는 비록 넘어지고 실패할 수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궁극적으로 승리하시는 분이시기에 그분께 힘입어 믿음의 경주를 해나갈 수 있다.
 
특히 개인적인 어려움이 하나님에 대한 갈망을 불러일으키는 것을 경험했기에, 아무런 걱정 없이 쾌락과 물질에 젖어 살기 보다는 차라리 고난 중에 참된 생명을 깨달아 체험하며 살아가는 사람이 되었으면 한다. 아버지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내 영혼과 몸을 살리고, 가족과 이웃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책을 읽으며 얻은 깨달음 중의 하나는, 바로 하나님 앞에서 철저히 낮아질 때 죄 앞에서 누구보다 강하게 대처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낮아진다는 것은 나의 연약한 부분을 인정하고, 고백하고, 회복되기를 구하는 것이다. 입술로 고백한 나의 크고 작은 죄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능력으로 도말된다. 죄 없이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신 예수님의 능력 앞에서 고개를 들 수 있는 어둠의 세력은 어디에도 없다. 따라서 자기 죄를 철저히 회개하는 것은 궁극적으로는 십자가 체험이고, 다가올 부활의 예정 연습이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철저한 회개를 통해 몸과 마음이 되살아나는 기적을 경험한 신자들이 과거부터 지금까지 무수히 존재하고 있지 않은가. 죄의 세력이 도말된 자리에는 치유가 있고 평안이 있다. 어쩌다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니라 필연적으로 그렇게 될 수 밖에 없다. 
 질병으로 인해 고단했던 나의 지난 날들을 돌이켜보면, 언제나 불신의 씨앗이 있었고 감히 대적하기도 힘든 어둠의 영이 자리하고 있었다. 불신이 불신을, 어둠이 어둠을, 죄가 죄를 불러일으키는 악순환을 끝내기 위해 먼저 해야했던 것은 그것의 정체를 낱낱히 파헤치는 일이었다. 당연시했던 어둠이 바로 고백해야할 죄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때 상황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고난 중에도 평안이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을 비로소 알 수 있었다. 생각지도 못한 일들을 통해 섬세하게 운행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느끼면서 많이 울고 많이 위로받았다. 아직도 내게는 주님 앞에 낱낱이 고백해야할 어둠이, 미처 치우지 못한 마음의 잔해가 남아있다. 앞으로 살아가면서 겪게 될 어려움은 또 얼마나 많을 것인가. "그럼에도 살아냅시다." 다시 시작하시는 하나님, 하나님 당신을 위하여 우리의 죄를 도말하시는 은혜에 힘입어 살아가는 수밖에 없다. 더불어 평안하게 하시고 정결케 하시는 그 분의 인도하심을 믿고 오늘도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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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고전을 공부하는 이유
조윤제 지음 / 흐름출판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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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고전, 그저 소장의 가치만 있는 책일까?

갓  사회에 진출할 무렵 사람들에게 인문학이 전공이었다고 말하면, 다소 애매모호한 반응이 돌아오곤 했다. 대놓고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인문학이 과연 밥벌이가 될 수 있느냐는 식의 뉘앙스였다.  우리 사회가 바라보는 인문학이란, 가치를 부정할 수는 없지만 실리적인 측면에서 아무 소용이 없는 학문쯤으로 인식되는 듯하다. 그런데 요즘 들어서 기류가 서서히 바뀌고 있는 느낌이 든다. 인문학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도를 반영하듯 양서의 인문학 서적들이 서점가에 등장하며 좋은 반응을 모으고 있다. 개인적으로 반갑기까지 한 인문학 열풍과 맞물려 고전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는 추세이다.
 
고전은 이를테면 인문학의 근본 바탕이며 엑기스, 정수(精髓)이다. 하지만 고전 읽기는 오랫동안 지식인들이나 소수의 단련된 독자들의 영역으로 인식되어 온 측면이 있다. 여기에는 고전이란 왠지 어려울 뿐 아니라 시대에 한참이나 뒤떨어진 것이라는 편견도 크게 작용했다. 정말 고전은 소장의 가치만 있는 책일까? 고전을 읽고 탐구하는 것은 학자들의 고유 권한이기에 일반 독자들은 관심을 가질 필요가 없는 것일까?

