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한 사람과 뻔뻔하게 대화하는 법 - 설득할 필요도 없고 설득할 수도 없다
진 마티넷 지음, 김은영 옮김 / 필름(Feelm)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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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부터 대화와 언어에 관한 책들이 파도에 밀려드는 물처럼 쏟아져 나오고 있다. ‘대화’는 그만큼 인간 사회에서 중요한 부분을 담당하고 있지만, 또 그 중요성만큼이나 인간을 고통스럽게 만드는 존재가 그 ‘대화’이기도 하다. 말 한마디에 천 냥 빚을 갚는다는 말이 꽤 오래전부터 있었던 것을 보면.

언어의 중요성에 대해 크게 공감하고, 늘 조심하자고 다짐을 하면서도, 나조차도 집에 돌아오면 후회하는 일이 더러 있다. ‘그 말은 안 했다면 더 좋았을 텐데, 나는 왜 생각 없이 내뱉고 후회하는 것인가’에 대한 고민도 있었지만, ‘어디까지 참아줘야 하나’에 대한 고민도 적지 않았다. 그리고 그 고민은 현재 진행형이기도 하다.

이 책은 미국에서만 15만 부가 팔린 대화 기술서라고 한다. 작가 진 마티넷은 불편한 상대와 어울리는 법을 배우기 위해 반드시 기억해야 할 기본 원칙을 제시한다. 대화의 목적은 사람과의 관계를 맺는 것이지, 정답을 찾는 일이 아니라는 말에 공감하게 된다. 살아간다는 것 자체가 정답이 있는 일이 아니기도 하고, 인간관계에 너무 많은 에너지를 쏟는 것은 결국 나만 피폐해지는 지름길이었다는 것을 깨달아가는 요즘이니까.

이성의 사용을 포기한 자와 논쟁하는 것은 죽은 자에게 약물을 투여하는 것과 같다. - 토머스 페인 (p. 107)

저자는 굳이 불필요한 논쟁을 피하는 것도 우아하게 나를 지키는 법이라 말한다. 굳이 매번 져주고 대화를 회피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지만, 불필요한 논쟁을 이어나가면서까지 스트레스를 받을 필요는 없으니까. 그중 침묵으로 자신의 불편을 표현한 부분이 마음에 든다. 인종차별주의자라고 비난하는 대신, 저자는 전혀 동의해 줄 수 없다는 의미로 무표정한 침묵으로 일관한다.

무안했는지 ‘더러는 자신의 발언이 불편한 사람도 있겠다’며 한발 물러서는 상대의 말에도 침묵으로 일관한 저자의 이야기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요즘은 나서서 ‘그것이 잘못된 일’임을 말하는 것이 점점 어려워지는 듯하다. 내부고발자라는 용어 자체에서도 위압감이 느껴지지만, 용기를 내어 자신이 속한 조직의 문제를 지적하면 트러블메이커 취급을 받거나 사회 부적응자라는 낙인이 찍히기도 한다. 보이지 않게 보복을 가하거나 불이익을 주고, 사람들도 피하는 경우를 보곤 한다. 나서서 그것이 옳지 않음을 말하기 위해서는 많은 것을 포기해야만 한다.

이런 경우에 침묵은 강력한 힘을 지닌다.
동의하지 않음으로써 무례하고 잘못된 언행에 대해 무언의 압박을 가하는 것. 한 명의 침묵도 힘이 있지만, 그곳에 있는 사람들이 함께 침묵으로 언행을 꾸짖어주는 것이 어쩌면 한 차원 높은 항의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사람을 불편하게 만드는 대화가 있다. 대화도 하기 전에 기가 빨리는 느낌에 지레 피하고 싶고, 이로 인해 정신적으로 지치게 만드는 사람이 있다. 멋지게 나이를 먹어가는 어른이 되고 싶은데, 가끔 여전히 사람에 불편을 느끼고 화를 내는 내 모습에 실망하게 만든다. 책을 읽으면서 떠오르는 순간이 있어 마음이 편치 못하다. 매번 건설적인 대화를 나누는 것은 불가능하겠지만, 내가 이 말을 언제까지 들어줘야 하는지 고민하게 만드는 사람과의 대화는 피할 수 있다면 피하는 것도 좋지 않을까.

