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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구석 판소리 - 조선의 오페라로 빠져드는 소리여행 ㅣ 방구석 시리즈 3
이서희 지음 / 리텍콘텐츠 / 2025년 6월
평점 :
판소리는 한국 전통 음악이자 고전 문학이기 때문에 누구나 학창시절에 배운 적이 있다. 하지만 적지 않은 사람들은 일본의 전통 공연예술인 가부키와는 달리 판소리에 대해서 큰 관심이 없는 것이 사실이다.
아마 학창시절에 공부를 좀 열심히 했었다면 판소리가 진양조, 중모리, 빠른 중중모리, 휘모리 등 극적 내용에 따라 느리고 빠른 장단으로 구성된다는 사실이 기억날 것이다. 나 역시도 고등학교를 졸업한지 꽤나 시간이 흘렀지만 국어(문학이었나?) 시험에 주관식 문제로 출제되어서 풀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각난다.
이렇듯 나 역시도 그렇지만 많은 사람들이 판소리 자체를 문학의 한 장르로써 즐긴다기보다는 나와는 무관한 우리 고유의 전통 공연이나 예술의 한 장르 정도라고만 생각하고 경우가 허다하다.
그런데 책 표지에도 나온 것처럼 판소리는 ‘조선 오페라’로, 과거 조선시대의 정서를 나타내는 전통예술이자 우리 조상들의 희노애락의 삶과 한을 음악적으로 표현한 문학 작품이니까 한 번쯤은 읽어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책을 펼치게 되었다.

이 책의 저자는 문학 콘텐츠 전문 작가다. 그녀는 이 책 말고도 <방구석 오페라> <방구석 뮤직컬> 등 여러 문화예술책을 출간하였고 이 책 또한 <방구석 OOO> 시리즈 중 하나다.
그녀의 ‘소리 하나에 마음이 흔들리던 날을 기억하는 사람’이라고 쓴 자기소개가 참 마음에 든다.

17세기 조선 후기에 전라도 지역에서 시작된 판소리는 2003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우리 고유 문화 예술이다. 조선 후기에는 농업과 상업의 발달로 서민 경제가 성장하고 서민 문화 또한 크게 발달하였는데, 이러한 시대적 상황에 맞춰 판소리가 등장하게 되었고, 지금은 서민들의 삶 속에서 피어나 점차 예술적 깊이를 더하며 한국을 대표하는 공연 예술로 자리매김하였다.
이 책은 다섯개의 파트로 구성되어 있다. 조선시대 판소리 5개 외에도 4개의 타령, 향가, 고전시가, 그리고 고전소설까지 다양하게 고전 문학작품/예술을 다루고 있다.
파트1에서 수록된 5개의 판소리 모두가 익숙하고 아는 내용이지만 그중에서도 <수궁가>를 재미나게 읽었다. 이솝우화 중 하나인 <토끼와 거북이> 이야기와는 조금 다르지만, <용궁에 다녀온 토끼>라는 전래동화를 모두 기억할 것이다.
이 전래동화는 고구려 시대 <귀토지설>에 바탕을 둔 이야기인데, 이를 판소리로 나온 것이 <수궁가>이다. 어릴 때 읽으면서 토끼의 꾀에 넘어간 순진한(?) 거북이가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용왕님이 토끼가 알려준 약을 먹고 쾌차하였다는 내용으로 많은 전래동화들이 그렇지만 해피 엔딩으로 끝난다.
파트2에 수록된 타령 중에서는 장끼타령을 흥미롭게 읽었다. 아홉의 아들과 열둘의 딸을 둔 장끼와 까투리에 관한 얘기인데, 아무래도 입이 많다보니 추운 겨울에 먹이가 불충분했다.
여자의 육감을 믿으라 했던가? 들판에 먹음직스러운 콩알 한쪽을 보고 장끼는 배고프니까 먹으려고 했으나 까투리는 간밤에 꾼 꿈이 안 좋았다며 이를 말린다. 하지만 역시나 남자는 여자의 말을 안 듣는다. 그래서 장끼는 자신의 고집대로 콩알을 먹기 위해 다가 갔다가 결국 덫에 걸려서 저세상으로 가게 된다.
비록 등장인물이 인간이 아닌 동물(정확히는 새)이자만, 결국 세상살이 다 똑같다. 여자의 말을 안 듣고 자기 고집대로 하다가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하는 남자…
파트3는 삼국시대의 뮤지컬 이라 할 수 있는 ‘향가’가 소개되어 있다. 이 역시도 중고등학교 때 국어(문학) 시간에 배운 내용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서동요가 눈길을 끈다.
백제의 왕자가 신라의 절세미녀 선화 공주를 꼬시기(?) 위해 신라 수도의 길거리 아이들에게 마를 나누어주고 서동요를 부르게 하여 결국 궁궐에서 쫓겨나게 만들어 혼인까지 성공한다는 이야기인데, 이때 아이들이 부른 노래가 서동요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미인을 얻기 위해서는 보통의 방법으로는 불가능하고, 남다른 꾀를 내어야 가능한 것 같다. 책도 많이 읽고 열심히 공부도 했지만 지금의 나를 보니…. 나는 꾀가 부족한가보다.
마지막으로 인상깊게 읽은 부분은 <정수정전>이었다. 여성 히로인에 관한 이야기인데, 아무래도 남존여비 사상이 강하던 조선시대의 고전소설이라는 점은 놀라웠다. 주인공인 수정은 태생부터가 신비로운데, 젊은 나이에 부모를 모두 잃었으나 이에 좌절하지 않고 열심히 스스로를 갈고 닦아 과거에 급제하고 문무를 겸비한 장수가 되고 결혼하여 자신의 인생을 성공적으로 산다는 내용이다.
남성 중심의 사회였던 조선시대에 성평등, 아니 주인공이 여성임에도 불구하고 사회적으로 높은 위치에 오르는 등 성공하고 실력을 발휘한다는 내용은 어쩌면 지금은 새삼스럽지 않지만 그 당시에는 파격적이다 못해 혁신적인 내용이 아니었을까?
이 책이 좋았던 점은 책 앞부분에 수록된 ‘판소리 용어해설’ 부분이었다. 아무래도 학생때 판소리를 자의반 타의반으로 배웠다고는 하나, 이미 오래 전 일이라 판소리에 관한 모든 내용이 기억나는 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과거에 학창시절 판소리를 배웠던 기억을 상기하는 측면에서 도움이 되었다,

