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 구독 사회 - 약과 영양제로 몸을 튜닝하는 시대
정재훈 지음 / 에피케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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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에 영양제가 만능이라고 생각하지도 않는 사람이건만 점점 쇠약해지는 나이에 영양제에라도 기대지 않으면 일상이 쬐끔 고달파지는 시점에 다다랐다고나 할까. 아 슬프다. 하지만 챙겨 먹는 건 마그네슘 하나, 최근 용종 이슈로 이제서야(!!) 유산균까지 얹었다.(난 밥이 보약이라 생각한다)

주위를 둘러보면 영양제를 종류별로 털어 먹는 사람이 늘었다. TV나 SNS 광고만 봐도 어찌나 많은 종류의 영양제들이 나오는지. 이거 정말 효과 있을까? 그럼 아픈 사람 한 명도 없게? ☺️

저자 정재훈은 약사로, 건강을 구독하는 것 같은 사회 저변에 깔린 인간의 심리와, 그 심리를 이용해 틈새를 파고드는 교묘한 마케팅을 낱낱이 해부한다. 결국 진리는 '적당히, 긍정적인 마인드로, 골고루 챙겨 먹는 따뜻한 식탁'에 있다는 문장으로 귀결되지만, 그 결론에 다다를 때까지의 과정이 무척이나 인상적이다.

탄탄한 팩트와 기똥차고 적절한 예시, 통계 자료를 버무려 누가 읽어도 어렵지 않고 재미있게 표현했다. 사실 나로서는 관심 분야의 책이라 조금도 지루하지 않게 읽었지만 영양제와 건강에 관심 있는 모두가 꼭! 반드시! 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뻔한 정답은 모두가 알고 있다. 좋은 식습관과 건강한 생활 환경. 그 정답을 알고서도 쉽게 지키지 못하는 현대인들을 위해 영양제는 어느 정도 도움이 될 수는 있지만 결코 만능이 아니라는 점. 도구로써 존재해야 할 영양제를 만능으로 맹신하는 순간, 돈 잃고, 건강도 잃는 상황이 올 수가 있다는 걸 명심해야 한다.

느슨한 제도로 요리조리 규제를 피해가며, 오로지 돈벌이 목적으로만 효과도 크지 않은 제품을 만들고, 공포를 조장하며, 지나친 상술을 부리는 나쁜 놈들이 도처에 있다(진짜 열받). 소비자로서 항상 의심하고, 나에게 필요한 걸 잘 파악하며, 깐깐한 시선을 거두지 않아야겠다. 이 책의 저자처럼 양심적인 전문가들만 세상에 큰소리를 내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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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약은 위험을 끝까지 추적하고 문서화하기 때문에 무섭게 보이고 건강기능식품은 위험을 충분히 추적하지 않기 때문에 순하게 보인다. 사람들은 이 착시를 진실로 믿으며, 약은 최소한으로 줄이고 영양제는 최대한으로 늘리는 역설적인 선택을 한다.

🔖57. 실험실에서 합성한 비타민 C와 오렌지에서 추출한 비타민 C는 화학 구조가 완전히 동일하다. 우리 몸은 그 둘을 구분하지 못한다. 그런데도 우리는 여전히 <천연 비타민 C>에 더 많은 돈을 지불한다. 왜? 자연산이 더 안전하고 더 효과적일 것 같다는 막연한 생각 때문이다. 하지만 느낌은 느낌일 뿐 과학이 아니다.

🔖144. 이 책에서 나는 약과 영양제를 <맞다/틀리다>의 흑백 논리로 재단하지 않으려고 한다. 현실은 대부분 그 사이 회색 지대에 있기 때문이다. 어떤 성분은 분명히 작동한다. 다만 언제, 누구에게, 어느 정도로 작동하는지가 문제다. 반대로 어떤 성분은 완전히 거짓이기보다는 과장된 기대가 문제다. 작은 가능성이 기적으로 포장되는 순간 과학은 마케팅으로 변질된다.

