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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와 국가의 부(富)
로버트 브라이스 지음, 이강덕 옮김 / 성안당 / 2025년 12월
평점 :
공기, 물, 불, 그리고 흙(땅)은 고대 그리스 철학에서 말하는 4원소다. 그런데 이 이야기는 아마 고대나 중세, 아마도 전기가 발명되기 전까지는 맞는 말이었거 같다.
현재는 백열 전구를 실용화하여 ‘전기’의 대중화를 앞당긴 에디슨 이후의 세상은 달라졌다. 현대사회에서 없어서는 안될 정도로 지금은 누구나 ‘전기’라는 에너지원이 없는 생활은 상상이 안 된다.
지금도 손에 쥐고 있는 스마트폰 외에도 실내를 밝히는 전등, 컴퓨터와 모니터 등 우리의 일상 생활에서 없어서는 안될 첨단기술과 전자기기는 전기 없이는 작동 조차 불가능하다.
이 책은 표지에 적힌 “사람과 국가의 운명을 결정짓는 힘과 권력의 문제 ‘전기’라는 한 문장으로 독자들의 궁금증을 자아낸다.

이 책의 저자는 <전기와 국가의 부> 외에도 다섯 권의 책을 저술한 작가이자 강연자, 그리고 영화 제작자다. 저자는 책 외에도 전기 관련 다큐멘터리의 프로듀서로도 활동 중이다.
특히 그의 <주스: 권력, 정치, 그리고 전력망>이라는 다큐멘터리는 유튜브에서 300만 회 이상 시청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이 책은 크게 4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 현대성을 의미하는 전기에서는 전기의 개괄적인 내용을 다룬다.
이 장에서 흥미롭게 읽었던 내용은 ‘전기의 사각지대에 놓인 여성’이었다.
사실 ‘여성’이라서 전기의 사각지대, 즉 ‘전기’라는 현대 문명의 혜택을 못 받는게 아니라 후진국에서 그것도 소위 개발이 아직 되지 않은 시골에서 거주하기 때문에 ‘전기’라는 기술을 누리지 못하는 것이다.
저자는 인도의 한 시골 마을에서 4명의 아들과 딸을 둔 여성의 이야기를 통해 전기 사용으로 단순히 어둠을 밝힐 뿐만 아니라 건강, 특히 잠재력을 키운다고 말한다.
인상 깊었던 구절은 “전기는 여성들과 소녀들을 수돗가와 화덕, 빨래통 등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준다”였다.
실제로 과거 우리 부모님 세대 때만 해도 여성 해방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세탁기는 부자집에나 있는 가전제품이어서 적지 않은 어머니들은 빨래라는 가사 노동의 부담이 컸다.
어디 빨래 뿐이겠는가? 지금은 집집마다 있는 진공청소기나 로봇청소기는 커녕, 일일이 두 손으로 방바닥을 쓸고 닦는 것은 오롯이 어머니들의 몫이었다.
이러한 맥락에서 저자는 향후 몇 십년 동안 안정된 전기를 공급하는 것이 세계 빈곤 퇴치라는 노력의 열쇠가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지금은 상상도 못할 일이지만, 과거에는 미국과 같은 선진국에서도 여성에게 투표권이 없었다. 하지만 저자는 전기화가 미국 농촌 여성들과 소녀들에게 더 나은 경제적, 교육적 기회를 제공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증거가 적지 않다고 말한다.
남아프리카나 인도에서의 전기화에 관한 연구를 보더라도 새로 전기를 공급하는 지역에 고용이 증가하였다고 하며, 무엇보다 여성의 고용이 9.5%p 증가하였다고 한다.
2부 수많은 사람들은 왜 여전히 어둠 속에 갇혀 있고 그들은 무엇을 하고 있을까? 에서는 ‘냉장고’라는 현대 필수 가전기기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처음 알게 된 사실이지만, 가정에서 가장 많은 전기를 사용하는 전자기기 중 하나가 냉장고라고 한다.
