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트] 삶과 운명 1~3 세트 - 전3권 창비세계문학
바실리 그로스만 지음, 최선 옮김 / 창비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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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란 무엇일까?


예로부터 삶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적지 않은 철학자들과 과학자들, 그리고 지도자들이 부단히 고민해온 주제가 아닐 수 없다. 인간에게 있어서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하는가 만큼 중요한 주제도 없기 때문이다. 


이 책은 2차 세계대전판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라는 평가를 받을 만큼 대단한 장편소설이자 역작이기도 하다. 


20세기에서 가장 끔찍한 전쟁 중 하나였던 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하는, 현대 러시아 문학의 최고 걸작이자 세계적으로 가장 위대한 전쟁 소설 중 하나라는 말에 이 책에 눈길이 가지 않을 수 없다.




놀랍게도 이 책의 저자는 우크라이나 태생이 유태인으로, 모스크바 대학에서 수학하였다. 2차 세계대전 중 어머니는 유태인 학살로 잃었고, 폭탄 폭발로 큰 아들은 다리를 잃었다.


저자는 종군기자로 활동하며 <트레블린카의 지옥이라는 홀로코스트 보고서를 집필하였고, 이 책 외에도 <스째빤 꼴추긴>, <인민은 죽지 않는다>, <정의로운 일을 위하여>, <모든 것은 흐른다> 등 다양한 소설 책을 집필하였다.


이 책은 1959년에 완성되었으나 스탈린주의에 반한다는 이유로 다른 당대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소련 공산당의 검열 등으로 인해 출간 불허 판정을 받았고 압수까지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밀반출에 성공하여 1980년에 스위스에서 출간된 이후 영어, 독일어, 프랑스어 등 번역본이 출간되고 러시아에서도 1989년에 출간되었다고 한다.


무엇보다 이 책은 영국과 러시아에서 라디오와 TV 드라마로도 만들어졌다고 한다.




이 책은 장편소설인 만큼 분권되어 총 3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전쟁이라는 특수한 상황과 혼란 속에서 한 가족의 운명을 그려낸 소설로, 2차 세계대전 중 스탈린그라드 전투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아마 전쟁만큼이나 슬픔을 주고 비극적인 사건이 아닌 것도 없을 것이다. 전쟁은 ‘좌’냐 ‘우’냐, ‘전체주의’냐 ‘공산주의’냐 등 이념이나 이데올로기라는 명분을 앞세워 시작하지만, 결국 인간에게 슬픔과 불행, 이별과 죽음 등 수많은 번뇌와 고통만을 안겨준다.


책 속의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스트룸과 그 가족들은 전쟁이라는 특수한 상황이 발생하자 모스크바에서 카잔으로 피난을 간다. 





이 책이 좋았던 점은 전투를 배경으로 하고 있어서 긴장감을 더해주고, 예리한 시선과 사실적인 묘사는 독자들에게 또다른 재미를 선사한다. 


놀랍게도 러시아를 침공하는 나치즘이라는 전체주의에 빠진 독일이나 인민을 위한다는 공산주의나 결국 이데올로기만 달라 보일 뿐 사회 내부의 모순이나 비리는 결국 근본적으로는 동질하지 않을 수 없다.


전쟁이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살아남아야 했던 주인공과 그 가족들은 여러 비극을 겪게 된다. 


이 책에서 인상 깊게 읽었던 내용은 2권에서 나온 ‘우정’에 관한 저자의 생각이다.


‘우정’이라고 생각하면, 우리는 흔히 친구 간의 우정을 떠오른다. 하지만 저자는 우정에도 다양한 우정이 있다고 지적한다.


노동 속의 우정, 혁명과업 속의 우정, 긴 여정 속의 우정, 병사의 우정, 감옥 속의 우정, 기쁜 속의 우정, 슬픔 속의 우정, 평등 속의 우정, 불평등 속의 우정….


우정은 도대체 무엇일까?


저자는 “같은 운명, 같은 직업, 같은 생각을 지닌 사람들 사이에서 친구를 사귀게 되는 경우가 가장 잦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는 이러한 공통성 만이 우정을 결정하는 것은 아니라고 부인한다.


“정반대의 성격을 가진 사람들끼리도 친구가 될 수 있다”고 말하는데, 이에 대한 저자의 생각에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왜냐면 성격이 다르면 언젠가는 서로 다투게 되고, 다툼이 계속되다 보면 서로 감정이 상하게 된다. 그리고 결국에는 우정이 깨질 수 밖에 없다. 


