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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나안에 거하다 - 광야 인생에게 건네는 가나안 일상 광야 시리즈
이진희 지음 / 두란노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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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가나안에 거하다'는 이진희 목사님의 <광야를 읽다> <광야를 살다> 에 뒤이은 광야 시리즈의 완결편이라고 할 수 있다.

약속의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알고 있는 가나안이 실제로는 우리의 허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폭로하며 왜곡된 의미를 바로 잡기 위한 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책에서는 서로 맞물려 있는 광야와 가나안을 자세히 설명한다. 사실 광야와 가나안을 서로 상반된 곳이라고 생각했던 나에게는 이해하기까지 혼란스러운 과정도 있었다. 그러나 이 책은 광야와 가나안 각각의 환경은 조금 다를 수 있지만 하나님이 우리를 인도해가시는 곳이 곧 우리의 가나안이며 하나님이 없는 가나안은 광야이며, 하나님이 계신 광야는 가나안임을 말해준다.

책 구성

책은 총 p.295로 긴 분량에 속하고 10개의 챕터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책 디자인이 정말 예쁘다. 광야를 표현한 것 같은데 색감도 정말 예쁘다.

책 곳곳에 그림이 삽입되어 있어 이해하기가 한결 수월했고, 매번 성경으로 읽고 듣기만 했던 것들의 사진을 새롭고 생생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저자소개

가나안에 거하다의 저자는 이진희 목사님이시다. 10년 넘게 광야를 연구한 광야 전문가이자 광야 러버이신 목사님은 광야 시리즈를 통해 성경 속에 나타난 광야를 역사적, 문화적, 지리적으로 쉽게 해석해 주셨다

총정리.

지금까지 들은 설교와 상상을 더한가나안이라고 하면 젖과 꿀이 흐르는 땅,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축복의 땅으로만 생각했던 나에게 이 책은 가나안에 대한 잘못된 지식과 환상을 깨트리기에 충분했던 책이었던 것 같다.

가나안은 사실 산악지대로 가득찼으며 비가 내리지 않으면 농사를 지을 수 없는 척박한 땅이었다. 물론 가나안에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있었지만 그곳에는 블레셋이 이미 거주하고 있었기에 애굽땅에서 나와 가나안을 향해 갔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서 처럼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 가나안 땅에 살았다.

가나안은 비가 풍족하게 내리는 비옥한 땅은 아니었지만 하나님께서 택하심으로 철을 따라 비를 내려주셨고 옥토가 되었고 가나안은 하나님이 돌보아주셔야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땅이 되었다.

아마 그렇기에 길고 긴 40년의 광야 생활을 지나 들어간 가나안은 실망 그 자체였을 것 같다. 말만 들어도 숨이 턱 막히는 광야 생활을 청산하고 가나안에 들어갔는데 여전히 어려운 환경에 이전 애굽을 더 그리워하는 원망도 나왔다.

사실 그들은 가나안에 입문할 때부터 정착하기까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았고 하나님께서 경계하시던 모습이 그대로 나타났다. 그들은 가나안에 들어가 정복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했고 그들을 진멸하지 않음으로 고생을 당했다. 결국 죄악이 가득한 가나안 땅에 동화되어 죄악을 저질렀고 바알을 떠나 하나님께로 돌아오라는 선지자의 말을 무시한 채 끝내 하나님께 돌아오지 않았다. 그리고 결국 그들은 다시 가나안에서 쫓겨나 광야로 돌아가게 된다.

이렇게 광야과 가나안을 둘러싼 길고 긴 성경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치시는 것일까. 일단 가나안이 고생끝 행복시작은 아니라는 것이다.

광야는 하나님만 바라볼 수밖에 없으며 하나님밖에 의지할 대상이 없는 곳이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법과 모든 것에 감사할 수 있는 마음을 훈련받는 곳이며 우리의 믿음이 견고해지는 통로다.

반대로 가나안은 만나로만 사는 곳이 아니며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축복의 땅에서 누리며 살 수 있는 장소다.

그러나 자칫하면 내힘으로 했다고 착각하며 우리가 교만하여 하나님을 떠날 수도 있는 곳이다. 어쩌면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 뜻을 구하기 위해서 광야보다 더 큰 노력이 필요한 곳일 수도 있다.

가나안은 광야를 통과해야만 들어갈 수 있듯 우리는 하나님께서 택하신 땅에 들어가 그 나라를 이루고 살기 위해선 하나님의 사람으로 준비가 필요하다. 그리고 준비하고 훈련받는 곳이 광야인 것이다.

광야는 빨리 벗어나야하는 곳도 아니고, 빨리 통과한다고 해서 좋은 것도 아니다.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땅에서 살 준비를 충분히 해야하는 곳이다. 하나님만을 더 의지하는 법을 배우고, 교만하지 않고 감사하는 마음을 배우는 곳이다 그렇기에 제대로된 준비 없이 들어가면 우리는 반드시 실패하게 되어있고 몇번이고 다시 광야로 돌아갈 수 있다.

훈련의 장소인 광야는 가나안보다 좋지 않은 곳인가?

절대 그렇지 않다. 오직 내 약함과 주님만 드러나는 그곳에서 주님 말씀에 순종하고 주님이 우리의 목자되심을 인정하면 그곳은 우리의 가나안이 된다.  모든 것을 풍족하게 누리며 살아가지만 그곳에 하나님이 계시지 않다면 가나안이 아닌 영적 광야에 살아가고 있는 것일 것이다.

과연 나는 지금 가나안에 있는가 광야에 있는가. 내가 처한 환경을 넘어 하나님을 바라보는 시선과 신경은 광야와 같은가 여전히 교만한가 돌아본다. 나와 나와 함께하는 동역자와 이 세계는 어디를 걷고 있는가.

하나님 내가 지금 가나안에서 잘 살고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축복들을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답게 사용하고 있습니까?

하나님 우리가 지나고 있는 코로나라는 광야를 잘 지나고 있습니까?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하고 있으며 코로나가 끝난 날 하나님을 잊고 교만하지는 않을까요?

나는 어려움이 불쑥 찾아올 때면 '광야를 지나고 있나? 왜 나에게 이런 시련을 주신거지' 슬퍼하며 하나님께 간구했다. 그러나 나에게 주어진 광야의 삶은 그 어려움을 넘어서기 위한 훈련이 아니라 하나님을 의지하고 바라보기 위한 훈련이었음에도 빨리 광야를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던 것 같다. 고난을 광야로 생각했던 나였기에 광야에서 얻을 수 있는 최고의 선물 '어느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의지하고 주신 것이 감사할 수 있는 은혜'를 조금은 훈련받지 못했지 않을까. 그렇기에 하나님께서 다시 광야로 불러들이시고 말씀하시는 것 같다.

며칠 전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해주시는 것 같았다.

