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자라고도 넘치는 고요 - 그림의 길을 따라가는 마음의 길
장요세파 지음, 김호석 그림 / 파람북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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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한 해가 또 저문다. 어린 시절 연말이 되면, 즐거운 크리스마스와 새해를 맞이하는 기대감에 마음이 설렜다. 그런데 언제부터 인지 알 수는 없지만, 확실한 건 나이가 들어갈수록 연말이 되면 마음이 가라앉는다. 즐겁고 행복한 연말, 기쁘고 부푼 마음으로 희망찬 새해를 맞이하는 것도 좋겠지만, 지난 날을 되짚어 보며 차분히 인생의 의미를 찾아보는 것도 매우 의미 있는 것 같다. 『모자라고도 넘치는 고요』는 그림을 통해 보는 우리 내면의 풍경과 세상을 둘러싼 이야기로 차분해진 마음에 따뜻함을 더해줄 수 있는 책이다.



이 책의 저자는 트라피스트 봉쇄수도원의 장요세파 수녀이다. 트라피스트 봉쇄 수녀원은 11세기 프랑스에서 창설된시토회소속으로, 새벽 3 30분 기상해 밤 8시 불이 꺼질 때까지 기도와 독서, 노동으로 엄격한 수도생활을 한다. 수녀님이 그동안 지은 책으로는 『바람 따라 눕고 바람 따라 일어서며』와 그림 에세이 『수녀님, 서툰 그림 읽기』, 『수녀님, 화백의 안경을 빌려 쓰다』, 『그림이 기도가 될 때』가 있다. 책의 그림은 독보적인 수묵화가로 인정받는 김호석 화백의 작품이다. 깊은 인문학적 소양을 바탕으로 인간과 사회상에 대한 은유와 해학이 짙은 작품을 보고, 수도자인 저자는 어떤 생각이 들었는지 매우 궁금했다.


아름다운 자연, 아름다운 사물,

아름다운 여인을 그리지 않는 화백의 그림 속에 감춰진

진정한 아름다움을 길어내는 요세파 수녀의 그림여행


책은 표지를 처음 보았을 때부터 매우 인상적이었다. 희미한 음영으로 그려진 할머니에게 먹을 것을 떠 먹여주는 여인의 모습은 오래전에 돌아가신 외할머니와 늙으신 어머니가 떠올랐다. 책장을 뒤적여 찾아보니 정신의 생이라는 작품이다. 저자는 지상에서 이미 사라진 존재이지만이란 제목으로 오버랩 되는 장면 세가지를 이야기한다. 실제로 없는 것은 왼쪽 할머니가 아니라 오른쪽 자리라는 말은 가슴을 파고 든다. 삶의 마지막 고독, 인간의 참된 위엄 그리고 상실과 쇠퇴가 가져다주는 성장의 결과인 두려움 없는 사랑은 많은 생각을 준다. 모자라고도 넘치는 고요처럼 알 듯 모를 듯하다.



책은 총 3개의 장으로 1얽히고설켜도 정겨운 햇살’, 2향기를 풍기지 않는 향기’, 3슬픔조차 느끼지 못한 사람을 위한 그림으로 구성되어 있다. 김호석 화백 수묵화 71점이 인간과 관련된 작품, 주변 생물과 관련된 작품 그리고 주변의 사물과 관련된 작품으로 구분되어 확장되고 있는 듯하다. 첫 장에서는 첫 글 많은 것을 내려 놓는 검은 빛과 작품 가능한 것의 현실성그리고 종점 없는 여행희고 검은 달이 특별히 기억에 남는다. 검은 얼굴을 화장하는 할머니와 빈 얼굴을 화장하는 할머니의 모습에서 삶과 아름다움의 의미를 떠올려보았다.



책에 실린 작품에는 독특하고 기괴한 그림도 눈에 띈다. 뱀을 빨아먹고 사는 진드기를 그린 그림, 6월의 감나무에 달린 감, 깨진 거울을 못으로 고정시킨 그림 등은 알아보기가 힘들어, 저자의 묵상 글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쥐꼬리, 파리 날개, 바퀴벌레, 깨진 항아리 그림들도 친숙한 그림은 아니다. 하지만, 눈으로만 지나칠 수 있는 그림을 통해 세세하고 깊이 있는 통찰을 이끄는 저자의 이야기는 흥미 있으면서도 깊은 울림을 준다.


우물을 깨야 합니다. 다른 방법은 없습니다. 그릇은 깨져야 커집니다. 세상 많은 일은 이런 깨어짐의 변화를 받아들이는 이들에 의해 이루어집니다. P97


어쩌면 충만은 비울수록 더 얻어내는 것인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비어 있을수록 그득한, 놓을수록 여유로운, 버릴수록 자유로운 그 비움의 충만은 경험해 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것입니다. P132



우리를 둘러 싸고 있는 사람, 생물 그리고 모든 사물들은 눈에 보이는 것만으로 이야기할 수는 없다. 책에 실린 작품들이 아름답고 눈으로 보기 좋은 작품은 아니지만, 화가를 대신해 그 안의 의미를 일깨우며 진정한 아름다움을 찾는 저자의 묵상 글은 감동과 위로가 된다. ‘찍어내야 하는 인간 내면의 독사는 내 안의 악과 부정을 성찰해보는 계기도 되었다. 내가 새해에는 지금보다 조금 더 따뜻한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하느님은 생명의 원천입니다. 어떤 순간에도 나의 생명, 나의 희망이 멈추는 일은 없습니다. 그래서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수도자에게는 이 생명에 대한 설렘이 있습니다. 수도자는 어떤 연인들보다도 설렘의 사람들인 것입니다. P224


<이 글은 리뷰어스 클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무상으로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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