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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또 내일 또 내일
개브리얼 제빈 지음, 엄일녀 옮김 / 문학동네 / 2023년 8월
평점 :
개브리얼 제빈의 <섬에 있는 서점>을 도서관에서 빌려서 읽었다. 그래서 책 표지를 보지 못했고, 책 날개에 있을 작가에 관한 정보도 보지 못했다. 이름만 보고 작가가 남자일거라 생각했다. <섬에 있는 서점>을 읽으면서 그 생각은 확고하게 굳어졌다. 주인공 남자의 심리묘사에 어색함을 전혀 못 느꼈기 때문이다.
<내일 또 내일 또 내일>을 받아들고 작가가 여자라는 사실에 깜짝 놀랐다. 나의 섣부른 편견을 의심하게 되었고, 더 적극적으로 책을 읽게 되었다. 이 소설이 좋은 작품이고 작가가 좋은 작가일 수록 내가 작가를 남자로 착각했다는 게 덜 어색한 일이 될 수 있으니까. 그것도 게임업계를 다룬 소설이라니. 이미 <섬에 있는 서점>을 통해 작가가 책에 관해 갖고 있는 애정을 확인한 바 있으니, 게임에 대해서는 얼마나 잘 다루는지 보자 싶었다. 독서광이자 컴퓨터 게임광이자 여자라니 이건 말도 안되는 조합이라고 생각했다.(내가 갖고 있는 편견이 얼마나 두터운지 다시 확인하게 되었다.) 그리고 개브리얼 제빈은 내가 덜 부끄럽도록 좋은 작가임을 확인시켜 주었다.
전에는 게임에 관한 소설을 쓰기가 쉽지 않았다. 게이머들은 책을 읽을 시간이 없고, 독서가들 역시 게임을 할 시간이 없다. 이 둘이 겹치지 않는다는 말이다. 하지만 시대가 바뀌었고, 스마트폰을 손에서 놓지 않는 MZ는 기본적으로 게이머이다. 이제 책 읽는 사람들은 기본적인 게이머의 정체성에 독서가라는 독특한 정체성이 덧입혀졌다고 할까. 그래서 이 소설이 아마존에서 베스트셀러가 되지 않았을까. 따라서 이 소설은 게이머일수록 재미있게 읽을 가능성이 크다. 동키콩과 슈퍼마리오와 오레곤 트레일은 알아야 등장인물의 정서에 근접할 수 있다. 게임이 열어놓은 가상세계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남여 주인공이 얼마나 멋진 작업을 하고 있는지 상상할 수 있다.
그렇지만 게임을 잘 모르는 독자도 이 소설을 재밌게 읽을 수 있다. 게임을 예술로 인정하기만 하면 된다. 남여 주인공이 만든 게임 제작의 여정은 혼자서는 안되고 함께라야 되는 락 밴드의 흥망성쇠를 다루는 짜릿한 여정과 닮아 있다. 둘의 개성과 신뢰가 얼마나 멋진 예술작품을 만들었는지를 보여주고, 사소한 오해로 인해 팀이 깨지게 되고, 서로를 그리워하면서도 그 거리를 좁힐 수 없는 안타까움에 독자들을 빠뜨리게 한다.
개브리얼 제빈의 작품의 가장 큰 특징은 따뜻함이다. 게임의 가장 놀라운 점은 만날 수 없는 사람들을 만나게 하고 공동체를 이루게 한다는 점이다. <섬에 있는 서점>에서처럼 그의 내러티브는 밝고 따뜻하며 경쾌하고, 결국엔 공동체를 말한다. <비바 제인>은 아직 못 읽었는데 그 소설은 어떻게 그리고 있는지 몹시 궁금해졌다.
파라마운트에서 영화화를 한다고 한다. <홀트 앤 캐치 파이어>와 <미틱 퀘스트> 사이에 어딘가 쯤이 되지 않을까? <홀트 앤 캐치 파이어>의 리 페이스와 같은 나쁜 상남자도 나오고, 여주인공은 <홀트 앤 캐치 파이어>의 맥켄지 데이비스와 <미틱 퀘스트>의 샬롯 닉다오를 닮았고, 남주인공은 <미틱 퀘스트>의 롭 맥엘헤니에서 백인 버프를 빼고 동양인 이미지를 더하면 된다. 그렇게 보면 게임업계의 이미지도 상투적으로 되어가고 있는 것도 같다. 그만큼 컴퓨터 게임이란 장르가 소설이나 영화 보다 미래세대의 익숙한 장르가 되어가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이 리뷰는 문학동네의 서평단으로 제공된 책을 읽고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