나는 하나님이 필요하고 하나님은 내가 필요하가고 말씀해주신다. 내 삶의 전부는 하나님이셔야 한다. 그렇기에 우리는 지금 어디에 있든 크게 문제될 것이 없다. 나를 광야로 인도하시든 가나안을 허락하셨든 우리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분은 선하신 하나님이시며 하나님이 계신 그곳이 우리의 진짜 가나안인 것이다. 우리의 최종 목적지인 하늘 가나안이 들어가기까지우리는 광야에서 훈련받고 가나안에서 그 땅을 지켜내야한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며 말이다.

인상 깊은 구절

가나안에 들어간다고 고생 끝, 행복 시작은 아니다. 가나안에 들어가 그 땅을 차지해야 한다. 그러나 차지하는 것으로 끝이 아니다. 지켜 내는 것은 더 어렵다. … 그러기 위해서는 치열한 영적 전쟁을 해야한다. 이 영적 전쟁에서 승리해야 한다. 그래야 가나안을 누릴 수 있다. P. 156

추천대상

- 광야를 걷고 있다고 생각이 드시는 분

- 성경 속 광야와 가나안에 대해 역사적 사실을 알고 싶으신 분

- 풍족하지만 감사와 은혜가 느껴지지 않는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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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 새롭게 읽기 - 예수님의 마지막 일곱 말씀에서 배우는 기독교 핵심
권해생 지음 / 두란노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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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십자가 새롭게 읽기’는 예수님의 가상칠언을 중심으로 십자가의 의미를 탐구하고 이를 기독교의 7가지 핵심 주제들과 연결한 십자가 안내서이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행하신 말씀과 그 뜻은 무엇이었는지 보다 자세한 성경 해석을 통해 알 수 있다.


책 구성

책은 총211p로, 크게 가상칠언에 따라 7개의 챕터로 구분되어 내용을 전하고 있다. 가상칠언을 시간 순서가 아닌 권별로 해설하여 권별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 주제를 드러내셨다.

에필로그 '왜 십자가인가?', '십자가형이란?', '유언으로서의 가상칠언'을 통해 본문의 이해를 돕고 있다.

각 챕터마다 ‘결론’ 문단을 통해 이해를 도왔고, 묵상과 적용을 통해 십자가의 의미를 오늘날 우리 삶에 적용하려고 하셨다. 끝으로는 토론과 나눔을 위한 질문지가 삽입되어 있어 십자가를 공부하는 공동체에 도움을 주셨다. ​



저자 소개


저자는 권해생 교수님이시다. 국제신학대학원대학교에서 신약학을 가르치고 계시며 성경을 싶이 연구하시는 성경학자이시기도 하다. 누구든지 이해하기 쉽도록 명쾌하게 전달하시는 교수님, 책을 읽으면서 새로 알게되는 본문들로 해석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인상 깊은 구절과 내용


1. 임마누엘을 위한 십자가


" 제구시쯤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 질러 이르시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 (마27:46)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다음 성경구절을 잘 알고 있을 것 같다. 버림받으신 예수님, 하나님과 분리되는 고통을 호소하시는 예수님. '예수님도 그 고통가운데 힘들어 하셨구나' 예수님의 고통이 절절하게 느껴진다. 그런데 이 말씀 안에는 예수님의 고통에서 나아가 더 깊고 확장된 의미가 숨겨져 있다고 한다. 3가지 해석 원리를 통해 깊은 의미를 알 수 있는데 시편 22편의 배경, 마태복음의 문맥, 초대교회의 신앙 고백이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라는 말씀은 시편 22편 1절의 말씀이다. 시편 22편은 버림받은 자의 고통을 노래하는 탄식시인데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께 버림받은 자신의 고통을 이 시편을 인용하여 분명하게 드러내신 것이다. 또한 예수님은 하나님을 주로 아버지라 부르셨는데, 다음 말씀 구절에서는 아버지가 아닌 하나님이라고 부르셨음을 알 수 있다.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예수님께서 하나님이라 호칭하신 것에는 하나님께 버림받은 예수님의 고통이 담겨있다고 볼 수 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 버림받으셨다.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지고 심판당하심으로, 곧 버림받으심으로 우리가 버림받지 않게 되었다. 예수님은 우리와 함께하기를 원하시는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자 피하고 싶은 잔이었던 십자가를 지신 것이다. 하나님은 아들을 버리면서까지도 우리를 구원하신 분이다. 버림받으신 예수님의 부르짖음은 그만큼 우리를 버리지 않고 함께 하겠다는 하나님의 외침이다.

2. 희년을 위한 십자가


"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시더라 그들이 그의 옷을 나눠 제비 뽑을새 " 

(눅 23:34)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저들을’ 용서하여 달라고 하나님 아버지께 기도했다. 예수님은 마지막 죽는 순간에도 사람들의 죄 용서를 위해 기도하셨다. 이는 예수님의 삶의 목표와 핵심 사역이 용서임을 알 수 있다. 죄 용서가 십자가의 핵심이고 기독교 신앙의 기초이지만, 이 책에서는 누가복음이 제시하는 십자가는 죄용서의 십자가에서 희년의 십자가까지 나아간다고 말하고 있다. 누가복음의 중심주제가 바로 희년인데 다음 본문에서 예수님은 이사야서의 말씀을 인용하시면서 희년을 선포하셨다.


“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였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눅 4:18-19)


주의 은혜의 해가 바로 희년인데, 희년이란 죄로부터 자유롭게 되고, 그래서 그 자유의 힘으로 너와 내가 행복한 세상이다. 희년은 구약과 신약에서도 그 내용을 찾아볼 수 있다. 레위기 25장에는 이스라엘의 희년 제도가 나온다.


"일곱째 달 열흘날은 속죄일이니 너는 뿔 나팔 소리를 내되 전국에서 뿔 나팔을 크게 불지며 너희는 오십 년째 해를 거룩하게 하여 그 땅에 있는 모든 주민을 위하여 자유를 공포하라 이 해는 너희에게 희년이니 너희는 각각 자기의 소유지로 돌아가며 각각 자기의 가족에게로 돌아갈지며" (레 25:9-10)


이스라엘이 50년마다 지켜야 했던 희년은 3가지 특성이 있다. 대속죄일, 땅을 돌려주는 것 그리고 종을 풀어주는 것이다. 이는 신약 누가복음에서 자유라는 정신에 의해 자세히 설명되는데 죄의 속박으로부터의 자유, 물질의 속박으로부터의 자유, 신분의 속박으로부터의 자유다. 누가복음에는 특히 예수님께서 차별받는 자들을 존귀히 여기심을 찾아볼 수 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기도하신 죄 용서는 우리로 하여금 희년의 세계로 들어가게 하는 관문이다. 십자가에서 죄와 책임과 형벌로부터 우리가 자유케 되었으며 죄 용서의 은혜와 더불어 물질과 신분의 속박으로부터의 자유를 얻어 서로를 존귀하게 여길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자신의 물질을 다른 사람과 나누며 약한 자들을 돕고 섬길 수 있다. 이것이 하나님 나라에서만 누릴 수 있는 참 자유임을 깨닫고 자유함을 누리는 삶이 되기를 소망한다.

3. 구원을 위한 십자가


“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내게 이르노니 오늘 내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 (눅 23:43)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예수님 양쪽에서 함께 십자가형을 받은 한 행악자에게 하신 말씀이다.