그리고 유엔에서 인간개발지수(HDI)라는 데이터를 통해 국가 순위를 매기는 데, HDI지수는 기대수명, 영양, 건강, 사망률, 빈곤, 교육, 안전한 식수와 위생에 대한 접근성 등을 기준으로 계산하다.
HDI지수와 전기 소비 관계에서 1인당 약 4,000kWh의 임계점이 있다는 사실은 매우 놀라웠다. 즉, 전기 소비량이 적은 후진국의 경우 HDI 지수가 낮았다. 한마디로 전기 사용량은 문명의 혜택을 얼마나 누리고 있는지를 알 수 있는 척도이자 인간답게 살고 있는지를 알 수 있기도 한 것이다.
1990년 8월 이라크가 옆 나라 쿠웨이트를 침공하면서 걸프 전쟁이 시작되었다. 미군이 1991년 1월에 걸프 전쟁에 참여하자마자 제일 먼저 한 일이 무엇인지 아는가?
바로 토마호크 미사일에 정전 폭탄을 장착하고 이라크 전력망에 투하한 것이었다. 정전 폭탄은 지상에 떨어지기 직전에 긴 섬유가닥들이 구름처럼 발사되어 전력망에 내려앉아 전력망을 처단한다.
미국은 이라크의 전력시스템을 제일 먼저 차단하였고, 불과 만 한달 정도 후인 2월말에 이라크군을 궤멸하였다. 이처럼 현대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전력망이다.
3부 고전력에서의 전망에서는 소위 ‘전기 경제’에 대해 설명한다.
그렇다면 ‘전기 경제’란 무엇인가?
저자는 미국의 대표기업이라 할 수 있는 애플, 아마존, 구글(알파벳), 페이스북, 마이크로소프트를 ‘자이언트 파이브’라 일컬으며, 이들 5개 기업의 놀라운 성장 이면에는 정보화 시대를 지배하기 위해 엄청난 양의 디지털 정보를 생산하고, 가공하고 전송하며 저장을 하기 위해서는 ‘전기’ 없이는 불가능하다.
즉, 21세기의 정보화 시대의 연료는 다름아닌 전기이며, 이들 자이언트 파이브는 그들의 사업을 위해 자체적인 전력망을 구축하고자 수백억 달러를 투자하였다는 것이다.
3부에서 흥미롭게 읽은 부분은 이들 자이언트 파이브의 전기 소비량 증가와 시가총액의 증가를 보여주는 내용이었다.

위 그래프와 같이 이 5개 기업들의 전기 소비량이 증가할수록 시가총액 또한 비슷한 양상으로 증가하였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책 속에서 저자가 지적하는 것처럼 “전력 손실이나 컴퓨팅 전원 손실로 인한 짧은 정전에도 수백만 달러의 손실이 발행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메가’만 해도 엄청난 크기라고 생각했는데, 언젠가부터 ‘테라’라는 말이 자연스러워졌다. 맥주 ‘테라’의 영향인가?
4부 21세기 테라와트에서 저자는 세계 최고의 에너지 전도사 중 한 사람이자 노벨상 수상자이기도 한 리처드 스몰리의 “세계에서 가장 시급한 문제들은 충분한 에너지를 가지고 있어야 해결할 수 있다”라는 말을 인용하면서, ‘테라와트 챌린지’에 대해 강조한다.
리처드 스몰리가 2005년에 사망하기 전 한 강연에서 ‘세계가 직면한 10대 문제’를 아래와 같이 제기하였다.
에너지
물
음식
환경
빈곤
테러와 전쟁
질병
교육
민주주의
인구
거기에 더해 강연에서 그는 “첫 번째인 에너지 문제를 해결하면 다음 네 가지는 사라진다”고 말할 정도로 에너지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지금은 대통령이 되신 이재명씨가 지금은 쿠테타를 일으킨 죄로 옥살이 중인 전 대통령 윤석열과 과거 대선 토론회때 ‘RE100’을 언급했었는데, 과연 ‘RE100’이 현실적인 대안일까?