오늘도 결국 책을 읽으며 지난날의 나를 합리화하지만, 불편한 사람과의 대화를 꾸역꾸역 이어나가느라 스트레스받는 것이 결코 성숙한 어른이라고 생각하지는 않게 될 것 같다. 동시에 나도 누군가에게 불편한 대화를 건네는 미성숙한 인간이지는 않았는지 되돌아본다. 찬찬히 읽어볼 만한 괜찮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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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시대
노자와 히사시 지음, 신유희 옮김 / 모모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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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사랑할 준비되었나요?”

10년도 전에 방영된 드라마로 알고 있었는데 2021년에 책으로 나온 이야기가 있다. 손예진과 감우성의 드라마 〈연애시대〉.
저자 노자와 히사시는 《연애시대》를 쓴 일본 최고의 드라마 작가라고 한다. 드라마 종영과 책 출판 시기에 의문이 들었는데 이미 출간되었던 책이 독자들의 기다림 끝에 한 권의 책으로 다시 출간된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미 베스트셀러.

드라마를 본 적이 없어서 오히려 더 좋았다. 손예진은 하루, 감우성은 리이치로였을 테니 시간이 되면 드라마도 찾아봐야겠다.

이혼하고 시작된 사랑에 대한 이야기다.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일본의 소설이나 영화는 특유의 감성이 있다. 각각 다른 감성인데, 일본 작가의 글이라는 게 느껴지는 특유의 분위기. <러브 레터>도 그랬고, <지금 만나러 갑니다>도 그랬다.

연애 시대도 그렇다.
이혼 후 다시 만나는 남녀의 이야기지만, 뻔하지도 않고 새로운 시작이라는 느낌이 든다. 무언가 서로 하찮은 핑계를 대며 곁을 맴돌고, 서로에게 애인을 주선해 준다.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감정선도 꽤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오랫동안 사랑받는 이유는 인간을 바라보는 따스한 시선이 느껴지는 작가의 필력 때문이 아닐까.

짧은 결혼생활과 소중한 아기의 사산, 솔직하게 털어놓지 못한 자존심과 얽히고설킨 감정들로 인해 이혼이라는 결말을 맞이하지만, 이들에게는 이혼이라는 사건이 완전한 종결을 아니었나 보다. 둘만 보면 안타깝고 하늘이 정해준 인연인가 싶다가도, 악의는 아니었겠으나 현재 애인은 무슨 날벼락인가 싶은 걸 보면 나는 주인공들에게 감정을 완벽히 이입하지 못했나 보다. 그럼에도 인물들을 응원하게 되는 힘이 있는 책이었다.

맨 마지막에 <딸아>라는 제목의 편지도 따뜻하지만, 하루 아버지가 하루에게 해 주신 말도 참 따스하다. “평안한 행복을 네 손으로 붙들기 바란다”는 말에 아주 많은 사랑이 담겨 있다.

헤어진 인연과의 새로운 사랑을 생각해 본 적은 없지만, 좋은 결말이 아니었다고 해서 그것이 새로운 인연을 만나지 말아야 할 이유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꼭 사랑이 아니어도 인생은 죽는 순간까지 새로운 만남과 헤어짐 그리고 슬픔과 상실감을 극복하며 또다시 새로운 무언가를 익숙해질 때까지 견디는 일이 아닐까 생각한다. 오랜만에 애틋하고 짠한 마음부터 답답하다가도 응원하게 되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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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구매대행으로 평생 돈벌기 - n잡러시대 부캐로 방구석에서 투잡하기
이준열.기대원 지음 / 리텍콘텐츠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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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은 일은 본캐로, 쏠쏠한 용돈벌이는 부캐로.

