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풍에도 쓰러지지 않는다 -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의 불안한 시대를 버티는 단단한 문장들
모옌 지음, 허유영 옮김 / 필로틱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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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읽고 솔직하게 작성한 서평입니다>


대한민국에 세계 최고 권위의 노벨문학상을 받은 ‘한강’ 작가가 있다면 중국에는 ‘모옌’이 있다. 물론 중국은 ‘모옌’ 외에 더 노벨문학상을 받은 작가가 있기는 하다.


비록 그의 소설을 읽어보지는 못했지만, 이 책의 표지에 바람에 소갈머리는 없지만 머리카락이 휘날리는 작가 자신의 모습을 그린 우스꽝스러운 면서도 한편으로는 무게감 있어 보이는 삽화가 유난히 눈길을 끈다.




모옌은 2012년에 노벨문학상을 수상하였고, 대표작으로는 <붉은 수수밭>, <개구리>, <인생은 고달파> 등이 있다. 2004년에는 프랑스 문예공로훈장을 받았다. 


그가 유명한 이유는 노벨문학상을 중국 대륙 출신 최초로 받아서이기도 하지만, 그는 2014년에 적십자에 100만 위안을 기부하고 2016년에는 티베트 지역 심장병 어린이 환자들에게 125만 위안을 기부하는 등 자신은 검소한 생활을 하며 모은 돈을 20여년 넘게 기부해왔기 때문이다.




이 책은 에세이집이다.


일기 형식으로 띈 이 책은 모옌 작가의 과거와 현재의 그의 생각과 느낌을 읽을 수 있다. 그는 자신의 지난 과거와 최근 자신이 겪고 일어난 사건들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였다.


1장 삶이 우리를 넘어뜨릴 수는 있지만 끝내 꺾을 수는 없다.

2장 그때 눈물을 흘린 곳에서 지금도 눈물을 흘린다.

3장 삶의 밑바닥에서도 정신은 독수리처럼 구름 위를 날았다.

4장 우리 모두는 아등바등 고달프고 사랑하며 미워한다.

5장 작가가 다른 작가의 책을 읽는 것은 대화이며, 어쩌면 연애이기도 하다.

6장 영감이 떠오르길 바란다면 삶으로 깊숙이 들어가야 한다.


위와 같이 크게 여섯 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각각의 소제목들은 개별적인 이야기이고 독립적 사건들이라서 서로 연결되지 않는다. 그래서 소제목만 보고 자신이 관심있는 주제의 글을 선택적으로 읽어도 된다.


이 자리에서 책 전체를 소개하거나 언급하는 것은 아닌 것 같고, 개인적으로 재미있게 읽었거나 읽다가 가슴 속에 와닿았던 부분들을 소개하고 나의 느낌을 끄적여본다.



#나는 왜 모옌일까


모옌이라는 작가를 모르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궁금한 주제가 아닐 수 없다. 나 역시도 이 책을 읽기 전까지 그의 본명이 ‘모옌’인줄 알았다. 하지만 모옌은 작가의 필명이다.


저자는 중국의 한 교통이 불편하고 땅은 넓지만 인구가 적은 한적한 시골마을에서 자랐다. 오죽했으면 책 속에서 저자가 ‘사람보다 소의 마음을 더 잘 알 정도였다’라고 표현했을까?


한때 박영진 개그맨의 “소는 누가 키워”라는 말과 일맥상통한다. 그만큼 중국이나 우리나라나 소가 중요하다.


저자는 “소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지만 소는 풀만 뜯을 뿐 나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다”라고 말하는데, 사실 소뿐만 아니라 사람도 자신에게 이득이 되거나 자신의 관심사가 아니면 거들떠보지도 않는게 냉혹한 현실이다.

놀랍게도 저자는 어릴 적에 말할 대상이 ‘소’ 밖에 없었는데도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수다쟁이였다고 한다. 그래서 ‘말을 하지 않는다’라는 뜻인 ‘모옌’으로 필명을 지었다고 한다. 


하지만 “나이가 드니 말수가 줄어들어 하늘에 계신 어머니도 이제는 조금 마음이 놓이지 않을까 싶다”라고 저자가 솔직하게 말한 대목에서 낄낄거리며 웃지 않을 수 없었다. 역시 아무나 노벨문학상을 받는거는 아닌가 보다!



