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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 새롭게 읽기 - 예수님의 마지막 일곱 말씀에서 배우는 기독교 핵심
권해생 지음 / 두란노 / 2021년 10월
평점 :
책 소개
‘십자가 새롭게 읽기’는 예수님의 가상칠언을 중심으로 십자가의 의미를 탐구하고 이를 기독교의 7가지 핵심 주제들과 연결한 십자가 안내서이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행하신 말씀과 그 뜻은 무엇이었는지 보다 자세한 성경 해석을 통해 알 수 있다.
책 구성
책은 총211p로, 크게 가상칠언에 따라 7개의 챕터로 구분되어 내용을 전하고 있다. 가상칠언을 시간 순서가 아닌 권별로 해설하여 권별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 주제를 드러내셨다.
에필로그 '왜 십자가인가?', '십자가형이란?', '유언으로서의 가상칠언'을 통해 본문의 이해를 돕고 있다.
각 챕터마다 ‘결론’ 문단을 통해 이해를 도왔고, 묵상과 적용을 통해 십자가의 의미를 오늘날 우리 삶에 적용하려고 하셨다. 끝으로는 토론과 나눔을 위한 질문지가 삽입되어 있어 십자가를 공부하는 공동체에 도움을 주셨다.
저자 소개
저자는 권해생 교수님이시다. 국제신학대학원대학교에서 신약학을 가르치고 계시며 성경을 싶이 연구하시는 성경학자이시기도 하다. 누구든지 이해하기 쉽도록 명쾌하게 전달하시는 교수님, 책을 읽으면서 새로 알게되는 본문들로 해석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인상 깊은 구절과 내용
1. 임마누엘을 위한 십자가
" 제구시쯤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 질러 이르시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 (마27:46)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다음 성경구절을 잘 알고 있을 것 같다. 버림받으신 예수님, 하나님과 분리되는 고통을 호소하시는 예수님. '예수님도 그 고통가운데 힘들어 하셨구나' 예수님의 고통이 절절하게 느껴진다. 그런데 이 말씀 안에는 예수님의 고통에서 나아가 더 깊고 확장된 의미가 숨겨져 있다고 한다. 3가지 해석 원리를 통해 깊은 의미를 알 수 있는데 시편 22편의 배경, 마태복음의 문맥, 초대교회의 신앙 고백이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라는 말씀은 시편 22편 1절의 말씀이다. 시편 22편은 버림받은 자의 고통을 노래하는 탄식시인데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께 버림받은 자신의 고통을 이 시편을 인용하여 분명하게 드러내신 것이다. 또한 예수님은 하나님을 주로 아버지라 부르셨는데, 다음 말씀 구절에서는 아버지가 아닌 하나님이라고 부르셨음을 알 수 있다.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예수님께서 하나님이라 호칭하신 것에는 하나님께 버림받은 예수님의 고통이 담겨있다고 볼 수 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 버림받으셨다.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지고 심판당하심으로, 곧 버림받으심으로 우리가 버림받지 않게 되었다. 예수님은 우리와 함께하기를 원하시는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자 피하고 싶은 잔이었던 십자가를 지신 것이다. 하나님은 아들을 버리면서까지도 우리를 구원하신 분이다. 버림받으신 예수님의 부르짖음은 그만큼 우리를 버리지 않고 함께 하겠다는 하나님의 외침이다.
2. 희년을 위한 십자가
"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시더라 그들이 그의 옷을 나눠 제비 뽑을새 "
(눅 23:34)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저들을’ 용서하여 달라고 하나님 아버지께 기도했다. 예수님은 마지막 죽는 순간에도 사람들의 죄 용서를 위해 기도하셨다. 이는 예수님의 삶의 목표와 핵심 사역이 용서임을 알 수 있다. 죄 용서가 십자가의 핵심이고 기독교 신앙의 기초이지만, 이 책에서는 누가복음이 제시하는 십자가는 죄용서의 십자가에서 희년의 십자가까지 나아간다고 말하고 있다. 누가복음의 중심주제가 바로 희년인데 다음 본문에서 예수님은 이사야서의 말씀을 인용하시면서 희년을 선포하셨다.
“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였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눅 4:18-19)
주의 은혜의 해가 바로 희년인데, 희년이란 죄로부터 자유롭게 되고, 그래서 그 자유의 힘으로 너와 내가 행복한 세상이다. 희년은 구약과 신약에서도 그 내용을 찾아볼 수 있다. 레위기 25장에는 이스라엘의 희년 제도가 나온다.