🔖176. 재미있는 통계가 있다. 영양제를 가장 열심히 챙겨 먹는 사람들은 누구일까? 아이러니하게도 이미 식습관이 좋고, 운동을 하고, 담배를 안 피우는 건강한 사람들이다. 영양학적으로는 보충제가 가장 필요 없는 사람들이 가장 열심히 먹는다. 이유는 정체성에 있다. 물건을 소비함으로써 타인이 아닌 나 자신에게 내가 어떤 사람인지 증명하는 것이다. 바쁜 출근길, 귀찮음을 무릅쓰고 영양제 통을 여는 그 순간, 우리는 스스로를 대견하게 여긴다. <나는 바빠도 건강을 챙기는 자기 관리에 철저한 사람이야.>

🔖222. 단백질은 중요하다. 우리 몸을 만드는 벽돌이자 생명의 원천이다. 하지만 그것은 마법의 탄환이 아니다. 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은 단백질 부족이 아니라 단백질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지나친 상술과 강박의 과잉이다.

🔖299. 건강에는 음식의 성분만큼이나 함께 먹는 리듬과 관계도 중요하다. 데이터가 나를 돕는 도구가 되어야지, 나를 고립시키는 규칙이 되면 곤란하다.

#정재훈 #건강구독사회 #서평 #에피케 @epikhe_boo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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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탕 실
연소민 지음 / 자이언트북스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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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막 중학생이 된 내 딸과 같이 읽고 싶은 책이다.

주인공은 열다섯 미도. 엄마와 함께 달리는 차에서 사고를 당한 후 엄마는 병원에서 회복 중에 있고, 많이 다치지 않은 미도는 평범하게 중 2 생활을 보내고 있다. 엄마가 꾸려 오던 실뜨기공방 털실아이 맞은 편에 생긴 '니농마카롱'의 마카롱을 엄마가 좋아해 자주 들르는 미도. 니농마카롱엔 자신의 중학교에 전학을 와 놓고 장기결석 중인 가호라는 남자애가 엄마를 도와 일을 하고 있다. 마카롱도 마카롱이지만 가호에게 호기심이 생기는 미도.

주변에는 미래를 착착 준비해 나가는데 나만 뒤처지는 것 같고 가만 있으면 안될 것 같다는 막연한 두려움이 있지만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제대로 말할 용기도, 뛰어들 용기도 없는 미도. 청소년기의 불안과 두려움을 생생히 읽으며 사춘기에 접어둔 미도뿐 아니라 이미 중년에 바짝 다가온 내가 읽기에도 많은 공감과 위로가 되었다.

엄마의 공방 '털실아이'도 지켜내고 싶고, 가호의 엄마가 꾸리는 '니농마카롱'도 오래오래 곁에 머무르길 꿈꾸며 할 수 있는 걸 하나씩 해보는 미도와 가호. 잠시 주춤거리고 불안이 꿈틀거려도, 흐르는 시간에 조급해지더라도 꿈은 항상 그 자리에서 빛나고 있다. 길을 잃어 방황하고, 직선 거리로 나아가지 못하는 것 같을 지라도 헤매다 보면 어느새 그 샛길이 큰길과 연결되는 중간지점일지도 모른다는 작가의 말이 참 좋았다. 하루 하루 쌓이는 시간들은 어느 것 하나 버릴 것 없이 내 안의 단단한 심지로 나를 이루어갈 것임을 이제는 안다.

흔들리는 청춘, 도전하는 모두에게 단단한 힘을 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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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 늘 그 자리에서 같은 얼굴로 나를 맞아 주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은 일상을 조금 더 가뿐하게 만들어 주었다.

🔖103. 사실은 진심을 다해 동화를 썼을 때 나에게 재능이 없다는 사실을 마주하게 될까 봐 두려웠다. 꿈이 송두리째 짓밟히느니 도전하지 않은 채 '가능성이 있는 상태'에 조금이라도 더 머물고 싶었다. 그래서 비겁하게 도망치고 있었다.

🔖131. 서로에 대해 알아갈수록 태도가 바뀌는 친구들이 있었다. 장점을 발견하면 우호적으로 대하고, 약점을 발견하면 거리를 두기도 했다. 윤아는 달랐다. 상대방에 대해 알게 되는 사실들을 장단점으로 구분하지도, 판단하지도 않았다. 그저 그 사람을 이루는 한 조각으로 받아들였다.

🔖141. 가게가 사라진다고 해서 과거까지 사라지진 않아. 그곳에서 보낸 기억은 나의 일부이기도 하니까. 어떤 추억은 평생 남아서, 남은 시간을 살아가게 해 주지.

