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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킬레우스의 승리
루이즈 글릭 지음, 정은귀 옮김 / 시공사 / 2023년 11월
평점 :
낙엽지고 찬바람이 불 때면
시집을 넘겨보고는 한다. 시를 읽다 보면 왠지 계절의 변화와 함께 나의 생각과 마음 또한 조금씩 변화되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시를 읽는다는 것은 나를 알아가는 좋은 방법인 것 같다. 이 번에 읽어본 시집은 루이즈 글릭의 네번째 시집 『아킬레우스의 승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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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즈 글릭(Louise Gluck)은 미국의 시인이자 수필가로 2020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이다. 그의 작품은 세련되고 감수성 넘치는 언어로 표현되며, 자아탐색과
인간 감정에 대한 깊은 통찰을 제공한다고 한다. 하지만, 그의
시는 국내에 번역본이 없어 잘 알려지지 않았었는데, 이번에 시공사에서 그녀의 시집이 시리즈로 발간되어
매우 기쁘게 생각되었다.
『아킬레우스의 승리』는 1985년 발표되어 그녀에게 전미비평가상을 안겨준 네번째 시집이다. 이
시집에는 그가 상실의 시기를 통과 하면서 쓴 시들로 엮어져 있다고 한다. 그 시기에 시인은 시골집이
화재로 소실되고, 아버지가 병으로 죽음을 맞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시를 읽다 보면 삶과 죽음, 사랑과 손실에 대한 깊은 사유를 하게 한다.
자기 천막 안에서, 아킬레우스는 / 자신의 온 존재로 슬퍼했다 / 그리고 신들은 보았다
그가 이미 죽은 사람임을, / 사랑한 쪽의 제물이었음을, / 죽을 운명이었던 쪽의, P31 <아킬레우스의 승리 중에서>
이 시집의 대표시 ‘아킬레우스의 승리’는 너무나도 잘 알려진 그리스 신화 속 이야기이다. 시를 읽으며 친구인 파트로클로스의 죽음을
슬퍼하는 아킬레우스의 슬픔과 분노, 그리고 아킬레우스의 승리인 헥토르의 죽음과 신들이 정해준 아킬레우스의
죽음 등을 생각하며 인간의 복잡한 삶과 그 안의 감정들, 운명 그리고 삶과 죽음에 대한 새로운 생각들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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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에는 26편의 시가 실려 있는데, 90여페이지 분량의 작은 책임에도 매우
무겁게 느껴졌다. 신화와 신앙에 관련된 인간의 원형과 근원적인 주제에 관한 시인의 깊은 고찰은 시를
여러 번 반복해서 읽고 생각하게 만든다. 낙엽이 지고 찬바람이 불어오는, 자연의 변화가 일어나는 이 시기에 작가의 표현을 통한 삶의 새로운 깨달음은 가볍지가 않다.
노새는 점점 더 비틀거렸다, 어둠 속에서 / 길이 힘들어졌기에,
그럼에도 그들은 계속 나아갔다, / 우리 세상과 같은 세상에서, 사람이 다스리지 않고 / 하늘에 있는 동상에 지배되는 세상에서 - P20 <겨울 아침 중에서>
그래서 파라오는 아이 앞에
/ 두 개의 쟁반을 놓는다, 하나는 루비, 하나는 불타는 불씨;
내 마음의 빛, 세상은 / 당신 앞에 놓여 있다;
/ 어느 쪽이든 불, / 대안 없이 불- P69 <밤 없는 낮 중에서>
헤로데의 박해를 피해 이집트로
피난을 가는 어린 예수 그리스도의 가족과 파라오를 피해 이집트를 탈출하게 될 모세의 운명을 앞에 두고 시인이 나에게 전해주는 의미는 의미심장하게
느껴진다. 죽음을 앞두고 늙음과 병고에 시달리는 아버지를 관찰하며 지은 시 <앉아있는 모습>과 <어른의
슬픔> 또한 깊은 생각을 전해주고 있다. 얼마전에 시인의
죽음을 알리는 신문기사를 봤는데, 시인은 죽음을 앞두고 어떤 생각을 했을 지 문득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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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감성적이고 깊은
사유를 원하는 독자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이 책을 통해 심오한 인간 감정과 존재의미에 대해 깊이 고찰하며, 루이즈 글릭의 시적 세계에 흠뻑 빠져들 수 있을 것이다. 시인의
다른 시집 또한 매우 궁금하고 기대된다. 올 겨울을 지내며, 긴긴
밤을 루이즈 글릭의 시로 채워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하루 종일 나는 욕망과 / 필요를 구분하려고 애썼다. 이제,
어둠 속에서 / 나는 우리들의 쓰라린 슬픔만을 느낄 뿐이다, P76 <느릅나무>
<이 글은 리뷰어스 클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무상으로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