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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이감을 느끼는 아이로 키우기
카트린 레퀴예 지음, 김유경 옮김 / 열린책들 / 2016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신혼때부터 시작된 나의 육아서 읽기는 아이가 두 돌이 될 무렵 주춤했다. 시중에는 너무나 많은 육아서들이 있었고 그 속에서 진정으로 내게 필요한 책을 선택하는 안목이 없었기 때문에 소위 말하는 베스트셀러를 포함해 입소문의 근원을 따라 막 읽어댔다. 그러한 책들을 기십권 읽다보니 나오는 내용들이 많이 반복이 되었는데 그러한 부분이 좋은 점도 있었지만 육아서를 이제는 그만 읽어야 겠다는 생각도 동시에 들게했다. 되돌아 보니 육아서의 대부분은 자극적인 제목으로 초보 엄마들의 불안을 자극했고 톡톡히 성과를 올렸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특정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성공 육아 스토리는 다양성을 가진 아이들에게는 어떠한 위로도 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그러한 시행착오와 후회가 있었기 때문에 이번과 같이 좋은 책을 만날 수 있는 계기가 된 것 같아 한편으로 감사하다.잠시 손 놓았던 육아서를 조심스레 다시 들어본다. 지금 딸은 다섯 살이다.
저자 카트린 레퀴예는 캐나다에서 태어나 스페인 바르셀로나에 살고 있다. 네 아이의 엄마이기도 하다. 제목이 잔잔한 느낌이 들어 좋기도 했지만 네 명의 아이를 양육한 사람이 책을 썼다는 사실에 마음이 더 끌렸기에 서슴없이 선택할 수 있었다. 진부하고 지난한 이야기거리가 아닐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다.그리고 그 예감은 적중했다.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아이들이 가지고 있는 '경이감'에 대한 찬사이자 찬양의 글이다. 더불어 그 경이감이 어떠한 역할을 하면서 아이들을 지탱해주고 있는지, 그리고 경이감이 무엇인지, 그것을 지켜주고 길러주기 위해서 비단 부모뿐만이 아닌 사회적으로도 어떠한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지에 대한 방향을 제시해주고 있다. 총 2부로 구성되어 있고, 200여 페이지가 조금 안되는 분량이라서 읽는데도 부담이 없었다. 번역이 매끄러워서 가독성도 뛰어났고 저자가 어려 종류의 글을 보고 공부를 많이 했다는 느낌을 받았다. 매 장이 시작될 때마다,그리고 글 중간 중간에 저명한 인사들의 글을 인용했는데 그 부분이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제 1부-경이감이란 무엇인가?
경이감의 기본적인 개념을 알려준다. 아이들이 타고난 기적같은 능력. 뭐든 보고 탐구하고 호기심을 가지는 자연스러운 현상. 생각해보니 우리 딸의 경우도 결코 예외는 아니었다.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을 꼽자면 요즘 아이들에게 빈번히 나타다는 ADHD에 관한 내용에 관한 것인데 진위 여부에 대한 논란이 있다는 것을 암시하는짧은인용의 글이었다. 대부분의 육아서에서는 그 질병을 옹호하기 바쁘다. 하지만 나역시 ADHD에 관해서는 회의적이 입장이었던 터라 이러한 저자의 생각에 공감할 수 밖에 없었다. 어른들이 만들어내고야만 질병이라는 생각을 쉬 지울 수가 없다. 과잉자극의 결과로 생겨나는 많은 문제들에 대해서 조목조목 짚어가며 이해하기 쉽도록 써서 경이감이라는 개념에 어렵지 않게 다가갈 수 있다. 어떤 생물이나 사물을 대하는 놀라움의 태도는 아이들에게 있어서는 생명과도 같은 의미라는 것을 새롭게 알게 되었다.
"경이감은 아이의 본능적인 메커니즘이다. 즉 아이는 경이감을 갖고 태어난다. 하지만 아이가 경이감을 느끼기 위해서는 그것을 존중하는 환경에 있었야 한다."
제 2부-어떻게 경이감을 갖도록 교육할 것인가?
본격적으로 경이감에 대한 다양한 사례와 내용들을 다루고 있어 책에서 가장 풍부한 내용이 많고 읽는 재미도 있는 부분이다. 아이들의 놀이, 그리고 통제, 빠질 수 없는 자연과 아이들과의 관계, 아이를 아이로 보지 않고 작은 어른으로 보면서 유년기를 빼앗는 어른들의 실태,사물을 대할 때의 신비함과 아름다움에서 점차 아이들을 떼놓고 있는 이 사회의 추악주의와 문화를 다루고 있다.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아이슈타인의 공식이었다.