구원을 위한 십자가에서 가장 깊이 깨달았던 것은 구원받기 위해 내가 예수님을 믿은 것 같은데 사실은 나를 구원하시려는 예수님의 열심이 있었다는 것이다. 예수님의 구원의 열심의 결정체가 십자가이며, 십자가 속에 구원하시자고 하는 하나님의 뜻을 분명히 알 수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기도하는 것보다 넘치게 역사하시는 분이고, 기대했던 것보다 더 풍성하게 이루시는 분이다. 예수님 오른쪽에 있었던 행악자는 예수님께 자신을 기억하여 달라고 조금의 자비를 베풀어주실 것을 요청했지만, 예수님께서는 기억하는 정도가 아니라 "네가 나와 함께 있으리라" 그와 함께 있을 것을 약속하셨다. 우리에게 기대 이상으로 베푸시는 예수님의 구원과 은혜는 나의 열심보다 하나님의 열심, 예수님의 열심이 훨씬 더 강하기 때문이다. 죽음보다 강한 그분의 열심으로 우리는 구원받을 수 있다. 내가 믿은 것 같은데 내가 믿을 수 있을 때까지 기다리시고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로운 열심으로 오늘의 내가 있을 수 있다.



4. 믿음을 위한 십자가


" 예수께서 큰 소리로 불러 이르시되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하고 이 말씀을 하신 후 숨지시니라 " (눅 23:46)


나는 믿음에 대해 많은 궁금을 가진 사람이었다. 왜 믿음일까, 구원의 통로로 왜 믿음을 사용하실까. 혼자 많이 고민하고 유추했지만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믿음이라는 생각이었다. 여전히 왜 믿음인지는 아직 잘 모르겠지만 이 본문을 통해 내가 무엇을 어떻게 믿어야 하는지 확신을 얻을 수 있었다. 무엇보다 예수님이 우리의 믿음의 본이셨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달으며 마음의 부담도 조금 내려놓을 수 있었다. 누가복음에서는 하나님의 주권이 강조되어 나온다. 그리고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예수님의 믿음을 볼 수 있다. 예수님은 기쁘신 그의 뜻대로 약속을 성취하시며 계획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주권을 신뢰하셨고 어려움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의지하셨다. 예수님 자신이 하나님의 뜻 안에 있음을 알고, 하나님의 뜻 안에 자신을 맡기신 것이다. 그 모습은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본이 되며 우리 역시 하나님께 내어드리는 맡기는 믿음이 필요함을 말해준다. ​



5. 새로운 가족을 위한 십자가


“예수께서 자기의 어머니와 사랑하시는 제자가 곁에 서 있는 것을 보시고 자기 어머니께 말씀하시되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하시고 또 그 제자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 어머니라 하신대 그때부터 그 제자가 자기 집에 모시니라” (요 19:26-27)


십자가에서 예수님께서 어머니를 ‘여자여’라고 표현하셨다. 예수님은 왜 어머니를 여자여?라고 부르셨을까. 존중의 표현이라고 생각해도 성경을 읽는 나에게 깊은 뜻을 발견하기란 어려움이 있다. 그러나 예수님의 어머니를 향한 ‘여자여’의 호칭은 가나 혼인 잔치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데, 포도주가 떨어졌음을 자신에게 알리는 어머니를 향해 예수님은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요2:4)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이는 어머니가 예수님께 아들 이상의 활약을 기대하자, 예수님도 그녀를 어머니가 아닌 제3자로 대우하신 것이다. (그리고 어머니는 그 뒤 하인들에게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라고 말하며 제자의 믿음을 보여주셨다.) 이는 예수님께서 “여자여”라고 부르신 것에서는 어머니가 아니라 제3자로 객관화하신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예수님이 어머니와 사랑하는 제자를 연결하신 것은 자신의 부모님을 자신이 죽은 후에 책임져줄 것을 부탁하는 의미보다 제3자들끼리 예수님 안에서 새로운 가족이 된다는 것을 말씀하신 것으로 해석한다. 또한 십자가 위에서 가족을 선언하신 예수님의 말씀에는 분명 예수님을 믿고 죄 용서를 받은 사람이 새롭게 태어나 예수님이 세우시는 가족의 구성원이 된다는 뜻이 숨겨져 있을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님의 피의 대가로 자녀가 되었다는 사실을 잊지 않아야 한다. 한 사람 한 사람 존귀하고 소중한 존재이며 우리는 십자가에서 예수님이 우리를 사랑하셨던 방식으로 우리도 우리의 형제자매에게 십자가 사랑으로 대해야 한다. 자기를 낮추고 다른 사람을 높이며 세워주는 사랑인 것이다.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가졌다.



6. 목마름 해소를 위한 십자가


“예수께서 자기의 어머니와 사랑하시는 제자가 곁에 서 있는 것을 보시고 자기 어머니께 말씀하시되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하시고 또 그 제자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 어머니라 하신대 그때부터 그 제자가 자기 집에 모시니라” (요 19:26-27)


십자가에서 예수님께서 어머니를 ‘여자여’라고 표현하셨다. 예수님은 왜 어머니를 여자여?라고 부르셨을까. 존중의 표현이라고 생각해도 성경을 읽는 나에게 깊은 뜻을 발견하기란 어려움이 있다. 그러나 예수님의 어머니를 향한 ‘여자여’의 호칭은 가나 혼인 잔치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데, 포도주가 떨어졌음을 자신에게 알리는 어머니를 향해 예수님은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요2:4)라고 말씀하셨다. 이는 어머니가 예수님께 아들 이상의 활약을 기대하자, 예수님도 그녀를 어머니가 아닌 제3자로 대우하신 것이다. (그리고 어머니는 그 뒤 하인들에게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라고 말하며 제자의 믿음을 보여주셨다.) 이는 예수님께서 “여자여”라고 부르신 것에서는 어머니가 아니라 제3자로 객관화하신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예수님이 어머니와 사랑하는 제자를 연결하신 것은 자신의 부모님을 자신이 죽은 후에 책임져줄 것을 부탁하는 의미보다 제3자들끼리 예수님 안에서 새로운 가족이 된다는 것을 말씀하신 것으로 해석한다. 또한 십자가 위에서 가족을 선언하신 예수님의 말씀에는 분명 예수님을 믿고 죄 용서를 받은 사람이 새롭게 태어나 예수님이 세우시는 가족의 구성원이 된다는 뜻이 숨겨져 있을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님의 피의 대가로 자녀가 되었다는 사실을 잊지 않아야 한다. 한 사람 한 사람 존귀하고 소중한 존재이며 십자가에서 예수님이 우리를 사랑하셨던 방식으로 우리도 우리의 형제자매에게 십자가 사랑으로 대해야 한다. 자기를 낮추고 다른 사람을 높이며 세워주는 십자가 사랑으로.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가족이 되는 권세를 가졌다.

