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페이지를 읽을 때 이반 일리치의 <젠더>가 떠올랐다.
<그림자 노동>을 읽고 그를 숭앙하다시피 한 터라 <젠더>는 좀 실망스러웠다.
무엇이 실망스러웠나 설명하고 싶어도 나의 언어가 부족했는데
델피는 그런 내 마음의 기저를 대신 설명해주는 듯했다.
그렇지만 다음 권을 살 것 같지는 않다. 책의 볼륨이 너무했다 싶을 정도이다. 박스를 뜯자마자 서서 다 읽을 정도이다.
게일 루빈 전집이 <일탈>이란 이름으로 엄청난 두께로 합본되어 나왔던 것과 비교하면 안 되는데 비교하게 된다. 현실문화는 책 팔아서 남는 거나 있었는지 원.

페미니즘에 반대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페미니즘이 만들어낸 개념(예를 들면 젠더) 중 일부를 빌려야만 하기 때문에, 이 대표자들은방어적인 태도를 보인다. 하지만 젠더가 ‘섹스‘와 동의어로 (개념이 아닌 용어로) 쓰이는 경우에도, ‘젠더‘라는 단어가 발화되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는 담론에서 싫든 좋든,
가장 일반적인 차원에서 가장 전복적인 차원ㅡ‘젠더‘를 사회 분열의 주요 쟁점으로 만드는ㅡ에 이르기까지 젠더에 대한 모든 함의를 끌어내게 된다. 그리고 그렇게 함으로써 페미니즘에 적대적인 이들은 페미니즘의 - P65

영역으로 끌려 나온다. 그들이 페미니즘과그 영역이 존재할 만한 장소가 없거나 말할가치가 없다는 듯 군다고 하더라도, 그렇게된다. - P66

역사가들이 추구하는특정한 설명은 사실 그다지 역사적이지 않다. 각각의 시기가 기능한 조건에 대해 고려하지 않는 설명은 모순적이게도 몰역사적이다. 이 경우 그것은 역사가 아니라 날짜의 기록일 뿐이다. 역사는 잘 다루어져야만 귀중한데, 바로 각각의 시기가 현재의 시기와 같은 방식으로 분석되었을 때 그렇다. 과거에대한 학문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연구는 공시적인 분석의 연속일 수밖에 없다. - P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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