이 책을 소개하는 문장이다. 월급이 부족한 직장인을 위한 투잡 가이드로, 스토어 오픈부터 수익 분석까지 파워 유튜버의 비법을 공개한다. 저자 중 이준열은 대학교 수업에서 시작한 작은 프로젝트 사업이 좋은 결과를 냈던 경험을 바탕으로 사업을 시작했고, 오프라인으로 강연을 하고 있는 파워 유튜버라고 한다.

또 다른 저자 기대원은 해외 구매 대행 사업을 시작한 지 4개월 만에 스마트 스토어 빅파워 등급을 달성했다고 한다. 자신들의 성공 노하우와 새롭게 시작하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정보들을 정리한 책이다.

책은 11개의 Chapter 로 이루어져 있다.
해외 구매 대행이란 무엇인지부터 사업 수익과 장단점, 준비 시기에 필요한 것들에 대한 이야기부터 미국, 중국에서 직구하는 방법 및 배송 대행지 가입하는 방법과 샵백(캐시백 적립 사이트) 회원 가입하기, 스마트 스토어부터 통신판매업 신고, 해외 판매자 승인 요청, 사업자 전화번호 만들기에 대한 정보들이 정리되어 있다.

중간부터는 해외구매대행 사업의 순수익과 제품 비용 및 마진, 제품 이미지 및 이미지 저작권 관련한 법리적 설명, 이미지 리사이징 방법, 그리고 네이버 사업자 혹은 블로거라면 관심이 있을 단어 ‘키워드’ 와 ‘상품 노출’ 잘 되는 방법, 마케팅 및 쿠폰 발행, SNS 마케팅 활용 방법에 대한 팁들이 다양하게 정리되어 있다. 

상당히 실용적인 도서라 생각한다.
작년쯤 네이버 블로그 운영에 관한 책을 읽은 적이 있는데, 이제는 나도 나이를 먹는 것인지 세상이 나보다 너무나 빠르게 변해가는 탓인지, 나름 젊은 세대인 나도 책으로 찬찬히 공부하기 전에는 이해하기 힘든 것들이 많았다. 예전에는 문학이나 인문학 서적을 주로 읽었다면 요즘은 실용 도서를 읽는 재미도 상당하다. 아마도 평생 무언가를 배우면서 살아도 모르는 것이 더 많은 상태로 죽게 되지 않을까.

이 책도 그렇다.
해외 구매 대행이나 스마트 스토어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찬찬히 읽어보며 도움받을 수 있는 내용들이 많다. 한편으로는 자신이 실전으로 부딪혀가며 익힌 것들을 책으로 정리한 것이 존경스럽기도 하다. 어렵게 얻은 것을 공유하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니까.

투잡 없이는 넉넉한 월급을 받기 힘든 세상이 된 것 같아 씁쓸하지만, 다양한 방법으로 즐거움을 누리며 부수입도 얻을 수 있는 일은 분명 소소한 기쁨일 것이다. 모르던 분야를 알아가는 즐거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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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을 위한 개념 있는 언어생활 청소년을 위한 개념 있는 시리즈
최형규 지음, 김예지 그림 / 뜨인돌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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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30년 가까이 선생님으로 근무하셨고, 퇴직 후에도 청소년 재단에서 교육 활동을 하고 계신 분이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청소년들에게 직접 이야기를 들려주는 느낌의 문체로 쓰인 책이다. 수업하실 때처럼.

책은 3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왜곡의 언어(어감으로 진실을 감추다), 차별의 언어(무시와 배제가 빚어낸 말들), 편견의 언어(언어에 덧씌워진 색안경)에는 총 29개의 이야기들이 정리되어 있다. 사실 책 이름은 청소년을 위한 책이라고 하지만, 어른들도 알아두면 좋을 이야기들이 많다. 청소년들의 언어생활에 대해서 안타까움을 지니고 있었던 어른의 마음이 느껴진다.