7. 새 창조를 위한 십자가


" 그 후에 예수께서 모든 일이 이미 이루어진 줄 아시고 성경을 응하게 하려 하사 이르시되 내가 목마르다 하시니 " (요 19:28)​


시편 69편에서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영적 고통으로 인해 다윗이 힘들어 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아무리 하나님께 부르짖어도 응답하지 않으셨고 그에 다윗은 계속 반복적으로 “응답하소서”라고 고백했다.


“내가 부르짖음으로 피곤하여 나의 목이 마르며 나의 하나님을 바라서 나의 눈이 쇠하였나이다" (시69:3)

다윗은 목이 탈 정도로 하나님께 부르짖었으나 하나님은 얼굴을 가리시고 아무런 응답을 하지 않으셨다. 다윗은 당시 상황에서 육체의 고통, 적들로부터 오는 관계의 고통, 영적인 고통을 겪고 있었다.

그런데 십자가에서 예수님이 당하시는 고통 역시 다음과 같았다. 십자가에서 예수님이 겪으신 목마름은 십자가에 달리신 육체적 고통과, 사람들로부터 오는 고통, 그리고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으로부터 오는 고통이 있었다. 나는 십자가를 생각할 때 예수님이 느끼셨을 육체적 고통에 초점이 맞춰졌던 것 같다. 기독교 영화나 영상을 보면 더욱 그러한 부분이 부각되고 인간으로서 그 고통이 얼마나 아플지 짐작이 가기 때문에 더욱 마음이 쏠렸던 것 같다. 예수님께서는 살이 찢기고 못이 박히는 육체적 고통으로 아파하셨지만 단순한 육체적 고통에 그치지 않으셨다. 오히려 그보다 더 크고 깊은 고통인 사람들로부터 당하는 관계의 고통과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을 당하는 영적 고통이 있었음을 잊지 말아야한다.


바리새인과 대제사장은 끊임없이 예수님을 잡아 죽이려 했으며 사람들로부터 거절과 수치를 당하셨다. 믿었던 제자들 역시 예수님을 부인하고 배신했으며 예수님의 말씀을 깨닫지 못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예수님께서는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으로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을 받으셨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이런 고통을 당하심으로 예수님을 믿는 자가 이런 고통을 당하지 않게 하셨다.


하나님이 없는 인간이 당하는 비참한 상태가 목마름인데 예수님이 이 목마름의 심판을 당하심으로 우리를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낙원으로 인도하신다. 나는 하나님과의 단절된 느낌을 받을 때마다 두려움에 휩싸인다. 다윗가 같이 하나님을 부르짖어도 응답하시지 않는 듯한 해소되지 않는 목마름으로 힘들어 한다. 그러나 그 목마름은 잠시 잠깐 하나님을 더욱 의지하고 찾기 위한 하나님의 선하신 응답일 수 있으나 우리의 영원한 목마름은 이미 십자가를 통해 해소되었음을 믿고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 속으로 더욱 나아가길 소망한다.


책을 읽고 나서


몇 달 전, 엄마에게 생일 선물로 십자가 목걸이를 받고 싶다고 했다. 항상 몸에 지니고 다니다닐 수 있다보니 크리스천이라는 책임감을 나 스스로에게 주고 싶었던 마음이 제일 컸다. 그런데 엄마는 “십자가는 결코 장식이 될 수 없어’ 라고 말했고 조금 더 고민해보고 사주신다고 하셨다.

나도 십자가를 장식으로 생각한 적은 없기에 그땐 조금 속상했다. 하지만 엄마에겐 십자가의 무게가 나보다 더욱 무거웠고 그 십자가 은혜는 어떤 이유로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무엇이었던 것 같다.


나도 이 책을 통해 얻은 점이 있다면 십자가의 무게가 무거워졌다는 점이다. 주로 신앙서적을 통해 궁금했던 신학적인 질문들이 해소되는 즐거움과 은혜를 누리는 나에겐 흔치 않은 경험이었다. 혼자 씨름했던 질문들에 대한 해답이 명쾌하게 적혀있으니 자유롭고 기쁨으로 주님을 사랑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번 ‘십자가 새롭기 읽기’를 읽으면서는 해방되는 것이 아닌 묵직한 고통과 사랑이 내 안에 들어왔다. 그리고 십자가의 무게가 더욱 무거워졌음에도 내 마음은 평안과 감사를 느낀다. 십자가 위에서 말씀하신 예수님의 말씀들은 어쩌면 우리에게 가장 필요하고 중요한 요약집이 아니었을까. 임마누엘, 희년, 구원, 믿음, 새로운 가족, 목마름 해소, 새 창조. 이 모든 것이 십자가로부터 시작되었음을, 십자가에서 우리의 신분이 바뀌었음을 이 책에서는 성경을 근거하여 말해주고 있다. 십자가는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죄에 대해 진노하시는 하나님의 공의가 동시에 드러난다. 그리고 우리를 너무 사랑하시는 나머지 죄를 모르시는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와 책임과 형벌을 담당하셨고 그를 믿음으로 우리에게 다시금 하나님의 자녀로 나아갈 수 있는 권세를 주셨다. 우리는 그 십자가 은혜를 가슴에 새기고 매일 감사의 고백을 올려야 될 것이다. 십자가를 새롭게 바라볼 때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더욱 잘 알게 될 것이다. 십자가에서 선포하신 말씀이 이뤄지는 삶과 공동체, 주님의 나라가 되기까지 우리는 오늘도 십자가를 붙들고 기도하며, 나의 십자가를 지고 세상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추천대상


사실 이 책은 초신자 분들이 읽기보다 믿음 생활을 하고 있는 성도님들이 읽으면 더 좋을 것 같다. 우리가 매일 찬양하고 고백했던 십자가를 바로 이해할 수 있으며 그에 따라 십자가의 깊이가 새롭게 정의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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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기다리는 기독교 - 1세기 그리스도인들처럼 세상을 감동시키다
스캇 솔즈 지음, 정성묵 옮김 / 두란노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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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기독교에 관한 좋은 기사들과 (교역자의 성범죄, 코로나 방역•••) 성령의 열매들을 맺지 못하는 크리스천의 삶들로 인해 세상은 기독교에 기대하는 것이 없다. 기독교인들에게 바라는 하나 있다면 조용히 남에게 피해주지 말고 혼자 믿으라는 것이다.

사람들은 크리스천들에게 실망한 것을 넘어 기독교 자체에 대한 매력을 찾는 것도 힘든 같다. 금주, 흡연, 혼전순결, 헌신. 세상이 말하는 즐거움과 반대로 흘러가는 듯한 기독교는 매력도 재미도 없어보인다.

그러나 책은 본래 기독교는 사람들이 거부할 없는 복음이라고 말한다. 크리스천이 정말 그리스도인답게 살아간다면 세상이 거부할 없는 복음, 세상이 거부할 없이 매력적인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이다. 세상이 기대하는 믿음, 세상이 기다리는 그리스도인으로 거듭나기 원한 다면 책이 도움을 있을 것이다.

 

구성.

책은 280p 3부분의 파트와 프롤로그, 기도문으로 구성되어있다.

