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줄과 생각
정용준 지음 / 작가정신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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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굉장히 읽기 편하고 수월했던 동시에 어려웠습니다.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만 그 모든 이유들은 "아직은 이 책을 읽을 만한 준비가 충분히 되지 않았다"는 말로 다시 압축됩니다.

작가가 가지고 있는 착점들이 나와는 다르거나, 내가 아직 느껴보지 못한 것들일 때 '책과 나의 주파수가 맞지 않았다'고 종종 생각하곤 합니다. 이는 북튜버로 활동 중이신 김겨울 작가님이 하셨던 말씀입니다. 20대 중반의 여성으로서 이 책의 문장들에 충분히 공명하지 못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작가님에 대한 개인적인 정보가 부족한 상태에서 책을 읽은 것도 꽤 영향을 준 듯합니다. 작가님이 어떤 소설을 써 오셨는지 미리 알고 있었다면 고개를 조금 더 많이 끄덕이며 볼 수 있었을텐데 아쉽습니다. 독서목록 또한 일치하는 부분이 많이 없어서 더욱 낯설게 느껴졌습니다. 한마디로 무언가를 받아들이거나 거부하고, 공명하거나 불화하기가 어려웠습니다.


다만 밑줄을 많이 그었습니다. 간헐적으로 작가의 글과 내가 겹쳐지는 순간, 나에게 없던 새로운 문제의식을 발견하는 순간, 바로 이해되지는 않지만 조금 더 찾아보고 싶은 소재를 발견하는 순간 등등. 여러 기준들이 순서없이 뒤섞여 검은 밑줄들을 낳았습니다. 소설이 무엇인지에 대하여 깊이 생각해보지 못했지만 어떤 이야기가 소설이 될 수 있는지, 그것을 어떻게 글로 옮길 것인지, 또 옮겨지고 난 뒤 소설이 맡게 되는 역할은 무엇인지 세 개의 챕터에 걸쳐 작가의 생각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이것들을 앞으로 정용준 작가의 글을 읽을 때 가이드라인으로 삼아보면 어떨까 생각했습니다. 작가님이 좋아하시는 김수영의 문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의 산문을 만나야 하듯이, 역으로 산문을 틀 삼아 작가님의 작품들을 하나하나 접해보고 싶습니다.


덧붙여 책에서 등장한 수많은 책들을 나의 독서목록에도 하나하나 추가하면서, 더 넓은 시야와 깊은 마음으로 오늘보다 내일 책을 더 이해하는 어른이 되고 싶습니다.


*본 게시글은 작가정신 서포터즈 '작정단 13기' 활동의 일환으로, 해당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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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 정치사상사 교유서가 첫단추 시리즈 58
리처드 왓모어 지음, 황소희 옮김 / 교유서가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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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케임브리지학파의 주장을 전제로, 정치사상사라는 학문 분야의 역사를 훑으면서 정치사상을 몰역사적, 목적론적으로 공부하는 주류의 방식을 비판하는 책이라고 느꼈습니다. 저 또한 정치사상을 과거의 이론들을 주요 사상가와 그들의 저작(에 등장하는 정치사상들)을 현재에 대입하여 상상하는 방식으로 주로 학습해 왔습니다.

그래서 맥락을 중시하는 방법론이 다소 낯설게 느껴지기도 했고, 존 롤스나 마르크스처럼 다소 반박하기 어려운 권위를 가진 사상들을 정치사상사의 관점에서 비판하는 것이 새롭고 재밌게 다가오기도 했습니다.

정치사상사에 대한 첫단추를 끼우는 안내서인 만큼 방대한 정치사상이 요약되어 있어서, 저자가 본문에서 언급하는 저작들과 역자가 안내하는 추천 독서 목록을 보면서 보다 깊은 이해를 위한 독서가 필요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특히 코젤렉의 개념사가 사상적으로 발전을 이룩했던 독일의 붕괴를 설명하기 위해 고안된 방법론인 만큼, 이에 대하여 더 알아보고 싶습니다. 짧게 언급하고 지나간 부분이지만 한나 아렌트가 시오니스트로서 활동했다는 부분 또한 다소 충격을 주었어서, 추후 한나 아렌트의 평전 또한 읽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찾아보니 나중에는 생각을 바꾸어 시오니즘에 반대했다고 하네요.)

