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수 많은 책이 있고 또 그만큼 수 많은 독자들이 있다. 그래서 어떤 책이 내게로 온다는 것은 사실 운명과도 같은 일이라고 생각하곤 한다. 이 책을 읽기로 '선택'한 것은 책 소개에 나온 이 부분 때문이었다.
"아이에게도 몇가지 용서하기 힘든 결점이 있었다. 우선, 조세핀은 보이는 것마다 이름을 물어봤다. 가장 좋아하는 말은 "저거"였는데, 대게 물어보는 동시에 명령하는 말투였다. "저거?" 아이는 도도하게 손가락을 뻗어 묻곤 했다. .... 저거. 나무. 저거. 저것도 나무. 저거. 또 다른 나무. .... 나는 구체적으로 대답해야했다. 몸통이라고 말하거나 잎사귀, 나뭇가지, 잔가지, 꽃이라고 말했다. 바로 이 방식 덕분에 내가 수백번이나 그 옆을 지나갔을 나무에서 아주 작은 노란 꽃이 피어난 것을 처음 알아차렸다." 아이가 있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겪어봤을 일이라 말을 배우는 아이들은 하루에도 수백가지를 가르쳐달라 묻는다. 우리는 지치지 않고 대답해줘야만 하는데 그건 실로....... 어려운 일이다. 바로 지금!! 그 시절을 겪고 있는 나로선 이 책의 저자에게 마음이 가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나는 숲 유치원에 다니는 여섯살의 장난꾸러기 꼬마, 그리고 이제 제법 잘 걷고 책소개에 나오는 저자의 딸 처럼 명령하듯 손가락으로 의사소통을 하는 갓 돌이 지난 악당 그 자체로 느껴지는 꼬마와 매일 함께 지낸다. (내게 장난꾸러기 아들이 둘이 있다는 뜻이다 ㅎㅎ)

저자처럼 나도 우리집 꼬마들이 주변의 자연에 관심을 갖길 바라는 마음에서 (책 안에 분명히 담겨 있으리라 믿은 '아이와 함께 동네 자연물을 탐사하는 방법'을 배워보고자) 책을 읽어보려 했는데, 책 안의 내용은 내 예상대로 흘러가진 않았다.
아마도 나는 좀 더 가볍게 읽을, 에세이에 가까운 체험을 다룬 자연과학서를 기대했던 것 같다. 이 책은 사실은 선정한 '장소'가 '내가 사는 동네'일 뿐이고, '아이와 함께'인 건 맞지만 사실은 저자인 '부모'가 스스로 주변 자연물에 대해 학습해나가는 정석에 가까운 자연관찰서였다.

그.래.서. 리뷰의 첫 문장이
드.디.어. 다 읽었다! 가 되었다 ㅎㅎㅎ
(술술 읽히는 종류의 책은 아니었다. 게다가 공교롭게도 책을 읽기 시작한 날 아이의 방학이 시작되었다!!!!!!!)

각설하고,
책의 한줄 평을 하자면 '자연은 놀랍도록 위대하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일깨워준 책이었다. 너무 당연해서 새삼스럽지만 이 말이 떠오를 수밖에 없었다.

책을 읽어나가는 것이 생각보다 쉽지 않았지만, 이런 책들의 묘미는 바로 내 안의 무언가를 '탁. 툭.'하고 때려준다는 데 있다. (첫째 아이가 나의 이런 평을 듣더니, 책이 어떻게 엄마를 때렸냐며 질문을 해와서.... 퍽 난감했다 ㅎㅎ)

그런 건 바로 이런 부분이다
'도시를 걷다보면 잘 느끼지 못하겠지만 사실 우리는 자연 속에 있다. ... 바로 코 앞에 우리의 탐사를 기다리는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가 펼쳐져 있다..... 참된 의미의 발견을 위한 여행은 새로운 풍경을 찾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눈으로 보는 것이다.'
자연에 대해, 동물과 식물에 대해 알고 싶고 보고 싶으면 우리는 대개 산에 가거나 강에 가거나 아니면 박물관에 가거나 해야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랬다. 그래서 부러 숲 체험학습을 신청해서 아이가 들을 수 있게 하고 곤충박람회가 열리면 찾아가곤 했다. 그런 생각에 탁!하고 내게 새로운 눈을 뜨게 해주었다. 아파트 화단에도 애벌레가 살고 거실 창 밖의 나무에도 여러종류의 새가 와서 지저귀는데 지금까지 그런 것들은 그저 '집'이라는 생활공간에 포함된 '장식' 같은 거였다.