Part.1 세상은본래의 기독교 원한다.

part.2 세상이 기대하는바로 공동체 되려면

part.3 예수로 입고 우리를 기다리는세상 속으로

저자 소개.

책의 저자는 스캇 솔즈 목사님이다. 목사님은 현재 내슈빌에서 그리스도장로교회의 담임 목사로 부임하고 계시며 비전과 복음 DNA 교회와 도심에 심어가고 계신다. 책에서도 목사님의 사역 방향을 느끼고 배울 있었는데 교회의 보전을 넘어 그리스도인들이 세상과 문화에 사려 깊게 참여하고 일터에서 믿음을 실천하며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돌보도록 만드는 최선을 다하고 계신다는 것을 느낄 있다. 초대 교회 성도들처럼 예수님의 참된 제자로 거듭나 같이 세상 속으로 가자고 사역과 책을 통해 말씀하시는 것이다.

+++ 예전에 5 동안 켈러 목사님과 함께 사역한 경험이 있다고 하셨는데 중간중간에도 팀켈러 목사님이 언급되는 부분도 재밌었다!

인상 깊은 구절.

그리스도는 우리를 있는 모습 그대로 초대하신다. 하지만 우리가 계속해서 그 상태에 ‘머무는’ 것을 원하시지는 않는다. 그리스도는 점진적이고 때로는 느린 과정을 통해 우리를 변화시키시를 원하신다. … 변화의 속도가 느리다고 해서 자기혐오에 빠질 필요는 없다. 설령 크리스천들에게는 죄가 넘친다 해도 하나님의 은혜가 “더욱” 넘치기 때문이다 (5:20).

p.53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의 임재 안에서 살기로 결단한 이후 많이 변화되었다고 말씀하신다. 그럼에도 여전히 눈에는 죄악으로 뒤덮인 모습이 보이고, 오히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과 죄를 범하는 양립적인 모습에 죄책감에 빠지기도 한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 우리들에겐 죄가 넘친다 해도 하나님의 은혜가 더욱 넘치기 때문에 조금씩 변화될 있다는 사실이 감사하다. 년에 걸쳐 굳어진 생각과 생활을 바꾸려면 배가 되는 시간이 투자되어야 하는 같은 마음도 든다! 변화의 속도가 느껴지지 않아도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우리를 도우셔서 변화시키고 계시는 사실을 잊지 않고 묵묵히 걸어 나가길. 지금 모습으로 머물지 않고 하나님께서 삶에서 허락하시는 변화의 기회들을 붙잡아야겠다.

창조주의 말씀을 검열하는 것은 피조물들의 역할이 아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를 검열한다.

p.65


성경 속에서 불편한 장면들을 본다. 구약시대의 수많은 전쟁과 죽음, 근친상간, 살인, 남녀평등 내가 가지고 있는 정의와 모순되는 부분들에서 마음에 어려움을 겪는다. 속에 담긴 하나님의 깊은 뜻이 있겠지, 연약한 인간들이기에 나타난 결과들이겠지 하고 넘어가지만 하나님의 깊은 뜻을 알고자 하지도 않았고 하나님의 말씀이 마음에 불편함으로 다가오는 것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런데 글을 읽고 피조물인 내가 감히 창조주의 말씀을 검열하며 읽고 있었구나 돌아보며 회개한다. 나의 생각보다 높은 하나님의 생각 앞에 나를 정렬시키고 고쳐야 한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을 개선할 능력이 없으며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를 개선한다는 사실을 마음에 새겨야한다. 성경은 우리에게 유일하게 오류없는 믿음과 행실의 규칙이 된다.

“찢어진 성경책은 대개 찢어지지 않는 사람의 것이다”라는 옛말이 실감이 갔다.

p.78

성경책은 찢어질 기미가 안보인다....(?) 나도 문제가 생기면 말씀이 튀어나와 문제를 말씀에 비추어 바라보고 해결하는 은혜를 경험하고 싶다.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신다는 말씀과 하나님의 자녀들이 행해야 규칙들이 나에게 새겨져 단단한 사람이 되기까지 우리는 성경 읽기를 멈추면 안된다.

“좋은 친구는 언제나 앞에서 칼로 찌른다”라는 말이 있다. 예수님의 도를 따르는 자들의 손에 들린 칼은 언제나 상대방을 죽이기 위한 검이 아니라 치유하기 위한 메스이다.

p.158

나는 사실 지적을 하기도 받기도 어려워한다. 필자 말대로 어색한 분위기를 만들기도 싫고 내가 그런 말을 사람이 못된다는 사실도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필자는 같은 죄인이기에, 같은 길을 걸어가는 자들이기에 권면하고 지적할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영혼의 파멸로 죽어가는 친구를 그냥 두는 것은 사랑이 아니다. 영적 돌봄이 필요한 친구에게 가장 필요하며 유일한 해결책 되시는 하나님께 나아가라고 말하는 그리고 뒤에서 그를 위해 함께 기도하는 것이 진정한 우정이고 공동체이다.

정죄가 아닌 사랑이 뒷받침된 지적은 우리에게 필요하다고 하나님께서도 말씀하셨다.

친구의 아픈 책망은 충직으로 말미암는 것이나 원수의 잦은 입맞춤은 거짓에서 것이니라”(27:6).

연약함이 있음과 동시에 연약함을 딛고 일어날 은혜와 사랑이 있기에 우리는 지적하고 감사함으로 지적을 받을 있다.

성경에 따르면 인간에게는 자신이 용서받았다는 사실을 아는 일이 가장 필요하다.

p.174

나는 구원의 조건이 믿음인가, 하나님께서는 믿음으로 구원하시는가에 대해 고민이 많았다. 그런데 책에서도 말하듯 우리에게 가장 필요했던 것은믿음이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죄를 지었지만 스스로 해결할 없는 우리에게 가장 필요하고 갈급했던 것은 우리의 죄의 문제를 해결할 있다는 사실과 그것을 믿는 믿음이라고 생각한다.

믿음이 있어야 하나님의 사랑을 다시 누릴 있고 소망을 품을 있고 기뻐할 있게 된다. 믿음이 있어야 다시 하나님의 자녀라는 용기가 생기는 것이다.

나를 구원하신 하나님을 믿음으로 하나님을 의지할 있게 하신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믿으라' 하신 말씀을 믿음으로 받는, 믿음으로 자신을 끝까지 의지하는 자를 분별하신다.


물질적 부를 ‘더 많이’ 받는 것이 가난한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것처럼 물질적인 부가 ‘줄어드는’ 것이 부요한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닐까? 정의를 행하고 인자를 사랑할 깨 나타나는 복의 한 방향이 아니라 양방향으로 흐르는 것은 아닐까?

p.214

가난과 부요가 하나님의 축복의 증거, 저주의 증거는 아니다. 사회 구조와 기회, 습득하는 과정의 도덕성과 노력 하나님의 주권 아래 가난과 부요함이 생길 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강조하시는 말씀은 가난과 부요의 상황 자체가 아닌 우리의 마음이라고 생각된다. 가난한 자들을 외면하지 말고 그들에게 입힐 옷과 배부리 먹일 음식을 대접하라고 하셨다.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하는 것이 자신에게 하는 것이라 말씀하신 예수님은가난부요라는 상황 속에서 우리가 어떻게 하는 것이 올바른지 하나님 나라의 정의를 가르쳐주셨다.