왜곡의 언어에는 우리 사회의 병든 모습이 녹아있는 단어들을 담았다. 더 건강한 사회를 위해 큰 결심을 한 사람에게 따라붙는 말, 내부고발자. 언론의 무게를 한없이 가볍고 우습게 만들어버리는 말, 가짜 뉴스. 퇴직하고 싶지 않은 사람들에게 ‘희망’이라는 말을 붙인 희망퇴직. 그리고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단어, 가족 동반자살.

요즘 사회는 문제 있는 것을 지적하면 프로 불편러로 치부하기에 잘못을 잘못이라 언급하기도 조심스러운 세상이 되어가는 듯하다. 그러나 단어로 굳어지고 나면 말에는 힘이 생기고, 사람들도 그것을 문제의식 없이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기에 조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가족 동반자살은 정말 구성원 모두가 동의한 것인지, 부모 혹은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마지막까지 폭력적인 강요를 했는지 우리는 알 수 없는 일이다.  모두 동의했다고 해서 괜찮은 일은 결코 아니겠지만.

차별의 언어에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누군가를 무시하고 배제하고 있는 모습이 비친다. 김여사, 장애우, 불법체류자, 학생 할인과 학교 밖 청소년, 노 키즈 존. 장애우라는 표현은 장애인들이 불쾌함을 느낀다는 의견을 받아들여 사용하지 않게 된 단어로 알고 있고, 청소년들이 모두 학생은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여 조금씩 개선되고 있다고 들었다. 이제 버스 요금 멘트에서도 ‘학생입니다’가 아닌 ‘청소년입니다’로 바뀌었으니까.

노 키즈 존에 대해서는 대부분 공감하지만, 과연 그것이 오로지 아이들에 대한 혐오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어린아이들을 하나의 배제의 대상으로 치부하고 나이라는 기준으로 차별하는 것은 지양해야겠지만, 현재 우리나라의 노 키즈 존은 아이를 앞세워 무례함을 일삼는 부모에 대한 거부이기도 하다. 아동이 다칠 수도 있는 환경은 노 키즈 존이 불가피한 곳도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편견의 언어에는 우리도 모르게 쓰고 있는 색안경의 민낯이 드러난다. 민낯이 부정적인 의미를 가진 단어는 아니겠지만, 부정적인 시각을 포함한 민낯이 드러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정상과 비정상에 대한 차별적인 색안경이 느껴지는 단어 미혼모와 미망인. 타인에 대한 존중은 볼 수 없는 막장 드라마. 중도탈락과 학교 부적응. 중2병. 모두 대상에 대한 시선이 느껴지는 단어들인데, 우리는 인식조차 하지 못하고 있던 경우도 있지 않은지 생각해 본다.

단어보다도 막장 드라마에 대한 우리의 태도에 대해서는 논의해 보고 싶기도 하다. 자유 시장 경제 체제하에서 살아가는 민주시민인 제작진들이 만들어낸 드라마를 국가 혹은 방송국에서 어디까지 제재할 것인지가 관건이 아닐까. 함부로 누군가의 작품을 침해할 수는 없겠지만, 공영 방송에서 도덕적인 문제의식 없이 자극적인 방송을 송출하는 것은 옳은 일인지 고민하게 되는 요즘이다.

상당히 좋은 책이라 생각한다.
저자의 생각에 모두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청소년뿐만 아니라 성인들도 자신의 언어생활을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 되기에 아깝지 않은 책이다. 말에는 그 사람의 인격과 삶이 드러나므로.
물론 그전에 가장 먼저 반성해야 할 것은 나의 언어생활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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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의 높이뛰기 - 신지영 교수의 언어 감수성 향상 프로젝트
신지영 지음 / 인플루엔셜(주)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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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에도 감수성이 있다.
무심코 내뱉는 한마디의 말에서 사람의 인격을 느끼곤 하는 요즘이다. 저자 신지영 교수는 언어학자로서 언어 감수성 향상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이 책을 썼다고 한다. 개인적으로는 언어학자 다운 언어 감수성을 지닌 사람이라는 생각과 함께 참 멋진 사람이라는 생각이 드는 책이었다.


