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아는 무수히 많은 구조신호의 편지를 적었고 그것들을 종이배처럼 접어서 다락방에 보관했는데, 소설의 종반부에서 시점이 점차 현재에 가까워지면서 로아가 현재 병원에 누워 있게 된 계기인 결정적인 타격을 당하는 순간 그것들이 일제히 쏟아져 내리는 장면이 유난히 기억에 남습니다. 119페이지에서도, 그리고 그 전에도 후에도 아무도 읽어주지 않은 구조신호들이 쌓이고 쌓여 결국 여기까지 로아를 이끌었다는 사실을 환상과 현실이 뒤섞인 분위기 속에서 시각적으로 가장 잘 와닿게 보여주는 장면이 아니었나 싶네요.
피해자가 가해자의 언어로 말하는 것은 일견 폭력을 미화하거나 합리화하는 방향으로 서사가 흘러가는 것을 안전하게 방지하는 장치가 됩니다. 가해자들의 내면 심리는 그 안에서 아주 구체적으로 묘사가 되지만 그들의 모든 서사는 폭력의 이유가 되기에는 공허할 뿐입니다. 따라서 그들을 이해할 수 없고, 이해할 필요도 없다는 것이 소설의 결론입니다.
소설에는 다양한 형태의 폭력들이 등장합니다. 가정폭력, 학교폭력, 그리고 신체적 폭력과 정신적 폭력이 얽히고설킨 광경을 지켜보면서 어쩌면 폭력은 연쇄 속에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단일한 하나의 사건이나 사적인 일들로 취급되어 터부시되고 방관되었던 폭력의 근원과 구조를 마주함으로써 왜 가정의 폭력이 학교와 사회로 이어지고 연속될 수밖에 없는지, 왜 우리 모두가 타인의 폭력에서 눈을 돌려서는 안 되는지 다시 한 번 깨달을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본 게시글은 작가정신 서포터즈 '작정단 13기' 활동의 일환으로, 해당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