       

      

고전, 현실과의 불가분한 관계

​ 고전은 ‘오랫동안 많은 사람에게 널리 읽히고 모범이 될 만한 옛사람들의 글 또는 책’을 말한다. 고전 중에는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그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촌수조차 따질 수 없는 까마득한 옛 조상들이 읽고 물려주고 다시 읽히면서 유익함이 의심되어오지 않은 경전도 존재한다. 동양의 전통에서는 공맹(孔孟)의 말씀이 대표적이다. 훌륭한 선진들의 언행이기에 특별대우를 받았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제 아무리 그럴싸한 말이어도 현실과 무관하다면 오랜 생명력을 가질 수 없다.
 
고전은 사실 노골적일만큼 현실의 세태를 담고 있을 뿐 아니라 때로는 기저에 숨어있는 진실과 이치를 가리키기도 한다. 한 세대의 현실만을 아우르는 것이 아니라 여러 세대에 걸쳐 새롭게 파급되는 것이 고전이 가진 저력이다. 하지만 기나긴 생명력은 불가피하게 무수한 소문을 낳는다. 고전에 대한 오해와 변질이 생겨나고, 때때로 실체 없는 소문이 주인 행세를 하여 크고 작은 안타까운 상황이 벌어지기도 한다. 때문에 고전은 그 가치와 효용성을 존중해야 하는 것이면서, 제대로 공부되어야 하는 것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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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자신의 것으로 체득하라.

 ​이 책은 고전을 공부하는 의의와 올바른 향방에 대해 알려주고 있다. 저자는 고전을 공부하게 된 동기를 이렇게 밝히고 있다. 변화하는 세상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서, 혹은 세상을 바라보는 나만의 관점을 찾기 위해서이다. 하필 고전에 주목한 것은 스스로 생각하고 답을 얻을 수 있는 지혜에 대한 필요성 때문이다. 지식을 습득하는 것이 경쟁력이라는 관점은 어느덧 시대상에 맞지 않는 낡은 생각이 되어버렸다. 날마다 새로운 것이 쏟아지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창의적인 영감의 원천으로 고전을 떠올리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 아닐까? 고전은 깊이 읽을수록 새로운 의미가 발견되는 살아있는 텍스트이다. 온고지신(溫故知新)에 대한 정조와 신하의 대화를 일례로 들자면, 옛글을 읽을 때 그 가운데서 새로운 의미를 알게 되어 자신이 몰랐던 새로운 것을 더 잘 알 수 있다. (P.74)
 
그렇다면 어떻게 글을 읽어야 새로운 것을 깨달을 수 있는가? 단순한 암기를 버리고 생각하면서 읽어야 한다. 배웠다면 스스로 생각하는 과정을 통해 완전히 자신의 것으로 체득하라는 것이다. <논어>나 <맹자> 같은 고전을 공부하겠답시고 여러 일화를 교과서를 외우듯 한다면, 남는 것은 인물들의 이름이나 한자로 된 고사성어 몇자가 전부일 것이다. 심할 경우 내재된 의미를 놓치고 전혀 엉뚱한 곳에서 헤맬 수도 있다. 일례로 우공이산(愚公移山)의 일화를 대충 줄거리만 파악한다면 단지 우공의 무모한 행동을 비웃게 될 뿐 더 이상의 의미 확장은 일어나지 않는다. 거기에는 지혜도 참된 앎도 없다. 고전 속에서 새롭고 적절한 지혜를 발견하기 위해서는 꼬리를 물 듯 생각을 거듭해야한다. 이것은 거꾸로 고유한 지혜를 기르며 지금을 살아가는 고유한 나 자신으로 귀결된다.

 

 

 

고전, 새롭고 자극적인 지혜의 보고로 각광받기를.