제국에 대한 모순적인 통념을 길게 묘사하면서 과거 인류의 잘못된 행적들을 그것이 잘못되었다는 이유로 덮어버리는 일을 경계해야 한다고 역설하는 부분 또한 인상적이었습니다. 그야말로 정치사상사의 필요와 맞닿아 있는 문제이기도 하고, 고전을 왜 읽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 되기도 하는 대목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이 책에서 비판하는 유럽 남성 중심적 서술을 저자 스스로 답습하고 있다는 부분에 다소 아쉬움이 남습니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 더 읽을 거리에서 동양의 학자들과 여성 정치사상사가들이 쓴 저작이 안내되었다면 어땠을까 싶기도 했으나, 이 입문서나 안내서가 한정된 지면 안에 독자들을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범박해질 수밖에 없기에 낳은 한계라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첫단추 시리즈에는 입문자를 책임지고 공부시키겠다, 이 분야의 매력을 보여주겠다는 특유의 포부가 늘 엿보입니다. 우리 안에 지리멸렬하게 흩어져 있는 여러 개념들을 대신 정리해주는 책을 찾고 계신다면 자신 있게 이 시리즈를 추천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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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짧으니 빨리 말할게 - <길모어 걸스> 로런 그레이엄의 인생 스케치
로런 그레이엄 지음, 장현희 옮김 / 싱긋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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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서히 책의 종반부를 향해 가면서도, 또 책을 다 읽고 난 뒤에도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은 하나뿐이었습니다. "읽기 잘했다." 특정한 이야기가 필요해지는 삶의 특정한 시기에 거짓말 같이 그런 이야기가 나를 찾아올 때가 있는데, 새해에 이 책을 만나면서 그런 경험을 할 수 있었습니다.

이 시점에서 책을 보내주신 마케터 님께서 함께 동봉해주신 레터의 내용 일부를 소개하고 싶은데요. 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무언가 새로 시작해야 할 것만 같은 시기에 문득 떠오르는 영화와 드라마 몇 편이 있는데요. 그중 <길모어 걸스>는 어떤 영화나 드라마보다 유머러스한 응원이 담긴 시리즈로 소개할 수 있어요. <길모어 걸스>의 주인공, '로렐라이'와 '로리' 두 모녀의 유쾌한 수다와 성장기를 보고 있으면 뭐든 시작해야 한다는 부담은 가라앉고, 뭐든 시작해도 좋다는 안도감이 올라옵니다.

로런 그레이엄은 배우로서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인생에 빨리 감기 같은 건 없다'라고, 인생은 어찌 됐든 흘러가기 마련'이라고 말하는데요. 그런 말들 덕분인지 저는 이 책을 읽으면서도 <길모어 걸스>를 볼 때와 비슷한 응원을 받았어요."

적어주신 편지에 적힌 말씀처럼 저도 책을 읽으며 비슷한 응원을 받았습니다. 2025년은 저에게 대학을 졸업하고 앞으로의 미래를 고민해야 할 거대한 전환점으로 다가오는데요. 로런과는 다르게 남들보다 일 년을 더 늦게 살고 있다는 생각을 늘 해왔던 터라 알게 모르게 초조했던 차에 책을 읽으며 조금 더 차분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1월을 맞이하고 또 마무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한 시리즈에 오랫동안 출연하면서 그 시리즈의 성격과 동화된 것인지, 아니면 원래 저자 자체가 쾌활한 성격인 것인지 잘은 모르겠지만(어쩌면 둘 다인 것 같습니다), 드라마와 포개어진 배우의 삶을 따라가면서 유쾌하고 통통 튀는 문장들 속에 독자 역시도 동화되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길모어 걸스>를 보지 않아도 고스란히 다가오는 것들이 많기에, 저와 비슷한 또래의 여성들에게 특히나 이 책을 권하고 싶네요. 누군가의 인생을 속속들이 이해하는 일은 어차피 불가능하기에, 이 책을 읽는 데 중요한 것은 배우에 대한, 작품에 대한 배경지식이 아닌 것 같습니다.