정리.

책을 읽고 크리스천으로서 내가 살아가고 있을까? 과연 사람들은 나와 삶을 보면서 예수님이 궁금할까? 내가 세상에 플러스는 아닐지언정 마이너스가 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성찰하였다.

아마 나를 비롯한 책의 수많은 독자들이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계기가 같다. 그런 의미에서 책은 정말 '크리스천' 위한 권면과 점검의 책인듯 하다.

그렇다면 기독교가 사람들이 거부할 없는 매력이라는 것은 무엇일까.

 

인턴생활을 하면서 사람들이 삶의 목적을 잃고 쳇바퀴 돌듯 살아가는 모습을 직접 목격하니 무기력증에 대한 심각성을 느꼈다. 그럼에도 우리가 살아갈 있는 이유는 크리스천이든 넌크리스천이든 공통적으로 찾아볼 있는데 바로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사랑을 있는 이유를 우리를 형상대로 지어주신 아버지에게서 찾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 나뉘는 같다.

사랑은 매력적이다. 사람들이 거부할 없을 만한 매력을 가지고 있다. 이유는 우리가 그렇게 지음받았고 지음 받은 목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분명해야할 것은 하나님이 없는 사랑은 거짓이다. 사랑이 하나님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사랑이시기 때문이다. 우리는 하나님께부터 완전하고 진정한 사랑을 누릴 있다.

사랑은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나지만 지금 세상 가운데 크리스천으로서 사랑을 실천해야하는 부분이 나눔과 희생이 아닐까 생각한다. 가슴을 울리는 기사들을 보면 많은 사람들이 "이런 분이 계시기에 아직 세상은 만하다고 말한다" 선한 영향력을 끼치며 감동을 주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의 작은 선행이 사회를 아름답게 만든다. 크리스천이 아닐 수도 있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도 자신을 내어주고 나눔을 당연하게 생각하는데, 땅을 살아가고 있는 크리스천들이 나눔과 희생을 세상에 보여준다면 기독교를 바라보는 시선이 어떻게 될까. 예수님이 누구신지, 나누는데 마음이 행복해지는지 없는 신비한 이유를 궁금해하지 않을까

하나님의 임재와 사랑 안에 거한다면 우리가 ''하지 않아도 사람들은 사랑을 알아본다. 그리스도인이 진짜 그리스도인이 되면 세상을 배척하며 예수님만 예배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아픔과 함께 울고 세상을 웃게 하는 우리가 된다면 그들은 하나님을 알게 되고 만날 것이다.

크리스천들은 하나님이 베푸신 한없는 은혜와 사랑을 경험해서 그것이 얼마나 좋은지 알지 않은가!

세상이 주는 즐거움과 비교도 수없다는 것을 찬양할 때마다 경험하지 않는가! 이미 받은 은혜와 사랑을 나만 누리는 것이 아니라 함께 누려야한다. 잃은 어린양을 목자에게 데려다 주어야 한다.

우리가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갈 , 하나님과 동행하며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소망으로 품고 살아갈 여전히 빛이 없는 어두운 세상이 빛이 되어줄 세상은 기독교를 반기며 예수님을 믿고자 것이다.

그런 크리스천, 공동체

, 기독교가 되길 간절히 소망한다!

추천대상

 

- 크리스천이지만 세상에 빛과 소금이 되지 못하고 있다고 느껴지는

- 종교가 기독교임을 숨기고 계신

- 공동체의 회복을 원하시는

-세상 가운데 복음을 전하길 원하는

-크리스천의 삶의 태도를 배우고 싶은 분들께

'세상이 기다리는 기독교' 추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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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로우 영성 - 영적 무감각에 빠뜨리는 '바쁨'을 제거하라
존 마크 코머 지음, 정성묵 옮김 / 두란노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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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

 

시대에 바쁘게 살아간다는 것은 저마다 다양한 이유가 있는 같다. 요구되는 역할과 나은 삶과 세상을 위한 수많은 아이디어들의 결과일 있다. 그러나 생산력과 속도를 강조하는 시대분위기에 휩쓸려 시간을 허투로 없다는 강박과 자체가 나의 능력, 풍성한 삶을 살아내고 있다는 증거로 비춰지기에 무엇이라도 하려는 분투도 많이 섞여 있는 같다.  '숨찬 일상' 정상인 시대가 되었고, 바쁘게 살아가지 않으면 자책과 무기력함에 빠지는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 책은 영혼을 위해서 지금, 순간 '영적 무감각에 빠뜨리는 바쁨을 제거하라' 단호하게 말한다. 살기 위해 바쁘게 살아왔지만 바쁨을 내려놓을 예상치 못한 좋은 삶이 있을 있고, 인생의 무게를 짊어지는 새로운 방식 또한 경험할 있을 것이다. 바쁘고 바쁜 현대사회 가운데 예수님의 속도로 일상을 살아가며 자유롭고 가볍게 인생을 짊어질 있길 소망한다!

 

 

 

구성.

책은 297p 구성되어 있다.

part 1. 속도감 있는 삶에 중독되다

part 2. 예수의 사람들의 시간 사용법

part 3. 시대를 위한 전인적 슬로우 영성 훈련

우리가 바쁘게 살아갈 수밖에 없었던 이유부터 성경 예수님의 시간 사용법, 마지막으로 세상 가운데 필요한 시대 맞춤 슬로우 영성 훈련법들을 소개한다.

* 챕터 2 끝나면 '잠깐, 영성 훈련이란 무엇인가'라는 중간 휴식 페이지로 삽입되어 있다. 출판사는 두란노이다!

 

 

저자.

저자는 마크 코머 목사님이다. 책을 읽다보면 유쾌하신 분이시다! 라는 생각이 절로 드는데, 목사님이 의도적으로 다가가기 쉽게 쓰셨는지는 모르겠지만 목사님의 바람대로 마주 앉아 커피 마시면서 대화 나누는 느낌이다. 또한 자녀를 키우면서도 슬로우 영성을 훈련하시고 자녀 교육도 그렇게 하시는 부분을 통해 상황이 핑계가 없다는 것을 삶으로 보여주시는 같다.

 

인상 깊은 구절

 

p.70

우리는 너무 바빠지면 아침 큐티 시간, 성경 읽기, 기도, 안식일, 주일 예배, 성찬식처럼 영혼에 좋은 것들을 가장 먼저 하는 것이 아니라 가장 먼저 버리게 된다.”

 

내가 지치고 피곤할 제일 먼저 포기하는 일은 하나님과 교제하는 시간인 같다. 나를 위한 시간(,샤워,,여가 ) 철저히 지키면서 하나님과 교제하는 시간은주님 사랑하는 마음 있으니까 괜찮아’, ‘오히려 해서 마음이 힘들어지는 거라면 율법주의와 다를 없어라는 합리화로 포기하는 횟수가 늘어난다. 진정 나를 위한 시간은 하나님과의 교제의 시간임을 깨달았음에도 바쁜 현실로 돌아오면 넘어진다. 과연 하나님을 사랑하니까 시간을 포기할 있는 말이 되는가 돌아보니 말도 안되는 핑계다.