무엇보다 책에서 소개하는 고전 문학 예술 작품들이 학창시절에는 시험(중간고사나 기말고사, 수능) 때문에 억지로 읽었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는 어쩌면 우리에게는 친숙하면서도 다소 멀게만 느껴졌던 고전 문학, 고전 예술을 쉽고 편안하게 즐길 수 있도록 잘 큐레이팅해주는 느낌이다.
서양에 오페라와 뮤지컬이 있다면 우리나라에는 판소리가 있다. 그리고 삼국시대부터 이어져온 향가나 타령, 시가가 있다.
서양의 오페라가 귀족들이 즐겨보던 공연이었던 만큼 화려함과 웅장한 스케일을 자랑한다. 그래서 그럴까? 오페라 극장은 엄청난 규모와 시설을 갖추고 있다. 또 다수의 오케스트라와 지휘자, 성악가 등 다양한 사람들이 공연을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판소리는 서민들을 대상으로 한 공연이다. 그래서 극장이라고 부를 만한 공연장이 따로 없다. 그리고 소리꾼과 고수로 공연을 하는 아티스트의 구성이 매우 단촐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의 판소리는 관중(구경꾼)들이 적극적으로 공연에 참여한다. 일방적으로 관람만 하는 오페라와는 사뭇 다르다.
그런데, 이 책의 표지에도 적혀있지만 ‘조선 오페라’, ‘소리로 풀어낸 서사’, ‘한과 해학의 선율’이라는 문구와 같이 판소리를 단순히 서양의 오페라에 비유하거나 대조하는 것은 옳지 않다.

판소리는 시대를 넘어 관객의 심금을 울리고 서민들의 삶과 정서에 뿌리깊게 내려온 전통 고전 예술이다.
그렇다면 일본의 가부키와는 어떻게 다른가? 일본의 가부키야 말로 오히려 서양의 오페라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배우(모두 남자)들이 화려하고 정교한 무대 위에서 춤과 노래, 연기, 기예를 통해 극을 전개한다.
이에 반해 판소리는 소박하고 간소하다. 판소리는 우리의 고유한 전통 문화 예술 유산이기도 하지만, 서민의 애환과 삶을 담은 민중 예술이라는 점에서 반드시 계승하고 보존해야 할 가치가 있는 것 같다.
판소리나 향가, 고전시가 등 우리나라 전통 문학 예술에 관심 있는 사람이나 어렵게 느끼는 독자라면 이 책을 읽는다면 좀 더 쉽게 이해하고 다가갈 수 있을 것 같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읽고 솔직하게 작성한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