🔖148. 나는 갈피를 잡기 어려운 폭넓은 길이 두려워서, 샛길로 도망치는 걸지도 몰랐다. 하지만 샛길을 걷다 보면 언젠가는 그 길이 큰길과 합쳐질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조금 더 시간이 걸릴지라도 말이다.

🔖205. 나는 만드는 사람으로서 최선을 다했지만 그 디저트를 완성하는 건 결국 먹는 사람의 몫이더라. 글도 마찬가지 아닐까? 작가가 최선을 다해 이야기를 써도 그 결말을 완성하는 건 독자의 몫일 거야. 어떤 결말이든, 네가 선택한 그 결말에 웃는 사람이 분명 있을 거야.

🔖224. 아니야. 누군가에게는 슬픈 동화가 필요해. 또 어떤 사람에게는 잔혹 동화가 필요할 수도 있지. 그리고 어느 정도 슬픔이 동반될 때 비로소 진정한 해피엔딩이라고 느끼는 사람도 있을 거야. 미도의 동화가 어떤 결말이든 독자들은 그 속에서 자기만의 의미를 어떻게든 찾아낼 거야. 아무리 비극적 결말이라고 해도 말이야. 그러니까 미도만의 엔딩을 보여주면 돼. 남들이 정해놓은 결말의 공식을 따를 필요는 없어. 분명 미도만이 쓸 수 있는 결말이 있을 거야.

🔖226. 앞으로 나는 사람의 마음을 오해하고 재단하고. 단정하는 실수를 몇 번이고 반복할 것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상대방의 마음을 들여다보려는 노력을 멈추지 않으리라는 걸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연소민 #설탕실 #자이언트북스 @giantbooks_offici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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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지 다커
앨리스 피니 지음, 이민희 옮김 / 밝은세상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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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놓고 말해야지. 반전의 반전의 또 반전을 거듭하는 소설. 앨리스 피니가 돌아왔잖아. 추리 소설을 즐겨 읽지만 왠지 소장까지는 머뭇거리게 되는 난데 앨리스 피니의 [가위바위보]를 읽고 홀라당 빠져 밤을 새서 읽고 《팔지않아 zone》에 고이 보관 중이라면 말 다했지.

얼마나 기다렸는지 책 받자마자 심장이 콩콩. 기대했던 만큼 좋았다. 정말 세 번 정도의 뒷통수를 맞을 수 있는 책이다.

주인공은 데이지 다커. 꽃 이름을 가진 다커 가의 세 자매는 첫째 로즈, 둘째 릴리, 셋째 데이지. 동화 작가로 유명해진 할머니의 여든 번째 생일 파티로 할머니가 혼자 머무는 곳, 시글라스에 가족 모두가 모인다. 시글라스는 만조가 되면 여덟 시간 오롯이 고립되며 간조가 되어야 다시 밖을 나갈 수 있는 일종의 밀실인 셈이다.

다커 세 자매와 부모님인 프랭크와 낸시, 둘째 릴리 다커의 딸 트릭시, 어린 시절을 늘 함께 보냈던 코너 케네디까지 모인 시글라스. 폭풍우가 몰아치고 할머니는 유언을 발표한다. 유산에 관심이 지대한 가족들 중 누구도 만족하지 못한 유언을 내놓은 비어트리스. 모든 재산은 사회에 환원하며 저작권은 증손녀 트릭시에게 남기겠다는 내용. 비밀과 욕망으로 점철된 가족들이 모두 모인 이 날의 비극은 비어트리스의 생일로 넘어가는 자정, 비어트리스의 죽음으로부터 시작된다. 도대체 누가?!

어릴 때부터 선천적인 심장 질환으로 단명할 수밖에 없던 운명을 가진 데이지 다커는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해주던 할머니 비어트리스의 지극한 사랑과 보살핌으로 위기를 몇 번 겪었지만 살아냈고, 할머니의 여든 번째 생일이자 할머니가 살해당한 그 순간부터 불안과 두려움에 휩싸이며 조용히 범인을 추적한다. 밀실 구조에서 한 시간 간격으로 가족들 한 명씩 살해되고 사건은 알 수 없는 미궁에 빠지며 시종일관 불안한 분위기에 한 장면도 눈을 뗄 수 없게 만든다. 간조까지 여덟 시간, 초대된 사람은 여덟 명, 한 시간 간격으로 살해되는 사람들. 마지막까지 남은 사람은 누구일까.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시선에 점차 드러나는 숨겨진 진실들. 추악한 진실은 아무리 덮으려 해도 악취까진 가릴 수 없다. 철저히 계획된 살인, 끝내 잊혀질 수 없는 참혹한 과거가 드러나는 순간 생각이 마비되는 찰나를 경험할 수 있다. 다시 첫 페이지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경악할 반전. 앨리스 피니가 돌아왔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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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7. 우리는 누구나 좋은 사람인 동시에 나쁜 사람이기도 하단다.