 

p.99

예수님의 도제로서의 3가지 목표

1. 예수님과 함께 한다.

2. 예수님처럼 되어 간다.

3.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실까?’ 생각해서 그렇게 한다.

 

 

저자는 주로 제자들(disciples) 번역되는 히브리어탈미딤 도제로 표현했다. 예수님의 탈미딤이 되는 것은 그분 밑에서 도제로 수련하는 것인데 3가지 목표를 중심으로 삶을 정리하는 것이다.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실까에서 나아가 예수님이 만약 상황과 같다면, 예수님이 ‘23 인턴 생활하고 있는 휴학생이라면 어떻게 하실까 생각하라는 것이다. 고민이 지인들에게 묻거나 인터넷을 찾는 것도 좋은 방법이겠지만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실까?’라는 물음에서 가장 좋은 답을 찾을 있기를

 

 

p.108

우리는 예수님 안에서 가능한 삶에 관한 비전을 얻는다. 그래서 교회도 가고 책도 읽고 팟캐스트도 듣는다. 그렇게 하면서 내가 간절히 원하는 삶이 어떤 것인지를 파악한다. 정서적 건강과 영적 삶을 머릿속에 그리며 “예, 하나님, 바로 이런 삶을 원합니다!”라고 외친다. 변화를 다짐하고 다짐하며 교회 문을 나선다. 그러고 나서 ‘전과 똑같은 삶의 방식’으로 돌아간다.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 스트레스와 피곤, 주의 산만이라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말만으로는 삶이 바뀌지 않음을 깨닫는다. 하나님을 향한 마음로 가득 채운 주를 시작하더라도 삶의 방식은 같아서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다. 일주일마다 회복과 갈급함,결단과 넘어짐이 반복된다. 나는 악순환의 원인을 은혜를 기억하는 힘이 점점 사라지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일상을 살다보니 받은 은혜들이 희미해지고 마음에 감동과 감사가 사라져 다시 예배의 자리로 나아갈 갈급함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닐까 하는 것이다. 어느정도는 맞는 같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나에게 필요했던 것은 은혜를 희미해지게 하는 삶의 방식과 패턴을 바꿨어야 하는데 문제는 마음가짐이라며 삶의 방식을 돌아보기보다 오히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는 자책만이 남았다. 내가 정말 예수님의 삶을 경험하고 그분을 따라가려면 예수님의 삶의 방식을 채택해야한다.

 

 

p.116

예수님은 서두르지 않는 삶을 보여주셨다. 언제나 하나님을 위한 시간과 사람들을 향한 사랑이 최우선이셨다. 예수님은 아버지와 그분의 나라를 우선시하셨기 때문에 쓸데없는 것들에 끌려다니지 않으셨다.

 

 

예수님은 종교적인 사람들에게 꾸짖으셨지만 대개 많은 경우에서 서두르시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셨다. 남들이 보기엔 느리고 답답했을지 몰라도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을 위한 시간과 사람들을 향한 사랑이 최우선이셨고, 결과 서두르지 않고 지금 함께 있는 자들과 사랑하셨다. 나도 순간 순간 사랑하는데 최선을 다하고 싶다.

 

 

p.170

 

지친 교회들은 대부분 안식일을 제자 훈련의 중요한 요소로 정착시키지 못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깊이 사랑한다. 단지 더이상 하나님과 함께 앉아 있는 법을 알지 못할 뿐이다.”

 

하나님을 깊이 사랑하지만 하나님과 함께 앉아 있는 법을 알지 못한다는 말이 슬펐다. 말씀과 기도, 찬양으로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했으니 이제는 하나님 안에 거하는안식일 기억하고 거룩하게 지키는 훈련 역시 필요한 때인 같다.

 

 

p.243

하이퍼리빙(hyperliving) : '삶의 표면에 스쳐 지나가는 것' 에 대항한 반문화적 습관들이 필요하지 않을까?”

 

기존 문화에서 경계해야 부분도 알고 있기에 그저 휩쓸리면 안된다고 생각했지만 생각만으로는 이미 휩쓸리고도 남았다. 우리에겐 결단만이 아니라 우리를 영적 무감각에 빠뜨리는 것들에 대해 대항할 반문화적 습관이 절실히 필요하다.

 

총 정리.

기술과 문화의 발전으로 삶이 윤택해지고 풍부해졌다. 예수님을 알지 못하는 자들에게 미디어를 통해 복음을 전할 있게 되었고 전세계의 소식을 몇번의 클릭으로 있게 되었다. 기도가 필요한 곳에 기도할 있고 사랑이 필요한 곳에 사랑을 전할 있다. 시대를 허락하신 하나님께서 일하고 계시고 역사가 이뤄지고 있는 믿는다.

 


하지만 저자는 시대의 좋은 측면 뿐만 아니라 우리가 경계해야할 부분 역시 마주해야 한다고 말한다. 소음 전쟁터와 물질주의, 소유욕과 '빨리' 외치는 속도들까지 하나님과의 교제를 방해하는 시대의 흐름과 우리의 일상 생활에서 다시금 하나님을 경험하고 돌아가기 위해 영성 훈련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나는 책에서 서두르지 않는 느림과 고독의 미학도 배웠지만 무엇보다 속에 하나님이 아닌 조금은 필요없는 것에 관심과 시간을 많이 쏟고 있음을 발견했다. 그래서 시간을 빼앗는 휴대폰을 내려놓고 기도하며 조용히 하나님께 말을 건내고 있다. 정말 신기하게도 기도의 능력을 주심을 느꼈다-!

세상이 주는 기쁨보다 비교할 없는 하나님이 주시는 사랑과 기쁨과 평안이 가득한 하루하루가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 영적 무감각에 빠뜨리는 바쁨과 습관들을 제거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풍성히 누리며 살아가길 소망한다!

 

 

 

추천 대상.

 

- 바쁘지 않으면 마음이 불안한

- 하고 싶은 일도, 일도 쌓여있는

- 스마트폰이 잠시라도 곁에 없으면 불안한

- '이건 아닌데','이렇게 사는 맞는 걸까?'하는 각이 드는

-안식일을 누리고 싶은 분들께    [슬로우 영성] 추천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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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선택이란 무엇인가 조정민 목사의 창세기 돋보기 2
조정민 지음 / 두란노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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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믿을지 믿을지부터 선택하는 요즘이 되었고, 믿음의 선택을 방해하는 것들은 더욱 늘어가고 있다. 선택이 정답인 세상에서 우리는 정답 되신 하나님을 선택해야한다. 보이지 않는 영원한 약속을 택하는 것이 믿음의 결정임을 알아야 하며 척박해 보일지라도 평안과 생명의 길인 믿음의 길을 걸어야 한다. 그러한 점에서 책은 믿음의 선택을 이뤄 나가는 과정 가운데 지침서가 되어줄 있을 같다. 우리의 믿음의 선택들이 쌓여 하나님을 향한 단단한 믿음의 소유자들이 되기를

 

 

소개.