  저자는 공부에 대한 삶의 자세로 지행합일(知行合一)을 강조한다. 앎이 삶이 되는 단계, 즉 배운 것을 일상에서 실천하는 것이 중요함을 이르는 것이다. 고전을 공부하면서 깨달은 것을 현실에 적용하지 않는다면 자기만족에 불과한 것이 된다. 그것은 도중에 그만 둔 것이며 나의 것이라 이르기에 부족한 것이다. 배움의 유익을 가장 먼저 체험해야할 사람은 바로 나이다. 배우고 익히는 일에 많은 정성을 쏟으면서 정작 자기 자신을 소외시키는 것만큼 안타까운 일도 없다. 옛 선진들이 그러했듯 배움을 보다 확장시켜 몸과 마음을 닦는 수단으로서 삼아야 할 필요가 있다.
 
저자의 말에 따르면 세계적으로 유명한 기업의 최고 경영자들, 사회적으로 영향을 끼치는 인사들의 예사롭지 않은 행보에는 예외 없이 인문학적 소양과 창의력이 뒷받침하고 있다고 한다. 평범한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과거를 통해 현재를 이해하고, 다가올 미래를 계획하며 추진해 나가는 일에 고전을 공부하며 쌓아올린 내공이 큰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고전이 우리네 삶 속에 소용되는 꺼리로서, 혹은 그 이상의 파급력을 지닌 가능성으로서 오늘날 새롭게 자리매김하는 모습을 기대해본다.

  우리는 모든 종류의 앎이 환히 드러나는 시대에 살고 있다. 더 이상 고전은 학자들만의 영역도 아니고, 일부 지식인들이 공유하는 탐서도 아니다. 누구나 고전을 통해 인생의 고매한 비젼을 탐구할 수 있고, 자기 삶의 변화시키는 주체로서 설 수 있다. 저자는 <논어> <춘추>를 비롯한 50여 권의 고전에서 뽑은 다양한 명언들과 고사들을 맛깔나게 소개하면서 일반 독자들이 고전에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다. 본격적으로 고전에 도전하려는 사람에게도 편리를 주는 책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이 책 이외에도 좋은 관련 서적들이 출간되어 고전이 고리타분한 탈을 벗고 새롭고 자극적인 지혜의 보고로서 각광받기를 소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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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의 시간 하늘의 시간
조정민 지음 / 두란노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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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을힘을 다해 열심히 살았습니다. 대체 무엇을 위해서?

 
저자의 약력이 흥미롭다. 저자인 조정민 목사님은 25년 동안 언론인으로 열정을 불사르다가, 쉰 살을 넘은 나이에 회심하고 목회 사역을 시작하신 분이다. 책 속에는 밤낮이 바뀔 정도로 치열했던 과거의 기자 생활이 짤막하게 언급되어 있다. 그야말로 죽을힘을 다해 열심히 살아오신 분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자부심을 가져도 좋을 만한 멋진 이력인데, 저자는 그 모든 수고와 노력이 헛된 것이었노라 회상한다. 그의 비유에 따르면 ‘한낮의 잠 같고 들풀 같은 인생’이며 ‘아침이면 사라지는 안개와도 같은 인생’이었다. 그는 한 번도 시간을 건져낸 적이 없음을 상기하면서, 모든 사람들에게 똑같이 주어진 시간 너머의 영원한 어떤 것을 주목한다. 시간 속에 갇혀 흐르고 마침내 사라지는 삶이 아니라, 시간을 건져내어 질적으로 다른 삶을 살아가는 비밀을 이야기한다.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은 내 야망과는 질이 다른 시간에 대한 이야기, 즉 하늘의 시간에 대한 저자의 통찰력과 깊은 신앙 고백을 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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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크로노스 vs 카이로스,
 