이 한 구절만으로도 사실 이 책을 골라잡고 읽은 값어치의 70%는 이뤄졌던 것 같다.

책에서는 비둘기와 잡초, 다람쥐, 은행나무, 터키콘도르, 개미, 까마귀, 달팽이를 골라잡아 소개해준다. 우리 주변에서 흔하게 보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지만 실상은 잘 모르는 것들을 추렸다고 한다. 일단, 캘리포니아 같은 곳에서도 우리가 흔하다고 느끼는 풀과 새와 동물을 똑같이(터키콘도르는 제외하고) 흔하다고 한다는게 신기했다.
책의 대부분의 내용은 한가지 주제 동식물을 자세히 알아가는 과정인데 희안하게도 그 과정 안에는 철학과 사회학이 담겨있었다.

비둘기편에선,
비둘기의 발 모양이 기이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줌과 동시에 귀소본능을 이용해 전장에서 통신병 노릇을 한 비둘기 이야기를 읽으며 숱하게 죽어간 비둘기의 삶에 대한 고찰을 선사했다.

다람쥐편에선,
다람쥐의 놀라운 신체능력들에 대해 알게 됐는데, 다람쥐를 관찰하는 장면에선 우리의 인생을 보는 시각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부분도 있었다.
'관찰력 천재였던 조세핀은 그 다람쥐를 이미 봤었다. 아이는 다람쥐를 가리키며 말했다"고양이!" 나 역시 같은 실수를 한다. 다만 내 주변에는 내 생각을 정정해줄 사람이 없을 뿐이다. 우리는 우리가 볼 거라 기대하는 것을, 붙여줄 이름이 있는 것을, 그 순간 머릿속에 불현듯 떠오르는 것을 본다. 우리가 볼 거라 기대한 것이 사실인지 확인하는 과정은 지루하며, 틀릴 수도 있다. 그러나 인생은 놀라움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가까이에서 볼때 비로소 흥미로워지고, 우리는 본연에 더 가까이 다가서게 된다.' 저자처럼 나도 보고싶은 것만을 보고 실제와는 다르다는 것을 알면서도 인정하지 않은채 지나치던 순간들이 있다. 하지만 틀림을 인정하고 순수한 자세로 나와 주변을 대하면 즐겁고 유쾌해질 수 있음을 이제는 안다.

새의 언어.
가장 까다롭게 읽었지만 가장 흥미롭게 읽은 부분이다. 새들의 지저귀에 의미가 있을 거라고는 사실 생각해본적이 아예 없다. 그저 '아. 새가 지저귀고 있네.'까지가 그 소리에 대해 내가 생각해본 전부다. 더 가봐야. 아 예쁘군. 아. 시끄럽군. 정도까지였을까. 새들이 서로 대화하고 주파수를 주변에 맞춰 정하고 자신들뿐 아니라 다른 개체들과도 소통한다는 사실이 흥미로웠다. 지극히 인간중심적으로 다른 생명체에 대해 생각해왔구나 깨달았다.
내가 정말 흥미롭게 읽은 부분은 '그런데 현관 층계에 앉아 새를 관찰하며 보내는 5분의 시간이 이런 착란 상태에 대한 믿을만한 치유법이었다. 나는 평소보다 더 평온한 마음을 갖게 되었다. 그 후로는 생각도 더 명료해졌다. 나는 새를 관찰하는 일을 통해 내 두뇌의 매우 다른 부분을 사용하게 되어 이런 변화가 생겨났다고 짐작한다.' 이었다.
언젠가부터 나도 그저 아무 상념이 없는 채로 들판이나 바람부는 산. 하늘에 뜬 구름 같은 것을 바라보는 걸 즐거워하게 되었다. 신기하게도 그건 나만이 그런게 아니었다. 그런데 나는 그저 아 자연을 바라보니 좋다였는데 저자는 뇌의 활동영역까지 한걸음 더 생각해내주었다.
그리고 책을 끝까지 읽은 후 달팽이를 관찰한 베일리와 의사의 대화를 읽고 진짜 그 이유를 알았다.
"다른 생물이 살아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관찰자인 내게도 목적의식을 갖게 했어요. 달팽이에게 살아간다는 게 중요한 일이고, 그리고 그 달팽이가 내게 중요하다면, 그렇다면 내 사람의 어떤 부분도 중요하다는 의미가 되니까요. 그래서 나는 계속 살아갈 힘을 냈어요 " 우리가 자연을 바라보며 치유되는 이유를 어느 한 부분일지라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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