<<믿음의 선택이란 무엇인가?>> 시작에서 답을 찾다에 이은 창세기 시리즈의 번째 책이다.

책은 창세기 6 9절에서 19장까지의 본문으로,

하나님에서 시작되는 새로운 믿음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구성.

책은 339p이고 4부로 구성되어 있다.

1 선택, 하나님 vs. 세상 ( 6-9)

2 혼돈, 하나님을 떠난 (9-11)

3 단절, 믿음의 단추 (12-14)

4 언약, 좁은 길의 시작 (15-19)

창세기 믿음의 인물과 그렇지 못한 인물들을 통해 믿음이란 무엇이고 믿음의 선택을 어떻게 해나가야 하는지, 믿음을 빚어가시는 하나님의 방법은 어떤 방법인지 창세기를 통해 살펴 주신다.

 

 

저자.

저자는 두란노에서 많은 책을 출판하신 조정민 목사님이다. 목사님 특유의 강렬한 표현들이 정신 바짝 차리게 해주시는 같다.

 

 

인상 깊은 구절.

page 19

하나님은 당신의 심판 계획을 구원하실 사람에게는 반드시 알게 하십니다. •••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기록하셨으며, 성경을 우리에게 주셨습니까? 심판이 있음을 알려 주시고자 함입니다. ”

하나님께서는 노아와 아브라함,요나 등에게 심판 계획을 미리 알려주셨다. 다른이들에게 멸망을 피할 기회를 주신 것이다. 은혜는 갑자기 주셔도 심판은 미리 예고하시는 하나님. 그리고 무엇보다 당신의 사랑하는 자녀들을 통해 일하시는 하나님이심을 발견한다.

 

 

page 53

언약을 아는 만큼 하나님을 있고, 하나님을 누릴 있습니다. 하나님은 약속을 기억하는 사람에게 약속을 지켜 주시기 위해 필요한 것을 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을 약속하시며 약속들을 기억하는 자들에게 이뤄주신다. 하나님의 언약 속에 담긴 하나님의 성품과 사랑을 매일 매일 기억하고 누릴 있기를

page 60

하나님이 방주에 들어가라 하셨으니 방주에서 나가라고 하실 때까지 기다리는 믿음입니다. •••

광야 훈련의 핵심은 바로 믿음의 훈련입니다. 하나님과의 동행이란 하나님이 떠나실 함께 떠나고, 하나님이 머무르시는 곳에 함께 머무르는 훈련입니다. ”

 

노아의 믿음이 놀라웠다. 나라면 방주 생활에 지쳐 얼른 땅으로 나가고 싶은 마음에 바로 나갔을 같다. 기준과 선택으로 하나님 이정도면 괜찮죠? 지금 정도면 나가도 되잖아요 하며 선택에 하나님의 뜻을 끼워맞췄을 같다. 그런데 노아는 기다렸다.방주에 들어가라 하셨으니 나오라고 말씀하실 하나님을 기다렸다. 나는 종종 뜻이 하나님의 뜻이 되고 뜻이 하나님의 뜻이되는 하나님과 연합되는 내가 되길 기도하는데, 내가 정말 마지막까지 내가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는지 돌아보게 된다. 뜻이 하나님의 뜻일거야 합리화하지는 않았을까. 믿음은 내가 선택하는 것이지만 결코 선택이 아닌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선택하길.

 

 

page 143

 

일상 중에 평범하게 살아도 충분합니다. 삶의 자리에서 하나님을 갈망하면, 하나님은 찾아오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저 하나님을 만나길 갈망하는 자리에 그곳이 평범하든 평범하지 않든 찾아오시는 하나님.

지극히 평범하고 보잘 없어보이는 삶이지만 하나님이 찾아오시는 순간 삶은 무엇보다 귀한 삶이 됨을 믿는다.

 

 

page 147

믿음은 탯줄을 끊듯이 지금 연결된 현실로부터 끊어내는 , 지금의 나와 단절되는 일입니다. '가라' 명령은 '네가 의지하고 사는 모든 것으로부터 벗어나라' 말씀입니다. 얼마나 힘들겠습니까? 죽을 같이 힘들 것입니다. ”

 

믿음은 순종을 가능하게 한다. 그러나 순종은 어렵고, 쉽지 않다. 눈에 보이는 것과 귀에 들리는 것이 우리의 순종을 막을 때가 너무나도 많다. 하나님께선 정말 우리의 순종이 필요하실까? 우리의 순종이 필요 없으심에도 우리에게 믿음을 요구하셔서 함께 하나님의 일을 있는 권한을 주신 감사하다. 매일매일 나의 죽음을 고백하는 일이 너무나도 어렵겠지만 믿음으로 하나님께 순종하여 주저함 없이 하나님 앞에 나아가기를…!

 

 

page 164

하나님을 따르는 길도 항상 올라가는 것만은 아닙니다.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이 있습니다. 오르락내리락하며 가는 것이 믿음의 길이니 내리막길을 만났다고 해서 너무 자책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나는 신앙 생활을 하며 자책을 많이 하는 편이다. 하나님 앞에 부끄러운 모습이 너무나도 많고 결단해도 넘어지는 모습이 스스로 싫다. 그런데 구절을 읽고 내가 믿음으로 승리하는 순간만 믿음의 길은 아닐 있구나 생각이 들었다. 넘어져도 하나님 앞에 부끄러운 내리막길을 걸어도 가운데 죄인된 나의 존재를 인정하고 긍휼을 구하는 역시 믿음의 위에 서있는 것일 있겠구나 생각이 들었다. 하나님은 내가 잘할 때나 못할 때나 믿음을 빚어가신다는 사실을 잊지 않길

 

 

page 178

손해 보지 않기 위해 죽을힘을 다하는 세상에서 손해 보기로 결정해야 합니다. 사람한테서 손해 것은 하나님이 채워 주심을 믿고 살아야 합니다. ”

나를 내어주고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사랑과 희생으로 비교적 쉽게 있는 같다. (물론 이것도 어렵지만) 그러나 사랑을 당연하게 여기고, 나에게 되돌아 오지 않을 마음에 어려움을 겪는 같다. 돌려받을 권리는 애초에 없는 알지만 그래도 서운하고 섭섭하다. 예수님의 반만 닮기보다 사랑을 주는 것을 넘어 상처 받기까지 각오하신 예수님을 완전히 닮아간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눌수록 채워주시는 은혜를 누리길!

 

 

추천 대상.

창세기를 묵상중이신

믿음의 선택을 원하시는

세상과의 타협에 힘들어 하시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모든 분들에게

[믿음의 선택이란 무엇인가] 읽어볼 것을   추천드립니다-!

 

오늘도 나의 믿음을 빚어가시는 하나님 앞에

믿음의 선택들을 드릴 있길 간절히 소망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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