맡겨진 소녀
클레어 키건 지음, 허진 옮김 / 다산책방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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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스토텔레스가 비극과 희극을 나누는 기준은 고귀한 사람들을 다루느냐, 평범하고 잡스런 사람들을 다루느냐로 나뉜다. 고귀한 사람들이 몰락하는 이야기인지 잡스런 사람들이 우당탕탕 법석을 떨다가 제자리로 돌아가는 이야기인지가 비극과 희극을 가른다.

본질적으로 이 분류는 관객(독자)이 이야기 속의 중심 등장인물을 연민하게 만드느냐, 비웃게 만드느냐의 방법론일 뿐이다.

범주를 만드는 행위는 항상 범주에 포섭되지 않는 새로운 영역을 만든다. 희비극이라는 용어가 봉준호의 <기생충> 이후에 여기저기서 들려왔었던 때가 있었다. 이건 비극인가 희극인가? 블랙코미디라는 장르명으로 포섭할 수 없는 감상이 ‘희비극‘이라는 이름으로 유통되었던 것 같다.

<맡겨진 소녀>를 다 읽고 멍하니 앉아서 한 생각이 ‘이건 비극인가, 희극인가? 그런데 희비극은 아닌 것 같고...‘ 였는데, 그런 생각을 한 이유는 아마도 이 작품이 지나치게 현대적이지도, 너무 고전적이지도 않은 감동을 불러일으켰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어딘가 많이 애매했는데, 약간 가벼운 듯했지만, 한편으로는 클래식하다는 느낌도 있었다.

클레어 키건의 <이처럼 사소한 것들>을 읽고 나서는 <맡겨진 소녀>를 읽고 내가 이런 생각을 떠올리게 될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이처럼...>은 비교적 그 성격이 분명해 보였다. 고귀한 사람이 고난에 처하는 이야기였다. 주인공은 귀족도 비범한 능력을 지닌 사람도 아니었지만, 도덕적으로 뛰어난 품성을 지닌 인물이었다.
그의 품성은 그를 낳고 키운 사람들로부터 물려받았다. 주인공을 양육한 인물들이 잡스럽고 천박했다면 결코 그는 고귀한 품성을 지닌 사람으로 자라나지 못했을 것이다. 그는 물려받은 품성에 더해 스스로 단련해온 도덕성으로 하나의 영웅적 행위를 한다. 자신들처럼 작고 힘없는 사람들이 감히 맞서지 못하는 거대한 악의 세력에 맞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행을 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이처럼...>은 품성이 고귀한 단 한 사람(영웅)이 탄생하게 되는 이야기였다. 스스로를 고난에 빠뜨릴 선의를 기꺼이 선택함으로써 소시민은 작은 영웅이 되었다. 감동적인 이야기였다. 주인공의 선택으로 죽음에서 벗어난 사람에게는 해피엔딩일지 몰라도 이야기 전체를 희극이라고 할 수는 없었다. 희극적 요소가 있다고조차 할 수 없는 이야기였다.
만약 <이처럼 사소한 것들>이 <맡겨진 소녀>에 비해 좀 더 묵직한 이야기처럼 느껴진다면 그래서일 것이다.

<맡겨진 소녀>는 그와는 조금 다른 이야기였다. 주인공 소녀는 잡스럽고 천박한 품성의 아버지와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서 잠시 고귀한 품성을 지닌 사람들에게 맡겨진다.

소녀는 자신의 비천한 품성(언어 습관과 생활 습관)을 가지고 그곳에 도착하지만, 고귀한 사람들은 소녀를 비범한 방식으로 양육하여 품성을 교정해 준다.
그 과정에서 동네의 잡스런 사람들을 만나게 되는데, 이 사람들은 셰익스피어 극에 등장하는 광대나 이간질쟁이들처럼 군다. 말하자면 거대한 악은 아니고 매우 잡스런 악들이다. 그러나 이들이 정통 비극에서처럼 소녀를 위기로 몰아넣지는 않는다. 이간질로 소녀가 해를 입는다면 그건 임시 양육자들이 소녀를 외면하게 되는 일뿐일 텐데, 키건은 그런 스토리를 만들지 않았다.

키건이 스토리에서 의도하는 것은 중심인물의 갈등이 아니다. 고귀한 품성의 사람들과 잡스런 사람들을 비교해 보여주는 것이다. 쓸데없이 말이 많고 타인에 대해 애정 없는 관심만 난무하는 우리 주변의 잡스런 인물들이 얼마나 한심한가 하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수다스런 이웃 아주머니나 소녀의 아버지가 등장할 때는 헛웃음을 웃게 되었다. 아무말이나 해대는 그 사람들은 <이처럼...>에 등장하는 그저 겁많고 하루하루 평탄하게 살기를 바라는, 자기 가족이 최우선인 소시민들과는 결이 조금 달랐다. <맡겨진 소녀>의 잡스런 인물들은 짜증과 비웃음을 유발했다.

