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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을 위한 개념 있는 언어생활 ㅣ 청소년을 위한 개념 있는 시리즈
최형규 지음, 김예지 그림 / 뜨인돌 / 2021년 8월
평점 :
저자는 30년 가까이 선생님으로 근무하셨고, 퇴직 후에도 청소년 재단에서 교육 활동을 하고 계신 분이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청소년들에게 직접 이야기를 들려주는 느낌의 문체로 쓰인 책이다. 수업하실 때처럼.
책은 3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왜곡의 언어(어감으로 진실을 감추다), 차별의 언어(무시와 배제가 빚어낸 말들), 편견의 언어(언어에 덧씌워진 색안경)에는 총 29개의 이야기들이 정리되어 있다. 사실 책 이름은 청소년을 위한 책이라고 하지만, 어른들도 알아두면 좋을 이야기들이 많다. 청소년들의 언어생활에 대해서 안타까움을 지니고 있었던 어른의 마음이 느껴진다.
왜곡의 언어에는 우리 사회의 병든 모습이 녹아있는 단어들을 담았다. 더 건강한 사회를 위해 큰 결심을 한 사람에게 따라붙는 말, 내부고발자. 언론의 무게를 한없이 가볍고 우습게 만들어버리는 말, 가짜 뉴스. 퇴직하고 싶지 않은 사람들에게 ‘희망’이라는 말을 붙인 희망퇴직. 그리고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단어, 가족 동반자살.
요즘 사회는 문제 있는 것을 지적하면 프로 불편러로 치부하기에 잘못을 잘못이라 언급하기도 조심스러운 세상이 되어가는 듯하다. 그러나 단어로 굳어지고 나면 말에는 힘이 생기고, 사람들도 그것을 문제의식 없이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기에 조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가족 동반자살은 정말 구성원 모두가 동의한 것인지, 부모 혹은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마지막까지 폭력적인 강요를 했는지 우리는 알 수 없는 일이다. 모두 동의했다고 해서 괜찮은 일은 결코 아니겠지만.
차별의 언어에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누군가를 무시하고 배제하고 있는 모습이 비친다. 김여사, 장애우, 불법체류자, 학생 할인과 학교 밖 청소년, 노 키즈 존. 장애우라는 표현은 장애인들이 불쾌함을 느낀다는 의견을 받아들여 사용하지 않게 된 단어로 알고 있고, 청소년들이 모두 학생은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여 조금씩 개선되고 있다고 들었다. 이제 버스 요금 멘트에서도 ‘학생입니다’가 아닌 ‘청소년입니다’로 바뀌었으니까.
노 키즈 존에 대해서는 대부분 공감하지만, 과연 그것이 오로지 아이들에 대한 혐오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어린아이들을 하나의 배제의 대상으로 치부하고 나이라는 기준으로 차별하는 것은 지양해야겠지만, 현재 우리나라의 노 키즈 존은 아이를 앞세워 무례함을 일삼는 부모에 대한 거부이기도 하다. 아동이 다칠 수도 있는 환경은 노 키즈 존이 불가피한 곳도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편견의 언어에는 우리도 모르게 쓰고 있는 색안경의 민낯이 드러난다. 민낯이 부정적인 의미를 가진 단어는 아니겠지만, 부정적인 시각을 포함한 민낯이 드러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정상과 비정상에 대한 차별적인 색안경이 느껴지는 단어 미혼모와 미망인. 타인에 대한 존중은 볼 수 없는 막장 드라마. 중도탈락과 학교 부적응. 중2병. 모두 대상에 대한 시선이 느껴지는 단어들인데, 우리는 인식조차 하지 못하고 있던 경우도 있지 않은지 생각해 본다.
단어보다도 막장 드라마에 대한 우리의 태도에 대해서는 논의해 보고 싶기도 하다. 자유 시장 경제 체제하에서 살아가는 민주시민인 제작진들이 만들어낸 드라마를 국가 혹은 방송국에서 어디까지 제재할 것인지가 관건이 아닐까. 함부로 누군가의 작품을 침해할 수는 없겠지만, 공영 방송에서 도덕적인 문제의식 없이 자극적인 방송을 송출하는 것은 옳은 일인지 고민하게 되는 요즘이다.
상당히 좋은 책이라 생각한다.
저자의 생각에 모두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청소년뿐만 아니라 성인들도 자신의 언어생활을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 되기에 아깝지 않은 책이다. 말에는 그 사람의 인격과 삶이 드러나므로.
물론 그전에 가장 먼저 반성해야 할 것은 나의 언어생활이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