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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피와 회귀
최인 지음 / 글여울 / 2021년 9월
평점 :
제목부터 독특한 작가 최인씨의 장편소설인 ‘도피와 회귀’는 그 구성 또한 다른 소설책과 달리 매우 독특하다.

제1장 ‘고독으로부터의 탈출’ 등 총 15개의 장으로 나누어져 있다. 마지막 15장인 ‘도피와 회귀’가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하다.

저자는 1998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단편 <비어있는 방>으로 등단하고 2002년에는 작품 <문명, 그 화려한 역설>로 국제문학상을 수상한 분이다. 무엇보다 저자는 12년간 소설교실을 운영하면서 제자 양성에 힘써온 점이 눈에 띈다.

‘작가의 말’ 부분도 간결하면서 임팩트 있어 독자들의 시선을 확 끌어당기는 힘이 있다.

무엇보다 일기형식으로 되어 있어 각 에피소드마다 날짜가 적혀있다. 그리고 해당 에피소드의 주제라고 할 수 있는 문장이 있고 그 아래에는 해당 날짜에 있었던 세계사적으로 중요한 사건이 짧게 요약되어 있다.
해당 날짜의 에피소드에 대한 주제를 나타내는 문장도 인상적이지만, 그 아래 저자가 요약 기술한 세계사적 사건을 읽는 재미 또한 솔솔하다.
일부는 아는 내용이지만, 일부는 미쳐 몰랐었던 역사적 사건(?)들이 담겨있기도 해서 독자로 하여금 몰입감을 더 준다.
물론 책의 편집은 그다지 reader friendly하지 않다. 오히려 작은 글자체와 너무 빽빽하게 된 자간이나 문간은 독자로 하여금 책을 읽다보면 빨리 눈을 지치게도 한다. 하지만, 소설의 내용을 읽다보면 그 재미에 나도 모르게 책속으로 몰입되게 하는 힘이 있다.
책은 30대 후반의 대학에서 철학을 가르치는 교수, 아니 엄격히 따지면 시간 강사인 주인공 ‘최명하’에 대한 1년 간의 이야기다.
물론 책의 개개 에피소드 맨 위에 날짜가 있지만 소설이 일기체 형식을 취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냥 날짜별로 다양한 에피소드를 시간순으로 나열하고 있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 것이다.
이 소설의 또다른 특징은 내용 중간 중간에 철학적인 내용들이 담겨있다. 그리고 유토피아나 이데올로기에 관한 다소 무거울 수도 있는 내용도 나오며, 특히 남북 분단에 대한 현실이나 주인공이 중국에 갔다가 술김에 월북하였다가 다시 중국으로 건너온 점 등 흥미진진한 이야기도 나온다. 그리고 월북하였다가 북한 보위부 관계자의 조사를 받고 다시 풀려난 점을 이유로 국가의 정보기관에서 민간사찰 내지는 감시를 당하는 내용도 나와서 독자들의 궁금증을 더욱 유발하기도 한다.
소설의 초반만 읽는다면 30대 후반의 한 남성의 고뇌와 도피, 사생활, 그리고 이혼한 전 부인과 가출한 딸아이에 관한 내용으로 치부할 수도 있을 것이다. 어쩌면 현대인이라면 수긍할만한 내용들을 많이 담고 있다. 하지만 책을 읽으면서 저자는 독자에게 철학적으로나 이념적으로 생각을 할 수 있는 여지를 남긴다.
개인적으로 와닿았던 부분은 4월1일에 ‘인류는 도전과 응전을 반복하며 성장해 왔다’라는 에피소드에서 나오는 철학적인 내용이다. ‘인류는 쉴새없이 도전과 응전을 계속하며 발전해왔고 그 속에서 낙오되는 인간은 자연스럽게 퇴보하고, 체제로부터 추방당한다’라는 부분이다. 어쩌면 이 문장은 주인공이 빠르게 발전하는 사회에서 낙오되고 결국 추방당한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책 속의 내용 중에 ‘개인이 된 현대인의 삶은 너무나 힘겹고 고통스럽고 잔인하다’라는 문장이 있는데, 실제로 저자는 주인공의 삶이 힘들고 고통스럽고 잔인하기까지 한 점을 소설의 여러가지 에피소드를 통해 독자들에게 보여준다.
또 인상적이었든 부분은 주인공이 자신의 제자이자 동거녀인 화니와 사랑을 나누면서 혼자 독백한 대사다. “나는 절대로 도망치지 않아.”
그러나 소설을 읽어보면 주인공은 현실에서 도망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다. 전 처의 아파트에서도 나와서 시골집으로 도망가다시피 도피한 것도 그렇고, 책 후반에는 일본으로 가려고까지 한다.
주인공은 시간강사 자리에서 쫒겨나 결국에 지방의 공장에 기능공으로 취업하려고 하지만 나이 등을 이유로 번번히 거절당하는 내용이 나오는데, 이는 요즘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기도 한다. 실제로 30대 후반의 남자가 재취업을 하기란 하늘의 별따기처럼 어렵기 때문이다.
소설 중간에는 주인공이 이혼 후 후배 등 여러 여성들과 사랑을 나누는 19금에 해당하는 장면들도 나오는데, 소설이 지루하지 않게 해주는 윤활유 역할을 한다.
제자이자 동거녀인 화니가 임신하게 되나, 결국에는 유산까지 하게 되는 안타까운 이야기도 나온다. 또 그가 데려온 강아지 코기가 임신하였는데, 둘째 새끼를 낳고 셋째를 낳는 과정에서 죽는 장면도 나오는데, 이 사건은 결국 이 소설의 결말을 암시하는 복선이기도 하다.
소설의 후반부에 가면 주인공이 북한에 다녀와서 정보당국의 감시를 받고 집에 원인 모를 침입이나 도난 사건이 발생하면서 소설은 정점에 이른다.
또 화니가 데려온 코기가 낳은 새끼 강아지가 자유를 갈망하는 내용을 통해 인간 뿐만 아니라 동물도 자유를 추구한다는 점을 다시금 강조한다.
이 책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부분은
“인간의 앞모습은 악하나 인간의 뒷모습은 선하다. 그에 반해 동물은 앞뒤에 관계없이 언제나 선하다. 왜냐하면 동물들은 항상 등을 하늘로 향한 채 살아가기 때문이다”
어쩌면 저자의 말이 사실이 아닐까 싶다. 왜냐면 인간은 이타심을 가진 선한 존재이기도 하지만 자기중심적인 악한 면을 동시에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간만에 읽은 소설책이다. 책 속에 철학적인 내용이나 이념과 이데올로기를 담고 있어 어쩌면 무거운 소설이였음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에피소드와 함께 저자의 문장력 덕에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북카페 책책책 서평단에 선정되어 책을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