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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추홀, 제물포, 인천 2
복거일 지음 / 무블출판사 / 2025년 6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읽고 솔직하게 작성한 서평입니다>
역사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역사적 기록을 바탕으로 허구적 요소가 가미된 역사소설을 읽는다는 것은 매우 즐거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책은 제목과 같이 미추홀 - 지금의 인천 지역을 중심으로 한 한반도의 역사와 문화를 소설로 쓴 작품이다.
이미 국사시간에 우리나라의 역사를 배워서 어느 정도는 다 아는 내용일수도 있겠지만, 이 책은 역사책이라기보다 역사소설인 만큼, 무언가 독자들을 재미난 이야기로 즐겁게 해주지 않을까하는 기대감에 책장을 열어본다.

저자는 이 책 외에도 역사를 주제로 한 소설 등 작품들을 다수 집필하였다. 저자는 소설가이자 비평가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으며 '대체 역사 소설'이라는 장르를 만들기도 한 작가이다.
개인적으로는 이 책 외에는 다른 책은 아직 읽어보지 못했으나, 향후에 관심 가는 책들 몇권을 읽어볼까 생각 중이다.

이 책은 총 두 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1권이 황해의 탄생에서부터 41번째 이야기 을미사변까지 역사적 사건들로 이어지고, 2권은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과 마지막인 95번째 이야기 ‘황해의 귀환’까지로 구성되어 있다.
각각의 이야기는 독립적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특정 주제나 사건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한마디로 백여개에 가까운 옵니버스식 구조다.
‘미추홀’ 하면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떠올리는 것은 인천광역시의 여러 행정구들 중에 하나인 미추홀구를 생각할 것이다. 나 역시도 그랬다.
미추홀의 의미는 ‘소금의 성’., ‘소금이 나는 성’이라고 한다. 그래서 이 소설 또한 제목이 미추홀인 만큼 시작 또한 미추홀을 배경으로 한다.
미추홀은 본시 마한 - 백제가 지배했던 영토로, 고구려 유민인 온조와 비류가 소서노와 함께 남하하여 세운 위례성에서 유래한다.
물론 그 후로 고구려가 점령하기도 하였고, 통일신라가 지배하기도 하였다. 이후에는 고려와 조선, 그리고 현재 대한민국에 이르렀다.
물론 이 책의 이야기가 미추홀, 즉 인천이라는 지역에 국한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한반도 전체, 아니 동아시아와 세계 역사까지도 커버한다. 그래서 조금은 산만해질 수 있으나,
한민족의 뿌리는 단군왕검의 고조선이라고 한다. 하지만 일제 식민사관 역사학자들은 단군왕검의 중심이 백두산을 중심으로 한 간도 (지금의 중국 길림성 일대)라고 하지만, 현재 우리는 그곳이 아닌 한반도 이남에서 살고 있다.
이 책은 한반도의 중심(솔직히 개인적으로는 한반도 전체가 아닌 남한의 중심인 거 같다)인 서울, 정확히는 서울 옆 인천이라는 지역에서 일어난 일들을 소설로 꾸며낸 이야기들로 구성되어 있다.
그래서 그런지 소설은 사실상 고구려에서 온조와 비류, 그리고 그들의 어머니인 소서노가 한강 부근으로 내려오는 이야기로부터 시작한다.
비류는 졸본국의 동영왕의 태자였음에도 불구하고, 뒤늦게 졸본을 찾아온 주몽에게 태자 자리를 내어주고 고구려 유민과 어머니, 동생과 함께 남쪽으로 남하한다.
그리고 한강 주변에 터를 잡아 위례성을 짓고 백제라는 나라를 건국하는데 여기서부터 미추홀의 역사는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 이후의 이야기는 백제에서 후삼국 시대, 고려까지 이어진다. 물론 고려를 정복한 몽고(원나라)에 관한 이야기도 나온다.
국가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육지를 건너 미추홀과 가까운 강화도로 본거지를 옮겨서 원나라에 맞서 싸우는 무인 정권, 그리고 이로 인해 피해를 보는 백성들….
그러고 보면, 우리나라의 역사는 여러모로 안타까운 부분이 참 많다. 우리나라 역사를 어디를 찾아봐도 우리 조상들이 세운 국가가 이웃나라를 먼저 침공하거나 정복한 사례는 찾기 힘들다.
물론 만주와 연해주 등을 중심으로 대제국을 건설한 고구려를 언급할 수도 있겠으나, 과연 고구려가 중국(중국이라기보다는 돌궐족, 말갈족 등 지금은 만주족이라고 통칭하는 소수민족이라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을 침공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미추홀은 고려시대말 조선을 황폐화시켰던 대마도에 근거지를 둔 왜구의 침략으로 인해 큰 피해를 입게 된다. 사실 미추홀 뿐만 아니라 전 국토가 그러하였다. 결국 왜구를 격퇴하는데 큰 공을 세운 이성계가 조선이라는 국가를 세웠으니 역사는 참 아이러니하다.
조선시대에 미추홀은 수도인 한양과 가까웠기 때문에 지정학적으로 더욱 더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된다. 특히 그 당시에는 육로가 발달하지 않았기 때문에 수로를 통해 크고 작은 화물선으로 물자를 이동하였기 미추홀은 특히 중요하였다.
조선 초기에는 평화와 안정을 찾니 싶더니 왜구 침략으로는 부족했던 일본은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이라는 만행을 저지른다. 명나라의 도움과 참다못한 백성들이 전국에서 의병을 일으키고, 이순신이라는 영웅의 등장으로 일본을 물리치는 하지만, 조선의 인구가 1/4로 줄어들고 국토가 황폐화된다.
조선을 도운 명이 만주족이 세운 금나라(이후 청나라로 국명 변경)에 정복되고, 명과의 의리(?)를 지키려고 했던 충직한 조상들의 선견지명으로 다시금 발병한 병자호란에 조선의 백성들은 편한 날이 없었다.
그리고 다시금 인구가 이전 수준으로 회복되고 (만약에 인구가 1/4로 줄지 않았다면 조선의 인구가 2배 이상 늘지 않았을까?) 안정과 번영을 누리나 싶더니 이번에는 다시금 일제가 조선을 재침공한다. (정말 이 대목에서는 대한민국의 국민이라면 울컥하지 않을 수 없다. 왜 자꾸 가만 있는 나라를 침공하냐고 나쁜 X들….)
일본이 조선을 식민지화하는 과정은 국사를 공부한 사람이라면 그냥 조선을 침공한게 아니라, 정말 긴 세월동안 장기적으로 준비해왔을 알 수 있다. 이에 반해 우리 조상들은 착한 건지 내부적으로 서로 치고박고 싸우기 바빴다.
붕당정치, 풍향 조씨와 안동 김씨의 세도정치로 인해 소수의 양반 계층만 호의호식 하고 대다수의 조선 백성들의 삶은 고통스럽다 못해 비참했다. 그러니 민란이 끊이지 않았고, 또 국가를 책임지고 경영해야 할 임금의 왕권 또한 추락하였으니 당연히 외세의 침입에 쉽게 당할 수 밖에 없었던 건 아닐까?

