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를 만들 수가 없어서요
강진아 지음 / 한끼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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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보다 똑똑하고 능력 있지만 가정 형편의 어려움을 겪는 주인공 차경. 차경과 같은 반이자 눈부시게 화려한 미모의 소유자이며 집안이 빵빵한 도희가 친근하게 다가온다. 단도직입적으로 의도를 드러낸 도희는 차경의 뛰어난 그림 실력을 이용하여 위조지폐 몇 장만 찍어내자고 제안한다. 학원비를 가방 소비에 써버렸다는 이유로. 차경은 머뭇거리지만 이내 흔들리는 자신을 발견한다. 항상 써보고 싶었던 값비싼 미술 도구들을 떠올리며 그녀 둘은 금세 친해지는 듯 보인다. 또 다른 친구 혜미를 이용해 찍어낸 5만원권으로 물건을 계산하고 남은 돈을 받았을 때, 종이쪼가리가 돈이 되는 그 순간에 차경과 도희가 느꼈을 두려움과 희열에 나 역시 함께 빠져들며 쉴 새 없이 책장을 넘겼다.

전개가 엄청 빠르게 진행되서 몇 편의 드라마를 휙휙 넘겨본 기분이다. 사소한 실수로 위조지폐가 들킬 위기에 처한 순간 갑작스레 일어난 사고로 혜미가 죽게 되고 차경과 도희 역시 본색을 드러내며 각자의 길을 가게 된다. 차경이 완벽하게 만들지 못한 위조지폐 9장은 여전히 도희의 금고 안에서 차경을 협박하는 용도로 숨어 있다. 성인이 되고 열망하던 곳에서의 취업을 앞둔 차경에게 늘 그렇듯이 악녀 도희가 등장한다. 위조지폐로 발목 잡아 자신의 목표를 채우려는 도희의 야비함에 치를 떨면서도 차경이 그렇게까지 휘둘려야만 하는 건지 답답하기도 했다.

도희의 그늘에서 벗어나려는 차경의 대담하면서도 의외의 시도들은 눈길을 끌기 충분했고 빠른 전개로 긴박감을 주기도 했지만 왜인지 모를 찜찜함이 자꾸 마음에 머문다. 도희가 들고 있던 차경의 기록들은 무슨 이유였을지 너무 궁금하고 의아했다. 피터지는 싸움 끝에서 끝내 확실한 답을 들을 수 없었으니 나 혼자 상상의 나래를 펼쳐야 하는데 깊은 의도가 있는 건지, 그저 단순히 협박용으로 모아두었던 건지 여전히 미스터리다.

누구보다 진짜처럼 살길 원했던 차경은 여전히 거짓 삶 속에서 버티는 인생을 택한 것 같다. 위조지폐를 만든 이유가 바로 제목이라는 점이 인상 깊다. 진짜를 만들 수가 없으니 가짜라도 만든다는 것일까. 진짜 같은 가짜로 살다 보면 결국 진짜처럼 여겨지는 날이 오는 걸까. 그저 평범하게 살고 싶었던 차경에게 벌어지는 사건들 속에서 진짜 삶을 위해 처절하게 발버둥치며, 고통 받고, 이용하며, 얻어내는 순간들이 개운치 않은 씁쓸함을 준다.

표지의 앞장과 뒷장, 같은 소녀, 다른 표정들이 손 끝에서 떠나질 않는다. 글로벌 그룹 엔티 공개채용 합격자 차경과, 여고생 위조지폐 사건 용의자 차경 중 진짜는 뭘까. 두 차경의 원만한 합의를 조용히 바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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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눈앞에서 가짜가 진짜로 바뀌고 있었다. 장난처럼 만든 종이쪼가리가 돈이 되는 순간이었다.

#강진아 #진짜를만들수가없어서요 #한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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