"일곱째 달 열흘날은 속죄일이니 너는 뿔 나팔 소리를 내되 전국에서 뿔 나팔을 크게 불지며 너희는 오십 년째 해를 거룩하게 하여 그 땅에 있는 모든 주민을 위하여 자유를 공포하라 이 해는 너희에게 희년이니 너희는 각각 자기의 소유지로 돌아가며 각각 자기의 가족에게로 돌아갈지며" (레 25:9-10)
이스라엘이 50년마다 지켜야 했던 희년은 3가지 특성이 있다. 대속죄일, 땅을 돌려주는 것 그리고 종을 풀어주는 것이다. 이는 신약 누가복음에서 자유라는 정신에 의해 자세히 설명되는데 죄의 속박으로부터의 자유, 물질의 속박으로부터의 자유, 신분의 속박으로부터의 자유다. 누가복음에는 특히 예수님께서 차별받는 자들을 존귀히 여기심을 찾아볼 수 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기도하신 죄 용서는 우리로 하여금 희년의 세계로 들어가게 하는 관문이다. 십자가에서 죄와 책임과 형벌로부터 우리가 자유케 되었으며 죄 용서의 은혜와 더불어 물질과 신분의 속박으로부터의 자유를 얻어 서로를 존귀하게 여길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자신의 물질을 다른 사람과 나누며 약한 자들을 돕고 섬길 수 있다. 이것이 하나님 나라에서만 누릴 수 있는 참 자유임을 깨닫고 자유함을 누리는 삶이 되기를 소망한다.
3. 구원을 위한 십자가
“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내게 이르노니 오늘 내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 (눅 23:43)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예수님 양쪽에서 함께 십자가형을 받은 한 행악자에게 하신 말씀이다.
구원을 위한 십자가에서 가장 깊이 깨달았던 것은 구원받기 위해 내가 예수님을 믿은 것 같은데 사실은 나를 구원하시려는 예수님의 열심이 있었다는 것이다. 예수님의 구원의 열심의 결정체가 십자가이며, 십자가 속에 구원하시자고 하는 하나님의 뜻을 분명히 알 수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기도하는 것보다 넘치게 역사하시는 분이고, 기대했던 것보다 더 풍성하게 이루시는 분이다. 예수님 오른쪽에 있었던 행악자는 예수님께 자신을 기억하여 달라고 조금의 자비를 베풀어주실 것을 요청했지만, 예수님께서는 기억하는 정도가 아니라 "네가 나와 함께 있으리라" 그와 함께 있을 것을 약속하셨다. 우리에게 기대 이상으로 베푸시는 예수님의 구원과 은혜는 나의 열심보다 하나님의 열심, 예수님의 열심이 훨씬 더 강하기 때문이다. 죽음보다 강한 그분의 열심으로 우리는 구원받을 수 있다. 내가 믿은 것 같은데 내가 믿을 수 있을 때까지 기다리시고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로운 열심으로 오늘의 내가 있을 수 있다.
4. 믿음을 위한 십자가
" 예수께서 큰 소리로 불러 이르시되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하고 이 말씀을 하신 후 숨지시니라 " (눅 23:46)
나는 믿음에 대해 많은 궁금을 가진 사람이었다. 왜 믿음일까, 구원의 통로로 왜 믿음을 사용하실까. 혼자 많이 고민하고 유추했지만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믿음이라는 생각이었다. 여전히 왜 믿음인지는 아직 잘 모르겠지만 이 본문을 통해 내가 무엇을 어떻게 믿어야 하는지 확신을 얻을 수 있었다. 무엇보다 예수님이 우리의 믿음의 본이셨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달으며 마음의 부담도 조금 내려놓을 수 있었다. 누가복음에서는 하나님의 주권이 강조되어 나온다. 그리고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예수님의 믿음을 볼 수 있다. 예수님은 기쁘신 그의 뜻대로 약속을 성취하시며 계획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주권을 신뢰하셨고 어려움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의지하셨다. 예수님 자신이 하나님의 뜻 안에 있음을 알고, 하나님의 뜻 안에 자신을 맡기신 것이다. 그 모습은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본이 되며 우리 역시 하나님께 내어드리는 맡기는 믿음이 필요함을 말해준다.
