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 귄의 단편 <산의 방식>을 읽었다. 굉장히 복잡해 보이는 결혼 방식이 나왔다. 결혼을 남녀 2쌍, 즉 4명이서 하는 풍습으로 만들어낸 것이다. 작가조차 이야기를 쓰려고 혼인관계도를 화살표로 연결되게 그려두고 보아야 했다고 한다.

이렇게 복잡한 풍습을 만들어낼 공동체가 있을까 싶지만, 잘 둘러보면 O행성까지 갈 것도 없이 지구 안에서도 이해가 안 가는 관습들이 넘쳐난다. 나는 종가집 장녀로 태어났는데, 유교 의례 중 상당수가 ‘뭘 그렇게까지 복잡하게....‘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것들이었다. 조금만 과거로 가도 이상한 것 천지다. 결혼은 딱 둘만 할 수 있지만 첩도 가능하고 서자라는 것도 있고, 결혼 전의 기생은 기둥서방이라는 것도 있고, 아... 복잡하다. 복잡해. O행성의 세도레투가 훨씬 단순하구나. 그래서 결혼 풍습을 표면에서 뒤틀어 꼬아버린 르 귄의 이런 상상이 위트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더 재미있는 상상을 하기 시작했는데, O행성 같은 곳에서라면 ‘어장 관리‘ 같은 행위가 비난의 대상이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참 아름다운 로맨스 행위일 것이다. 드래곤볼을 모으듯이 4명을 모을 때까지 참고 인내하며, 호감형 인간이 눈 앞에 나타나면 내(우리) 어장에 두어야 할 테니까. 참으로 권장할 만한 미덕인 것이다.

생각해 보면 결혼을 단 두 명이 서로 마음만 맞으면 할 수 있는 바로 여기 지금의 현실에서조차 결혼은 쉽지가 않다. 마음에 드는 그 딱 한 명을 못 만나서 어긋나고 일그러지고 세월이 가고 나이를 먹지 않나? 주변에 그런 경우를 많이 봤다. 그런데 4명이라니...

어장관리, 썸 타기, 문어발식 연애...
이런 어휘들이 부정적 어휘군에서 긍정적 어휘군으로 대거 이동해 있는 O행성의 사전을 상상해 보았다.

아니라면...
그곳에는 중매 결혼 외에는 선택지가 없을지도...
4자 합의에 의한 연애 결혼이란 실질적으로 거의 이루어지지 않는, 어른들의 입을 통해 전설처럼 내려오는, 관념으로만 존재하는 결혼 방식일지도 모른다. 그런 세계일 가능성이 더 커 보인다.



"샤헤스는 한 번도 남과 권력을 나눠본 적이 없어. 누구나 결혼생활의 방법을 배워야 하는 거야."
오토라는 되받아쳤다. "맞아. 그리고 결혼은 두 명이 하는 게아냐. 넷이 하는 거라고!" - P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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