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왼쪽 너의 오른쪽 수상한 서재 4
하승민 지음 / 황금가지 / 2021년 6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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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여름이 오면 스릴러에 손이 가게 마련인데, 이 작품은 그 여름에 읽기에 딱 좋은 것 같다. 목 뒤의 서늘함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시작이 굉장히 강렬하다. 굉장히 계산이 잘 된 이야기였다. 차곡차곡 등장인물의 서사와 사건을 쌓아올려가다가 조력자와 빌런을 만나고 세상의 표면 위와 아래에서 한꺼번에 위기에 봉착한 주인공이 하나씩 해결의 열쇠를 찾아나가는 과정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주인공의 시선에 내 시선이 겹쳐져 있었다.

이야기의 시작은 지아(주인격)가 어느 산 속에서 정신을 차리는 장면에서 시작된다. 첫 프롤로그에 등장한 이 장면이 다시 보니 복선을 갖고 있었다는 걸 이제는 알 수 있다. 하지만 처음엔 그저 강렬한 스릴러의 시작으로만 보일 뿐이었다. 지아는 기억하지 못하는 자신(제2의 인격)이 저지른 엄청난 짓에 놀라 오랫동안 떠나있던 집으로 돌아간다. 그 장소에 대한 단편적인 기억들만 가진채로 말이다.

이 장면에서 등장하는 가상의 도시 묵진이라는 도시는 굉장히 묘하다.

부산이나 포항같은 바다 도시들 사이에서 용케도 살아남아 먼 바다로 조업을 나가는 선원들이 모여드는 도시. 모여드는 사람들이 어딘지 짙은 안개 속으로 수렴하는 것 같은 도시. 내가 책을 읽으며 느낀 묵진은 그런 곳이었다. 그런 묵진이라서 지아의 다른 자아가 그렇게 오랜 시간 진짜 자신을 숨긴 채 살아갈 수 있었던 것이다.

지아라는 인물이 가졌을 당황스러움은 그 무게를 가늠하기가 어렵다. 자신이 19년이나 다른 인격에게 몸을 내어준 채 살아온 상태에서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 야산에서 무덤을 파고 있던 자신을 마주하게 된다면... 나였다면 아마도 그 자리에서 무너졌을 거였다. 과연 그 상황에서 침착하게 지아처럼 다시 제자리로 돌아올 수 있을지 모르겠다.

묵진에서 혜수는 19년을 살아냈다. 지아는 자신이 파묻은 시체를 옮기려다 실패하고 혜수의 행적을 쫓게 된다. 그런 지아를 찾는 두 사람을 피하거나 쫓으면서 이야기를 정점을 향해 치닫는다.

중간 중간 지아가 예전 일을 떠올릴 때면 등장하는 질문이 하나 있는데, 그 질문이 꽤 많은 생각이 들게 만들었다.

"너는 지아니, 혜수니?"

나는 늘 그런 생각을 하곤 했다. 내가 나에 대해 증명해야 하는 순간이 온다면 어떨까?

어딘지 주눅이 든 지아와 악에 받쳤지만 영리한 혜수. 그 사이를 오가는 한 여자는 살아가는 시간이 얼마나 불안했을까? 자신을 지켜야 하는 가족이 늘 자신을 의심하는 눈초리로 바라본다면 . 그 곳에서 건강하게 삶을 살아갈 수 없을거란 생각이 들었다. 지아가 혜수가 되어 묵진행을 택한 건 우연일 것 같지는 않다.

묵진에선 자신을 지우고 또다른 이름의 자신을 찾아 20년을 살아낸 한 여인의 이야기가 차곡차곡 채워진다. 살인사건으로 시작된 이 이야기는 또 다른 죽음으로 막을 내린다. 어렴풋이 그려지는 인물들의 서사는 작가가 각각의 이야기를 펼쳐내는 동안 예측이 되었지만 혜수에게 희생된 인물의 정체가 밝혀졌을 땐 그 끝이 너무 써서 혀끝이 아팠다.

조금씩 천천히 읽어내려간 한 여자의 비극적인 인생이야기는 마지막 장을 덮을 땐 내 마음을 무겁게 눌렀다. 재밌는 스릴러 한편, 하지만 마냥 가볍지만은 않은 마음으로 읽었다.


https://blog.naver.com/rimeiring/22241181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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