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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의 높이뛰기 - 신지영 교수의 언어 감수성 향상 프로젝트
신지영 지음 / 인플루엔셜(주) / 2021년 9월
평점 :
언어에도 감수성이 있다.
무심코 내뱉는 한마디의 말에서 사람의 인격을 느끼곤 하는 요즘이다. 저자 신지영 교수는 언어학자로서 언어 감수성 향상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이 책을 썼다고 한다. 개인적으로는 언어학자 다운 언어 감수성을 지닌 사람이라는 생각과 함께 참 멋진 사람이라는 생각이 드는 책이었다.
저자는 전 대통령의 권력에 언론이 비판 없이 화답했던 일을 냉철하게 꼬집는다. ‘유권자’가 뽑은 ‘당선자’였던 이명박 당시 대통령이 ‘당선자’가 아닌 ‘당선인’으로 불러 줄 것을 요구하였고, 헌법재판소에서는 ‘당선자’라고 써 줄 것을 요구하였다. 한 나라의 대표에게 ‘놈 자(者)’를 붙이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대통령 인수 위원회 측과 헌법 제67조 2항, 제68조 2항에서 표기한 대로 ‘당선자’라는 표현이 적절하다는 헌법재판소 양측의 요구를 받은 언론에서는 ‘당선인’이라는 호칭으로 빠르게 협조하기 시작했다.
저자는 단어 선택에 민감해야 할 언론이 비판적 기능 없이 권력에 순응한 것도 문제이지만, 개선이 시급한 것은 단어가 아닌 한자의 새김이라고 지적한다. ‘자(者)’의 새김이 ‘놈’이긴 하지만 그 안에 비하의 의미가 담겨 있지 않으며 그에 대한 근거로 ‘과학자, 교육자, 언어학자’등을 제시한다. 더욱이 유권자가 뽑은 당선자임에도 불구하고 유권자의 ‘자(者)’는 괜찮고 당선자의 ‘자(者)’는 문제 삼는 태도 또한 아이러니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스스로를 유권자들과는 다른 존재로 인식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예가 아니었을까.
세종대왕이 지으신 훈민정음 언해본의 ‘놈’은 비하의 의미가 아니었지만, 현대에 이르러 비하의 의미가 덧입혀졌다면 차라리 한자 새김은 ‘사람 자(者)’로 바꾸면 될 일이고, 실제로 요즘 아이들은 이렇게 배우고 있다고 한다. 저자가 멋진 지식인이라 생각하게 된 것도 이 부분을 읽으면서였다. 문제를 인식하지 못한 사람도 있겠지만, 단어 하나에 담긴 의미를 아는 언론이나 해당 분야 전문가들이 용기를 내서 문제를 지적할 수 있어야 사회가 발전적인 방향으로 흘러가게 될 것이고, 문제가 발생했을 때 권력이나 나의 안위에 대한 걱정 없이 그것을 지적할 수 있는 사회야말로 진정한 민주 사회가 아닐까 하는 생각에.
언어를 대하는 태도에 대한 저자의 우려도 공감이 가는 부분이었다.
여름에 들었던 워크숍에서 한 교수님이 그런 말씀을 하셨다. 요즘 영어를 모르는 사람들은 뉴스조차 알아듣기가 힘든 사회가 되었는데, 더 큰 문제는 그런 상황에서 어려움을 느끼는 사람들이 아니라 어려움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는 줄도 모르고 이를 무감각하게 받아들이는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언젠가부터 전문 분야 전공자들은 해당 국가의 원서를 공부하는 것을 우선시하면서 전문용어를 한국어로 표현하기에는 해당 단어 고유의 의미를 잘 살리지 못한다는 이유를 들며, 영어 표현을 그대로 사용하는 일이 잦아졌다. 국제화, 세계화 시대를 살아가는 세계 시민의 미덕이 반드시 영어를 읽을 줄 알고, 외래어 사용에 불편을 느끼지 않아야 하는 것인지는 모두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어르신들도 ‘드라이브 스루’를 자유롭게 사용하고, ‘언택트 시대’를 어려움 없이 살아가는 세상이 아니라면 우리도 언젠가 기계 앞에서 알 수 없는 모멸감에 주눅들 수밖에 없을 테니까.
나의 언어는 얼마나 차별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나의 말들은 과연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은 수준인지 생각해 보는 오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