A(성공)=X(일)+Y(놀이)+Z(침묵)
일은 포함이 되지 않을 것이니 놀이와 침묵에 대해서만 이야기 하고 있다. 놀이 부분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침묵' 이라는 단어가 다소 생소하게 다가왔다. 사실 요즘 내가 추구하는 삶의 모토가 '침묵'이었기 때문에 더 와닿았을지도 모를일이다. 침묵은 바로 생각하는 시간과 비례한다는 의도로 저자는 이야기 하고 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기업자의 자녀들은 인터넷등 과학기술을 이용한 수업을 시키지 않는다고 한다. 이 사실도 알고 있었지만 그 뒤에 침묵이라는 힘이 얼마나 큰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주는지 대한 생각은 미처 하지 못했었다. 스스로 생각하며 아날로그적으로 학문을 탐독하는 습관, 그것이야말로 '침묵'의 힘을 기르는 시발점이다.침묵은 어떤 일련의 사건에 관한 사색의 힘을 기를 수 있는 근원이 되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데 사색의 힘은 독서를 통해서도 가능하다고 말하고 있다. 외면의 침묵과 내면의 침묵이 무엇이 다른지 생각해보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방해받지 않고 지속적인 독서를 할 수 있거나 깊이 사색하는 등의 활동을 할 만한 조용한 공간에서, 우리는 자신만의 체계를 확립하고 추론과 유추를 하게 되며 자신만의 생각을 키우게 된다."-니콜라스 카
"책을 읽는 행위는 기차에 올라타는 것과 같다. 우리는 아이들이 이 기차에서 떨어지지 않게 해주어야 한다. 자주 오가지는 않지만, 일단 올라타기만 하면 이 기차는 아이들을 아주 멀리까지 데려다주기 때문이다."
마지막 결론의 장에서는 경이감을 없앤 아이들의 특징과 경이감을 지니고 청소년이 되었을때의 아이들의 특징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또한 아이들을 단순히 자라서 어른이 되는 존재가 아닌 어른과는 완전히 다른 인격체로 생각하며 존중해야함을 강조 하고 있다. 이 부분도 다른 저서에서 찾아보기 힘든 차별화된 내용이라 많은 점수를 주고 싶다.
육아서를 입문하는 초보부모들에게 한가지 팁! 이왕이면 특정 아이를 잘 키운 일기식의 육아서가 아니라 여러 아이를 다 잘 키워냈거나 그 사회에 뿌리내린 교육와 양육문제를 다양한 시각에서 쓴 책을 읽는 것이 자신의 아이와 그리고 부모들에게도 훨씬 더 나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내 아이는 유일무이한 존재이다. 그러한 아이에게 특정한 아이의 성향을 강요하는 것은 책 속의 아이를 복제하려는 위험한 시도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자신의 아이와 더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상호 신뢰를 쌓는다면 부모의 말에는 엄청난 힘이 실릴 것이다. 이 책 역시 주입식 교육이나 기계론적이고 결과주의적인 교육을 호되게 비판하고 있다. 사상누각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무엇이든 기본이 부실하면 후에 크게 무너지기 마련이다. 아이와의 관계에서 기초를 잘 다지고 싶다면 이 책을 추천한다.아이를 키우는 일은 너무나 힘든 과정이지만 그 과정을 이왕이면 신나고 재미있게 보낼 수 있는 방법을 이 책에서 찾아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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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59
<받아들이기>는 주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 모두를 좀 더 인간답게 만들어 둔다. 이것은 아이가 자기 삶의 주인공이고 저만의 기본 욕구가 있다는 것, 그리고 아이들의 속도가 우리의 속도와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또한 아이는 자기 안에서부터 배움을 시작하기 때문에, 외부 자극을 쏟아 붓지 말아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p60
<날 좋아하는 거예요, 아니면 잘하는 내 모습을 더 좋아하는 거예요? 날 좋아한다면, 있는 그대로의 날 받아들어줘요. 그리고 나서 잘하는 내 모습도 좋아해 줘요. 날 잘 인도해주고 잘 할 기회도 주면서요. 그리도 내 특성에 맞는 것이 내 주변에 있게 해주고 맞지 않는 것에서 날 보호해 줘요.>
p72
미하이 칙센트 미하이의 말에 따르면, 일을 실행할 때 창의력을 꽃피우고 일을 즐기는 것은 지루함과 불안함의 중간 상태에서 생겨난다. 여기서 지루함은 일을 실행하는 사람의 경쟁력에 비해 일이 너무 쉬울 때 생긴다. 즉 도전도 동기 부여도 없는 상태인 셈이다.
p83
교육에는 꼭 시간이 필요하다.
우리에게는 원하는 대로 할 자유가 있지만, 자신의 행동이 일으킨 결과에 대해서는 자유롭지 못하다는 법칙이다.
p88
<아이들은 작고 우리보다 땅에 가까이 있기 때문에, 작은 것들을 더 잘 이해하고 즐기며 주목하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아이들에게는 우리가 서두르며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고, 그렇게 지나쳐서 자주 잃어버리는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것이 쉬운 건지도 모르겠다. 확대경으로 눈송이를 본 사람은 알겠지만, 자연에서 가장 멋진 것을은 아주 작다.>
p99
아이가 흡수할 준비가 안 된 수많은 자료를 주는 것보다
아이가 알고 싶어 하는 길을 준비하는 것이 중요하다. -레이첼 카슨
p144
카프카는 <청춘은 아름다움을 보는 능력이 있기 때문에 행복하다. 이 능력을 잃어버리는 순간 고통스러운 노화와 쇠퇴, 불행이 시작된다>라고 말했다. 어느 날 구스타프 야누흐가 카프카에게 <그렇다면 노년이 행복할 가능성은 없는 건가?>라고 묻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아니 . 행복에는 노년기가 없는 거라네, 아름다움을 볼 줄 알면 늙지 않게 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