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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노동 - 가정, 병원, 시설, 임종의 침상 곁에서, 돌봄과 관계와 몸의 이야기
매들린 번팅 지음, 김승진 옮김 / 반비 / 2022년 10월
평점 :
돌봄은 인생에서 항상 있는 것이지만 커리어에서는 삭제된다. 돌봄은 늘 무시되는데, 무엇보다도 고된 노동 중에 하나지만 노동이 아니라 의무로 강요되거나 헌신으로 포장이 된다. 따라서 돌봄의 전문성, 즉 공감 같은 재능과 경험으로 쌓인 숙련도와 돌봄을 위해 쌓은 지식들도 무시되고 만다. 하지만 돌봄 받지 못함으로 생긴 방치와 소외에 대한 경험은 트라우마가 되어 생애 전반적으로 작용해서 사회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 결혼해서 가정을 꾸리지 않고 자녀를 낳지 않는 것에는 경제적 이유가 크지만 돌봄에 대한 두려움과 경시가 작용하기 때문이다. 엄마처럼 살지 못할 거야 혹은 엄마처럼 살지 않겠어라는 다짐이 삶에 대한 캐치프레이즈로 나타난다. 여기서 엄마처럼은 여러가지로 표현될 수 있겠지만 사실상 돌봄에 대한 이야기다.
코로나19가 막 터질 시점에 완성된 이 책은 우리에게 돌봄이 얼마나 필요하지만 우리에게 돌봄에 관한 언어들에 무지함을 보여준다. 그래서 저자는 돌봄의 현장에서 돌봄의 언어들을 끄집어 낸다. 가정에서 공감이라는 단어를, 시민단체에서 친절이라는 단어를, 병원에서 긍휼을 발굴한다. 하루에 300건의 의사 결정을 하는 의사의 입장에서 동정이라는 단어를 찾아내고, 간병인의 일상에서 의존이라는 단어를 살펴본다. 임종의 침상에서는 고통이라는 단어를 보여준다. 다 익숙한 장소이지만 막연하게 느껴지는 단어일 수 있다. 경험하지 않았을 때는 추상적으로 느껴지지만 그 돌봄에서는 결코 지나칠 수 없는 단어들이다.
이 책은 돌봄을 개인의 문제로 치부하지 않는다. 우리가 돌봄의 수혜자로서 의료와 복지 시스템에 들어갔을 때 우리의 프라이버시나 인격이 무시되고 그저 하나의 몸뚱아리 처럼 다루어질 수 밖에 없는 상황을 보여준다. 우리에게 닥친 일이 아니었을 때는 그러한 처사를 가난하기 때문에 당연히 받아야 하는 대우로 생각하곤 한다. 하지만 그 무관심과 무지 때문에 시스템이 이렇게 존재할 수 밖에 없다. 돈을 많이 벌어서 나는 좋은 대우를 받아야지, 혹은 병들고 못 움직이기 전에 안락사가 허용되었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돌봄이 인생에서 중요함을 깨닫고 돌보는 일에 대해 합당한 대우를 해주고 모두가 인격적인 대접을 받을 수 있도록 사회시스템에 요구해야 하는 것이다.
아이 하나를 키우기 위해서는 마을 하나가 필요하다는 말이 있다. 그 마을 하나의 역할을 부모 혹은 한 부모가 감당해야 하는 요즘이다. 그 가혹한 사회적 요구를 아무렇지 않게 요구하거나 스스로 뭘 감당하고 있는지 조차도 모르고 힘들어하고 있다. 육아에 대한 문제만이 아니다. 인구가 줄어드는 걸 걱정하지만 그것은 경제적 고려일 뿐이지, 우리가 서로를 어떻게 돌봐야하는지 전혀 생각하고 있지 않다. 1인 가정의 확산으로 가정의 돌봄 의무가 어쩔 수 없이 국가와 사회로 갈 수 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의 돌봄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지 우리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