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멀리즘적 쾌락주의
리프레시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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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읽고 솔직하게 작성한 서평입니다>


아마 중고등학생 시절에 윤리 수업때 (요즘은’ 윤리와 사상’이더라) 졸거나 딴짓을 하지 않았으면 서양 철학 중 고대 그리스의 스토아 학파와 에피쿠로스 학파에 대해 조금라도 기억할 것이다. 


나 역시도 강심장은 되지 못하여 학생 때 수업시간에 졸거나 딴짓을 하지 않아서 그런지 몰라도 십수년이 지난 작금에도 수업 때 들었던 에피쿠로스 학파에 대해 놀랍게도 생각난다. 그냥 ‘인생에서 고난을 줄이고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 중요하다’라는 정도를 어렴풋이 기억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나라의 고등학교 교과서에 수록된 에피쿠로스 학파 사상에 대한 내용은 아무래도 지면상 한계 때문인지 그다지 자세히 다루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 책은 ‘쾌락의 오해를 벗기고 본질을 말한다’라고 저자가 언급하는 바와 같이 에피쿠로스 학파가 주장하는 ‘쾌락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알려준다고 하니 그 내용이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책의 저자인 ‘제이 한’은 광고와 마케팅 분야에서 일했던 분이다. 그의 다른 저서인 <니체가 말하는 버려야 할 것과 버텨야 할 것> 또한 몇 달전 출판되었다. 


저자의 다른 저서인 니체의 사상에 관한 책 또한 추상적이고 복잡한 철학 개념을 구체적으로 일상에 접목하여 해결책을 제시하는 실용적 철학책으로 유명하다.




이 책은 190여 페이지로 다른 책들에 비해 짧음에도 불구하고, 놀랍게도 자그만치 10개의 챕터로 구성되어 있다. 


개인적으로는 10개의 챕터 중에서도 “4장 덜어내야 보인다”와 “8장 단순한 삶이 주는 기쁨”, 이 두 개의 챕터를 무척이나 흥미롭게 읽었다.


덜어내야 보인다


최근 쓰리룸에서 원룸으로 이사했다. 주변 상황이나 형편이 예전보다 나빠져서 부득이 동네도 그렇지만 집 또한 작은 곳으로 옮길 수 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침울해할 수는 없는 터라, 개인적으로는 이 기회를 나름 주변을 정리하는 기회로 삼아야겠다는 생각했다. ‘미니멀리즘’을 추구해야 겠다는 생각을 해서 그런지 몰라도 이 장 ‘덜어내야 보인다’에서의 내용이 특히 눈에 유난히 보였다.


“왜 우리는 그렇게 많을 것을 갖고 싶어 하는가?”


솔직히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다. 아무리 갖고 싶은 것을 가져도 새로운 것이 또 눈에 들어와 그것도 갖고 싶은 욕망이 생긴다. 


요즘 이러한 물질적 만능주의에 반대되는 개념이라 할 수 있는 ‘미니멀리즘’도 반사적으로 유행하고 있는데, 이 책에서 말하는 에피쿠로스가 말하는 ‘미니멀리즘’은 단순히 물질적 소유를 줄이는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다.


에피쿠로스는 단순히 소유하고 있는 물건의 갯수를 줄이는 것이 아닌 진정한 미니멀리즘은 “욕망을 비우고 기준을 낮추어 존재의 본질로 되돌아가는 것”이라고 말한다.


쾌락주의를 추구하는 에피쿠로스의 사상과 이러한 미니멀지즘이 서로 매칭이 잘 안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에피쿠로스는 사실 쾌락을 얻는 다는 것은 고통을 줄이거나 아예 없애는 것이며, “불필요한 것을 덜어낼 때 삶의 본질이 드러난다”고 말한다. 


저자는 묻는다. “그 욕망은 정말 내 것인가?”

  

우리가 느끼는 수많은 욕망 중에 정말 내가 바라는 욕망은 몇 개나 될까? 나 역시도 온갖 물질적 탐욕에 옷과 가방, 각종 전자 디바이스 등 이것저것 사서 모은다. 하지만 그 중에서 제대로 활용하거나 사용하는 것을 실제로 몇 개 되지 않으며, 대부분은 서랍장이나 옷장 속에서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곤히 잠들어 있다.


꼭 필요한 것만 남기는 법


집에 쌓여있는 불필요하게 사서 모은 옷과 신발, 각종 전자 디바이스 등을 막상 정리하려고 하니 무엇을 정리해야 할 지 막막하다. 다 버릴 수도 없고, 다 가지고 있을 수도 없고…


그런데 다행히(?) 이 책에서 저자는 에피쿠로스의 세운 비움의 기준을 알려준다. 


첫 번째 원칙, ‘지속 가능한 평온’을 기준으로 삼는다.


에피쿠로스가 말한 쾌락은 사실은 물질적 쾌락이나 만족이 아닌 ‘지속 가능한 평온’이다. 


저자는 우리는 ‘언젠가 필요할지도 모른다’라는 생각과 ‘지금 당장은 괜찮다’는 이유로 물건을 버리지 못하고 불편한 관계를 이어간다고 지적한다.