저자는 구원의 본질이란 곧 시간의 구원이라고 말한다. 필멸하는 인간의 시간, 즉 태어나서 늙고 병들어 죽는 크로노스(Kronos)의 지배에서 해방되는 것이 구원이다. 저자는 사람이 영원한 하나님의 시간으로 옮겨 가는 것과 죄의 삯인 죽음으로부터 건짐 받는 일의 연관성을 이야기한다. 저자의 통찰에 따르면 예수님의 구속 역사는 땅의 시간에서 하늘의 시간으로 옮겨지는 놀라운 사건이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라.” 예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실 때 우리는 비로소 카이로스(kairos)의 특별하고도 영원한 시간에 편입된다. 초대를 받고 거기에 응한 사람은 더 이상 내 시간표에 따라 사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 하나님의 시간표를 따라서 살게 된다고 저자는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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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십자가. 시간의 역설. 
 초월적인 하나님의 시간이 인간의 유한한 시간 속에서 어떻게 역사할 수 있는지에 대한 해답은 십자가 사건이다. 예수님은 ‘왜 사느냐’는 우리의 질문에 ‘이 때를 위해 산다“라고 말씀하셨다. 저자는 ”이 때“란 ”호라“, 즉 ”어떤 일을 위한 때“를 말하는 것이며 그 일을 하기에 가장 적합하고 일정하고 좋은 때를 의미한다고 말한다. 예수님은 당신의 십자가 고난을 ”인자가 영광을 얻을 때“라고 말씀하셨다. 이는 세상적인 가치에 비추어 생각했을 때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말이다. 제자들이 이제 유명해지셨으니 많은 밀알을 뿌리셔야 할 때라고 말했지만 예수님은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어야 할 때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말씀하신 대로 이루셨다. 
  십자가 사건은 영원한 죽음에서 영원한 생명으로 옮겨지는 사건이다. 부활이며 새로운 열매이다. 저자는 십자가가 품고 있는 역설을 주목하며 이것이 하나님의 시간 안에서 완성된 약속이라고 말한다. 이미 이루어진 약속을 믿고 받아드릴 때, 내 죄가 예수님께 전이되어 그 의로운 피가 내 안에 흘러들어 오게 된다. 땅의 시간이 빠져나가고 그 자리에 하나님의 시간이 흘러 들어오며, 유한한 생명인 프쉬케(psyche) 대신 하나님의 영원한 생명인 조에(zoe)를 얻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십자가를 믿는 것을 고백하면서도 자기 십자가를 지기를 주저하는 것은 내 영광의 때를 구하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내 모호하고도 불완전한 스케쥴을 따라 썩어 없어질 육신의 영광을 추구하며 살기보다, 하나님의 때와 영광을 간구하며 깨어 있는 삶을 살아가기를 소망해본다. 
 
* 조에(zoe) : 영적의 생명, 거듭난 생명. 하나님과의 관계가 완전히 회복된 생명.



 
- 지금은 은혜의 때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저자는 마지막으로 종말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의 자세에 대해서 말한다. 종말의 시간을 산다는 것은, 오늘이 종말이든 내일이 종말이든 상관없는 삶이다. 종말론적 삶이 이미 영원에 편입된 시간이기 때문이다. 오늘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며 살아가는 사람은 시간을 헛되이 낭비하지 않는다. 그는 시간을 건져 내어 순간을 영원으로 바꾸며, 소유하며 살아간다. 
 
시간은 모든 사람을 평등하게 만든다. 시간 앞에서 자신의 무기력함을 호소하지 않을 사람은 어디에도 없다. 생명을 부여받아 살아가는 한 여전히 시간에 얽매여 살아갈 수밖에 없지만, 문득 하늘을 바라보듯 영원의 시간이 존재함을 인식하며 살아갈 때에 우리는 좀 더 너그러워지고, 서로 사랑하며, 진정으로 소중한 가치에 눈을 뜰 수 있다. 저자는 심지어 악한 자라도 긍휼로 품을 수 있는 넉넉함과 담대함이 우리에게 선물로 주어진다고 말한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악한 시대를 이길 수 있는 지혜란 결국 위로부터 내려오는 것임을 마음으로부터 깊이 깨달아 하나님이 주시는 참된 평강을 누리고 싶다. 예수 안에서 나의 약한 마음과 생각을 지켜주시기를, 이 세상을 살아가는 목적과 방향이 흔들리지 않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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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메시지다
케리 슉 & 크리스 슉 지음, 정성묵 옮김 / 두란노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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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말과 삶은 전혀 딴판이다.
 