#앨리스피니 #데이지다커 #밝은세상 @wses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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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에게
정영욱 지음 / 부크럼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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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늘 '나쁜 책은 없다'고 생각한다. 책으로 나오기까지의 숱한 시간과 노력, 수많은 영감과 고뇌의 흔적들을 독자라는 이유로 이러쿵 저러쿵 점수 매기고 폄하하는 게 왠지 모르게 도리(?)에 맞지 않다고 느껴진다. 개인적인 주관이라 나와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하고 논쟁을 하고 싶지도 않다. 다만 취향의 차이는 있다고 생각한다. 나쁜 책은 없지만 내 취향이 아닐 수는 있는 것.

읽기 쉬운 책은 아니었다. 작가의 전작을 보고 아무런 정보 없이 희망을 주는 밝은 책일 거라 예상했다. 이 책은 작가의 에세이며 자신을 지금에 이르게 한 과거 사랑을 낱낱이 파헤치는 비밀스런 일기 같기도 했다. 그래서 읽기 어려웠던 것이다. 나와는 자라온 환경과 처해 있는 상황, 만난 사람들의 성향도 모든 게 달랐기 때문에 처음엔 도통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다. '이런 사람이 있다고?', '이렇게 된다고?'

하지만 결국 책을 읽는 건 나와 같은 성향만을 옹호하고자 함이 아니니 읽으면서 점차 '이런 상황도, 이런 사랑도 있을 수 있겠구나'라고 느꼈다.(어쩌면 체념인지도 모르겠다🥲) 어떤 심정이었을까 헤아려 보는 것, 그것만으로도 새로운 감정을 품어볼 수도 있는 거니까.

밝은 글을 많이 쓰셔서 이런 예상치 못한 과거의 사랑(모두가 사랑이다)이 있을 거라 상상도 못했다. 어쩌면 작가의 밝음을 향하는 글들은, 다양한 시간을 쌓아온 작가의 경험들이 내보인 결실 같기도 했다. 모든 순간과 시간들은 그냥 지나가는 게 없다. 끝끝내 현재의 내 모습 곳곳에 뿌리 내리고 살아있다. 상처 나고 찢긴 과거의 시간들이 결국 지금의 나를 만들어냈다고 말하는 것 같은 책이었다. 그래서 과거의 시간들이 아프고 어둡지만은 않았다고 역설적으로 느껴지게 하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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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인간은 누구나 너덜너덜한 마음을 속옷처럼 숨기고 산다. 입은 한없이 더럽고 생각은 탁하다.

🔖22. 그랬던 사람만 보이는 것이다. 공감의 구조는 경험 말고는 설명할 길이 없다. 그것을 깨닫는 순간, 언젠가의 나도 그랬다는 것이 증명된다. 그 말은, 아파보지 않고는 그 절뚝거림을 완벽히 이해할 수 없다는 뜻이다. 성공을 겪어보지 않았다면 누군가의 해냄을 온전히 축하할 수도 없다. 그러니 진정으로 위로할 줄 아는 이는 그 고통을 이겨낸 적이 있는 사람이고 축복할 수 있는 이는 그만큼 누려본 적 있는 사람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이 세상에 대한 모든 염새는 나의 악한 행보를 증명하는 셈이 된다. 진정으로 염세를 느낀다면 그것은 내 본연이 추악하기 때문이다.

🔖40. 과거는 빚과 같아 청산하지 못하면 내 삶의 부채가 되고, 빛과 같아 잊지 않고 품는다면 삶을 지탱하는 버팀목이 된다.

🔖51. 나는 결국 긍정적인 삶으로 향하기 위해 긴긴밤 속 별을 찾아 헤매었고, 누군가는 부정적인 삶에 면역하기 위해 그늘 속에서 지내는 법을 익히고 있었다.