5. 새로운 가족을 위한 십자가
“예수께서 자기의 어머니와 사랑하시는 제자가 곁에 서 있는 것을 보시고 자기 어머니께 말씀하시되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하시고 또 그 제자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 어머니라 하신대 그때부터 그 제자가 자기 집에 모시니라” (요 19:26-27)
십자가에서 예수님께서 어머니를 ‘여자여’라고 표현하셨다. 예수님은 왜 어머니를 여자여?라고 부르셨을까. 존중의 표현이라고 생각해도 성경을 읽는 나에게 깊은 뜻을 발견하기란 어려움이 있다. 그러나 예수님의 어머니를 향한 ‘여자여’의 호칭은 가나 혼인 잔치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데, 포도주가 떨어졌음을 자신에게 알리는 어머니를 향해 예수님은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요2:4)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이는 어머니가 예수님께 아들 이상의 활약을 기대하자, 예수님도 그녀를 어머니가 아닌 제3자로 대우하신 것이다. (그리고 어머니는 그 뒤 하인들에게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라고 말하며 제자의 믿음을 보여주셨다.) 이는 예수님께서 “여자여”라고 부르신 것에서는 어머니가 아니라 제3자로 객관화하신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예수님이 어머니와 사랑하는 제자를 연결하신 것은 자신의 부모님을 자신이 죽은 후에 책임져줄 것을 부탁하는 의미보다 제3자들끼리 예수님 안에서 새로운 가족이 된다는 것을 말씀하신 것으로 해석한다. 또한 십자가 위에서 가족을 선언하신 예수님의 말씀에는 분명 예수님을 믿고 죄 용서를 받은 사람이 새롭게 태어나 예수님이 세우시는 가족의 구성원이 된다는 뜻이 숨겨져 있을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님의 피의 대가로 자녀가 되었다는 사실을 잊지 않아야 한다. 한 사람 한 사람 존귀하고 소중한 존재이며 우리는 십자가에서 예수님이 우리를 사랑하셨던 방식으로 우리도 우리의 형제자매에게 십자가 사랑으로 대해야 한다. 자기를 낮추고 다른 사람을 높이며 세워주는 사랑인 것이다.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가졌다.
6. 목마름 해소를 위한 십자가
“예수께서 자기의 어머니와 사랑하시는 제자가 곁에 서 있는 것을 보시고 자기 어머니께 말씀하시되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하시고 또 그 제자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 어머니라 하신대 그때부터 그 제자가 자기 집에 모시니라” (요 19:26-27)
십자가에서 예수님께서 어머니를 ‘여자여’라고 표현하셨다. 예수님은 왜 어머니를 여자여?라고 부르셨을까. 존중의 표현이라고 생각해도 성경을 읽는 나에게 깊은 뜻을 발견하기란 어려움이 있다. 그러나 예수님의 어머니를 향한 ‘여자여’의 호칭은 가나 혼인 잔치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데, 포도주가 떨어졌음을 자신에게 알리는 어머니를 향해 예수님은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요2:4)라고 말씀하셨다. 이는 어머니가 예수님께 아들 이상의 활약을 기대하자, 예수님도 그녀를 어머니가 아닌 제3자로 대우하신 것이다. (그리고 어머니는 그 뒤 하인들에게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라고 말하며 제자의 믿음을 보여주셨다.) 이는 예수님께서 “여자여”라고 부르신 것에서는 어머니가 아니라 제3자로 객관화하신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예수님이 어머니와 사랑하는 제자를 연결하신 것은 자신의 부모님을 자신이 죽은 후에 책임져줄 것을 부탁하는 의미보다 제3자들끼리 예수님 안에서 새로운 가족이 된다는 것을 말씀하신 것으로 해석한다. 또한 십자가 위에서 가족을 선언하신 예수님의 말씀에는 분명 예수님을 믿고 죄 용서를 받은 사람이 새롭게 태어나 예수님이 세우시는 가족의 구성원이 된다는 뜻이 숨겨져 있을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님의 피의 대가로 자녀가 되었다는 사실을 잊지 않아야 한다. 한 사람 한 사람 존귀하고 소중한 존재이며 십자가에서 예수님이 우리를 사랑하셨던 방식으로 우리도 우리의 형제자매에게 십자가 사랑으로 대해야 한다. 자기를 낮추고 다른 사람을 높이며 세워주는 십자가 사랑으로.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가족이 되는 권세를 가졌다.
7. 새 창조를 위한 십자가
" 그 후에 예수께서 모든 일이 이미 이루어진 줄 아시고 성경을 응하게 하려 하사 이르시되 내가 목마르다 하시니 " (요 19:28)
시편 69편에서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영적 고통으로 인해 다윗이 힘들어 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아무리 하나님께 부르짖어도 응답하지 않으셨고 그에 다윗은 계속 반복적으로 “응답하소서”라고 고백했다.
“내가 부르짖음으로 피곤하여 나의 목이 마르며 나의 하나님을 바라서 나의 눈이 쇠하였나이다" (시69:3)
다윗은 목이 탈 정도로 하나님께 부르짖었으나 하나님은 얼굴을 가리시고 아무런 응답을 하지 않으셨다. 다윗은 당시 상황에서 육체의 고통, 적들로부터 오는 관계의 고통, 영적인 고통을 겪고 있었다.