저자가 자기 책을 쓰는 사람만이 가지는 권력의 맛에 취해서 엉뚱한 소리를 남발할 때 같이 상상의 나래를 피워올리고, 사랑스러움을 느끼면서 책을 그저 즐긴다면 그만입니다. 이윽고 책을 덮은 다음에는 휴대폰 화면보다는 하늘 위를 바라보고, 새로운 것을 맞이할 때의 설렘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본 게시글은 교유당 서포터즈 활동의 일환으로, 해당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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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아 소설, 향
최정나 지음 / 작가정신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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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아는 무수히 많은 구조신호의 편지를 적었고 그것들을 종이배처럼 접어서 다락방에 보관했는데, 소설의 종반부에서 시점이 점차 현재에 가까워지면서 로아가 현재 병원에 누워 있게 된 계기인 결정적인 타격을 당하는 순간 그것들이 일제히 쏟아져 내리는 장면이 유난히 기억에 남습니다. 119페이지에서도, 그리고 그 전에도 후에도 아무도 읽어주지 않은 구조신호들이 쌓이고 쌓여 결국 여기까지 로아를 이끌었다는 사실을 환상과 현실이 뒤섞인 분위기 속에서 시각적으로 가장 잘 와닿게 보여주는 장면이 아니었나 싶네요.

피해자가 가해자의 언어로 말하는 것은 일견 폭력을 미화하거나 합리화하는 방향으로 서사가 흘러가는 것을 안전하게 방지하는 장치가 됩니다. 가해자들의 내면 심리는 그 안에서 아주 구체적으로 묘사가 되지만 그들의 모든 서사는 폭력의 이유가 되기에는 공허할 뿐입니다. 따라서 그들을 이해할 수 없고, 이해할 필요도 없다는 것이 소설의 결론입니다.

소설에는 다양한 형태의 폭력들이 등장합니다. 가정폭력, 학교폭력, 그리고 신체적 폭력과 정신적 폭력이 얽히고설킨 광경을 지켜보면서 어쩌면 폭력은 연쇄 속에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단일한 하나의 사건이나 사적인 일들로 취급되어 터부시되고 방관되었던 폭력의 근원과 구조를 마주함으로써 왜 가정의 폭력이 학교와 사회로 이어지고 연속될 수밖에 없는지, 왜 우리 모두가 타인의 폭력에서 눈을 돌려서는 안 되는지 다시 한 번 깨달을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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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민 골짜기와 무민의 첫 겨울 무민 골짜기 이야기 시리즈
이유진 옮김, 토베 얀손 원작 / 어린이작가정신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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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캐릭터에 대해 익히 알고 있는 무민 시리즈는 토베 얀손이라는 작가의 작품입니다. 토베 얀손은 어린이 문학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상'을 수상하고, 핀란드 최고 훈장을 받기도 했습니다.

어린이 도서로서도 캐릭터로서도 이름을 떨치고 있는 무민이, 겨울이라는 현실의 시기와 딱 알맞게 겨울에 눈을 떠서 추운 날씨를 헤치고 모험을 하는 이야기가 궁금하시다면 해당 도서를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올해 읽게 될 거라고는 예상도 하지 못했던 책이었습니다. 어린이 작가정신에 대해서는 거의 간과하고 있었고, 성인(문학) 분야 작가정신과 따로 떨어져서 운영되는 분야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무민 달력과 함께 책이 배송되었을 때 무민이 스토리를 가지고 있는 동화 캐릭터에서 유래되었다는 사실에 새삼스레 놀랐습니다.

이야기는 무민 종족이 전부 겨울잠에 빠진 겨울, 딱 한 명 무민만이 그 겨울 속에서 눈을 뜨면서 벌어지는 환상적이고 아름다운 이야기입니다.

겨울은 얼음 여왕의 숨결로도, 다람쥐의 죽음으로도 묘사될 만큼 냉혹하고 의미심장하고 무시무시하지만, 그 광경이 신비롭고 아름답습니다.
TMI이지만 유치원 때 안데르센 반에 배정되었었는데,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며 동심을 되찾는 시간을 가져보았습니다.
문득 다 커버린 지금의 제가 아직도 겨울을 가장 사랑하는 이유를 이 책은 아이의 언어로 말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눈은 차갑지만, 눈으로 만든 집은 따뜻해. 눈은 부드러울 수도 있고, 돌보다 더 단단할 수도 있어. 확실히 알 수가 없어서 난 차라리 마음이 편해.
출처 입력
겨울은 사실 냉혹하지도 따뜻하지도 않다는 사실과 어떤 계절보다도 신비롭다는 사실은
저뿐만 아니라 지금 혹독한 겨울을 매번 생소하게 겪어내고 있을 어린이들에게 겨울을 좋아하게 되는 계기로 작용할 수도 있겠다는 기대를 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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