저자는 전 대통령의 권력에 언론이 비판 없이 화답했던 일을 냉철하게 꼬집는다. ‘유권자’가 뽑은 ‘당선자’였던 이명박 당시 대통령이 ‘당선자’가 아닌 ‘당선인’으로 불러 줄 것을 요구하였고, 헌법재판소에서는 ‘당선자’라고 써 줄 것을 요구하였다. 한 나라의 대표에게 ‘놈 자(者)’를 붙이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대통령 인수 위원회 측과 헌법 제67조 2항, 제68조 2항에서 표기한 대로 ‘당선자’라는 표현이 적절하다는 헌법재판소 양측의 요구를 받은 언론에서는 ‘당선인’이라는 호칭으로 빠르게 협조하기 시작했다.


저자는 단어 선택에 민감해야 할 언론이 비판적 기능 없이 권력에 순응한 것도 문제이지만, 개선이 시급한 것은 단어가 아닌 한자의 새김이라고 지적한다. ‘자(者)’의 새김이 ‘놈’이긴 하지만 그 안에 비하의 의미가 담겨 있지 않으며 그에 대한 근거로 ‘과학자, 교육자, 언어학자’등을 제시한다. 더욱이 유권자가 뽑은 당선자임에도 불구하고 유권자의 ‘자(者)’는 괜찮고 당선자의 ‘자(者)’는 문제 삼는 태도 또한 아이러니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스스로를 유권자들과는 다른 존재로 인식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예가 아니었을까.


세종대왕이 지으신 훈민정음 언해본의 ‘놈’은 비하의 의미가 아니었지만, 현대에 이르러 비하의 의미가 덧입혀졌다면 차라리 한자 새김은 ‘사람 자(者)’로 바꾸면 될 일이고, 실제로 요즘 아이들은 이렇게 배우고 있다고 한다. 저자가 멋진 지식인이라 생각하게 된 것도 이 부분을 읽으면서였다. 문제를 인식하지 못한 사람도 있겠지만, 단어 하나에 담긴 의미를 아는 언론이나 해당 분야 전문가들이 용기를 내서 문제를 지적할 수 있어야 사회가 발전적인 방향으로 흘러가게 될 것이고, 문제가 발생했을 때 권력이나 나의 안위에 대한 걱정 없이 그것을 지적할 수 있는 사회야말로 진정한 민주 사회가 아닐까 하는 생각에.


언어를 대하는 태도에 대한 저자의 우려도 공감이 가는 부분이었다.
여름에 들었던 워크숍에서 한 교수님이 그런 말씀을 하셨다. 요즘 영어를 모르는 사람들은 뉴스조차 알아듣기가 힘든 사회가 되었는데, 더 큰 문제는 그런 상황에서 어려움을 느끼는 사람들이 아니라 어려움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는 줄도 모르고 이를 무감각하게 받아들이는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언젠가부터 전문 분야 전공자들은 해당 국가의 원서를 공부하는 것을 우선시하면서 전문용어를 한국어로 표현하기에는 해당 단어 고유의 의미를 잘 살리지 못한다는 이유를 들며, 영어 표현을 그대로 사용하는 일이 잦아졌다. 국제화, 세계화 시대를 살아가는 세계 시민의 미덕이 반드시 영어를 읽을 줄 알고, 외래어 사용에 불편을 느끼지 않아야 하는 것인지는 모두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어르신들도 ‘드라이브 스루’를 자유롭게 사용하고, ‘언택트 시대’를 어려움 없이 살아가는 세상이 아니라면 우리도 언젠가 기계 앞에서 알 수 없는 모멸감에 주눅들 수밖에 없을 테니까.


나의 언어는 얼마나 차별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나의 말들은 과연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은 수준인지 생각해 보는 오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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