그런데 십자가에서 예수님이 당하시는 고통 역시 다음과 같았다. 십자가에서 예수님이 겪으신 목마름은 십자가에 달리신 육체적 고통과, 사람들로부터 오는 고통, 그리고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으로부터 오는 고통이 있었다. 나는 십자가를 생각할 때 예수님이 느끼셨을 육체적 고통에 초점이 맞춰졌던 것 같다. 기독교 영화나 영상을 보면 더욱 그러한 부분이 부각되고 인간으로서 그 고통이 얼마나 아플지 짐작이 가기 때문에 더욱 마음이 쏠렸던 것 같다. 예수님께서는 살이 찢기고 못이 박히는 육체적 고통으로 아파하셨지만 단순한 육체적 고통에 그치지 않으셨다. 오히려 그보다 더 크고 깊은 고통인 사람들로부터 당하는 관계의 고통과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을 당하는 영적 고통이 있었음을 잊지 말아야한다.
바리새인과 대제사장은 끊임없이 예수님을 잡아 죽이려 했으며 사람들로부터 거절과 수치를 당하셨다. 믿었던 제자들 역시 예수님을 부인하고 배신했으며 예수님의 말씀을 깨닫지 못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예수님께서는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으로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을 받으셨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이런 고통을 당하심으로 예수님을 믿는 자가 이런 고통을 당하지 않게 하셨다.
하나님이 없는 인간이 당하는 비참한 상태가 목마름인데 예수님이 이 목마름의 심판을 당하심으로 우리를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낙원으로 인도하신다. 나는 하나님과의 단절된 느낌을 받을 때마다 두려움에 휩싸인다. 다윗가 같이 하나님을 부르짖어도 응답하시지 않는 듯한 해소되지 않는 목마름으로 힘들어 한다. 그러나 그 목마름은 잠시 잠깐 하나님을 더욱 의지하고 찾기 위한 하나님의 선하신 응답일 수 있으나 우리의 영원한 목마름은 이미 십자가를 통해 해소되었음을 믿고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 속으로 더욱 나아가길 소망한다.
책을 읽고 나서
몇 달 전, 엄마에게 생일 선물로 십자가 목걸이를 받고 싶다고 했다. 항상 몸에 지니고 다니다닐 수 있다보니 크리스천이라는 책임감을 나 스스로에게 주고 싶었던 마음이 제일 컸다. 그런데 엄마는 “십자가는 결코 장식이 될 수 없어’ 라고 말했고 조금 더 고민해보고 사주신다고 하셨다.
나도 십자가를 장식으로 생각한 적은 없기에 그땐 조금 속상했다. 하지만 엄마에겐 십자가의 무게가 나보다 더욱 무거웠고 그 십자가 은혜는 어떤 이유로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무엇이었던 것 같다.
나도 이 책을 통해 얻은 점이 있다면 십자가의 무게가 무거워졌다는 점이다. 주로 신앙서적을 통해 궁금했던 신학적인 질문들이 해소되는 즐거움과 은혜를 누리는 나에겐 흔치 않은 경험이었다. 혼자 씨름했던 질문들에 대한 해답이 명쾌하게 적혀있으니 자유롭고 기쁨으로 주님을 사랑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번 ‘십자가 새롭기 읽기’를 읽으면서는 해방되는 것이 아닌 묵직한 고통과 사랑이 내 안에 들어왔다. 그리고 십자가의 무게가 더욱 무거워졌음에도 내 마음은 평안과 감사를 느낀다. 십자가 위에서 말씀하신 예수님의 말씀들은 어쩌면 우리에게 가장 필요하고 중요한 요약집이 아니었을까. 임마누엘, 희년, 구원, 믿음, 새로운 가족, 목마름 해소, 새 창조. 이 모든 것이 십자가로부터 시작되었음을, 십자가에서 우리의 신분이 바뀌었음을 이 책에서는 성경을 근거하여 말해주고 있다. 십자가는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죄에 대해 진노하시는 하나님의 공의가 동시에 드러난다. 그리고 우리를 너무 사랑하시는 나머지 죄를 모르시는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와 책임과 형벌을 담당하셨고 그를 믿음으로 우리에게 다시금 하나님의 자녀로 나아갈 수 있는 권세를 주셨다. 우리는 그 십자가 은혜를 가슴에 새기고 매일 감사의 고백을 올려야 될 것이다. 십자가를 새롭게 바라볼 때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더욱 잘 알게 될 것이다. 십자가에서 선포하신 말씀이 이뤄지는 삶과 공동체, 주님의 나라가 되기까지 우리는 오늘도 십자가를 붙들고 기도하며, 나의 십자가를 지고 세상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추천대상
사실 이 책은 초신자 분들이 읽기보다 믿음 생활을 하고 있는 성도님들이 읽으면 더 좋을 것 같다. 우리가 매일 찬양하고 고백했던 십자가를 바로 이해할 수 있으며 그에 따라 십자가의 깊이가 새롭게 정의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