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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 오거스트의 열다섯 번째 삶
클레어 노스 지음, 김선형 옮김 / 반타 / 2025년 10월
평점 :
끄악 재미있다!!! 휴. 주인공과 함께 800년이 넘는 시간을 쉼 없이 달리다 보니 이제서야 안도의 한숨을 쉴 수가 있네. 약간 조급하고 긴장되면서 불안이 덕지덕지 묻어 났던 시간이었다.
우리의 주인공은 태어나고, 살고, 죽고, 또 다시 태어나고를 반복하는 인생을 산다. 대신 매번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항상 새롭게(?) 태어나기 때문에 다른 시간여행자나 환생하는 인간들과는 다르게 늘 같은 시간대를 살아야 하는 한계의 고통이 굉장히 크게 다가온다.
죽은 뒤 모든 기억을 안은 채 다시 두번 째 같은 삶으로 태어났을 땐 제정신으로 살기 어려운 걸 모두가 상상할 수 있듯이 일곱 살 때 정신병(남들이 보기에)으로 생을 마감한다. 하지만 또 다시 태어나게 되면서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고 새 삶의 모색을 꾀한다. 나라면? 이전 삶에서 아슬아슬하게 놓쳤던 선택의 순간에서 미처 뽑히지 않고 버려두었던 삶을 다시 살아보려나. 글쎄, 그것도 한두 번이지 무한 반복되는 같은 시대의 삶이라면... 그건 축복보다는 저주에 가깝다고 느껴진다.
주인공 해리 오거스트와 동일한 불멸의 삶은 사는 사람들은 이렇게 저렇게 모여 '크로노스 클럽'을 결성, 자신들의 안위와 세계 평화를 위해 규칙을 만들며 나름 협응하는 생활을 한다. 하지만 항상 예외는 있는 법, 불멸의 삶을 이용해 인류의 미래 자체를 바꾸려는 자, 빈센트 랜키스가 어디에서나 등장하고 해리는 천하는 숙적으로 빈센트를 막으려 한다. 여러 번의 생애 동안!
그 과정이 생생하면서도 더디고, 더디면서도 눈 깜짝할 새라서 도통 앞일을 종잡을 수가 없어 중후반부부터는 쉴 새 없이 그들과 함께 여정을 달렸다. '망각', 혹은 '필멸의 삶'으로 존재 자체를 없애는 싸움에서의 승자는 누가 될 것이냐고.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숨막히는 전쟁이다, 증말. 해리나 빈센트나 보통 아니야... 그도 그럴 것이 800년 이상을 살면 척!하면 착!하고 뻔히 보일 테니 그들의 피 튀기는 두뇌 싸움은 독자들을 도파민 파티로 이끌어 준다 이 말이야.
결말에서 안도감을 느끼고 무척 뿌듯해했던 것도 찰나, 이러면 우리 주인공 해리는 어떻게 되는 거야? 또 다시 열여섯 번째의 삶을 살아야 되는 건가? 나는 좋았던 것도 잠시, 한편으론 안쓰럽고 착잡한 마음이 좀 더 컸던 것 같다. 세상의 모든 일엔, 어쩌면 끝이 있기에 아름답고 소중해지는 것 같다는 진부한 말을 끄집어 올 수밖에 없다. 재미있었다는 얘기다. 이렇게 할 말이 궁시렁궁시렁 많아지는 이야기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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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세 번째 생애에서 그 죽음은 선로에 묶인 사람에게 서서히 다가오는 기차처럼 찾아왔지. 불가피하고 막을 수 없는 사태를, 멀리서부터 예감하며 밤마다 상상했어. 내게는 실제 죽음보다더 끔찍한 일이었는지도 몰라.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고 있었기에, 막상 실제로 그 일이 일어나자 차라리 안도감이 들었어. 기대가 종결된 셈이니까.
🔖140. 우리에게 죽음은 전혀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다. 공포는 재탄생에 있다. 재탄생, 그리고 몸이 아무리 갱생해도 정신은 구원받을 수 없다는, 사라지지 않는 두려움.
🔖287. 정말로 성공적인 위협의 요체는 언성을 높이거나 욕설을 하는 게 아니라, 때가 되면 대사 고함을 쳐줄 배후의 무리가 있다는 걸 듣는 상대에게 확실히 각인시키는 고요한 자신감을 기르는 데 있다.
#클레어노스 #해리오거스트의열다섯번째삶 #오팬하우스 @ofanhouse.officia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