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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숨을 팝니다
미시마 유키오 지음, 최혜수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5년 8월
평점 :
괴상하고 독특한 책. 50년도 더 된 책인데 촌스러운 느낌은 전혀 없다. 신작이라 해도 믿었을 듯!
하니오는 어느 날 문득 죽어야겠다고 생각한다. 신문을 보는데 글자들이 바퀴벌레가 되어 드글거리는 모습으로 보였던 것. 그렇게 그는 삶에 집착을 버리고 자살하기로 결심한다.(네??) 약을 잔뜩 먹었지만 주변인의 도움으로 목숨을 구하고 병원에서 눈을 뜬 하니오는 이미 버리기로 한 목숨, 목숨을 팔기로 한다.
"목숨을 팝니다. 원하시는 목적으로 써 주십시오. 저는 27세 남자. 비밀은 절대 보장, 결코 폐를 끼치지 않겠습니다."
터무니 없어 보이는 광고에도 사람들은 하니오를 찾아 온다. 아주 다양한 이유로. 하니오의 목숨을 이용하려는 사람들은 정말 기상천외하고 별종이다. 그 과정에서 자꾸 죽지 못하고 생각지 못한 돈을 벌게 되고 사랑을 나누고 도망을 다니고?!! 처음 썼던 문장처럼 읽는 내내 괴상하고 독특한데 또 재미있게 잘 읽힌다.
처음 읽을 땐 생뚱맞게만 느껴졌던 글이 두어 번 읽어 보니 다르게 느껴지는 감각이 있었다. 작가는 인생의 허무함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었나 보다.
\ '심심하다, 심심하다, 심심해. 무슨 재미있는 일 없을까.' 하고 천만 명이 얼굴을 마주치며 인사 대신 말하는 대도시의 방대한 욕구불만, 거기에 꿈틀거리는, 무수한 플랑크톤 같은 밤의 젊은이들. 인생의 무의미. 열정의 소멸. 기쁨도 즐거움도 추잉검처럼 씹다가 금세 단물이 빠져서 결국 길바닥에 뱉어버릴 수밖에 없는 허무함...(p.268)
바퀴벌레와 다를 바 없어 보이는 대부분의 인생이 무가치하게 느껴졌던 것. 바퀴벌레 같은 삶은 무엇일까. 패전 후 일본에서는, 대학을 나오고, 좋은 직장을 다니며, 가정을 꾸리는 인생이 그저 최고의 인생으로 여겨졌다. 그런 삶 자체와 그런 삶을 추켜세우는 시선들에 대한 반항과 거부로도 보인다. 판에 박은 듯한 미래상을 추구하는 인간들의 모습이 흡사 바퀴벌레처럼 보였을까? 마지막 옮긴이의 해설까지 읽으며 미시마 유키오의 작품을 좀 더 깊이 있게 느껴볼 수 있어서 좋았다!
유머와 허무맹랑한 이야기 속에 담긴 공허감을 마주했던 것도 같다. 재미있고 황당하지만 우스개 소설로만 간단히 설명하기엔 넘치는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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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3. 하니오는 드디어 오늘 밤 죽으려는 참이었다. 거기에 자신의 의지가 단 하나도 들어 있지 않다는 점이 통쾌했다. 자살은 귀찮고, 애당초 너무 드라마틱하니 취향에 맞지 않았다. 또한 남의 손에 죽으려면 무슨 이유가 있어야만 한다. 남에게 그런 원한이나 증오를 살만한 일을 한 기억은 없고, 남의 손에 죽을 만큼 강렬한 관심을 받기도 싫었다. 목숨을 판다는 것은 무책임하면서도 멋진 방법이었다.
🔖162. 이런 상투적인 격려의 말을 전에도 어디선가 들은 적이 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남의 인생을, 삶을 무턱대고 격려하는 말. 남의 상황 따위는 전혀 고려하지 않고!
🔖268. 유혹만 있고 만족은 없는 이 대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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