#술과의 인연


소수를 제외한 많은 사람들이 술을 마신다. 그리고 적지 않은 사람들이 술과의 첫 인연은 학생시절 수학여행이나 MT를 가서 강렬하게(?) 맞이하는 경우가 많다. (나만 그랬나?)


나 역시도 첫 술을 중학교 3학년 졸업 수학여행에 가서 마셨다. 그 당시 맥주와 소주, 그리고 캡틴큐라는 양주(그 당시 가장 저렴한 양주였다. 지금은 공업용 알코올이라는 악평으로 단종된 것으로 안다)를 마셨다.


담배 연기가 자욱한 방안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서 친구들과 포커를 치며 술을 마셨다. (물론 중3이 이런 행위를 한다는게 그 당시에 당연한 건 아니였다!) 


이에 반해 저자의 술과의 첫 인연은 귀엽다 못해 무척이나 애교스럽다. 그는 아버지가 집에 귀한 손님이 오면 접대할 목적으로 고이 모셔둔 백주를 몰래 마셨다고 한다. 자신이 마신걸 들키지 않기 위해 한두모금 찔끔 마시고 물을 채워 넣었기를 몇 달동안 그랬다고 한다. 


여기까지는 어쩌면 내용이 다소 밋밋했을 수 있다. 그러나 자신 뿐만 아니라 둘째형 역시도 저자와 똑같이 했다고 말한 부분에서 빵하고 터졌는데, 이 사실을 수십년이 지난 후에야 알게되었다는 점은 무척이나 웃꼈다. 아마 두 사람 다 영원히 무덤까지 비밀로 감출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을까?


아마 저자가 마신 백주는 어느 순간부터 술이 아니라 물이 아니였을까? 어린 녀석이 물을 술로 알고 몰래 몰래 마신 모습을 상상하니 지금도 웃음이 터지지 않을 수 없다.


저자가 쓴 <술의 나라>라는 장편소설이 있는데, 마침 한국어로도 번역되어 있으니 꼭 한 번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나의 아버지


세상에 태어났으면 누구에게나 아버지가 있다. 나 역시도 지금은 고인이 되셨지만 무뚝뚝하지만 누구보다도 자식을 아끼셨던 아버지가 있었다.


나의 아버지는 군인이셨다. 베트남전에도 참전하셨고, 전투 통에 죽을 고비도 수 차례 넘기셨다고 한다.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에서 나오는 폰 트랍 대령처럼 엄격하고 근엄있는 분이셨다. 


어쩌면 영화 <명량>, <노량>, <한산>의 주인공인 이순신 장군도 그렇고, 대부분의 군인들에 대한 이미지는 다 그런 거 같다.


저자의 아버지 또한 엄격하고 근엄했다고 한다. (이 분도 군인이셨나?) 그래서 본인도 그렇고 형과 누나, 심지어 당고모와 당숙들까지 다 저자의 아버지를 무서워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런 엄격하고 근엄한 저자의 아버지가 저자가 노벨문학상을 받자 저자에게 하셨던 조언이 무척이나 인상적이다.


“상을 받기 전에는 남과 어깨를 나란히 해도 되지만, 상을 받은 후에는 남보다 머리 하나는 낮춰야 한다.” 


저자는 이 말을 남은 인생의 좌우명으로 삼으려 한다고 말한다. 중국의 시골 농부의 입에서 나온 말이라고 하기에는 참으로 옳고 꼭 되씹어봐야 할 조언이 아닐 수 없다.



#내 인생의 슬럼프를 이렇게 버텨냈다


아무리 성공한 사람이더라도 인생을 살다보면 한 번쯤, 아니 어쩌면 여러 차례 슬럼프가 찾아오는 것을 피할 수 없다. 성공한 사람과 성공하지 못한 사람의 차이점은 어쩌면 슬럼프를 어떻게 슬기롭게 극복했느냐이고, 이에 따라 명암이 갈리는 것 같다.


구글이나 유튜브에 ‘슬럼프 극복’이라는 키워드로 검색하면 엄청나게 많은 사연을 담은 글과 영상들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하지만 슬럼프를 극복하는 방법은 개인마다 각기 다 다르다. 