그에 비해 할 말, 해야 할 말 이외에는 하지 않는 묵직하고 고귀한 인물들(소녀의 임시 양육자들, 소녀)은 타인을 배려하는 마음이란 게 무엇인지 몸소 보여주었다.

책의 마지막까지 읽고 나자 약간 애틋한 마음이 들면서 희망이 싹을 틔우는 느낌이었다. 어딘가에는 우리가 보지 못한 고귀한 품성의 사람들이 운명의 장난질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고귀한 품성을 더럽히지 않고 살고 있을지 모른다.

덧붙여 개인적으로는 이 작가의 심지가 너무 부러웠다.
키건의 두 스토리 모두 이야기를 시작하고 끝내는 지점이 감탄스러웠다. 자극적인, 소위 멱살잡이를 하는 스토리를 만드려는 의지와는 완전히 등지고 있다. 뚝심이 있어야만 할 수 있는 선택이다.

그리고 그 선택은 옳았다.

아래는 키건이 얼마나 최소한의 언어로 원하는 효과를 냈는지를 보여주는 두 부분이다. 뒤까지 읽고 나서야 앞 장으로 도로 가서 내가 잘못 읽었나, 정말 명확한 묘사가 없었던가 확인하게 되었다.

이보다 더 주옥 같은 문장이 있었는데, 스포일러 요소가 있어서 올리지 못하겠다.

나는 이 새로운 곳에서 뜨거우면서도 차가운, 겪어본 적있는 기분을 느끼며 잠에서 깬다. 킨셀라 아주머니는 나중에 침대 시트를 벗길 때에야 알아차린다.
"세상에." 아주머니가 말한다.
"네?"
"이거 좀 볼래?" 아주머니가 말한다.
"네?"
지금 당장 말하고 싶다. 솔직히 말하고 집으로 돌려보내 - P35

지는 것으로 끝내고 싶다.
"매트리스가 낡아서 말이야." 아주머니가 말한다. "이렇게 습기가 차지 뭐니. 항상 이런다니까. 널 여기다가 재우다니, 도대체 내가 무슨 생각이었을까?"
우리는 매트리스를 끌고 계단을 내려가서 햇볕이 내리쬐는 마당으로 나간다. 개가 다가와서 킁킁 냄새를 맡더니 뒷다리를 들려고 한다.
"저리 가!" 아주머니가 얼음장 같은 목소리로 외친다.
"이게 다 무슨 일이야?" 킨셀라 아저씨가 밭에서 돌아온다.
"매트리스 때문에." 아주머니가 말한다. "빌어먹을 매트리스에 습기가 차서. 지방이 원체 습하다고 내가 말 안 했4?"
"그랬지." 아저씨가 말한다. "그래도 어쩌자고 이걸 혼자서 끌고 내려와."
"혼자 아니었어." 아주머니가 말한다. "도와주는 사람이 있잖아."
우리는 매트리스를 세제와 뜨거운 물로 문질러 씻은 다음 그대로 두고 햇볕에 말린다. - P36

집에 가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나니 차라리 빨리 가고 싶다. 얼른 끝내고 싶다. 나는 평소보다 일찍 일어나서 축축한 밭과 물이 뚝뚝 떨어지는 나무들, 언덕들을 내다본다. 처음 왔을 때보다 더 푸르러진 것 같다. 생각해 보니 침대에 오줌을 싸고 뭔가 깨뜨릴까 봐 걱정했던 그때가 너무나 멀게 느껴진다.  - P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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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 귄의 단편 <산의 방식>을 읽었다. 굉장히 복잡해 보이는 결혼 방식이 나왔다. 결혼을 남녀 2쌍, 즉 4명이서 하는 풍습으로 만들어낸 것이다. 작가조차 이야기를 쓰려고 혼인관계도를 화살표로 연결되게 그려두고 보아야 했다고 한다.

이렇게 복잡한 풍습을 만들어낼 공동체가 있을까 싶지만, 잘 둘러보면 O행성까지 갈 것도 없이 지구 안에서도 이해가 안 가는 관습들이 넘쳐난다. 나는 종가집 장녀로 태어났는데, 유교 의례 중 상당수가 ‘뭘 그렇게까지 복잡하게....‘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것들이었다. 조금만 과거로 가도 이상한 것 천지다. 결혼은 딱 둘만 할 수 있지만 첩도 가능하고 서자라는 것도 있고, 결혼 전의 기생은 기둥서방이라는 것도 있고, 아... 복잡하다. 복잡해. O행성의 세도레투가 훨씬 단순하구나. 그래서 결혼 풍습을 표면에서 뒤틀어 꼬아버린 르 귄의 이런 상상이 위트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더 재미있는 상상을 하기 시작했는데, O행성 같은 곳에서라면 ‘어장 관리‘ 같은 행위가 비난의 대상이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참 아름다운 로맨스 행위일 것이다. 드래곤볼을 모으듯이 4명을 모을 때까지 참고 인내하며, 호감형 인간이 눈 앞에 나타나면 내(우리) 어장에 두어야 할 테니까. 참으로 권장할 만한 미덕인 것이다.