“우정의 추구는 인간 본성에 내재되어 있다”고 저자는 말하는데, 인간과 친구 관계를 맺을 수 없는 인간은 개, 말, 고양이, 쥐, 거미와 친구가 된다고 한다. 물론 반려동물을 가족처럼 여기거나 친구처럼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인간과 인간의 관계, 우정과는 그 성격이 다르다.


책 속에서는 전쟁의 비극을 묘사하는 문장도 종종 등장하는데, 그 중 인상적이었던 표현을 소개한다.


“그녀를 위하여, 그녀의 아들을 위하여, 얼음물에 손이 부르튼 여인들을 위하여, 노인들 위하여, 제 어미의 해진 머릿수건에 친친 감겨있는 아이들을 위형, 그곳에서 젊은이들이 죽음을 향해 행군하고 있었다.” 


이 책에서는 유태인 학살이나 수용에 관한 얘기가 주를 이룬다. 아무래도 저자가 2차 세계대전 중에 일어난 전쟁의 비극을 상세히 담으려고 한 의도가 있는 만큼 그럴 것이다. 


많은 러시아(?) 소설들이 그렇지만, 내용이 워낙 방대하고 분량이 많다 보니 책을 요즘 나오는 자기계발서와는 다르는 게 단숨에 읽기에는 다소 벅차다.




이 책은 문학작품 - 장편 소설 임에도 불구하고 내용을 읽다가보면 재미보다는 진정한 인간의 의미를 되새기게 할 정도로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그래서 그런걸까? 생각보다 책을 읽어나가는 속도가 더뎠다. 소설 중간 중간에는 작가의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있었기에 그의 세계관을, 그의 사상을, 그의 생각을 엿볼 수 있었다.


그 중 인상 깊었던 구절은 ‘죽음’에 관한 작가의 생각이었다.


“주저 없이 죽음으로 보낼 권리보다 더 큰 권리가 있다. 그건 죽음으로 보내며 한번 더 생각할 권리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죽음을 피할 수 없다. 그런데 죽을 때 한번 더 생각할 권리라고? 납득하기 어렵지만, 전쟁이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가능할 수도 있겠다 싶다. 


총이나 칼과 같은 무기로 남의 생명을 앗아갈 수 있으니까. 그리고 앗아갈지 여부를 무기를 든 사람이 결정할 수 있으니까.


삶과 운명은 타고나는 것일까? 


누구나 삶을 살아가는데 굴곡이 있겠지만, 만약에 삶이라는게 이미 정해져 있다고 한다면 어쩌면 삶을 살아가는 이유가 없어질 것 같다.


‘우리의 생각이 삶과 운명을 결정짓는다’라는 말도 있듯이, 어쩌면 삶이나 운명은 미리 정해져 있는 길이 아니라 우리가 어떻게 마음 먹기에 따라 달라지는 거다.


미국의 유명한 오프라 윈프리도 말하지 않았는가? 


“우리가 무슨 생각을 하느냐가 어떤 사람이 되는지를 결정한다”


“살아있는 것은 모두 고유하다”


인간을 죽고나면 한 줌의 재가 되어 자연으로 돌아가지만, 살아있는 동안 만큼은 서로 생김새도 다르고 생각도 다르고 무엇 하나 똑같은게 없을 만큼 서로 구별되며, 유사한 것 하나 없으며 있을 수도 없다.




이 책은 20세기의 세계적인 비극적 사건 중 하나인 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한 어느 가족의 운명을 그린 이야기다.


전쟁이라는 참혹함 속에 다양한 인간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그려내고, 무엇보다 작가의 특유한 세계관을 엿볼 수 있었다.


아무래도 장편소설이기 때문에 내용이 난해하기보다는 분량이 많아서 (자기만치 권당 500페이지에 달하는 두꺼운 책으로 3권이나 된다!) 그런지 읽다가 3권으로 넘어가니 1권 내용에 대한 기억이 가물가물해진다.


하지만 이 책이 문학작품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중간중간에 작가만의 고유한 관점이나 생각을 스스럼없이 표현하고 있어서 그 점에서는 책을 읽다가도 작가가 던진 문장에 대해 깊은 생각에 빠지곤 했다.


<전쟁과 평화> 등 톨스토이 작품을 애독하는 팬이거나 장편소설을 즐겨 읽는 독자라면 꼭 읽어봐야 할 러시아 문학작품이 아닌가 싶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읽고 솔직하게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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