나 역시도 저자가 지적한 것처럼 잘못된 생각으로 주변의 물건들도 그렇고 관계 또한 정리하지 못하고 있는건 아닐까?


두 번째 원칙, ‘기능이 아니라 감정’을 기준으로 남긴다.


저자도 지적하지만, 우리가 일상에서 판단하는 잣대는 대개 ‘필요성’과 ‘기능성’이다. 그래서 나한테 도움이 되거나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물건도 그렇고 관계도 지속한다. 하지만 에피쿠로스가 말하는 기준은 다르다.


“이것이(이 사람이) 나에게 어떤 감정을 일으키는가?”


세 번째 원칙, ‘작고 반복 가능한 것’을 남긴다.


이 원칙에 대해 에피쿠로스는 “나의 삶에서 매일 반복할 수 있는 평온한 행동은 무엇인가?”라는 기준을 제시한다.


요즘 같이 더운 날 시원한 물 한잔이나 편한 친구와 맛있는 음식을 먹거나 술 한잔 하는 것, 그리고 

땀 흘리며 운동을 하고 목욕과 사우나로 피로를 푸는 것 등 소소하지만 확실하게 나에게 행복을 주는 것들이 바로 ‘작고 반복 가능한 것’이 아닐까?

진짜 중요한 것은 언제나 조용하다


우리는 선택의 홍수 속에서 살아간다. 당장에도 무엇을 먼저해야 할지, 이따가 점심에는 뭘 먹을지, 출근할 때 무엇을 입고 나갈지 등등


특히나 현대사회의 물질적인 풍요와 더불어 선택의 폭이 과거에 비해 현저하게 넓어졌다. 하지만 선택의 폭이 넓어진 만큼, 수많은 결정을 해야하는 우리는 늘 피곤하고 스트레스를 받을 수 밖에 없다.


덜어낸 사람만이, 자기 삶을 똑바로 본다


에피쿠로스 학파에게 철학이란 삶의 질문을 줄이는 기술이라고 한다. 삶의 질문을 줄인다는 의미는 무엇이 중요한지를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더 이상 질문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에피쿠로스는 “우리는 모든 걸 가졌을 때가 아니라, 덜 필요할 때 가장 자유롭다.”라고 말한다.


결국 자유란 더 소유하고자 하는 욕망을 채우는게 아닌 더 이상 필요한 것이 없을 때 느낄 수 있다는 의미다. 


‘미니멀리즘’ 또한 내가 정말로 최소한으로 필요한 것을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비운다는 것인데, 어쩌면 에피쿠로스가 말한 진정한 쾌락이란 미니멀리즘을 몸소 실천하여 나에게 더 이상 필요한 것이 없고 현재의 상태에 만족하는 것이 아닐까? 


자유로운 상태란 ‘덜 원하고’, ‘덜 비교하고’, ‘덜 기대할 때’ 비로소 얻을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는 충분한 재물을 모아야 경제적 자유를 누릴 수 있다고 착각하며 살아가고 있다. 



이 책이 좋았던 점은 각 챕터의 끝마다 에피쿠로스의 사상을 짧고 간결하게 몇 개의 문장으로 정리한 <에피쿠로스의 통찰>과 그 동안 각 챕터를 읽은 내용을 바탕으로 스스로 생각해보는 시간을 갖는 <스스로에게 질문해보기>, 그리고 책을 읽은 내용을 실행하라고 <직접 실천해보기>라는 코너가 수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무언가가 줄어든다는 것은, 그 만큼 삶의 중심이 뚜렷해진다는 뜻이다.”


에피쿠로스의 이 말의 의미는 주변의 것들을 차츰 줄여나가야 결국에 무엇이 가장 중요한지를 알게 되고, 또 그만큼 우리의 삶을 제대로 된 방향으로 중심을 잡을 수 있다는 것이다.


에피쿠로스가 말하는 쾌락은 고통이 없는 평온한 상태를 말한다. 그러한 상태가 되기 위해서는 주변의 것들을 덜어내야 하며, 불필요한 것들을 다 덜어낼 때 삶의 본질이 드러난다고 한다.




“지금의 이 선택이 나의 평온을 지켜주는가?”


나의 평온을 지킬 수 있는지 여부가 가장 중요한 선택의 기준이다. 많이 가져야 부자가 되어 행복해지고 자유를 얻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들을 하나씩 덜어내고 필요한 것이 더 이상 없을 때 진정한 자유와 부유함을 얻는 것이다.


요즘 같이 물질만능주의가 팽배한 현대사회에는 어쩌면 누군가에게는 맞지 않은 사상일 수도 있다. 하지만 진정한 행복이나 자유는 욕구를 채우는 것이 아니라 ‘미니멀리즘’을 통해 더 이상 필요한 것이 없는 상태를 만들어 스스로 평온을 얻는 것이다.


이 책은 나에게 에피쿠로스의 쾌락주의가 진정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깨닫게 해주어서 좋았다. ‘미니멀리즘’을 최근 시작해서 그런지 몰라도 나에게는 참 와닿는 얘기가 많았다.


에피쿠로스의 철학을 제대로 알고 싶고 진정한 행복과 쾌락을 얻고자 한다면 이 책은 반드시 읽어봐야 할 책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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