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에 관하여
정보라 지음 / 다산책방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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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한 해 뜨겁게 달궜던 소설집 <저주토끼>의 저자 정보라 작가님의 장편 소설이 나왔습니다.

가제본으로 먼저 만나봤는데요.

엽서보다 살짝 큰 사이즈의 책이어서 두께감에 비해 빠르게 읽었네요.

등장인물들이 많은 편인데 특이하게도 이름이 모두 외자였어요.

비슷한 느낌의 이름인데다 모두 외자다 보니 한동안 읽으면서 엄청 헷갈렸네요.

이름은 한자의 뜻과 음이 같이 적혀 있는데 인물들의 성격과 행동에 딱 들어맞더라고요.



"죽은 자는 이미 구원받았다.

산 자는 구원받을 것이다."

한 제약회사에서 마약성 진통제의 부작용과 중독성이 전혀 없는 완벽한 진통제, NSTRA-14를 개발하는데 성공합니다.

사람들은 더 이상 고통을 견딜 필요가 없었어요.

무렵, 고통이 없는 상태는 죄악이며 고통의 근절은 신에 대한 거부이고 구원에 대한 모독이라는 사이비 종교 단체 '초월의 교단'이 생겨납니다.

한편 남편의 폭행에 시달리던 '홍'은 남편을 피해 두 아들 '한'과 '태'를 데리고 사이비 교단에 들어가는 선택을 하는데요.

두 아들은 어린 나이에 고통을 이겨내 초월하는 것만이 구원받는다는 교단의 가르침을 철석같이 믿고 자라요.

이들은 커서 제약회사에 폭탄 테러를 하게 되고 많은 연구원들은 목숨을 잃게 되죠.

살인은 교단의 목적이 아니었기에 동생 '태'는 혼란스러워하다 감옥에 갇히며 교단에 등을 돌리게 되고, 남은 교단은 해체되는데요.

그로부터 12년 후, 갑작스러운 교단의 지부장이 살해되면서 형사들은 다시 '태'를 찾아옵니다.



처음 이야기는 남자, 여자, 형사, 의사라는 대명사만 사용해 이야기를 이어가기 때문에 사실 상황을 이해하는데 어려움이 있었어요.

그러다 인물들의 에피소드를 하나씩 풀어가며 조각조각 흩어졌던 이야기를 짜 맞춰 가는데 굉장히 독특하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어떤 이야기에선 조연 같은 느낌의 인물이 다른 이야기에선 핵심 인물로 탈바꿈하고 말이죠.

책을 다 읽고 앞 부분을 다시 읽어보니 안 보였던 작은 부분까지 모든 것이 이해되면서 더 재밌었네요.

하지만 친 자식들에게 임상실험을 일삼았던 연구원 부모, 가정폭력에 시달린 가족, 자식을 위해 어쩔 수 없이 행했던 도둑질, 사이비 종교, 트랜스젠더, 동성 결혼 등 생각지도 못했던 내용 전개와 너무나 많은 이야기가 사실 좀 버겁긴 했어요.

신약 계발로 신체적 고통은 없앴는지 몰라도 정신적 고통은 그대로 남아 있음을 여러 상황을 통해 보여주고 싶으셨던가 아닌가 싶네요.

교주의 정체가 드러나는 부분에선 뭔가 허무하고 황당하긴 했지만, 탄탄한 스토리에 매료되어 저절로 페이지터너가 되는 소설이었네요.

고통은 신체적이든 정신적이든 각자의 사는 방식, 느낌, 경험 등 어떤 것 하나 같은 것이 없기에 상대를 온전히 이해하기란 불가능하다고 말해요.

타인과 비교하며 이해를 바라기보다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지금의 삶에 고통을 밀어낼 일로 풍족하게 채워야겠음을 가슴 깊이 새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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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시우행 2023-08-31 02: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통 속에서만 살 순 없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