누군가 “슬럼프는 감기 같은 것”이라고 표현했는데, 정말 맞는 말인거 같다. 감기처럼 언제든지 찾아올 수 있는 병이고, 또 감기처럼 그 당시는 아프고 힘들지만 극복할 수 있는 게 슬럼프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스무살이 되기 전까지 자신의 인생에서 침체기였다고 말한다. 그리고 글쓰기를 시작한 이후에도 몇 번의 슬럼프를 겪었다고 고백한다. 일흔이 넘은 저자가 책 속에서 독자들에게 충고하는 슬럼프 극복법을 소개하면 아래와 같다.


첫째, 근본을 잊지 않는다.

둘째, 원칙을 지킨다.


참 간단하고 쉽다. 물론 말이 쉽지 행동으로 옮기는 것은 별개 문제다. 실제로 저 원칙대로 행동하는 사람은 몇 명이나 될까?


저자의 조언대로 실제 행동에 옮긴 사람이라면 추측컨대 슬기롭게(?) 슬럼프를 이미 극복했을 것 같다. 왜냐면 근본을 잊지 않고 원칙을 지킨다는 것 자체가 엄청나게 힘든 일이기 때문이다.



#귀로 읽는 세상


세상을 귀로 읽다니… 참으로 어불성설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저자가 중국 시골 깡촌에서 청소년기를 보내면서 학교를 제대로 다니기는 커녕 자신이 살았던 마을을 포함, 주변 마을에 있던 책을 모조리 읽고 나서부터는 지식을 책이 아닌 귀로 들은 것에서 비롯되었다고 하니 충분히 이해가 된다.


저자는 책 속에서 할머니의 이야기에서 문학의 양분을 얻었다고 고백한다. 우리는 어릴 때 시골에 내려가면 할머니의 무릎을 베고 누워서 할머니가 들려주시던 옛날 이야기를 기억한다. 신기하게도 이런 전통은 우리나라만 있는게 아니라 중국도 있나보다.


저자는 정규 교육을 받지 못하는 대신에 자신이 살던 마을과 주변 마을에서 구한 책들을 읽고, 귀로 동냥한 지식을 통해 세상을 읽으며 자연과 친해졌다고 한다.


놀랍게도 그렇게 독서와 귀동냥으로 얻는 지식을 토대로 노벨문학상까지 받았으니, 꼭 정규 교육과 좋은 대학만이 정답은 아닌가보다.  



개인적으로 모옌 작가가 참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그의 섬세한 묘사다. 그가 쓴 문장을 읽다보면 어떤 장면인지, 어떤 상황인지 그리고 등장인물은 어떤 말투인지까지도 마치 영화 속의 한 장면을 보듯 생생하게 머릿속에 그려진다.


그리고 그의 과거 이야기 속에서 지금의 중국이 세계적인 강대국으로 부상하기 전 한때 가난했던 중국의 사회상과 시대상을 접할 수 있어서 좋았다.


개인적으로 이 책이 가장 마음에 책 끝자락에 있는 부록이었다. 부록1은 작가에게 영향을 준 노벨문학상 작가 10인이고, 특히 부록2 <나의 작은 글쓰기 비결>은 작가 지망생은 아니지만, 서평 등 평소에 글을 자주(?) 쓰는 나에게는 꿀팁이 아닐 수 없었다.




“바람이 불었다. 그래도 서 있었다.”


저자는 중국 공산당의 작품 검열에도 불구하고 이를 극복하여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중국 대륙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위대한 작가가 되었다. 


어쩌면 이 책의 제목처럼 가난했던 어린시절에서부터 일흔에 이르는 지금까지 저자는 숱하게 많은 인생의 강풍에도 불구하고 이겨내 왔을 것이다.


우리네 인생은 항상 즐겁고 행복할 수만은 없다. 살다보면 당연히 인생의 굴곡이 있고 힘든 시련도 수차례 맞이하게 된다. 


좋을 때야 그냥 그 기쁨을 만끽하면 되지만, 힘든 시련이 닥치면 이를 극복해내야 하는데, 그게 말처럼 쉽지만은 않다.


일흔이 넘은 인생 선배이자 세계적인 명성과 존경을 받고 있는 저자의 말처럼 우리의 인생은 결국 ‘어떻게 쓰러지지 않고 버틸 것인가’라는 물음에 대한 끊임없는 답을 찾는 과정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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