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당시 우리 모두가 새로운 생활에적응하기 위해 힘겨운 노력을 기울였다는 사실이다. 그리고모두 나중에 후회할 일을 하기도 했던 것 같다. 당시 나는그런 말을 한 데 대해루스에게 정말 화가 났었지만 이제 생각해 보면 코티지에서 보낸 처음 얼마 동안의 행동에 대해루스나 또 다른 누구를 비판하는 것은 아무 의미도 없는 일같다. - P231
우리가열두세 살이 되었을 무렵노퍽에 대한 이런 이야기는이미확고한 농담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하지만 내 기억에 따르면(루스의 기억 역시 마찬가지였다.) 처음에 우리는 노퍽에대한이야기를 글자 그대로 믿었다. 판매회를 위한 물건이나먹을거리를 싣고 트럭들이 헤일념으로 오는 것처럼, 조금 더규모가 크다는 차이만 있을 뿐, 영국 전체의 들판이나 열차에 남아 있던 분실물이자동차에 실려 노퍽이라고 불리는그곳으로 집결되는 것이다. 그곳의 사진을 한 번도 본 적이없다는 사실은 그런 수수께끼를 더욱 설득력 있게 만들어주었다.내 말이 얼토당토않게 들릴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시기의 우리에게 헤일섬 너머의 장소는 어디가 되었든 간에환상 속의 세계와 흡사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외부 세상에 대해, 그곳에서 무엇이 가능하고 가능하지 않은지에 대해 당시 우리는 극히 막연한 개념만을 갖고 있었을뿐이다. 그래서 우리는 노퍽에 대한 개념을 꼼꼼히 점검해볼 생각 같은 것은 하지 않았다. - P121
어떻게 하면 듣고 싶은 말을 계속 들을 수 있을까. 그때부터 시를 썼어요. 듣고 싶은 말이 들릴 때까지. 시는 짧고 밤이 끝나가고. 깨끗한 물도 오래 만지면 상한 냄새가 나더라고요. 거기서 시를 썼습니다. 냄새나는 몸으로요. 익숙한 자세로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가슴 아프다고 말합니다. 이런 건 시가 아닐 거라고도 말합니다. 물론 사랑하는 사람은 시 속에만 있어요. 이런 말도 다 시에서 들었어요.
최의택의 에세이를 읽고 나면 이 작가가 소설에서는 상당히 절제된 표현을 사용했음을 알게 된다. 에세이에서는 봉인되었던 입담을 마음껏 과시한 느낌이다. 최고의 유머 감각은 타인을 놀림거리로 삼는 대신 자신의 처지를 관조하는 태도라고 했다. 그런 면에서 최의택은 이 책에서 뛰어난 유머 감각을 보여주고 있다.웃픈 이야기, 웃음이 가볍게 날아가지 않고 뒤끝에 묵직한 여운이 남는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일독을 권한다. 전자책 TTS로 들어도 훌륭한 입담이었다. (단, 괄호가 자주 등장하니 웬만하면 시각적 독서를 하시기를 추천합니다.)
그렇게 팔로워는 디지털 성찬식에 참여한다. 소셜미디어는 교회와 같다. 좋아요는 아멘이다.공유는 성찬식이다. 소비는 구원이다. 인플루언서들의 드라마 작법인 반복은 따분함과 루틴으로 귀결되지 않는다.오히려 반복은 전체에 예배의 성격을 부여한다. 동시에 인플루언서들은 소비상품을 자기실현의 도구로 느껴지게만든다. 그리하여 우리는 우리 자신을 죽도록 실현하면서 죽도록 소비한다. 소비와 정체성이 하나로 합쳐진다.정체성 자체가 하나의 상품이 된다. - P19
인포크라시에 대한 정보체제하 민주주의의 위기에 대한 더 깊은 이해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정보를 다루는 현상학이 반드시 필요하다. 민주주의의 위기는 이미 인지수준에서 시작된다. 정보는 현재성을 띠는 기간이 아주짧다. 정보는 시간적 안정성이 없다. 왜냐하면 정보는 "놀라운 일이 주는 흥분"을 먹고 살기 때문이다. 이런 시간적 불안정성 때문에 정보는 지각을 파편화한다. 정보는실재를 "영원한 현재성의 현기증 "속으로 처넣는다. 정보 곁에 하염없이 머무르기는 불가능하다. 따라서 정보는인지 시스템을 동요시킨다. 정보에 내재하는 가속 강박은 앎, 경험, 깨달음 같은 시간 집약적 인지 실행들을 몰아낸다. - P35
따라서 루소는 정당과 정치단체의 구성도 금지한다. 왜냐하면 이것들은 "차이들을 자신에게 이롭도록 제거하기 때문이다. 모든 각자는 담론에 참여하는 대신 자신의 고유한 확신을, 개인적 견해를 고수해야한다. "차이들은 개수가 줄어들며 덜 일반적인 결과를 초 - P70
