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는 영향이 더 클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돌아가신 노무현 대통령이 하셨던 말씀은 여전히 가슴을 짓누른다. "전 세계 부동산 가격이 다 올라도 한국은 올라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열린우리당 지도부와의 만찬에서, 2005년 6월 28일). - P89

J물론 그럼에도 문재인 정부나 민주당도 빌미를 제공하지 않은것은 아니다. 집값 급등에 따른 민심 수습책으로 불로소득 환수나 다주택 문제를 너무 강조했던 원죄가 있다. 집값이 오르더라도 불로소득만 제대로 환수하면 공정성과 형평성은 물론이고, 집값도 결국 떨어질것이라는 접근법이 다분히 이념적으로 비쳤던 것이다. 현실 정책이 불로소득의 완전한 환수와는 한참 거리가 멀 수밖에 없는데도, 이상론적 주장들이 결국 공격의 빌미가 되었던 셈이다. - P114

출을 확대하고 주거사다리도 복원해야 한다. 집을 갖고자 하는 욕구 자체를 비난할 것이 아니라, 생애주기에 따라 예측가능한 구매 계획이 가능하도록 진정시켜야 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문재인 정부가 3기 신도시나 도심 공급 확대 등을조금 더 일찍, 더 과감하게 추진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크다. 공급 부족론으로 불안감을 조성해서도 안 되지만, 적극적공급론으로 심리적 진정에 더 나서지 못한 것도 안타깝다. - P132

튤립이 붕괴일본의 1990년을 전후한 부동산 버블에는 금리, 환율 등거시경제 변수가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1980년대 초 미국은만성적인 대일본 무역 적자를 해소하기 위해 일본에 엔화 절상을 요구했다. 이에 1985년 플라자 합의를 통해 일본의 엔화 가치는 1985년 달러당 240엔에서 1988년 130엔으로 약두 배나 올랐다. 수출에 적신호가 켜진 일본은 금리를 5%에서 1987년 2.5%까지 낮췄는데, 이러한 저금리 정책은 기업의대외 경쟁력 강화 차원에서 이후 3년간 지속됐다. 결국 저금리 상태에서 막대한 자금이 부동산 부문으로 흘러들어가면서 일본의 부동산 가격은 폭풍을 거듭했다. 그러나 거품이 너무 커지자 이를 방치할 수 없던 일본은행은 1990년부터 금리를 6%까지 올리고 대출 총량 규제까지 실시했다. 당시 미국과 독일은 이미 2~3년전 금리를 올린 상태였지만, 일본은 경쟁력 유지와 경기 부양을 이유로 실기하고 말았다. 결과는 세계 역사상 가장 강하고 오래가는 부동산 버블이었다."
김수현, 주택정책의 원칙과 쟁점, 195쪽. - P157

"중앙은행 책임자들은 전통적으로 물가 상승을 막기 위해서라면 금리 인상을 피하려 들지 않지만, 자산 가격 거품에 대처하기 위한 시도는 극히 꺼려한다. 심지어 사실에 기초해거품이 확인되어도 이를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라고 설명했다. 문재인 정부 기간 한국은행이 보인 태도도 마찬가지였다고 생각한다.
찰스 p. 킨들버거. 로버트 Z. 알리버, 광기, 패닉, 붕괴 금융위기의 역사, 김홍식 옮김, 굿모닝북스, 2006, 206~207쪽. - P160

싸고 좋은 집을 많이 공급하자는 공약이나 제안에 반대할 사람들은 없다.
그러나 그것이 실제로는 극히 전시적인 수준의 적은 물량이거나, 청약저축 가입자들이 부담하는 돈으로 사업을 하는 것이라면 지극히 모순적이다. 이는 누군가의 로또 당첨을 위해모든 국민이 비용을 지불하는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 P204

다수의 1980~1990년대에 출생한 청년층들이 ‘임대로살 수밖에 없는 세대(generation rent)‘가 되었다면, 1960~1970년대에 출생한 세대들은 ‘임대업자 세대(generation landlord)‘가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들 임대업자 세대는 자신의 돈이 아니라 금융을 활용해서 집을 늘리는 중이다. 미국, 일본, 영국,
호주 등에서 "서브프라임이 무너뜨린 잔해 위에서 더 강하고금융화된 민간임대업자 시대"가 출현한 것이다. 결국 고도성장 세대와 저성장 세대가 주택자산을 매개로 세대 간(inter-generation)에 현격한 격차를 보이게 되었다.  - P234

 그렇다면 급진적 대안밖에 생각할 수 없는 것인가? 알버스는 이 대목에서 집의 소유권을 없애거나빈집 점거(squatting) 같은 ‘급진 대안‘을 언급하기는 하지만,
결론적으로는 과도한 자가 소유촉진책 중단, 더 많은 공공임대주택 확대, LTV·DTI 규제 강화 등과 같은 ‘강한 수준의 정책‘을 제안하고 있다. " - P240

했다. 교육과 부동산이 그 수단이었다. 자녀들에게 인적 자산과 물적 자산을 키워서 넘겨주는 일은 중산층 모두의 숙제였다. 과열된 교육 열풍과 부동산 집착은 이렇게 당연시되었다.
이런 과정을 거쳐 주택은 가족주의의 가장 중심에 있게 된다.
서구가 자가 소유촉진정책의 배경 이념으로 ‘자산 소유 민주주의‘를 들었다면, 우리를 포함한 동아시아 국가들은 ‘자산증식 가족주의‘라고 할 수 있다. 그 결과 가계 자산 중 부동산이 차지하는 비중은 세계 최고 수준이 되고 말았다. - P248