이 소설의 상당 분량은 근현대사 부분이 차지한다. 아무래도 글로 남아있는 역사적 기록도 많고 현대를 살아가고 있는 현 시점에서 주로 다루게 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리라.
청일 전쟁에 이어 러일 전쟁, 그리고 한일합병까지 이어지는 역사적 사실과 더불어 다양한 등장인물과 이야기가 전개된다.
무엇보다 조선이 일본의 식민지가 되고 나서 일어난 사건 중에 일본식 창씨개명에 관한 이야기에서 든 생각은, 오랫동안 일본 식민지가 되었으면 지금의 나의 이름이나 성은 일본식이었겠구나 라는 것이다.
소설은 6.25 전쟁과 1988 올림픽, 그리고 인천 아시안게임까지 역사적 사실과 함께 이어진다.
팩트 여부는 사실 확인이 어려우나 마치 역사적 사실처럼 느껴지는 세밀하고 자세한 이야기는 이 소설을 읽는 독자들의 몰입도를 늘려준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내내 든 생각은, 이 책의 주인공은 과연 누구인가?
평소에 소설을 읽을 때 나의 습관은 소설 속에 나오는 주인공에 나를 대입시켜(내가 주인공이라는 생각을 한다) 읽는다. 그렇게 읽으면 내가 주인공이 되어 영웅이 되고, 이야기 속에 푹 빠져드는 매력이 있어서다.
하지만 이 책은 옴니버스식으로 구성된 탓에 뚜렷하게 주인공이라고 부를 만한 사람이 없다. 아니 어쩌면 백여개에 달하는 이야기마다 각각의 주인공이 있는터라(약간의 과장을 보태면) 주인공의 수가 다른 소설에 비해 조금 많다.
물론 나중에 등장하는 이만석과 월례, 그리고 소설의 후반부에 등장하는 그들의 후손인 올가까지는 연속성이 있는 등장인물들이 이야기를 이어나간다. 하지만 워낙 방대한 한반도 역사와 주변 열강국들의 이야기까지 모두 다루다보니 특정 인물에 집중되지 않고 주위가 산만해진다.
그래서 그런걸까?
읽는 내내 개인적으로는 소설 속에 완전히 빠져들지는 못했다. 물론 그것은 나의 소설을 읽는 방식에 문제가 있어서 그랬을 수도 있다.
이 책은 저자가 굵직한 역사적 사건들이나 흐름을 풀어서 설명하는 것 외에도 중간중간에 저자의 상상을 바탕으로 한 허구적 요소를 가미한 이야기들로 인해 소설의 본질인 이야기의 재미를 더한다.
소설책인지 역사책인지 헤깔리기도 했지만, 역사를 좋아하는 독자라면 저자만의 독특한 옴니버스식 구성 방식과 중간중간에 나오는 다양한 인물(주인공)들의 매력에 푹 빠질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