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어떤 인생도 실패는 아니라고 장자가 말했다
한정주 지음 / 다산북스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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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하면 무엇이 생각나는가?


적지 않은 사람들은 ‘도가’를 떠올릴 것이고, ‘속세를 초탈하고자 한 도인’ 혹은  ‘ 당시 춘추전국 시대라는 혼란스러운 시대적 상황에서 현실을 도피하고자 한 독특한 자’라는 생각을 떠올릴 것이다. 


하지만 이는 잘못된 편견이다. 우리도 모르게 “공자왈 맹자왈” 거리며 읊다보니 우리도 모르게 유교 사상에 세뇌되어 장자의 철학을 폄하하는 것에 불과하다.


이 책은 대한민국의 인문학자이자 역사평론가인 한정주 작가가 우리의 인생을 장자라는 독특한 세계관을 지닌 철학 관점에서 살펴본다는점에서 눈길이 가지 않을 수 없다.




이 책의 저자는 역사와 고전을 공부하는 모임인 ‘뇌룡재’를 운영하고 있으며, 저술 및 강연 활동을 꾸준히 이어오고 있다.


저자는 이 책 외에도 <마흔에 읽는 사기 인문학>, <문장의 온도>, <조선 최고의 문장 이덕무를 읽다>등 역사나 철학에 관한 책들을 저술하였다. 




저자는 서두에 자신은 역사학을 전공하였지만, 20 ~ 30대에는 마르크스의 철학에, 40대 초중반에는 니체의 철학, 그리고 40대 후반부터 50대 중반에 이른 지금은 장자의 철학에 심취해있다고 밝히고 있다.


역사나 철학에 대한 지식이나 이해도가 전문가인 저자는 왜 장자의 철학에 그리 빠져있는걸까?


솔직히 우리는 중고등학교 때 윤리/철학 시간에 장자에 대해서 잘못 배웠다. ‘장자’하면 속세를 초탈하고자 한 맹자와 동시대에 살았던 철학자로 알고 있다.


하지만 저자가 책 속에서 밝히고 있듯이, 장자는 그냥 현실 도피와 속세와 연을 끊고 사는 그런 신선 같은 존재가 아니다.


장자의 철학은 오히려 우리의 인생에서 무엇이 진실로 중요한 지에 대해 다시금 생각케 해주는 이론이다. 오죽했으면 저자가 책에서 장자의 철학은 “지금까지 길을 찾지 못한 삶의 근본 문제들을 다시 질문하고 탐구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공해주었다.”고 밝히고 있을까?


왜 장자의 철학은 현대의 학자들의 시선에 ‘현실 도피’로 보였을까?


사실 춘추전국시대는 단순히 중국 전역이 전쟁으로 백성들의 삶이 피폐해진 정도가 아니였다. 오래된 전쟁과 가뭄, 자연재해 등으로 사람이 사람을 잡아먹는 암흑의 시대였다. 한마디로 ‘암흑’과 ‘절망’의 시대였다. 


그런 시대에 사회, 즉 국가를 유지하기 위해서 지배계층은 윤리와 도덕을 강조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장자는 이들과는 다른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았다. 장자의 제물론은 그의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을 잘 보여준다.


“길은 사람이 걸어 다님으로써 만들어진다. 사물의 명칭은 사람이 그렇기 부르기에 그렇게 정해진 것이다.”


결국 우리가 정하는 데로 정해지는 것이 아닐까?



장자하면 또 하나 떠오르는 건 거대한 물고기 ‘곤’과 큰 새 ‘붕’일 것이다.  그는 꿈 속에서 곤어에서 붕새로 변신하여 어두운 바다를떠나 남녘으로 날아가려고 한다. 이는 자신이 욕망하는 이상향을 찾아 나선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인간은 욕망이 삶을 지배한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계속해서 발전해 나갈 수 있었다. 하지만 지나친 욕망은 탐욕이 되어 되레 인간을 망치기도 한다.


저자는 데카르트의 명언 중 하나인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를 “나는 욕망한다. 고로 존재한다.”로 바꿔도 될 정도로 인간에게 욕망은 절대적이라고 지적한다.


물질 만능주의가 되어버린 현대사회를 보면, 인간의 욕망은 그 어느 시대보다도 극에 달했다고 할 수 있다.


돌이켜보면, 나 역시도 예외는 아니다. 누구나 젊었을 때 그지만, 과거에 사랑을 했다고 생각했으나, 지금 보면 사랑을 한게 아니라 나의 욕망을 충족시켰던 것에 불과하다.