아파트가 전체 주택의 반에 이르고 특히 서울은 60%가넘기에, 누가 어느 단지에 산다는 것만으로도 자산 수준이 노출되는 세상이다. 일주일에 몇 번씩 발표되는 집값 동향은 사실상 전 국민의 재력 중계나 다름없다. 언론들도 "강남 불패,
벼락 거지, 영, 영끌 거지" 등과 같은 공포 언어들을 통해 부동산 불안을 극대화하는 중이다. 정부와 정치권은 국민들의불안, 불만을 빨리 해결해야 한다는 압박감 속에서 국민들이좋아할 만한, 언론이 손뼉 칠 만한 대책들을 내놓기에 급급하 - P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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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도한 것은 아닌데, 부동산 문제가 담겨 있는 세 권의 책을 연달아 읽게 되었다. 모두 도서관에서 빌린 책이다. 조장훈의 책만 특별히 대출 신청을 하여 수령한 것이고 나머지는 도서관의 여기저기에서 발견되어 읽었다.


조장훈과 김수현의 책은 둘 다 대치동 학원 원장 이력을 가지고 입시컨설턴트 경력을 가진 저자라는 공통점이 있다. 그러나 책의 결이 많이 다르다. 하나는 대한민국 사회에 대해 첨예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고 다른 하나는 약간의 문제의식이 있긴 하지만 대체로 둥글둥글 살자는 주의이다. 집필 의도를 가지고 장기간 집필에 들어간 책과 브런치 출판프로젝트 결과물이라는 사실이 책의 질적인 면에서도 차이를 만드는 것 같이 느껴졌다.


조장훈의 글은 띠지를 너무 많이 붙여서 밑줄 긋기로 모두 옮기지도 못하겠다. 그런 반면 정성민의 책에는 띠지가 하나도 없다. 조장훈의 책은 도서관의 소장도서가 그것뿐이라 큰글자도서를 빌려서 유독 무겁고 컸는데, 마치 내용도 그런 것처럼 느껴졌다. 정성민의 글은 가볍고 접근하기 쉬우며 현상에 대해 묵직한 고민보다는 적당한 타협과 위안을 준다. 저자가 개인적으로 도운 입시 사례들은 훈훈한 미담처럼 느껴질 정도이다. (그런데 내 개인적인 입장은 우리나라의 대치동 현상이 그런 어조로 다룰 사안인가 하는 면에서 회의적이다.)


조장훈 책의 서두에서 저자가 보여주는 위트는 SF문학이 주로 사용하는 노붐(인지적 소외)의 훌륭한 사례라고 느꼈다. 고유명사를 라틴어 표기로 바꾸는 것만으로도 대한민국의 대학입시 풍경을 낯설게 보게 만들었다.  


특히 p.99의 내용은 근래에 만난 주변의 입시생들이 왜 그렇게 하나같이 비대하고 비현실적인 자아상을 가지고 있었는지 이유를 알게 해주었다. 그들이 이상한 게 아니라 입시 제도와 교육 현장 자체가 비틀려 있었던 것이었다. 


p.202부터 이어지는 대치동 엄마들의 이야기를 읽고는 한국 사회의 학벌주의는 강한 가부장제 전통을 주춧돌로 삼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대부분이 남에게 무시 당할까 두려워 떨고 그래서 남 위에 서기 위해 뼈와 살과 인생의 낙을 다 갈아넣는 사람들로 이루어진 이놈의 대한민국이란 땅이 씁쓸했다. 


김수현의 글은 아직 읽고 있는 중인데, 노무현과 문재인 정부, 두 번의 부동산 정책 실패를 만들어낸 분이 쓴 자기 변명서 같은 책이다. 해명서라고 하고 싶지만, 차마 그 말이 안 나온다. 이 책을 왜 빌렸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잠이 안 올 때 읽고 있다. 아마 끝까지 읽지 못하고 반납하거나 대충 속독으로 읽은 뒤에 반납할 것 같다. 


공부를 많이 하신 분들은 간혹 일반인들은 '몰라서' 아무 말이나 떠들며 책임론을 외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럴 수도 있지만 대개는 아니다. 대개는 '몰라서'가 아니고 '그 따위는 모르고 싶다.'에 가깝다고 본다. 구성원의 욕망과 상충되는 현상에 대해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하고, 결국 책임과 비난은 정치 행위이기 때문이다.


이런 책은 자신에게 우호적인 같은 편에게 들려주는 하소연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아마 그런 용도로 소비되지 않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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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유층이 가장 많은 동네에서 심각한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며 자신의 목표를 위해 죽을힘을 다하는 이들의 실존을 결코 가볍게 비난하거나 평가할 수는 없다. 이들은 한계 상황에몰려도 포기하지 않는다. 집주인이 전세금을 올려 감당할 수없는 상황이 되어도 법적 절차를 밟는 동안 잘 버티면 아이의대입이 끝날 거라며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살아가는 안타까운사연도 간혹 접하곤 한다.」 - P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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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정치인들도 이야기가 팔린다는 걸 알고 있다. 주의를 끌기 위한 싸움에서 서사가 주장보다 효과적이라는 것이 입증되었다. 그렇게 서사는 정치적으로 도구화된다. 지성이 아닌 감성에 호소한다. 스토리텔링은 정치적 소통의 효과적인 기술로서, 미래까지 영향을 미치고 사람들에게 의미와 방향성을 보여주는 예의 정치적 비전이 결코 아니다. 정치적 이야기는 사물의 새로운 질서를 약속하고 가능한 세계의모습을 상세히 묘사한다. 오늘날 우리에게는 희망을만드는 미래 서사가 부족하다. 우리는 줄타기를 하며 하나의 위기에서 다음 위기로 넘어간다. 정치의역할은 문제 해결사로 축소된다. 이야기만이 미래를연다. - P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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