주일날 교회에서 예배를 시작하며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라고 시작하는 사도신경을 소리 내어 외운다. 목사님의 열성적인 말씀 선포를 들으면서 마음속으로 거듭 아멘을 외친다. 예배를 마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면 읽어야할 신앙 서적이 쌓여있다. 틈나는 대로 읽고 밑줄을 긋고 때로는 소리 내어 읽어본다. 마음 속에만 담아두기 힘든 기쁨과 평안이 느껴질 때는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이 따로 있다. 편리하게 인터넷의 SNS를 이용하는 것이다. 그러다가 누군가 페이스북 담벼락에 성경 말씀을 게시한 것을 보면 빠짐없이 좋아요를 누른다.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쉽게 말씀을 접할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다... 하나님의 말씀이 범람하는 시대, 나는 내게 필요한 말씀을 손쉽게 찾아내어 소비하며 살아간다. 믿음 생활을 하면서 누리는 나의 가장 큰 기쁨은 교제도 아니고 헌신도 봉사도 아닌 말씀 그 자체였다. 말씀 한 구절이 나를 웃게도 울게도 만들었다. 이해가지 않았던 어느 구절이 갑자기 환하게 드러나는 날이면 선물을 받은 것처럼 기뻤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나는 말씀에 신물을 느끼기 시작했다. 문제는 말씀과 다르게 흘러가는 삶이었다. 일상 속에서 하나님과 그의 나라를 생각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생각에 그치는 경우가 많았다. 그 와중에도 나는 강박에 걸린 것처럼 때마다 필요한 말씀을 채집하거나 소비했다. 삶 앞에서 눈을 가리고 언제까지나 메세지만 붙드는 나의 모습이 불쌍할 지경이었다. 나의 연약함을 극복하던가, 아니면 무신론자가 되든가 둘 중 하나를 택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을 만큼 힘들다고 생각하던 때에, 이 책이 나에게 왔다.
 Be the Message!
과연 이렇게 모자란 내가 메시지가 될 수 있을까?

 


 

- 복음의 메시지는 하나의 삶이다.
 
첫 장의 도입부가 무척이나 충격적이었다. ‘설교라면 신물이 난다. 하나님에 관해 말하는 데 지쳤다. 하나님에 관해 듣는 것도 이젠 지겹다.’ 저자는 미국 우드랜즈펠로십교회의 목사 부부이다. 그들의 솔직한 고백은 다음 말로 이어진다. ‘내 삶은 온통 말과 메시지로 이루어져 있다.’ ‘다만 내가 하나님에 관해 말만 많이 하고 실제로 그분을 경험하지는 못할 때가 많다는 생각이 점점 더 강해진다.’ 저자는 메시지가 아니라 메시지로 인해 변화된 삶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의 말처럼 그리스도인들은 말만 앞서고 행동은 따르지 않을 때가 많다. 내가 그렇고, 내가 만나고 호감을 느꼈던 사람들도 대부분 그러했다. 그들 모두가 메시지와 삶의 불일치가 얼마나 괴로운 것인지 잘 느끼고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역겨움을 느낄 수도 있고, 나처럼 극단적인 생각까지 이르는 사람도 (어쩌면) 있을지 모른다. 저자가 지적한대로,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수많은 말 가운데 하나로 전락시켜버린 탓이다. 저자는 숱한 말을 버리고 말씀을 따라서 살아야 함을 누차 강조한다.
 
말씀 즉 복음은 본래 하나의 삶이며 한 명의 사람이었다. 예수 그리스도의 존재와 삶이 부인할 수 없는 증거가 되어 세상을 영원히 변화시켰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믿음의 사람이 행할 수 있는 최선은 자신을 내어놓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조용히 때로는 강한 음성으로 부르실 때, 단지 자신을 내어드리는 순종함으로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를 이뤄나갈 수 있다. 기쁜 사실은, 하나님께서 지금 있는 그대로의 나의 모습을 메시지로 사용하신다는 점이다. 내가 그럴싸한 무언가가 되어야만 메시지가 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 약함의 메시지가 하나님의 손에 놓이면 강력한 울림을 가진 메시지가 된다는 사실을 믿고, 의지하고, 따라야겠다.
 