“욕망 때문에 현실의 삶과 가상의 삶은 뒤엉켜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렇다. 욕망하는 나는 현실에 존재하고, 욕망 속의 나는 가상의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인데, 김만중의 <구운몽>이라는 고전소설에서 이에 대해서 참 잘 설명하고 있다. 


과거 고등학교 때 시험문제에도 나왔던거로 기억하지만, <구운몽>의 이야기는 장자의 호접몽 우화와 매우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장자는 꿈속에서 나비가 되어 자유롭게 날아다니는데, 이는 장자가 ‘자유로운 삶’을 욕망하기 때문에 꿈에서 나비가 된 것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점은 장자가 욕망하여 꿈 속에서 나비가 되고, 꿈 속의 나비는 장자로 변화하게 되는데, 결국 저자가 지적하는 것처럼 현실과 가상의 삶이 서로 뒤섞여 버린다. 


놀랍게도 저자는 “욕망은 충족되지 않을 때만 욕망이다”라고 말한다. 그 이유로 욕망이 실현되면 또 다른 욕망이 발생하고, 결국 욕망은 영원히 충족될 수 없다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돈을 쫓다 보면 아무리 돈을 많이 벌어도 만족할 수가 없다. 요즘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는 마약처럼 말이다. 마약도 결국에 쾌락을 쫓다가 더 자극적인 걸 찾다보니 마약에 손대는 게 아닐까?


그동안 지내온 나의 인생을 돌이켜보면, 나 역시도 욕망을 충족하기 위해 살았던 거 같다. 더 높은 연봉, 더 높은 지위, 더 좋은 차, 더 비싼 집… 그러나 나는 만족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내가 대한민국 최고의 연봉과 최고의 지위까지 오른 것도 아니고, 대한민국에서 가장 좋은 차와 가장 비싼 집에서 살았던 것은 아니다.


그냥 장자의 철학 관점에서 보면 정말 한심한 삶을 살았던 거 같다.




장자는 삶에 대해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날 때를 만나 그렇게 된 것이다”라고 말한다. 그리고 죽음이란 “세상을 떠날 때가 되어 그렇게 된 것이다”라고 한다. 즉, 삶이나 죽음은 단지 자연현상에 불구하고 자연의 흐름인 것이다.


결국 장자가 말하고자 함은 ‘현실 도피’나 ‘속세 초탈’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삶에 순응하고 사는게 아닐까?


그렇다면 이 책을 읽으면서 장자가 말하는 소위 ‘자유로운 삶’이란 도대체 무엇인지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가 지양하는 삶은 사자성어로 ‘무위자연’의 삶인데, 이는 ‘무위’, 즉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인위적’으로 하지 않거나 얽매이지 않는다는 의미다.


그리고 ‘자연’이란 속세를 떠나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산다는 것이다.


종합해보면, 인위적으로 얾매이지 않고 자연스러운 흐름에 맡겨 삶을 이어간다는 것이다.


저자는 장자가 말하는 ‘자유로운 삶’은 “단순히 자유를 구속, 속박, 지배, 통제하는 것에 대한 거부나 저항을 뛰어넘어 스스로 자유로운 삶의 가치, 기준, 질서를 창조할 때에야 성취할 수 있다”고 말한다.


 다시 읽어도 참 어려운 데, 한마디로 ‘얽매이지 않고 산다’라고 이해하면 될 것 같다.




저자는 말한다.


“끝없는 변화에 자신을 그대로 맡기는 삶, 그것이 모호하고 불확실한 운명을 대하는 장자의 태도이다.”


이 책에서 저자가 장자의 철학을 통해 독자들에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요약하면 아래와 같다.


첫째, 애착과 집착에서 탈주하라

둘째, 변화와 변신을 두려워하지 말라

셋째, 타인과 비교하는 삶이 아닌 자기다운 삶을 살라

넷째, 다른 사람에게 의존하지 말고 자기 자신에게 의존하는 삶을 살라

다섯 번째, 좋은 삶은 태도의 문제다


개인적으로는 다섯 번째 메시지가 참 좋았던 거 같다. 결국 나의 삶의 나의 태도에 달려 있고, 그렇기 때문에 좋은 삶 역시도 나의 태도에 따라 좌우되는 것이 아닐까?


동 시대의 다른 철학자들과 비교하여 독특한 철학을 지닌 장자에 대해 올바르고 제대로 된 이해를 할 수 있어서 이 책이 참 좋았다.

선과 악, 옳고 그름, 그런 것들을 떠나 나만의 고유한 삶을 사는 길을 찾아보고 싶은 사람이라면 이 책을 통해 장자의 철학을 제대로 이해하고 삶에 적용하면 좋을 것 같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읽고 솔직하게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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