생각해 보면 결혼을 단 두 명이 서로 마음만 맞으면 할 수 있는 바로 여기 지금의 현실에서조차 결혼은 쉽지가 않다. 마음에 드는 그 딱 한 명을 못 만나서 어긋나고 일그러지고 세월이 가고 나이를 먹지 않나? 주변에 그런 경우를 많이 봤다. 그런데 4명이라니...

어장관리, 썸 타기, 문어발식 연애...
이런 어휘들이 부정적 어휘군에서 긍정적 어휘군으로 대거 이동해 있는 O행성의 사전을 상상해 보았다.

아니라면...
그곳에는 중매 결혼 외에는 선택지가 없을지도...
4자 합의에 의한 연애 결혼이란 실질적으로 거의 이루어지지 않는, 어른들의 입을 통해 전설처럼 내려오는, 관념으로만 존재하는 결혼 방식일지도 모른다. 그런 세계일 가능성이 더 커 보인다.



"샤헤스는 한 번도 남과 권력을 나눠본 적이 없어. 누구나 결혼생활의 방법을 배워야 하는 거야."
오토라는 되받아쳤다. "맞아. 그리고 결혼은 두 명이 하는 게아냐. 넷이 하는 거라고!" - P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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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동아 2024.3
과학동아 편집부 지음 / 동아사이언스(잡지)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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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호 수록단편 아주 좋다.
짐리원 <엔딩의 발견>

장르 클리셰들을 적절히 가져 와 비틀 때,
말해야 하는 부분과 스킵해서 공백으로 두어야 할 부분을 영리하게 선택해 서정적인 문체와 어울리도록 잘 직조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성장 서사와 신체강탈자, cli-fi소재를 이렇게 부드럽게 교직시킬 수 있구나, 감탄하며 읽었다.
플롯에 장난(?)을 친 깜찍한 아이디어도 그리 부자연스럽지 않고 웃어 넘길 정도이다. 제목이 엔딩의 발견인 이유가 플롯에 친 장난 때문인지 성장서사스러운 결말 때문인지, 중의적으로 고민하게 만들어주는 것도 좋았다.

이게 내 취향인지 sf독자 취향이긴 한지, 잘 모르겠다.

그냥 좋다. 정우. 모두의 스쳐 지나간 첫사랑처럼 느껴진다. 사랑의 대상으로 사람만이 아니라 어릴 때 품었던 거대한 꿈까지 포함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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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사들의 노래 - 서지 않는 열차를 멈춰 세우며
홍은전 지음, 훗한나 그림, 비마이너 기획 / 오월의봄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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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전사들도 아름답고 애틋하고 경애로웠지만, 내게 더 민감해져야 하고 더 인내해야 한다는 가르침을 줬던 박김영희 편을 북플에 옮겨둔다.

지하철을 세 번 갈아타고 영등포의 병원 문 앞에 도착했더니웬 남자가 서 있었어요. 병원이 3층이어서 나를 업고 올라가려고기다리고 있었대요. 어이가 없어서 공무원들을 다 불러 모았어요. 내가 성폭력을 당한 장애여성이라면 몸에 남자의 손이 닿는것도 참을 수가 없는데 3층까지 안겨서 올라가라는 것이 말이 되냐고 눈에 힘을 주고 말했어요. 그러고선 나를 전동휠체어에 탄채로 들고 올리라고 했죠.  - P99

저는 회의를 질질 끄는 사람이 되어 있었어요. 하지만 정말로 회의를 지연시키는 건 지각하는 남성들이었어요.  - P103

그녀에게서 종종 전화가 와요. 집에 있다가 심심하면 노숙하던 친구들을 만나러 나가기도 하면서 지내고 있나봐요. 그녀를만나면서 알게 됐어요. 안전을 위해 집에만 있으라고 하는 건 결코 그녀의 행복을 위한 게 아니라는 걸요. 노숙 생활이지만 나름대로는 자유롭고 재미있는 거예요. 바깥에 친구도 있고 길에서사는 방법도 터득했어요. 나 만나면 항상 "5000원만 주세요" 하는데 만 원 주면 "만 원 말고 5000원 주세요, 5000원 주면 나 맛있는 거 먹을게요" 해요. 그녀한테 계속 말하죠. "아프면 병원 가는 거 알죠? 노숙인을 위한 병원 있으니 꼭 가세요. 누가 혹시 때리면 맞지 말고 피하고 자주 목욕해요. 전동휠체어 충전시키는거 잊지 말아요." 그러면 그녀는 알았다고 해요. - P123

