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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슬픔의 거울 ㅣ 오르부아르 3부작 3
피에르 르메트르 지음, 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 2023년 4월
평점 :
『우리 슬픔의 거울』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의 프랑스 침공으로 인한 1940년
6월 파리 시민 대탈출을 배경으로 하는 역사 소설이다. 최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하여 고통받는 우크라이나 국민들을 생각하며, 전쟁의 슬픔 속에서도 희망을
그리는 소설 속 이야기에 관심을 가지고 읽어보게 되었다. 우리는 전쟁을 직접 겪어보지 않더라도 역사를
통해 전쟁의 참상과 비극을 기억할 수 있다. 근현대에 수많은 아픔과 고통으로 얼룩진 우리나라에서도 더
이상의 전쟁이 일어나지 않기를 희망하며 책장을 넘겨보았다.

이 책의 저자는 21세기의
발자크, 이 시대의 가장 재기 넘치는 거장이라 불리는 피에르 르메트르이다. 그는 1951년 프랑스 파리 출생으로 55세의 늦은 나이에 소설을 발표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첫 작품 『이렌』과 『웨딩드레스』 등 연이어 발표한 작품들이 문학상을 수상하며 추리소설의 장인으로 등극한다. 이어 프랑스 현대사를 배경으로 한 소설을 쓰기 시작하여, 제1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한 소설 『오르부아르』로 2013년 프랑스문학
최고 영예인 공쿠르상을 수상한다. 이어 『화재의 색』(2018), 『우리
슬픔의 거울』(2020)을 발표하여 20세기 전반의 역사를
관통하는 3부작을 완성한다.

이 책 『우리 슬픔의 거울』은 1940년 4월 6일, 1940년 6월 6일과 1940년 6월 13일 3부분으로
나뉘어져 54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되어 있다. 1부에서는 제2차 세계대전을 앞둔 시기, 카페의 단골손님에게서 옷을 벗어 달라는
이상한 제안을 받은 교사 루이즈의 이야기를 시작으로 마지노선에서 군복무중인 병사 가브리엘과 라울 그리고 정체 불명의 사나이 데지레 미고의 이야기가
번갈아 가며 등장한다. 뜻하지 않은 사고로 인하여 자신의 가족과 얽혀진 비밀을 찾는 루이즈의 이야기는
빠른 속도로 책의 몰입을 돕는다. 또한 각기 다른 곳에서 다른 삶을 살고 있는 이들이 전쟁으로 인하여
앞으로 어떻게 엮이게 될지 또한 매우 궁금해진다.
인생을 바로잡고자 전쟁 통 한가운데를 뛰어다니는 평범한 영웅들의
기상천외하고 기막힌 이야기!
독일군의 침략을 피해 파리를 버리고 피난을 가는 행렬 속에 그려지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매우 비극적이고 불행하다. 전선에서 이탈하게 된 가브리엘과 라울은 탈영병이 되어 떠돌다
헌병에 붙잡히고 수용소에 수감된다. 2부에서 그려지는 주된 배경인 군 교도소 수감자 집단 이감 에피소드는
실제로 프랑스에서 일어난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고 한다. 새롭게 등장하는 헌병대원인 페르낭의 에피소드
또한 소설을 더욱 스릴 있고 몰입하게 만든다. 번갈아 가며 얽히고 설키던 이야기와 등장인물들은 마지막
3부에서 하느님의 집인 베로 예배당으로 모아진다.

이 책은 전쟁 중에 각자의 사연을 가진 평범한 사람들의 삶에 대한
소설이다. 소설 속의 인물들은 전쟁이라는 극한의 상황속에서도 선한 사람과 악한 사람으로 명확히 구분되지
않으며, 그 경계 또한 매우 모호하다. 작가는 등장인물들의
심리와 그들 주변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을 통해 독자가 인간 상태 대해 더 깊이 탐구하기를 바라는 것 같다. 이들이
상실과 두려움, 불확실성에 어떻게 대처하는지, 역경에 직면해
어떻게 희망과 의미를 찾는지를 알아내는 것은 순전히 독자의 몫일 것이다.
책을 읽고 나서 '우리
슬픔의 거울'이란 제목을 곱씹어 보았다. 거울은 모든 것을
반영한다. 다른 사람의 슬픔을 나의 슬픔과 연결하여, 그들의
감정을 이해하고 같은 감정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럼으로써 친구나 가족, 동료, 또는 다른 사람들과 같이 슬픔을 나눌 수 있고, 때로는 우리가 겪는 모든 슬픔과 고통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상기시키기 때문이다. 푸틴이 고통받는 민중들의 마음을 이해한다면 하루빨리 전쟁을 종식시켜야 할 것이다.
600여 페이지가 넘는
두툼한 소설이 매우 재미있고 빨리 읽혔다. 등장인물에 대한 에필로그 또한 매우 감명적이다. 오랜만에 소설 읽는 재미에 푹 빠져본 것 같다. 이 책을 역사소설을
좋아하고 특히 제2차 세계대전에 관심이 있는 사람과 다양한 인간의 모습을 탐구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또한 기회가 된다면 저자의 다른 소설과 함께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역사를 그리는 새로운 3부작의 시작 『큰 세상』을 찾아 읽어 보아야겠다.

루이즈는 더 이상 남자들을 사귀지 않았고, 성마른 성격이 되었다. 밤이면 벽에 머리를 쿵쿵 찧어 대며 자신을
증오했다. 거울을 들여다보니 얼굴에 미세한 경련 같은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아이를 갖지 못하는 좌절감을 품고 사는 여자들이 보이는 그 불만스럽고 신경질적이고 예민한 표정말이다. P24
사실 가브리엘은 겁이 많은 편이고 용감한 행동을 즐기지는 않지만, 위험 앞에서 좀처럼 물러서지 않고 가장 겁이 많은 상황 가운데서 은밀한 만족감을 느끼는 유형이었다. P72
“바로 이것 때문에
우린 여기에 있는 거야. 전시에 정확한 정보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자신감을 주는 정보야. 진실은 우리의 주제가 아니야” P149
이 젊은이는 알고 있었다. 자신이
아무리 준비를 튼튼히 해 놨다 하더라도, 자신의 학력과 경력이 영원히 통하지는 못할 것이며 드 바랑봉의
집요함이 언젠가는 결실을 거둘 것임을. 하지만 그는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그는 프랑스군이 완전히 와해될 때까지 이 자리에 남아 있기로 작정했고, 그때는
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P246
페르낭은 침착한 모습을 보이려 애쓰고 있었지만, 속은 전혀 그렇지가 못했다. 대위에게서 수감자 명단을 건네받은 이후로
그는 계속 자문해 왔다. 이 <프랑스 적들>을 사살해야 하는 상황이 온다면, 난 과연 어떻게 해야 하지? P344
사이렌 소리 같은 찢어지는 듯한 비행음들이 그녀를 완전히 관통하여
지나갔고, 탄환의 충격이 발하는 그 짧고도 건조하고도 반복적인 음향들이 그녀를 꿰뚫었다. 아무도 자신이 다쳤는지 알 수 없었으니, 두뇌 속에서 더 이상 그
무엇도 작동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P461
“그 인간은 그냥 사기꾼일
뿐이예요! 사기꾼이라고요!” “맞아요.” “뭐라고요……? 알고 있었다고요?”
…… “뭐 신부든 아니든 상관없어요” 그녀는 부드럽게 말했다. “그분은 주님께서 우리에게 보내 준 사람이었어요.” P606
<이 글은 리뷰어스 카페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무상으로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