‘RE100’은 기업이 사용하는 전력의 100%를 2050년까지 태양광이나 풍력과 같은 재생에너지로 충당하자는 글로벌 캠페인으로, 참으로 이상적인 캠페인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풍력의 경우 터빈에서 발생하는 소음와 설치 비용 또한 천문학적이고, 태양광 에너지의 경우 저가를 앞세운 중국업체들이 국내 태양광 시장을 사실상 잠식하고 있다.
물론 남의 나라 얘기이기는 하지만, 미국의 경우 아놀드 슈왈제네거 전 캘리포니아 주지사가 캘리포니아 주에서 생산하는 전력 에너지의 1/3을 재생에너지로 하겠다는 행정 명령에 2008년에 서명한 후 2011년에서 2017년 사이 캘리포니아 주는 다른 주 전기요금보다 가격이 5배 이상 올랐다고 한다.
그리고 한때(?) EU의 맹주라 불리던 독일의 경우 탈원전과 탈석탄 정책을 추진하고 재생 에너지 비중을 올리는데 역량을 집중하였으나,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후 가스 수급에 차질이 생기자 에너지 비용이 치솓았고 경제 역시 과거의 영광을 뒤로 한채 점차 몰락하고 있다.
이 책에서 저자도 지적하고 있지만, 재생에너지는 값비싼 비용도 문제지만, 날씨에 따라 전력 수급에 비상이 걸리는 등 에너지 안보의 취약성이나 전력 계통의 안정성 문제가 가장 크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가장 현실적인 대안은 무엇일까?
국내 수많은 원자력 전문가들도 이구동성으로 이야기하고 이 책의 저자 역시도 강조하지만, 바로 ‘원전’이다.
다행히도 우리나라의 원전 기술력은 미국의 95% 수준임에도 불구하고, 안타깝게도 이재명 대통령은 신규 원전 건설에는 회의적이다.
저자 역시도 강조하고 있지만, 원자력 에너지 사용을 늘리지 않고서는 전 세계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줄일 방법은 없으며, 재생에너지는 절대로 완전한 대체재가 될 수 없다.
구축 비용도 그렇지만, 재생에너지 출력의 간헐성과 변동성에 따른 전력 계통의 안정성 문제가 더 크다. 물론 이에 관한 연구나 해결책으로 ESS(에너지 저장장치)를 제시하지만, 개선을 할 수 있을지 몰라도 과연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있을까?

‘역자 서문’에서 역자가 밝히고 있듯이 전기는 ‘우리의 현재와 미래를 바꾸는 에너지”다.
이 책의 마지막 장에서 저자가 밝히고 있는 것처럼, 현재 직면하고 있는 에너지 문제, ‘테라와트 챌린지’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석탄, 원자력, 석유, 천연가스, 재생에너지 등 전 세계 이용 가능한 모든 연료가 필요하다.
그렇다면 현대자동차에서 2018년에 출시한 수소자동차 ‘넥쏘’도 있지만, 수소에너지가 앞으로 재생에너지를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대안이 될 수 있을까?
안타깝게도 이 책에서는 수소에너지에 관한 내용이 담겨있지는 않다. 수소에너지 역시도 많은 장점도 있지만 적지 않은 단점도 있다.
에너지는 단순히 우리의 일상생활의 필수적인 요소일 뿐 아니라 인류의 생존과 문명 발달의 근간이다.
저자가 강조하는 것처럼 특정 원료나 에너지원에 치우칠 것이 아니라 이용 가능한 모든 연료를 적절한 비중으로 사용하는게 정답은 아닐까?
일상에 없어서는 안되는 ‘전기’를 바탕으로 불평등과 인권, 그리고 환경 문제까지 이야기를 풀어내는 저자의 통력력이 돋보이는 책이다.
이 책은 역사적으로 사람과 국가의 운명을 결정지어 왔던 것이 총, 균, 쇠 였다면, 이제는 에너지가 가장 중요하다는 점을 깨닫게 해준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고 읽고 솔직하게 작성한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