쉰이 넘는 나이에 무언가를 배우고, 그 결실을 내놓기로 결심하는 것은 분명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가디언지의 편집국장이라는 지위에 있는 사람이 얼마나 바쁠지를 생각하면 더더욱. (저자가 원체 영특한 사람인 것 같다는 인상을 그의 프로필에서부터 받기는 하지만 말이다)책의 본문에선 일기 형식을 통해 쇼팽 발라드 중 한 곡을 마스터하기로 한 도전의 과정을 기술하고 있다. 일기나 자서전 등은 읽는 사람에게 자칫 "그래서 뭐 어쩌라고" 식의 감상을 불러일으키기 쉬운데, 문장도 유려하고 지적인데다가 위트 있어서 읽는 맛이 나는 글이 되었다. 다시 한 번 저자의 역량을 확인한 부분이다.문장의 매끄러움과 고급스러움을 잘 살린 (그리고 어쩌면 배가했을) 번역가의 공이 크다고 생각한다. 근래 들어 읽은 책 중 가장 번역이 좋다. 번역가 본인의 역량도 대단하지만, 책 앞 부분에 번역에 관해 일러둔 글에서도 역자가 얼마나 세심하게 신경썼는지 알 수 있다. 덧붙이자면 책의 디자인마저 예쁘다. 내지 레이아웃이 조금 빡빡하긴 하지만 세련됐다. 어떻게 책을 만들어야 가지고 있는 내용을 가장 매력적으로 만들어줄지 고민하고, 실제 출판의 과정에서도 공들인게 보인다. 칭찬해주고 싶은 출판사다. 간만에 만나는 잘 쓰이고, 잘 만들어진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