자립생활운동이 활발해지면서 중증장애인 대표들이 많이 생겨났지만 좋은 리더가 어떤 모습인지에 대한 고민은 부족했던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 대표가 권력적으로 변해가거나 ‘바지사장‘처럼 되어가기도 하죠. - P129

그 말이 뜨겁고도 서늘해서 가슴이 찌르르했다. 나는 그 후에도 오래오래 그 말을 곱씹다가 알게 되었다. 방법이 없었다고자꾸자꾸 말하는 그가 얼마나 필사적으로 방법을 찾는 사람이었는지를. 모든 어린이들에겐 숙제가 있었지만 영희에겐 없었다.
그래서 영희는 동생들의 숙제를 했다. 그것은 어린 영희가 살기위해 찾은 생존의 방법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열심히 해도 내것이 아니었던 숙제는 영희를 얼마나 불안하고 슬프게 만들었을까. - P134

나는 가슴이 뭉클했다. 그것들이 영희에게 자기몫의 숙제가 생긴 순간처럼 느껴졌다. 이제 영희는 세상에 없는방법을 찾아 헤매지 않고 ‘만들기‘ 시작한다. 단체를 만들고 저상버스를 만들고 승강기를 만들고 법과 제도를 만들고, 그리고 자기의 언어를 만들었다. 어떤 선택은 결실을 맺고 어떤 선택은 그렇지 못했대도 온전히 나쁘기만 한 선택은 없었다. 상처도 좌절도 모두 ‘내 것‘이고 시행착오를 겪을 때마다 영희는 고유하고 선명해졌으니까. 영희는 자라서 그 누구도 아닌 영희 자신이 되었으니까. - P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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띠지를 잔뜩 붙였는데 도서관 책이라 페이지를 사진 찍어둘까 하다가 전자책 검색을 했다. 다행히 출간이 되어 있다. 다음달 1~3일에 캐시를 충전하고 전자책을 사야겠다.

주머니 사정이 가난해진 이후로는 도서관 이용을 더 활발히 하고 있는데, 아무리 소비 욕구를 억눌러도 책은 어쩔 수 없이 사게 된다. (요즘 내가 얼마나 가난해졌는지, 등급이 골드로 내려가서 깜짝 놀랐다. 플래티넘 아닌 등급도 있었다는 걸 자각했다. 이게 얼마만에 내려간 등급인지...)

대개는 쓸모나 유용함 때문에 소장하는 편이 낫겠다고 판단해서 책을 사게 되지만, 소장하고 싶다는, 소장해야만 한다는 끌림 때문에 다 읽은 책을 또 사게 될 때도 있는데, 이 책이 그런 경우이다.

홍은전은 대단한 사람이다. 인터뷰이 자신도 알아차리지 못하는 문제들, 내면의 것들을 들여다본다. 그만큼 예민하고 기민하다. 그는 인터뷰 과정에서 두 사람 사이에 오고 가는 것이 단지 정보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아주 오래 전에 출판사에 근무할 때, 인물 성공담 자기계발서를 발간할 때, 대필작가가 시간이 없어 바쁘다면서 이메일 인터뷰로 대체하겠다고 한 적 있었다. 그게 가능한가? 나는 좀 의문이었다. 왜냐하면 해당 인물이 글과는 관련없는 직종인데다가 글솜씨도 없었기 때문이었다.(그에게 그런 능력이 있었다면 직접 썼겠지. 왜 대필작가를 고용했겠나?)

결국 그 작가는 일을 마무리 하지 않고 중간에 그만둬 버렸다. 그 작가는 신춘문예인지 다른 신인문학상인지로 데뷔한 작가였는데, 자기 소설을 열심히 써야겠다며 도망가 버렸다. 일이 결국 그렇게 되었을 때 나는 ‘이메일로 인터뷰하겠다고 했을 때 알아봤다‘고 생각했다. 마무리는 다른 작가를 섭외해서 해결했다. 마무리 작가로 섭외된 사람은 편집자로 오래 일한 뒤 프리랜서로 독립한 사람이었고, 책은 무사히 출간이 되었다.

다른 사람의 삶을 그 사람의 목소리를 흉내내 쓴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것은 예술가 같은 예민한 감각과 숙련된 직업인다운 끈기가 동시에 있어야 하는 일이다.

홍은전이 바로 그런 사람이었다.

그리고 이런 책을 만들어냈다. 웃다가 울다가... 얼마나 들썩였는지 모르겠다. 띠지의 흔적은 모두 그런 흔적이다. 아포리즘따위에 붙인 게 아니다. 내가 울었던 흔적, 웃었던 흔적, 울면서 웃었던 흔적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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