#정영욱 #구원에게 #부크럼 @bookrum.offici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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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든 문장 쓰지 마세요 허블청소년 4
케빈 윌슨 지음, 박중서 옮김 / 허블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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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비평가의 전화를 받는 프랭키. "나는 니가 지난날 한 일을 알고 있다." 프랭키는 예상치 못한 전화로 순식간에 과거로 빨려든다. 어디에도 얘기한 적 없지만 단 한 번도 잊을 수 없던 인생의 경험. 이렇게 이 책은 첫 장부터 순식간에 몰입하게 만든다.

아빠에게 버림 받고 엄마와 쌍둥이 세 오빠와 평범해 보이는 나날을 지내고 있는 프랭키. 어느 날 우연히 마을로 이사 온 지크를 만나고 급격히 친해진다. 지크 역시 아빠의 외도로 엄마와 둘이 과거 할머니가 살던 마을로 잠시 내려왔던 것. 열여섯, 그 둘은 아빠라는 존재의 결핍과 어른이 되기 직전 소용돌이 치는 감정의 혼란 속 자기들의 인생이 지루해지지 않도록 특별한 뭔가를 반드시 만들어 내고 싶다.

글을 쓰고 싶었던 프랭키와 그림을 그리길 원했던 지크가 만나 끝내주는 포스터를 만들게 된다. 뜻도 없는 무의미한 단어들의 나열이었지만 괜히 그럴싸해 보이는 문구를 만들어 냈고 지크 역시 그 글에 어울리는 으스스한 그림까지 완성. 고장난 줄 알았던 복사기를 고쳐 포스터를 무한으로 찍어내고 작은 마을 콜필드 온 곳곳에 몰래 붙이기 시작한다.

포스터가 어떤 영향을 미칠 지 모르지만 자신들을 특별한 곳에 데려다 주길 바라는, 혹은 자신들을 특별한 존재로 만들어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지크와 프랭키는 멈추지 않는다. 어느 날 우연으로 시작해 포스터가 주목받기 시작하고 걷잡을 수 없이 순식간에 집단 공포가 조성되면서 청년 한 명이 목숨을 잃는 사건이 발생한다. 겁에 질린 프랭키와 지크는 결국 서로의 견해를 좁히지 못하고 서서히 멀어지는데...

사춘기 시절의 강렬한 열망, 특별해지고 싶으면서도 막상 멀리 벗어나긴 두려운 감정, 그 시기 무엇보다 제일 소중한 우정과 사랑에 달뜬 마음, 무의식에서도 결핍을 메우려는 시도, 그 모든 게 자기 자신을 찾아가는 길고 긴 여정 아닐까.

매 장면마다 사춘기 시절의 날 것 같은 감정을 마주하게 되는 느낌을 받았다. 포스터로 인한 집단적인 공포와 원인 모를 선동으로 혼란스러웠던 외부 상황 역시 사춘기 시절의 복잡한 감정을 이중으로 표현한 것 같아 묵직한 재미를 안겨줬다. 그 모든 시간들이 결국 온전한 '나'를 만들어내는 끝없는 과정이다. 그래서 이 소설은 소설의 결과보다는 매 순간, 매 장면 그 자체로 소중하고 귀한 이야기로 내게 남는다. 누가 프랭키와 지크에게 돌을 던질 수 있겠나. 그 포스터와 문장은 그 시간, 그들을 지킬 수 있는 마법 그 자체였다. 지금도 수없이 흔들릴 많은 청춘들 모두 가슴에 마법같은 문장 하나쯤 품고 살길 바라는 마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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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나는 결연한 기분이었다. 우리가 뭔가 중요한 것을 만들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잘은 모르겠지만 내가 뭔가를 통제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내가 결정을 내리고 있었다. 내가 선택을 하는 한에는 괜찮았다.

🔖50. 우리는 열여섯 살이었다. 어떻게 해야 우리의 삶이 아무도 알고 싶어하지 않을 만큼 지루한 것이 되지 않도록 막을 수 있었을까? 어떻게 해야 스스로를 특별하게 만들 수 있었을까?

🔖166. 내 생각에 지금 나는 이걸 만들면서도 동시에 좋은 사람도 남을 수 있는 방법을 궁리하려 하는 것 같아. 뭐랄까? 내 의도는 좋았잖아. 안 그래? 우리가 만든 것은 좋았단 말이야. 지금까지 나온 것 중에서도 최고였어.

#케빈윌슨 #내문장 #내가만든문장쓰지마세요 #허블 @hubble_boo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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