래한다. 결국 이 통일된 차이들 중 하나가 너무 커서 다른 모든 차이보다 우월하면, 결과는 더 이상 작은 차이들의 합이 아니고 대신에 단 하나의 차이가 된다. 이 경우에 일반의지는 더는 존재하지 않으며, 승리하는 견해는단지 개별 견해일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일반의지가 명확히 표명되게 하려면, 국가 안에 특수한 집단들이 되도록 존재하지 않고 모든 각각의 시민이 단지 자신의 고유한 확신만 옹호해야 하는 것이 중요하다.""루소의 주장을 데이터주의자들의 언어로 번역하면 다음과 같다. 다양한 데이터가 더 많이 확보되어 있을수록,알아낸 일반의지는 더 진실하다. 반면에 담론은 결과를왜곡한다. 이처럼 루소는 최초의 데이터주의자다. 담론과소통을 완전히 포기하는 루소의 산술적 합리성은 디지털합리성과 유사하다. 루소가 말한 통계학자들은 정보체제에서 정보학자들로 대체된다. 빅데이터를 입력하면 인공지능은 일반의지를, 곧 사회의 "일반적 최선"을 계산해내야 한다. - P71
행동주의자로서 데이터주의자는 개인의 행동을 정확히 예측하고 조종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 전지는 개인의 자유를 시대에 뒤처진 것으로 만든다. "자율적인간의 폐기는 오래전부터 진작 했어야 할 일이었다. ‘자율적 인간‘은 우리가 달리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을 설명할때 이용하는 수단이다. - P72
진실은 다양한 타당성 주장들이 모두에 맞선 모두의 전쟁으로, 사회의 전면적 분열로 이어지는 것을 막는다. - P80
따라서 서사의 위기는 뜻의 공허, 정체성 위기, 방향 상실로 이어진다. 이때 음모론이 미세서사 micronarrative로서 보상을 제공한다. 사람들은 정체성과 뜻의 자원으로 음모론을움켜쥔다. 이런 연유로 음모론은 특히 우파 진영에서 확산된다. 우파 진영은 정체성 욕구가 특히 강하기 때문이다. - P94
우리는 오늘날 디지털동굴안에 갇혔다. 그럼에도 우리는 우리 자신이 자유롭다고 착각한다. 우리는 디지털 화면에 사슬로 매여있다. 플라톤의 동굴에 갇힌 수인들은신화적 서사적 그림들에 도취한다. 반면에 디지털 동굴은우리를 정보 안에 가둬놓는다. 진실의 빛은 완전히 꺼졌다.정보 동굴의 바깥은 아예 없다. 강렬한 정보 도취가 존재의윤곽을 흐릿하게 만든다. 진실은 아무 소리도 내지 않는다. - P100
프랑스의 작가 미셸 뷔토르는 문학이 위기를 맞았다고진단한다. 그는 문학이 새로운 언어를 만들어낼 능력을상실했다고 본다. "10년 혹은 20년전부터 문학에서는 거의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고 있다. 출판되는 작품들은홍수를 이루지만, 정신적으로는 정지상태다. 원인은 소통의 위기에 있다. 새로운 소통수단들은 경이롭지만, 어마어마한 소음을 일으킨다." 소통의 소음은 같은 것의 지옥을 지속시킨다. 무언가 완전히 다른 것, 전혀 비교할수 없는 것, 전혀 있지 않았던 것이 생겨나는 것을 막는다. 고통이 억제된 안락영역은 같은 것의 지옥이다. - P59
고통의 부정성은 사유에 필수적이다. 사유를 계산 및인공지능과 구별되게 하는 것은 고통이다. 지능이란 어떤것들 사이에서 선택하는 것inter-legere 을 말한다. 지능은 구별능력이다. 따라서 지능은 기존의 것들을 벗어나지 않는다. 지능은 완전히 다른 것을 산출하지 못한다. 이 점에서 지능은 정신과 다르다. 고통은 사유에 깊이를 부여한다. 그러나 깊은 계산이란 없다. 사유의 깊이란 무엇인가?계산과 반대로 사유는 세계에 대한 완전히 다른 관점을,나아가 다른 세계를 산출해낸다. 오직 살아 있는 것, 고통의 능력이 있는 삶만이 사유할 수 있다. 인공지능에는 바로 이 삶이 없다. "우리는 생각하는 개구리도 아니고, 내장이 차갑게 식은 객관화하는 기록 장치도 아니다. 우리는 항상 우리의 고통으로부터 우리의 생각을 출산해야하고, 우리 안에 있는 모든 피, 심장, 열기, 쾌감, 정열, 고통, 양심, 운명, 숙명을 어머니처럼 생각에 제공해주어야한다. "인공지능은 계산장치일 뿐이다. 물론 인공지능은 학습능력이 있고 딥 러닝 능력도 있지만 경험을 하는능력은 없다. 고통이 비로소 지능을 정신으로 변환시킨다. 고통의 알고리즘은 미래에도 없을 것이다. - P63
「인간이 타인의 고통에 대해 관음적인 태도를 취한다는흔한 인간학적 가정은 공감 능력이 급속히 줄어드는 것을 충분히 설명할 수 없다. 갈수록 공감이 상실되어가는것은 타자의 소멸이라는 근본적인 사건이 일어나고 있음을 보여준다. 진통사회는 고통으로서의 타자를 제거한다.타자는 대상으로 사물화된다. 대상이 된 타자는 고통을 주지않는다. - P80
오늘날 우리는 너무나 자아에 의해 지배되고 포획되고, 심지어 도취되어 있다. 더 강해지는 나르시시즘적 자아는 타자 안에서 가장 먼저 자기 자신을 만난다. 디지털매체들 또한 타자의 소멸을 조장한다. 디지털 매체들은타자를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대상으로 만들어 타자의 저항을 약화한다. 갈수록 우리는 타자의 다름을 지각할 능력을 잃어간다. 타자가 다름을 빼앗기면, 그 타자는 오로지소비될 수 있을 뿐이다. - P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