 
- Be the Mess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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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삶이 진짜 메시지다“ 저자는 다양한 일화를 소개하며 삶이 메시지가 되는 과정을 들여다본다. 그가 직접 체험한 일들과 그의 사랑하는 주변인들이 겪은 놀라운 삶의 모습이 증거가 된다. 그 중에 고통에 대처하는 신앙의 자세가 특히 마음에 와닿았다. 저자가 크고 작은 고통을 겪고, 극복하고, 때로는 깊이 좌절하며 얻은 사유는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고통은 본질적으로 변화시키는 힘이다. 고통을 겪고 나면 반드시 전과는 뭐라도 달라지게 되어 있다는 것이 저자가 얻은 깨달음이다. 고통이 불가해한 과정을 통해 우리만의 삶의 메시지를 빚어낸다고 말한다. 내가 겪고 있는 고통 속에 하나님이 일깨우시는 중요한 메시지가 숨어있다. 견딜 수 없는 고통을 남모르게 숨기려 애쓰지 말고, 자신의 독특한 경험을 통해 기적을 경험하는 경지로 나아가야 한다.
 
기적은 단지 한발을 내딛는 작은 용기에서 비롯된다. 고통 중에 얻은 귀한 메시지가 내 몸을 거쳐 밖으로 흘러가지 못하고 안에서 점멸하도록 버려두어서는 안된다. 저자는 다시 말한다. ”하나님은 우리의 약점과 실패를 통해 그분의 목적을 이루실 때가 훨씬 더 많다.“ 약한 나의 모습이 하나님이 쓰시기에 가장 좋은 모습이라는 사실이 큰 위로가 되었다. 또한 고통이 꼭 무익한 것만이 아님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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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의 메신저로 사는 길
 삶이 스스로 소리치게 하기 위해서 꼭 거창한 사역을 시작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 거룩한 동요에 사로잡혀 분연히 일어나야 하는 상황도 분명히 존재하지만, 시작점은 내 삶의 가까운 곳에 있다. 저자는 말한다. ”메세지가 되는 것은 언젠가, 먼 곳에서, 가끔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지금 여기서 항상 해야 하는 것이다.“ 눈 앞에 있는 사람이 사랑해야 할 사람이다. 소망을 가지고 품어야할 대상이며, 하나님이 그의 뜻을 이루어 나가시는 귀한 통로이다. 저자는 이를 위해 렉티오 디비나(lectio dibina)와 같은 거룩한 독서와 묵상을 권고한다. 일상 속에서하나님의 음성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따로 내어드리는 것이 중요하다. 책 속에는 작은 챕터가 끝나는 지점마다 묵상을 위한 유용한 실천법이 소개되어 있다.
 
하나님의 메신저로 사는 길은 생각처럼 거창한 것이 아니라 세상이 언뜻 깨닫지 못할 만큼 작고 소박하다. 이 땅에서 실현될 하나님의 나라는 누룩처럼 퍼져나가는 것이다. 세상이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거나 때때로 압제를 가하는 일이 벌어지더라도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비결은 내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에게 주도권을 내어드리는 일이다. 저자는 이것을 2인용 자전거에 비유해서 이야기한다. 나 자신이 뒷자리에 앉아서, 앞에 계신 예수님이 인도하시는 대로 그저 페달을 밟기만 하면 된다. 삶이 메시지가 되는 방법이란 결국 내가 삶을 주도적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삶을 내려놓는 일이라는 사실이 아이러니하다.
 
Be the Message. 이제는 메시지가 되고 싶다. 아니, 어떤 독특한 증거가 되고 싶다.  나만의 아픔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 공감을 이끌어내는 아픔이었으면 좋겠다고, 그래서 함께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나타내는 증거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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